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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 100년분투 중대성과와 력사적 경험에 대한 중공중앙의 결의 (1)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1.11.17일 09:07
  (2021년 11월 11일 중국공산당 제19기 중앙위원회 제6차 전원회의에서 통과)

  서 문

  중국공산당은 1921년에 창건되여서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중국인민의 행복을 도모하고 중화민족의 부흥을 도모하는 것을 초심과 사명으로 삼고 시종일관 공산주의리상과 사회주의신념으로 전국 여러 민족 인민을 단합인솔하여 민족의 독립과 인민의 해방을 쟁취하고 나라의 부강과 인민의 행복을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분투해오는 가운데 100년이라는 빛나는 력사적 로정을 걸어왔다.

  지난 100년간 당은 인민을 령도하여 백절불굴의 정신으로 피흘려 싸워 신민주주의혁명에서 위대한 성과를 이룩하였으며 자력갱생의 정신으로 분발정진하여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에서 위대한 성과를 이룩하였다. 또한 사상을 해방하고 예의진취함으로써 개혁개방과 사회주의현대화건설에서 위대한 성과를 이룩하였으며 드높은 자신감과 자강정신으로 옳바른 길을 견지하고 혁신을 추진함으로써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건설에서 위대한 성과를 이룩하였다. 당과 인민은 지난 100년간의 분투를 거쳐 중화민족의 수천년 력사상 가장 웅대한 서사시를 엮어놓았다.

  당이 지난 100년간의 분투를 거쳐 얻은 중대한 성과와 력사적 경험을 총화하는 것은 창당 100년이 되는 력사적 조건에서 사회주의현대화국가를 전면적으로 건설하는 새로운 로정을 시작하고 신시대에 중국특색사회주의를 견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한 요구이며 정치의식, 대국의식, 핵심의식, 일치의식을 높이고 길에 대한 자신감, 리론에 대한 자신감, 제도에 대한 자신감, 문화에 대한 자신감을 확고히 다지며 당중앙과 전당에서의 습근평동지의 핵심적 지위를 결연히 수호하고 당중앙의 권위와 집권적 통일령도를 결연히 수호하며 전당이 보조를 맞추어 전진하도록 확보하기 위한 요구이며 당의 자기혁명을 추진하여 전당의 투쟁능력과 위험 및 도전 대응능력을 높임으로써 당의 생기와 활력을 영원히 유지하고 전국 여러 민족 인민을 단합인솔하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이라는 중국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계속 분투하기 위한 요구이다. 전당은 계속 유물론적 력사관과 옳바른 당사관으로 지난 100년간 당의 분투과정을 되돌아보면서 과거에 왜 성공할 수 있었는지를 똑똑히 살피고 앞으로 어떻게 하여야 계속 성공할 수 있는지를 분명히 인식함으로써 초심과 사명을 더욱 확고히 다지고 자각적으로 실천하며 신시대 중국특색사회주의를 더욱 잘 견지하고 발전시켜나가야 한다.

  1945년에 열린 당중앙 제6기 제7차 전원회의에서 통과한 와 1981년에 열린 당중앙 제11기 제6차 전원회의에서 통과한 는 당의 중대한 력사적 사건과 중요한 경험교훈을 실사구시적으로 총화하여 중대한 력사적 고비에 전당의 사상과 행동을 통일함으로써 당과 인민의 사업을 추진하는 데서 중요한 선도적 역할을 하였다. 그 기본 론술과 결론은 지금도 여전히 적용된다.

  1. 신민주주의혁명에서 위대한 승리를 이룩하다

  신민주주의혁명시기 당은 제국주의와 봉건주의, 관료자본주의를 반대하고 민족의 독립과 인민의 해방을 쟁취하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데 근본적인 사회적 여건을 마련해주어야 할 주요과업에 직면하였다.

  세계적으로 유구한 력사를 자랑하는 위대한 민족으로서 중화민족은 5,000여년을 이어오며 찬란한 문명을 창조하여 인류문명의 진보를 위해 불멸의 기여를 하였다.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서방렬강들의 침입과 봉건통치의 부패로 말미암아 중국이 점차 반식민지반봉건사회로 전락되면서 중화민족은 나라가 굴욕을 당하고 인민이 고난을 겪으며 문명이 매몰당하는 미증유의 재앙을 겪게 되였다. 민족을 생사존망의 위기에서 구하기 위하여 중국인민은 떨쳐일어나 항쟁하였으며 애국지사들은 활발한 활동을 펼치는 가운데 대성질호하며 눈물겨운 투쟁을 진행하였다. 태평천국운동, 양무운동, 무술변법, 의화단운동이 잇달아 일어났고 각종 구국방안이 번갈아가며 제기되였지만 모두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손중산선생이 령도한 신해혁명이 수천년간 중국을 지배해오던 군주전제제도를 뒤엎었으나 중국의 반식민지반봉건적인 사회성격과 중국인민의 비참한 운명을 개변시키지 못하였다. 중국은 구국운동을 선도할 새로운 사상과 혁명력량을 결집시킬 새로운 조직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10월혁명의 첫 포성이 울리면서 맑스-레닌주의가 중국에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5.4운동이 일어나면서 중국에서의 맑스주의의 전파가 빨라졌다. 중국인민과 중화민족이 위대한 각성을 하고 맑스-레닌주의가 중국의 로동운동과 긴밀히 결부되면서 1921년 7월에 중국공산당이 시대에 부응하여 탄생하였다. 중국에서 공산당의 탄생은 천지개벽의 대사변으로서 중국혁명은 이때로부터 면모가 일신되였다.

  당은, 근대 중국의 주요 사회모순은 제국주의와 중화민족간의 모순, 봉건주의와 인민대중간의 모순이므로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려면 반드시 반제반봉건적 투쟁을 진행하여야 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였다.

  창당초기와 대혁명시기에 당은 민주혁명강령을 제정하고 로동운동, 청년운동, 농민운동, 녀성운동을 일으켰으며 국민당의 개편을 추진하고 국민혁명군의 창건을 도왔으며 전국의 위대한 반제반봉건적 투쟁을 령도하여 대혁명의 고조를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1927년 국민당 당내 반동집단이 혁명을 배반하여 공산주의자와 혁명적 인민을 잔혹하게 살해하였다. 그 당시 우리 당내에서는 진독수를 대표자로 하는 우경사상이 우경기회주의오유로 발전하여 당의 령도기관에서 지배적 지위를 차지하는 바람에 당과 인민은 효과적인 저항을 할 수 없었다. 대혁명은 강적의 불의의 습격하에 참혹한 실패를 당하고 말았다.

  토지혁명전쟁시기에 당은 참혹한 현실로부터 혁명적 무장이 없이는 무장한 반혁명세력을 타승할 수 없고 중국혁명의 승리를 전취할 수 없으며 나아가 중국인민과 중화민족의 운명을 개변시킬 수 없으므로 반드시 무장한 혁명으로 무장한 반혁명을 반대하여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남창봉기는 무력으로 국민당 반동파에 대항하는 첫 총성을 울림으로써 중국공산당이 독자적으로 혁명전쟁을 령도하고 인민군대를 창건하며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서막을 열어놓았다. 8.7회의에서 토지혁명과 무장봉기를 실시할 방침을 확정하였다. 당은 추수봉기와 광주봉기 및 기타 많은 지역의 봉기를 령도하였지만 적아 력량대비의 현격한 차이로 대부분 봉기가 실패하였다. 사실이 증명하다싶이 그 당시의 객관적 조건에서 중국공산주의자들은 로씨야10월혁명처럼 먼저 중심도시를 점령하는 것으로 전국적인 승리를 이룩할 수 없었으며 당은 중국의 국정에 맞는 혁명의 길을 찾아낼 것이 절실히 필요하였다.

  대도시를 진공하던 데로부터 농촌으로 진군하는 것은 중국혁명에서 결정적 의의를 가지는 새로운 출발점이 된다. 모택동동지가 군민을 령도하여 정강산에 첫 농촌혁명근거지를 창설하였으며 당이 인민을 령도하여 토호를 타도하고 전답을 나누었다. 고전회의에서는 사상적으로 당을 건설하고 정치적으로 군대를 건설하는 원칙을 확립하였다. 투쟁이 발전함에 따라 당은 중앙혁명근거지와 상악서, 해륙풍, 악예환, 경애, 민절감, 상악감, 상감, 좌우강, 천섬, 섬감, 상악천금 등 근거지를 창설하였다. 당은 국민당통치구역에서도 당조직과 기타 혁명조직을 발전시키고 대중혁명투쟁을 전개하였다. 그러나 당내에서 왕명의 ‘좌’경교조주의의 그릇된 령도로 인하여 중앙혁명근거지의 제5차 반‘포위토벌’이 실패하면서 홍군은 전략적 이동을 할 수 밖에 없었고 간고한 장정을 거쳐 섬북으로 전전하였다. ‘좌’경로선의 오유로 인하여 혁명근거지와 국민당통치구역의 혁명력량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다.

  1935년 1월에 중앙정치국은 장정도중에 준의회의를 소집하고 사실상 당중앙과 홍군에서의 모택동의 령도적 지위를 확립하였다. 이때로부터 당중앙에서의 모택동동지를 주요대표자로 하는 정확한 맑스주의로선의 령도적 지위가 확립되기 시작하였고 모택동동지를 핵심으로 하는 당의 제1세대 중앙지도집단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으며 당이 독립자주적으로 중국혁명의 실제문제를 해결하는 새로운 단계가 시작되였다. 준의회의는 가장 위급한 고비에 당을 구하고 홍군을 구하고 중국혁명을 구함으로써 그 후 장국도의 분렬주의를 짓부시고 승리적으로 장정을 끝내며 중국혁명의 새 국면을 열어놓을 수 있도록 하였다. 이는 당의 력사에서 생사존망에 관계되는 전환점이 된다.

  항일전쟁시기에 9.18사변 이후 중국과 일본의 민족적 모순이 국내계급모순을 초월하여 주요모순으로 되였다. 우리 나라에 대한 일본제국주의의 침략이 강화되면서 중화민족이 전례없이 엄중한 위기에 처한 고비에 당은 앞장서서 무장항일의 기치를 높이 들고 항일구국운동을 폭넓게 전개하였다. 서안사변의 평화적 해결을 추진하고 국민당과 공산당이 재차 합작하여 일치항일하도록 추진하는 데서 중대한 력사적 역할을 하였다. 7.7사변 이후 당은 옳바른 항일민족통일전선정책을 실행하고 전면적 항전로선을 견지하면서 지구전이라는 전략적 총방침을 제기하고 인민전쟁의 전략과 전술을 실시하였다. 광활한 적후전장과 항일근거지를 개척하고 팔로군, 신사군, 동북항일련군과 기타 인민항일무장력량을 령도하여 영용하게 싸움으로써 전민항전의 주축이 되여 중국인민항일전쟁의 종국적 승리를 이끌어냈다. 항일전쟁의 승리는 근대 이후 중국인민이 외세의 침략에 맞서 싸워 처음으로 완전한 승리를 거둔 민족해방투쟁이자 세계반파쑈전쟁 승리의 중요한 구성부분이기도 하다.

  해방전쟁시기에 국민당반동파가 서슴없이 발동한 전면적인 내전에 직면하여 당은 광범한 군민을 령도하여 점차 적극적인 방어로부터 전략적인 진공으로 전환하였다. 당이 령도하는 인민군대는 료심, 회해, 평진 등 3대 전역과 도강전역에서 승리를 거두고 중남, 서북, 서남 지역을 향해 승리적으로 진군함으로써 국민당반동파의 800만 군대를 소멸하고 국민당반동정부를 뒤엎었으며 제국주의, 봉건주의, 관료자본주의라는 세개 큰 산을 뒤엎었다. 그들은 인민의 지지하에 용왕매진하는 영웅적 기개로 극악무도한 적들과 결사적인 투쟁을 벌여 신민주주의혁명의 승리를 위해 력사적 공훈을 세웠다.

  혁명투쟁과정에 모택동동지를 주요대표자로 하는 중국공산주의자들은 맑스-레닌주의기본원리를 중국의 구체적인 실정과 결부시키고 고심어린 탐구를 진행하고 막대한 희생을 치르면서 쌓은 일련의 독창적인 경험을 리론적으로 개괄하여 농촌으로부터 도시를 포위하고 무력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옳바른 혁명의 길을 개척하고 모택동사상을 창시함으로써 신민주주의혁명의 승리를 위해 옳바른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혁명투쟁과정에 당은 진리를 견지하고 리상을 고수하며 초심을 실천하고 사명을 수행하며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고 영용히 투쟁하며 당에 충성하고 인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위대한 창당정신을 고양하여 당건설이라는 위대한 공정을 실시하고 추진하였다. 또한 사상적인 당건설에 력점을 두는 원칙을 제기하고 민주주의중앙집권제를 견지하고 리론을 실제와 결부시키는 기풍, 대중과 긴밀하게 련계하는 기풍, 비판과 자기비판을 진행하는 기풍 등 훌륭한 3대 기풍을 견지하며 통일전선, 무장투쟁, 당건설이라는 3대 보배를 확보함으로써 전국적이고 대중적이며 사상적, 정치적, 조직적으로 완전히 공고화된 맑스주의정당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1942년부터 당은 전당적인 정풍운동을 실시하였다. 맑스주의사상교양을 주요내용으로 하는 이 운동은 중대한 성과를 이룩하였다. 당은 를 제정하여 전당적으로 중국혁명의 기본문제에 대하여 인식의 일치를 가져오도록 하였다. 7차 당대회에서는 신민주주의의 신중국을 창건하기 위한 정확한 로선과 방침을 제정하여 전당이 사상적, 정치적, 조직적으로 전례없이 통일되고 단합되도록 하였다.

  28년간의 피어린 분투과정에 당은 인민을 령도하고 각 민주당파와 무소속민주인사의 적극적인 협력하에 1949년 10월 1일에 중화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선포하며 민족의 독립과 인민의 해방을 실현하였다. 반식민지반봉건적 성격의 구중국의 력사를 종말지었고 극소수의 착취자들이 광범위한 근로인민을 통치하던 력사에 종지부를 찍었으며 모래알처럼 산산이 흩어져있던 구중국의 국면을 종식하였고 렬강들이 중국을 강요하여 체결한 불평등조약과 제국주의가 중국에서 누리던 모든 특권을 철저히 페지함으로써 중국은 수천년의 봉건전제정치에서 인민민주에로의 위대한 도약을 실현하였으며 세계 정치구도를 크게 바꾸어 해방을 쟁취하기 위한 전세계 피압박민족과 피압박인민을 크게 고무하였다.

  력사가 충분히 설명해주다싶이 중국공산당은 력사와 인민이 선택하였으며 중국공산당이 없이는 민족의 독립과 인민의 해방을 실현할 수 없다.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은 영용하고 억세게 분투하여 중국인민은 일떠서게 되였고 중화민족이 유린을 당하고 온갖 수모를 당하던 시대는 종말을 고하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며 중국은 발전의 신기원을 열게 되였다는 것을 전세계에 장엄하게 선언하였다.

  2. 사회주의혁명을 완수하고 사회주의건설을 추진하다

  사회주의혁명과 사회주의건설 시기에 당은 신민주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이행을 실현하고 사회주의혁명을 진행하고 사회주의건설을 추진하여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데 근본적인 정치적 전제와 제도적 기반을 마련하여야 할 주요과업에 직면하였다.

  신중국이 창건된 이후 당은 인민을 령도하여 정치, 경제, 군사 등 분야에서 나서는 일련의 준엄한 도전을 이겨내면서 국민당반동파의 잔여무장력량과 토비를 숙청하였고 서장을 평화적으로 해방함으로써 조국대륙의 완전한 통일을 실현하였다. 또한 물가를 안정시키고 재정경제사업을 통일시켰으며 토지개혁을 완수하고 사회 제반 분야에서 민주화개혁을 단행하였으며 남녀권리평등을 실행하고 반혁명을 진압하였으며 ‘3반’, ‘5반’ 운동을 전개함으로써 구사회에서 남겨진 오물들을 씻어버리고 사회의 면모를 일신시켰다. 중국인민지원군이 위풍당당하게 압록강을 건너 조선의 인민과 군대와 어깨겯고 싸워 발톱까지 무장한 강적을 물리치고 국위와 군위를 떨치고 중국인민의 기개를 보여주었으며 항미원조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이룩함으로써 신중국의 안전을 수호하고 신중국의 대국적 지위를 과시하였다. 신중국은 복잡다단한 국내 및 국제 환경에서 립지를 굳혔다.

  당은 로동계급이 령도하는, 로농동맹에 기초한 인민민주주의독재의 국가정권을 수립하고 공고히 하는 사업을 령도하여 나라가 신속하게 발전하는 데 여건을 마련해주었다. 1949년에 열린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제1기 전체회의에서는 을 제정하였다. 1953년에 당은 향후 상당히 긴 시기에 국가의 사회주의적 공업화를 점진적으로 실현하는 한편 농업과 수공업, 자본주의공상업에 대한 국가의 사회주의적 개조를 점진적으로 실현한다는 과도기의 총로선을 정식으로 제기하였다. 1954년에는 제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제1차 회의를 소집하고 을 채택하였다. 1956년에 이르러 우리 나라는 생산수단 사적소유제에 대한 사회주의적 개조를 기본적으로 완수하고 생산수단 공동소유제와 로동에 따른 분배를 기본적으로 실현함으로써 사회주의경제제도가 수립되였다. 당은 인민대표대회제도와 중국공산당이 령도하는 다당합작 및 정치협상 제도, 민족구역자치제도를 확립하는 사업을 령도하여 인민의 주인적 지위를 제도적으로 보장해주었다. 당은 전국 여러 민족 인민의 대단합을 이루고 공고히 하여 여러 민족이 평등호조하는 사회주의적 민족관계를 형성하고 발전시키며 전국의 로동자, 농민, 지식인 및 기타 각 계층 인민의 대단합을 이루고 공고히 하는 사업을 령도하여 광범한 통일전선을 강화하고 확장하였다. 사회주의제도가 수립되면서 우리 나라는 모든 진보와 발전에서 중요한 기반이 다져졌다.

  8차 당대회에서는 우리 나라의 사회주의적 개조가 기본적으로 완수된 이후의 정세에 비추어 국내의 주요모순은 더는 로동계급과 자산계급 간의 모순인 것이 아니라 경제 및 문화를 급속히 발전시킬 데 대한 인민의 수요와 그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제 및 문화 현상태간의 모순이며 전국인민의 주요과업은 힘을 모아 사회생산력을 발전시키고 국가의 공업화를 실현하여 날로 늘어나는 인민의 물질문화적 수요를 점진적으로 충족시키는 것이라고 제기하였다. 당은 우리 나라를 단계적으로 현대농업, 현대공업, 현대국방, 현대과학기술을 보유한 사회주의강국으로 힘써 건설할 것을 제기하고 인민을 령도하여 본격적으로 대규모적인 사회주의건설을 진행하였다. 여러 차례의 5개년 계획을 통하여 우리 나라는 비교적 완비된 독립적인 공업체계와 국민경제체계를 수립하였으며 농업생산여건을 뚜렷이 개선하고 교육, 과학, 문화, 위생, 체육 등 사업에서 크나큰 발전을 이룩하였다. ‘2탄1성’ 등 국방첨단과학기술분야에서 끊임없이 돌파를 이룩하고 국방공업이 무에서 유로 점진적인 발전을 이룩하였다. 인민해방군이 장성발전하여 륙군 단일군종으로부터 해군, 공군 및 기타 기술병종으로 편성된 합성군대로 거듭나면서 새로 탄생한 인민정권을 공고히 하고 중국의 대국적 지위를 확립하며 중화민족의 존엄을 수호하는 데 튼튼한 버팀목이 되였다.

  당은 독립자주의 평화적 외교정책을 견지하고 평화적 공존 5개 원칙을 창도하고 견지하면서 국가의 독립과 주권과 존엄을 확고히 수호하고 세계 피압박민족의 해방사업과 신생독립국가들의 건설사업 그리고 여러 나라 인민의 정의로운 투쟁을 지지하고 원조하였으며 제국주의, 패권주의, 식민주의, 인종주의를 반대하고 구중국의 굴욕적인 외교력사에 종지부를 찍었다. 당은 정세를 잘 파악하고 외교전략을 조정하여 유엔에서의 우리 나라의 모든 합법적 권리가 회복되도록 추진하고 외교사업의 새로운 국면을 열었으며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이 적용되는 국제사회구도가 형성되도록 추진하였다. 당은 3개 세계 구분에 관한 전략을 제기하고 중국은 영원히 패권을 잡지 않을 것임을 장엄하게 약속함으로써 국제사회 특히는 광범한 개발도상국의 존중과 찬양을 받았다.

  당은 전 국가적인 집권에서 부딪치게 될 새로운 도전을 충분히 예견하고 해방전쟁의 전국적 승리를 이룩하기 직전에 벌써 당중앙 제7기 제2차 전원회의를 소집하고 전당에 반드시 겸허하고 신중하며 교만하지 않고 조급해하지 않는 기풍을 계속 유지하여야 하며 반드시 간고분투하는 기풍을 계속 유지하여야 한다고 제기하였다. 신중국이 창건된 이후 당은 집권조건에서의 당건설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중점적으로 제기하여 사상, 조직, 기풍 등 측면으로부터 당건설을 강화하고 당의 령도를 공고히 하였다. 당은 간부들의 리론학습과 지식강습을 강화하여 당의 령도수준을 높였으며 전당 특히는 당의 고위급 간부들이 당의 단합과 통일을 수호하는 자각성을 높일 것을 요구하였다. 당은 정풍과 정당을 실시하고 당내교양을 강화하여 기층당조직을 정돈하고 당원조건을 높였으며 관료주의와 명령주의를 반대하고 탐오와 랑비를 배격하였다. 당은 당원간부의 부패변질을 고도로 경계하고 적극 방지하였으며 부패를 단호히 징벌하였다. 이러한 중요한 조치들을 통하여 당은 순결성을 강화하고 전당의 단합을 강화하였으며 당과 인민대중의 련계를 밀접히 하였으며 집권당 건설의 초보적인 경험을 쌓았다.

  이 시기에 모택동동지는 맑스-레닌주의 기본원리를 중국의 구체적인 실정과 재차 결부시킬 것을 제기하였으며 모택동동지를 주요대표자로 하는 중국공산주의자들은 새로운 실정과 결부시켜 모택동사상을 풍부히 하고 발전시키고 사회주의사회는 아주 긴 력사적 단계가 될 것이다, 적아모순과 인민내부모순을 엄격히 구분하고 옳바로 처리하여야 한다, 우리 나라 사회주의건설에서의 10대 관계를 옳바로 처리하여야 한다, 우리 나라의 국정에 부합하는 공업화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 가치법칙을 존중하여야 한다, 당과 민주당파의 관계에서 ‘장기공존, 상호감독’의 방침을 실시하여야 한다, 과학문화사업에서 ‘백화제방, 백가쟁명’의 방침을 실시하여야 한다는 사상 등 사회주의건설에 관한 일련의 중요한 사상을 제기하였다. 이러한 독창적인 리론성과는 오늘까지도 여전히 중요한 지도적 의의를 가진다.

  모택동사상은 맑스-레닌주의가 중국에서 창조적으로 적용되고 발전된 것이고 실천에 의해 증명된, 중국 혁명과 건설에 관한 옳바른 리론적 원칙과 경험을 총화한 것으로서 맑스주의중국화의 첫 력사적 도약이 된다. 모택동사상의 산 령혼은 각 구성부분에 관통되여있는 립장과 관점과 방법이며 그것은 실사구시, 군중로선, 독립자주 등 3개 기본측면으로 구현되면서 당과 인민 사업의 발전에 과학적인 지침을 제공해주었다.

  유감스럽게도 8차 당대회에서 형성된 옳바른 로선이 완전하게 견지되지 못하면서 선후로 ‘대약진’운동, 인민공사화운동 등 오유를 범하게 되였고 반우파투쟁도 심각하게 확대되였다. 당시의 준엄하고도 복잡한 외부환경에 직면하여 당은 사회주의정권의 공고화에 초점을 두고 여러모로 노력하였다. 그러나 사회주의사회의 계급투쟁에 관한 리론과 실천에서 모택동동지의 오유는 날로 심각해졌고 당중앙은 이러한 오유를 제때에 바로잡지 못하였다. 모택동동지는 그 당시 우리 나라의 계급정세 그리고 당과 국가의 정치상황을 완전히 잘못 짐작하고 ‘문화대혁명’을 발동하고 령도하였으며 림표, 강청 두 반혁명집단은 모택동동지의 오유를 리용하여 나라를 망치고 인민을 해치는 수많은 죄악적 활동을 감행하여 10년 내란을 빚어냄으로써 신중국 창건 이후 당과 국가와 인민이 가장 심각한 좌절을 겪고 손해를 보게 되는 더없이 쓰라린 교훈을 남겨주었다. 1976년 10월에 중앙정치국은 당과 인민의 의지에 따라 ‘4인무리’를 단호히 짓부시고 재난으로 점철된 ‘문화대혁명’을 종말지었다.

  신중국이 창건되여서부터 개혁개방에 이르기까지 당은 인민을 령도하여 사회주의혁명을 완수하고 모든 착취제도를 소멸하여 중화민족의 력사상 가장 폭넓고 심각한 사회변혁을 이룩해냈으며 가난하고 락후하고 인구가 많은 동방대국이 큰 걸음으로 사회주의사회에로 매진하는 위대한 도약을 실현하였다. 그 탐색과정에 엄중한 좌절을 겪기도 하였지만 당이 사회주의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독창적인 리론적 성과와 크나큰 업적은 새로운 력사시기에 중국특색사회주의를 개척하는 데 소중한 경험과 리론적 준비와 물질적 기반을 마련해주었다.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은 영용하고 억세게 분투하여 중국인민은 낡은 세계를 파괴할 줄 알 뿐더러 새로운 세계를 건설할 줄도 안다는 것과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구할 수 있고 사회주의만이 중국을 발전시킬 수 있다는 것을 전세계에 장엄하게 선언하였다.

  3. 개혁개방과 사회주의현대화건설을 진행하다

  개혁개방과 사회주의현대화건설의 새로운 시기에 당은 중국에서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옳바른 길을 계속 탐구하고 사회생산력을 해방하고 발전시켜 인민이 빈곤에서 벗어나 하루빨리 잘 살도록 함으로써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실현하는 데 새로운 활력으로 넘치는 체제적 보장을 제공하고 신속히 발전하는 물질적 여건을 마련하여야 할 주요과업에 직면하였다.

  ‘문화대혁명’이 끝난 후 당과 국가의 진로선택을 앞둔 중대한 력사적 고비에 당은 개혁개방을 실시하는 길만이 유일한 출로이며 개혁개방을 실시하지 않으면 우리의 현대화사업과 사회주의사업은 미래가 없게 된다는 것을 깊이 인식하였다. 1978년 12월에 당은 당중앙 제11기 제3차 전원회의를 소집하고 ‘계급투쟁을 기본고리로 하는’ 방침을 단호히 페지하고 당과 국가의 사업중심을 전략적으로 이전함으로써 개혁개방과 사회주의현대화건설의 새로운 시기를 열었으며 신중국 창건 이후 당의 력사에서 심원한 의의를 가지는 위대한 전환을 이룩하였다. 당은 ‘문화대혁명’을 철저히 부정하는 중대한 결책을 내렸다. 그때로부터 40여년간 당은 이번 전원회의에서 확립한 로선, 방침, 정책을 한결같이 견지해왔다.

  당중앙 제11기 제3차 전원회의 이후 등소평동지를 주요대표자로 하는 중국공산주의자들은 전당과 전국 여러 민족 인민을 단합인솔하여 신중국 창건 이후의 긍정적 경험과 부정적 경험을 깊이 있게 총화하고 사회주의란 무엇이며 사회주의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둘러싸고 세계 사회주의의 력사적 경험을 거울로 삼아 등소평리론을 창시하였으며 사상을 해방하고 실사구시를 추구하여 당과 국가의 사업중심을 경제건설에 옮기고 개혁개방을 실시하는 력사적 결책을 내렸다. 그들은 또한 사회주의의 본질을 깊이 있게 밝히고 사회주의초급단계의 기본로선을 확립하였으며 자기의 길을 걷고 중국특색사회주의를 건설할 것을 명확히 제기하고 중국특색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데 나서는 일련의 기본적인 문제를 과학적으로 해답하였으며 21세기 중엽에 이르기까지 세 단계에 걸쳐 사회주의현대화를 기본적으로 실현할 데 관한 발전전략을 제정함으로써 중국특색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개척하였다.

  당중앙 제13기 제4차 전원회의 이후 강택민동지를 주요대표자로 하는 중국공산주의자들은 전당과 전국 여러 민족 인민을 단합인솔하여 당의 기본리론, 기본로선을 견지하고 사회주의란 무엇이며 사회주의를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 어떤 당으로 건설하고 당을 어떻게 건설할 것인가에 대하여 더욱 깊이 인식하고 ‘세가지 대표’중요사상을 형성하였으며 국내외 정세가 매우 복잡하고 세계 사회주의가 심각한 곡절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엄혹한 시련을 이겨내고 중국특색사회주의를 수호하였다. 그들은 또한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의 개혁목표와 기본틀을 확립하여 사회주의초급단계에서 공유제를 주체로 여러 가지 소유제경제가 공동으로 발전하는 기본경제제도와 로동에 따른 분배를 주체로 여러 가지 분배방식이 병존하는 분배제도를 확립하였으며 전면적으로 개혁개방하는 새로운 국면을 열어놓았으며 당건설이라는 새로운 위대한 공정을 추진함으로써 중국특색사회주의를 21세기에로 성공적으로 밀고 나아갔다.

  16차 당대회 이후 호금도동지를 주요대표자로 하는 중국공산주의자들은 전당과 전국 여러 민족 인민을 단합인솔하여 초요사회를 전면적으로 실현하는 행정에 실천혁신, 리론혁신, 제도혁신을 추진하고 새로운 정세에서 어떠한 발전을 이룩하고 어떻게 발전할 것인가 하는 등 중대한 문제에 대하여 깊이 인식하고 해답하여 과학적발전관을 형성하였다. 그들은 또한 중요한 전략적 기회 시기를 포착하여 건설에 전념하고 일심전력으로 발전을 도모하며 인간을 근본으로 하여 전면적이고 균형적이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견지할 것을 강조하였으며 민생을 적극 보장하고 개선하여 사회의 공평과 정의를 촉진하고 당의 집권능력건설과 선진성 건설을 추진함으로써 새로운 정세에서 중국특색사회주의를 성공적으로 견지하고 발전시켜왔다.

  개혁개방을 추진하기 위해 당은 맑스주의 사상로선, 정치로선, 조직로선을 재정립하고 ‘두가지 무릇’이라는 그릇된 방침을 철저히 부정하였으며 모택동동지의 력사적 지위와 모택동사상의 과학적 체계를 옳바로 평가하였다. 당은 우리 나라 사회주의의 주요모순은 날로 늘어나는 인민의 물질문화적 수요와 락후한 사회생산간의 모순이며 이 주요모순을 해결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중심과업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초요사회목표를 제기하였다. 당은 제반 사업에서 일련의 옳바른 정책을 회복하거나 제정하고 국민경제를 조정하였다. 당은 사상, 정치, 조직 등 분야에서 범한 오유를 전면적으로 시정하고 억울하게 처리된 사건, 조작된 사건, 잘못 처리된 사건들을 대규모로 시정하는 사업을 령도하여 사회관계를 조정하였다. 당이 제정한 는 우리 당이 지도사상면에서 혼란상태를 성공적으로 바로잡았음을 의미한다.

  당은 개혁개방과 사회주의현대화건설에서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가려면 반드시 리론혁신으로 사업발전을 선도하여야 한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였다. 등소평동지는 한 정당, 한 나라, 한 민족이 모든 면에서 서책으로부터 출발하며 사상이 경화되고 미신이 성행한다면 그 정당, 그 나라, 그 민족은 생기를 잃고 전진할 수 없게 되며 나아가서는 멸망하고 말게 된다고 지적하였다. 당은 진리표준문제에 대한 대토론을 령도하고 지지하였으며 새로운 실천과 시대적 특징에 맞게 맑스주의를 견지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중국특색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한 발전도로, 발전단계, 근본과업, 발전동력, 발전전략, 정치적 담보, 조국통일, 외교 및 국제 전략, 령도력량, 의거력량 등 일련의 기본문제에 대하여 과학적으로 해답하고 중국특색사회주의의 리론체계를 형성함으로써 맑스주의중국화라는 새로운 도약을 이룩하였다.

  12차, 13차, 14차, 15차, 16차, 17차 당대회에서는 국내외 정세의 발전변화와 우리 나라의 새로운 발전요구에 립각하여 일관하게 개혁개방과 사회주의현대화건설을 전면적으로 포치하고 당중앙 전원회의를 여러 차례 소집하여 개혁, 발전, 안정과 관련된 중대한 사업을 전문적으로 검토하고 포치하였다. 우리 나라의 개혁은 농촌에서 세대별생산도급책임제를 실시하는 데로부터 시작하여 도시경제체제개혁으로 점차 전환되는 가운데 전면적으로 실시되였으며 사회주의시장경제의 개혁방향을 확립하고 자원배분에서 일으키는 시장의 기초적 역할을 보다 넓은 범위에서 보다 높은 수준으로 발휘시켰으며 기본경제제도와 분배제도를 견지하고 보완하였다. 당은 경제체제개혁을 견결히 추진하는 한편 정치, 문화, 사회 등 제반 분야에서 체제개혁을 실시하고 당건설에서 제도개혁을 추진하여 당대 중국의 국정에 부합되고 생기와 활력이 넘치는 체제와 기제를 끊임없이 구축하고 발전시켰다. 당은 대외개방을 기본국책으로 확립하고 심수 등 경제특구의 창설, 포동의 개발과 개방, 연해연변연강연선 및 내륙 중심도시의 대외개방으로부터 세계무역기구의 가입에 이르기까지, ‘대내유치’에서 ‘대외진출’에 이르기까지 국제 및 국내 두개 시장과 두가지 자원을 충분히 활용하였다. 개혁개방이 지속적으로 추진되면서 우리 나라는 고도로 집중된 계획경제체제로부터 활력이 넘치는 사회주의시장경제체제로 전환하고 페쇄, 반페쇄의 상태에서 전 방위적으로 개방하는 력사적인 전변을 이룩하였다.

  사회주의현대화에 박차를 가하기 위해 당은 인민을 령도하여 경제건설, 정치건설, 문화건설, 사회건설을 진행하여 일련의 중대한 성과를 이룩하였다. 당은 경제건설을 중심으로 하고 발전은 절대적인 진리라는 전략적 사상을 견지하였으며 과학기술은 제1생산력이라는 지도사상을 제기하고 과학기술과 교육에 의한 국가진흥, 지속가능한 발전, 인재에 의한 강국건설 등 중대한 전략을 실시하였으며 서부대개발을 추진하고 동북지역 등 로후공업기지를 진흥시키며 중부지역의 궐기를 촉진하고 동부지역의 선행발전을 지지하였으며 도농간, 지역간의 조화로운 발전을 촉진하고 국유기업의 개혁과 발전을 추진하고 비공유제경제의 발전을 권장하고 지원하였으며 경제성장방식의 전환을 가속화하고 생태환경보호를 강화하며 경제의 지속적인 빠른 발전을 추진함으로써 종합국력을 대폭 향상시켰다. 당은 당의 령도, 인민의 주인적 지위, 의법치국의 유기적인 통일을 견지하여 사회주의민주정치를 발전시키고 사회주의정치문명을 건설하였으며 정치체제개혁을 적극적이고도 안정적으로 추진하였으며 의법치국과 의덕치국을 결부시키는 것을 견지하고 새 헌법을 제정하였으며 사회주의법치국가를 건설하고 중국특색사회주의법률체계를 구축하였으며 인권을 존중하고 보장하며 광범한 애국통일전선을 공고히 하고 발전시켰다. 당은 리상과 신념에 대한 교양을 강화하고 사회주의핵심가치체계건설을 추진하였으며 사회주의정신문명을 건설하고 사회주의선진문화를 발전시킴으로써 사회주의문화의 대발전과 대번영을 추진하였다. 당은 민생개선을 중점으로 하는 사회건설에 박차를 가하여 인민의 생활을 개선하고 농업세를 취소하였으며 학생들에게는 교육시설, 근로자들에게는 일자리, 환자들에게는 의료시설, 어르신들에게는 양로시설, 서민들에게는 주거시설을 마련해주는 사업을 끊임없이 추진함으로써 사회의 조화와 안정을 촉진하였다. 당은 현대화, 정규화된 강대한 혁명군대를 건설하는 총목표를 제기하고 군사투쟁준비의 기점을 정보화 국지전에서 싸워 이기는 데 두고 중국특색의 군사변혁을 추진하여 중국특색의 군대정예화의 길로 나아갔다.

  풍운이 급변하는 국제정세 속에서도 당은 네가지 기본원칙을 확고부동하게 견지하고 각종 간섭을 단호히 배제하면서 우리 나라의 개혁과 발전과 안정의 전반적 국면에 관계되는 일련의 위험과 시련에 여유 있게 대응하였다. 20세기 80년대말과 90년대초에 쏘련이 해체되고 동유럽국가가 격변하였다. 공산당과 사회주의를 반대하는 국제 적대세력의 지지와 선동하에, 국제정세와 국내정세의 영향을 받아 1989년 봄과 여름 사이에 우리 나라에서 엄중한 정치풍파가 일어났다. 당과 정부는 인민에 의거하여 기치선명하게 동란을 반대함으로써 사회주의국가정권을 수호하고 인민의 근본적 리익을 수호하였다. 당은 인민을 령도하여 아시아금융위기, 국제금융위기 등 경제적 위험에 성공적으로 대응하고 2008년 북경올림픽과 장애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개최하였으며 장강, 눈강, 송화강 류역의 심각한 홍수침수와 문천특대지진 등 자연재해를 이겨내고 사스를 물리침으로써 당의 위험방지능력과 복잡한 국면에 대응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당은 조국통일대업을 력사적 중임으로 삼고 조국통일을 위해 꾸준히 노력해왔다. 등소평동지는 ‘한 나라, 두 제도’의 과학적 구상을 창조적으로 제기하여 평화적 방식으로 조국통일을 실현하는 새로운 길을 개척하였다. 간고한 노력과 투쟁을 거쳐 우리 나라 정부는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주권행사를 잇달아 회복함으로써 중화민족의 백년치욕을 씻어버렸다. 홍콩과 마카오가 조국의 품으로 돌아온 후 중앙정부는 엄격히 헌법과 특별행정구기본법에 따라 일을 처리하여 홍콩과 마카오의 장기적인 번영과 안정을 유지하였다. 당은 대만문제해결의 전반적 국면을 파악하고 ‘평화적 통일, 한 나라 두 제도’의 기본방침을 확립하여 량안 쌍방이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구현한 ‘92공동인식’에 합의하도록 추진하고 량안의 협상담판을 추진하여 포괄적, 직접적, 쌍방향적인 ‘3통’을 실현하고 량안 정당간의 교류를 시작하였다. 을 제정하고 ‘대만독립’세력을 단호히 억제하며 조국통일을 촉진하였으며 ‘두개 중국’, ‘한개 중국, 한개 대만’, ‘대만독립’을 조작하는 온갖 책동을 좌절시켰다.

  당은 시대특징과 국제정세를 과학적으로 판단하여 평화와 발전은 현시대의 주제라고 제기하였다. 당은 세계평화를 수호하고 공동발전을 촉진하는 외교정책의 취지를 견지하여 주요대국과의 관계를 조정하고 주변국가와의 선린우호관계를 발전시켰으며 광범한 개발도상국과의 친선협력을 심화하고 국제사무와 지역사무에 적극 참여하여 전 방위적이고 다차원적인 대외관계의 새로운 구도를 구축하였다. 당은 세계의 다극화와 국제관계의 민주화를 적극 촉진하여 경제글로벌화가 공동번영에 유리한 방향으로 발전하도록 추진하고 패권주의와 강권정치를 단호히 반대하였으며 광범한 개발도상국의 리익을 결연히 수호하고 공정하고 합리한 새로운 국제정치경제질서의 구축을 추진하고 세계의 장구한 평화와 공동번영을 촉진하였다.

  당은 나라를 다스리려면 우선 당을 다스리고 당을 다스리려면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고 줄곧 강조해오면서 당건설에 전념하여 당건설이라는 새로운 위대한 공정을 개척하고 추진하였다. 당은 을 제정하여 민주주의중앙집권제를 완비하고 당내 민주를 발양시켰으며 당내 정치생활을 정상화하였다. 또한 당을 계획적이고 절차 있게 정돈하여 당내에 존재하는, 사상이 불순하고 작풍이 불순하고 조직이 불순한 문제를 적극 해결하였으며 혁명화, 년소화, 지식화, 전문화의 방침에 따라 간부대오건설을 강화하여 청장년 간부들을 대대적으로 선발하고 간부대오의 세대교체를 촉진하였다. 당은 당내의 령도수준과 집권수준을 제고하고 부패배격 및 변질방지 능력과 위험방지능력을 제고하는 2대 력사적 과제를 둘러싸고 집권능력건설과 선진성 건설을 주선으로 하여 당과 인민대중의 련계를 강화하는 문제, 당내 기풍건설을 강화하고 개진하는 문제, 당의 집권능력건설을 강화하는 문제 등 중대한 문제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학습을 중시하고 정치를 중시하고 바른 기풍의 수립을 중시’하는 교양, ‘세가지 대표’중요사상 학습교양활동, 공산당원선진성유지 교양활동, 과학적발전관 학습실천활동 등 집중적 학습교양활동을 조직, 전개하였다. 당은 당풍청렴건설과 부패척결투쟁을 당과 국가의 생사존망과 련계시키는 높은 차원에서 인식하고 부패 징벌 및 예방 체계를 적극 구축하였다.

  개혁개방 40주년에 즈음하여 당중앙에서는 성대한 경축대회를 열고 습근평동지가 중요한 연설을 하였다. 습근평동지는 연설에서 지난 40년간 개혁개방에서 이룩한 위대한 성과와 소중한 경험을 전면적으로 총화하고 개혁개방은 당의 한차례 위대한 각성이고 중국인민과 중화민족의 발전사상 한차례 위대한 혁명이라고 강조하였으며 개혁개방을 끝까지 진행할 데 대한 위대한 호소를 하였다. 우리 나라는 개혁개방과 사회주의현대화건설에서 세계가 주목하는 위대한 성과를 이룩함으로써 생산력이 상대적으로 락후하던 상황에서 경제총량이 일약 세계 2위에 올라서는 력사적 돌파를 실현하고 인민이 제대로 입지도 먹지도 못하던 데로부터 총체적 초요사회를 실현하고 전면적인 초요사회에로 매진하는 력사적 도약을 실현하였으며 중화민족이 일떠서고 부유해지는 위대한 도약을 실현하였다.

  중국공산당과 중국인민은 영용하고 억세게 분투하여 개혁개방은 현시기 중국의 전도와 운명을 좌우하는 관건적인 조치이며 중국특색사회주의의 길은 중국을 발전번영에로 이끄는 옳바른 길이라는 것과 중국은 시대의 발전을 성큼 따라잡았음을 전세계에 장엄하게 선언하였다.

  /중앙인민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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