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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백산 아래 장백현에 다녀오다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2.08.26일 10:46
  

[들어가는 말]

2020년에는 장백산 아래 약수동에 다녀왔고 작년에는 장백산 아래 황송포에 다녀왔으며 올해에는 장백산 아래 장백현에 다녀왔다.다녀온 후 해마다 기행 수필 〈장백산 아래 약수동에 다녀오다〉와 〈장백산 아래 황송포에 다녀오다〉를 써서 《길림신문》에 발표하였는데 그 효과가 상당히 좋았다. 하여 올해도 마찬가지로 기행 수필 〈장백산 아래 장백현에 다녀오다〉를 만들어본다.



압록강 이름을 배경으로

  7월 28일, 나는 지도책 하나와 수첩 하나, 핸드폰, 간단한 옷가지들을 배낭에 챙겨넣고 장백현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이번까지 모두 다섯번 장백에 다녀왔는데 두번은 교육 사업 검사차로 다녀왔고 두번은 학술 강좌하러 다녀왔는데 이번은 퇴직 후에 다녀오기에 순수한 려행이였다. 이전에 장백에서 회의를 열려고 노력하였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다. 한번은 회의를 며칠 앞두고 큰 비에 길이 뭉텅 끊겨져나가 어쩔 수 없이 회의장을 다른 곳에 옮기는 방법 밖에 없었다.

  대서절기의 중복의 더위에 도전하여 진행하는 려행이라 날씨가 무덥기는 하지만 버스에서 바라보니 록음방초가 우거져 그 어디를 바라보나 눈이 시원하다. 그리고 송강 하에서 장백현으로 나가는 길옆에는 강이 흘러 감각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송강하(고장)에서 떠나가다가 큰 널이 나타나기까지는 송강하(강물)가 동무하여주다가 큰 터널을 지나면 장백에 도착하기까지 만하가 정답게 동무하여준다. 록음방초 속에서 강을 동무하며 오다보니 7시간 반이란 시간도 훌쩍 지나간다.

  전설의 이쁜 야명주

  우리 나라의 행정구역에서 자치구나 자치주, 자치현, 자치향은 다 자기의 독특한 멋과 맛을 지니고 있다. 자치권리는 소수민족에게 주어지는 행정권리로서 자기의 독특한 민족문화의 멋과 맛을 동반하게 된다. 조선족은 인구가 많지 못하다. 하여 하나의 자치주와 하나의 자치현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 지리적인 위치가 묘하게도 자치주는 장백산천지의 이북에 위치하고 자치현은 장백산천지의 이남에 위치하고 있다.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는 지방은 보통 사람들이 많이 찾는 유람지들이다.



  장백현은 일류의 관광지

  장백현의 지리적인 위치가 장백산천지의 남쪽이여서 이 지리적인 위치 하나만으로도 아주 성스러운 느낌을 준다. 온 누리에 그 이름이 자자한 장백산천지, 이런 신성한 곳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자치현이라는 데서 장백현도 따라서 성스러운 존재로 느껴진다. 사실상에서 또한 장백산천지를 남쪽으로 오르려면 반드시 장백현 경내에서 올라야만 한다. 하여 많은 사람들이 장백산천지를 찾을 목적으로 겸사겸사 장백현에 들려 다른 볼거리들을 찾아보는 경우가 아주 많다.

  그리고 장백현은 또한 압록강이 발원하는 곳이기도 하다. 두만강의 발원지는 아주 명백하게 밝혀져있고 사진도 아주 똑똑하게 찍혀있지만 압록강은 발원지의 사진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많은 자료에도 그저 “압록강은 장백산 남쪽 기슭에서 발원한다”라고 아주 롱통하게 적혀있을 뿐이다. 나도 압록강 발원지의 사진을 찾으려고 무진 애를 써보았지만 끝내 찾지 못했다. 이미 타계하신 고 류연산선생님은 그의 장편 기행문 《혈연의 강들》에서 압록강의 발원지에 대해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장백산 주봉 서쪽 켠에서 발원하는 난강(暖江)과 포도하(葡萄河)가 합류하는 대양차구(大阳差口) 아래로부터 압록강은 황해로 향한 원정을 시작한다. 지도에서 보면 동경 128도 05분, 북위 41도 57분의 교차점이고 해발은 1,770메터이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강 량안의 61.889평방키로메터의 넓은 강토에 생기를 주며 천애협곡을 에돌아 황해에 이르기까지 790키로메터의 먼 길을 줄이는 압록강을 《황여고》(黄与考)에서는 ‘천하에 강 셋이 있는데 황하, 장강, 압록강이다’고 썼다”.

  그리고 여기서 절대 빠뜨리면 안되는 것이 장백현은 항일의 봉화가 거세게 타오르던 혁명전적지였고 림강보위전이 펼쳐졌던 전장이기도 하다. 이 모든 점들을 감안해보면 장백현은 빛을 뿌리는 야명주임에 틀림이 없다.

  장백의 자랑 령광탑

  28일 오후, 내가 장백에 도착하니 키가 훤칠한 심선생이 마중나와있었는데 그는 집의 안해가 지금 외출중이여서 자기가 집에 혼자 있으니 자기 집에서 주숙하라고 하면서 아예 집으로 갔다. 2시 반이 되도록 밥을 먹지 못했던지라 나는 챙겨준 반찬에 밥을 뚝딱 해버렸다. 심선생의 료리 솜씨가 상당하였다. 우리는 집에서 간단한 준비를 마치고 아예 려행 일정을 행하기 시작하였다. 우리가 정한 첫 려행지는 ‘탑산공원’이였다. 이 산 우에 ‘령광탑’이라 불리우는 탑이 있기에 ‘탑산’이라 불리게 되였다.

  5층으로 된 방형(方形)의 탑신 높이는 12.64메터이고 탑찰(塔刹)은 다섯 개의 쇠솥을 조롱박형국으로 탑정(塔顶) 우에 마주 얹어 세웠는데 그 높이가 1.98메터이다. 기좌(基座)가 없이 직접 지면으로부터 청회색 꽃무늬 벽돌로 쌓은 탑신층마다 남향으로 호형의 권문(券门)이 나있다. 탑신 아래에는 길이 3.4메터, 너비 3.2메터, 깊이 1.49메터 되는 지궁(地宫)이 있다. 지궁 뒤벽 중앙에는 석판대좌(台座)가 있는데 사리함을 놓았던 자리로 추정된다. 일찍 이 탑에서 파손된 석불이며 담령 등 많은 문물이 발견되였다고 한다.

  1982년부터 2년에 거쳐 동북 고고대(考古队)의 소춘화(少春华)와 중국과학원 자연과학사 장어환(张驭環)교수가 고찰을 통해 검증한 결과 발해 시기 불탑임을 확인했다. 하지만 어느 때 누가 세웠고 불탑 이름이 무엇인지 문헌 기재가 없다고 한다. 1908년 청나라 장백부(长白府) 제1임 지부 장풍대(张風臺)가 이 탑을 보고 서한(西汉)의 로(鲁)나라 령광전(灵光殿)과 흡사하다고 말하여 령광탑이라 불렀다고 한다. 이 이름으로부터 산속에 있는 절간도 ‘령광사(灵光寺)’라 부르게 되였고 산 아래에 있는 벌도 탑전(塔甸)이라 부르게 되였단다. 이 탑은 지금까지 남아있는 발해 시기에 건설한 유일한 탑이라고 한다.



  장백의 명물 령광탑

  탑산의 해발고도는 820메터인데 산이 높지 않아 많은 시민들이 여기에서 등산운동을 즐기고 있으며 탑산에는 또 많은 기본적인 체육 시설들을 마련하여 시민들에게 편리를 도모해주고 있다. 탑산에 올라서면 장백거리 뿐만 아니라 조선의 량강도 도읍인 혜산시까지 바라볼 수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유람지이다. 우리가 갔을 때에는 전면적인 수리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제 국경절이면 다시 새로운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령광탑에는 아름다운 전설도 많지만 여기서는 줄인다.



  장백의 자랑-탑산공원

  남쪽에서 보는 천지

  이번에도 원래는 남쪽으로 천지에 오를 예정이였으나 이미 이틀 동안의 표가 다 나갔기에 아예 이를 빌미로 오르지 않기로 하였다. 1997년도 가을에 처음으로 오른 후 기본상 10년 간격으로 오르다보니 이미 세번이나 오른 상태이고 두번이나 글을 발표하다보니 ‘남쪽에서 보는 천지’에 대해선 비교적 잘 알고 있다. “같은 장이라 해도 사람마다의 느낌은 다르다.”는 말이 있다. 하기에 이제 남쪽에서 올라 천지를 바라보노라면 그때 느끼는 감정이 나와 많이 다를 수도 있으니 나는 나의 감수를 쓰지 않고 그냥 가이드처럼 간단한 소개만 하련다.

  남쪽 비탈로 올라 천지를 보는 그 ‘과정’, 말하자면 오르고 내리는 과정 자체가 대단한 관찰 과정이고 흔상 과정이다. 이전에는 계곡에 ‘락타봉’이라 불리는 천연조각도 있었는데 후에 보이지 않기에 물어보니 벼락에 맞아서 없어졌다고 하였다. 참으로 전설적인 색채가 다분한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깊은 계곡의 천태만상을 구경하는 것도 천지를 구경하는 데 짝지지 않는 쏠쏠한 재미를 가지고 있다. 깊은 계곡의 밑바닥에서 흐르는 압록강의 모습을 내려다보는 것도 아찔한 즐거움이고 화산재로 형성된 기괴한 모습들을 흔상하는 것도 대단한 재미이다.

  남쪽에서 바라보면 천지의 모습을 더 완정하게 볼 수가 있고 특히 16개 주봉들의 모습이 더 선명하다고 한다. 그 곳에 오르면 이때까지 먼곳에서만 바라보아오던 ‘구름’을 지척에서 볼 수 있다. 산중턱으로부터 구름이 우로 막 올라올 때에는 내가 그 어떤 선경에나 온 듯한 느낌이고 나도 신선이 된 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하늘을 담은 천지물을 바라보면 볼 때마다 그 크기에는 변화가 없지만 그 형상은 달라진다. 그 어떤 지각현상에 의해 일어난 화산구임을 번연히 알면서도 자연에 대한 경외감과 더불어 그 어떤 숭엄한 감정에 잠기게 된다.

  8월 4일 《길림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장백산 전역의 관광객 접대수가 4만 9천명을 넘어섰다고 하니 놀라운 수자가 아닐 수 없다. 지금은 남쪽으로 천지를 오르는 관광객이 너무 많아 처음으로 그 수자를 제한하고 있다. 려행단체가 아닌 개인유람이라면 며칠전에 꼭 인터넷에 올라 표를 먼저 사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재미나는 고산식물

  장백산천지는 고산지대에서도 특수한 지대에 속한다. 하기에 겨울이 길고 여름이 짧으며 기온변화가 극히 심하다. 여름에도 더울 때가 적고 기후변화가 심하기에 그 곳의 식물들도 화산재라는 땅의 척박함에도 적응해야 하고 변덕스러운 기후의 변화에도 적응해야 한다. 하기에 그 곳의 나무들을 보면 이런 악렬한 조건에서 자라다보니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이리 꼬불 저리 꼬불 자랐는데 마치 동화세계에나 나올 법한 모습이다. 참으로 우스운 모습이면서도 존경을 자아내는 모습이다.

  이런 곳에서 자라는 풀들은 모두 하나의 공동점을 지니고 있는데 높이 자라지 못하고 아주 낮게 자라며 뿌리를 깊이 내린다. 바람이 하도 세차게 불어치기에 뿌리가 얕아서도 안되고 키가 커서도 안된다. 이런 악렬한 환경 속에서도 굳세게 살아남아 꽃을 피운 풀들을 바라보면서 나는 생명의 막강한 힘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인식하게 되였다. 인간도 마찬가지이다. 사막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일부 인간은 깊이 뿌리를 내리고 굳게 살아가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들만의 문화를 꽃피우며 살아가고 있다.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였지만 이전에는 산에서 내려오다가 개울물가에서 식사를 해도 괜찮았었다. 그런데 식사를 하는 그 짧은 시간을 리용하여 차 운전수는 손바닥삼(巴掌参)이라 불리우는 삼을 몇뿌리 캐서 우리들에게 나눠주는 것이였다. 그리고 천연숯을 구경할 수가 있는데 그 느낌이 상당히 컸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늙은 고목의 몸뚱이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소나무였다. 옆으로 뻗으며 자란 고목 가운데 흙이 좀 있는 곳에 씨앗이 떨어져 자라게 된 소나무는 아예 그 고목의 몸뚱이에 뿌리를 내리고 살고 있었는데 참으로 희귀하였다.

  아름다운 미니공원

  7월 29일, 심선생의 소개를 받으며 우리는 먼저 압록강반에 건설한 미니 빈강공원을 돌아보고 록색 글자와 붉은 글씨로 압록강이라 멋있게 써놓은 큰 돌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기고 이어서 과원촌(거시성,巨矢城), 조선족민속전람관(朝鲜族民俗展览馆)을 돌아보았다. 그 곳들에는 우리 민족의 민속문화를 보여주는 여러가지 물품들이 배렬되여있었는데 그중에서도 우리의 옛 조상들이 사용하던 나무방아와 지게, 시집 올 때 앉는다는 가마가 특히 인상적이였다.



  장백현의 떼목광장

  그 다음 간 곳은 천년애성풍경구(千年崖城风景区)였는데 그 곳에서 바라보면 장백거리와 혜산시의 모습을 바라볼 수가 있었다. 그보다도 관광객들의 호기심을 끈 것은 투명한 경질유리가 아닌 거울로 된 바닥이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 거울유리 우에서 자기들의 사랑스러운 모습을 사진에 담고 있었다. 이전에 몇몇 유람지를 다니면서 투명한 유리로 된 공중길을 걸으면서 다리가 후들거린 적이 있는데 우리 인간의 상상력이란 어디까지 펼쳐질 것인지 가늠하기 어렵다.



  "우리가 미인" 미니공원서 사진 찰칵

  “우연은 필연을 내포하고 있다.”는 말이 있다. 방학이 아닌 출근시간이였더라면 나는 주저없이 장백현조선족중학교에 찾아들어가 인사를 드렸겠는데 방학이라 찾아들어가지 않았다. 그런데 천년애성풍경구에서 면바로 허흥규 교장을 딱 만나게 되였다. 우리는 앉아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가 저녁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갈라졌다. 나는 이미 선약이 있기에 어렵게 사절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 많은 학교들에서는 영어만을 선호하고 일어학과를 빼버렸는데 이 학교에서만은 일어학과를 빼버린 적이 없다. 그 두둑한 배짱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력사가 깊은 술공장

  과수촌과 민속관, 빈강공원과 미니공원들을 다 돌고 점심식사를 하게 된 곳이 바로 장백술공장 안에 있는 식당이였다. 심선생의 건의에 따라 우리는 계획에 없던 술공장 참관을 시작하게 되였다. 올해초에 연변에 있는 된장술공장의 리사장 겸 공장장 리동춘선생을 만나 세시간 동안의 인터뷰와 두시간 동안의 식사 시 대화를 통하여 료해한데 근거하여 그의 사적을적은 〈정열의 사나이를 만나본다〉는 만자가 훨씬 넘는 긴 수필을 써서 《장백산》 잡지 위챗판에 발표한 적이 있다.

  우리는 공장장 사무실에서 리성모 공장장을 만났고 그의 간단한 소개를 들은 후 인츰 참관을 시작하였다. 리공장장은 50여세 되는 차분한 모습을 갖춘 분이였는데 언행이 아주 점잖았다. 그의 안내를 받으면서 우리는 공장의 여러 곳을 참관하였다. 술을 만드는 일을 모르는 우리 문외한들에게는 그냥 염소가 대자보를 번지는 격이였겠으나 그래도 한두가지만은 인상이 상당히 깊었다. 특히 술을 저장하는 나무로 만든 통이였다.



리성모 공장장과 함께



력사가 있는 나무술통

  보통 나무는 채벌되여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변화를 일으키게 되여 부식된다. 하지만 이 술통들은 이미 만들어진 지가 100여년이 되는 데도 아직도 부식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속으로 경악을 금치 못했었다. 물론 100여근을 담는 작은 통도 있었지만 제일 큰 나무통에는 무려 4톤이나 되는 술을 담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그 나무들로 술통을 만들 때 쇠로 된 못을 하나도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였다. 그냥 놀라움의 련속이였다. 그 술통들의 모습이 눈앞에 선히 떠오른다.

  압록강 이름의 유래

  어느 강이나 그 이름의 유래를 안다는 것은 하나의 학문이면서 또한 아주 재미있는 일이다. 우리 나라의 ‘황하’는 누른색갈을 띄였다고 하여 ‘황하’라 불리우고 ‘장강’은 강이 길다고 하여 ‘장강’이라 불리우게 된 것이다. ‘두만강’이나 ‘해란강’은 아주 아름다운 전설들을 가지고 있다. 하다면 압록강의 이름은 어떻게 생겨난 것일가? 여기서 우리 함께 간단히 살펴보도록 하자. 자료를 찾다 보면 그 가지수는 몇십가지에도 이르나 과학적인 근거를 갖춘 자료는 극히 적다.



  아름다운 이름ㅡ압록강

  압록강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견해들이 있으나 주로 세가지 설에 집중되고 있다. 한가지는 만족어로 ‘yalu ula’란 단어의 뜻이 ‘변계의 강’이란 뜻인데 여기에서 이름이 나왔다는 설이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다른 한가지는 “‘압강’과 ‘록강’이 만나게 되여 그 이름을 합하여 ‘압록강’이라 부른다”는 설인데 아직 그 증거를 내놓지 못하여 좀 리유가 빈약한 상태이다. 세번째 설은《당서》(唐书)에는 “고려의 마자수는 그 근원이 말갈의 백산으로부터 출발했으니 그 물빛이 오리대가리빛처럼 푸르다 하여 압록강이라 부른다.”고 적혀있다는 것이다.

  장백산의 제일봉인 대정봉에 올라서서 굽어보면 천지물은 마냥 고요하다. 하지만 선녀들이 굴을 뚫고 압록강을 에워왔다는 그 곳 못 속에서는 사나운 소용돌이가 감아친다고 한다. 압록강 이름이 얻어지기 전에는 다른 이름들이 있었다. 전설에서처럼 처녀사슴이 이끌어온 강이라고 해서 처녀의 강, 천애협곡을 지나 흐른다고 해서 애강(崖江), 한대(汉代)의 사책에는 마자수(马紫水), 당조 때에는 압록강, 1712년 장백산천지 동쪽 10키로메터 상거해 세웠다는 정계비에는 ‘압록수’(鸭绿水)로 기재되였다.

  필요한 압록강 상식

  압록강의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간단히 살펴보았다. 그럼 압록강의 발원지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고 류연산선생님은 장편 기행문 〈혈연의 강들〉에서 압록강의 발원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압록강 상류

  “장백산 주봉 서쪽 켠에서 발원하는 난강(暖江)과 포도하(葡萄河)가 합류하는 대양차구(大阳差口) 아래로부터 압록강은 황해로 향한 원정을 시작한다. 지도에서 보면 동경 128도 05분, 북위 41도 57분의 교차점이고 해발고도는 1,770메터이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강 량안의 61.889평방키로메터의 넓은 강토에 생기를 주며 천애협곡을 에돌아 황해에 이르기까지 790키로메터의 먼 길을 줄이는 압록강을 《황여고》(黄与考)에서는 ‘천하에 강 셋이 있는데 황하, 장강, 압록강이다’고 썼다”.

  압록강은 대양차구의 발원지로부터 림강까지를 상류로 보며 림강에서부터 수봉까지를 중류로 보며 수봉에서부터 입해구까지를 하류로 본다. 압록강의 큰 지류들로는 중국 쪽에 혼강, 포석하, 원하 등이 있고 조선 쪽에 허천강, 장진강, 충만강 등이 있다. 압록강의 평균 락차는 백메터당 1.7메터이고 해발고도 1,000메터에서 1,500메터 되는 구간의 평균 락차는 백메터당 9.05메터에 달한다고 한다. 하여 수력발전의 좋은 조건을 마련해주었다. 압록강 주류와 지류에 많은 수력발전소가 세워졌는데 그중 가장 큰 것이 수봉수력발전소이다.

  압록강의 연안에는 밝은 빛을 뿌리고 있는 네개의 명주가 있는데 그 곳인즉 바로 장백현과 림강시, 집안시, 단동시이다. 장백현은 조선족자치현으로 유명하고 림강은 보위전(四保临江)으로 유명하며 집안시는 고대유물들로 유명하고 단동시는 항미원조의 전투적인 도시로 유명하다.

  불멸의 압록강 명곡

  나와 심선생이 과원촌을 돌아보고 압록강의 물길 따라 천천히 걸어서 내려오는데 큰 다리가 나타났다. 그 다리 아래로 19도구의 강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 강에서 40여년전에 바로 떼목을 묶어서 압록강으로 띄웠던 곳이란다. 우리가 어렸을 적에 심심찮게 보아오던 떼목의 모습이 떠오르고 귀전엔 마치도 리상각선생님께서 작사하신 〈떼목이 내린다〉는 명곡의 구성진 노래소리가 들려오는 듯하다.

  압록강 굽이굽이 2천리 푸른 물아

  청룡이 굽이친다 떼목이 내린다

  어야듸야 어야듸야 떼목이 내린다

  푸른 산을 안고 돌아 꽃피는 마을로…

  랑만이 넘치는 이 노래와는 달리 옛날 떼목군들의 노래는 퍼그나 서글펐다.

  떼목군은 서러웁네/ 고생이 막심하다네

  마소처럼 일하건만/ 죽으면 그만이라네

  강역에 버려진 시체는/ 승냥이가 먹고

  물속에 버려진 시체는/ 고기밥 된다네…

  압록강의 맑은 물을 바라보노라면 우리가 청춘시기에 많이 불렀던, 압록강물 만큼이나 맑고 아름다운 노래가 절로 떠오른다. 이 노래 역시 리상각선생님이 작사하신 노래이다. 말그대로 불멸의 압록강 명곡임에 틀림이 없다.

  깨끗한 압록강 압록강 모래섬가에

  백설 같은 두루미 하얀 두루미

  떼를 지어 내려앉네 깃을 다듬네

  아 두루미는 알지 못하네

  제모습이 그 얼마나 아름다운지…



  압록강의 아름다운 두루미

  동북의 미니 폭포산

  망천아(望天鹅)는 장백의 가장 아름다운 경치중의 하나이다. 먼 곳에서 산봉우리를 바라보면 마치 백조가 목을 빼들고 누군가를 기다리는 모습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 바로 ‘망천아’이다. ‘망천아’풍경구는 국가 4A급 유람구로서 국무원에서 이미 ‘압록강 상류 국가급 자연보호구’로 비준하였다. 망천아는 장백현 경내의 15도구에 있는데 장백산천지와는 직선거리로 35키로메터 떨어져있다. 산에는 기암괴석이 가득하고 작은 폭포들이 도처에 널렸다. 폭포의 모습이 다양하여 관광객들은 주로 폭포의 모습을 보고저 이곳을 찾는다.

  망천아는 거대한 중심분출과 넘치는 현무질 화산추로서 하나의 거대한 파화산구이다. 하기에 많은 샘물이 솟아나게 되고 많은 독특한 모습의 유적들이 생겨나게 된 것이다. 온 산이 샘물천지이고 온 산이 괴상한 돌모양 천지이고 온 산이 크고 작은 폭포천지라는 데서 망천아는 큰 뜻을 가진다. 이런 모습들은 파화산추에서만 볼 수 있는 경관들이다. 물론 다른 산에서처럼 큰 나무도 자라고 고운 꽃들이 피여나는 것은 더 말할 것 없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망천아의 봉우리는 전 동북에서 두번째로 높은 봉우리이며 ‘폭포산’으로 그 이름을 빛내고 있다. 나는 ‘망천아’풍경구가 건설되기 전에도 다녀왔고 건설된 후에도 다녀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건설초기여서 공중화장실이 형편이 없어 《도라지》잡지에 발표된 〈장백현 인상기〉란 글에서 그 점을 꼬집어 말한 적이 있다. 하여 이번에는 그 곳의 화장실문화에 대해 좀 료해할 심산이였는데 그만 전반 ‘망천아’풍경구가 수리중이여서 어찌할 수가 없었다.



  망천아의 아름다운 폭포

  개성이 넘치는 ‘별장’

  7월 30일, 심선생이 오늘은 20여리 밖에 있는 자기의 ‘별장’에 가서 식사를 하잔다. 나는 호기심이 생겼다. ‘별장’이란 ‘살림을 하는 집외에 경치 좋은 곳에 따로 지어놓고 때때로 묵으면서 쉬는 집’을 말한다. 한국 텔레비에 나오는 ‘나는 자연인이다’ 프로의 열정적인 시청자의 한사람인 나에게 있어서 ‘별장’은 언제나 꿈 꿔오던 집이다. 우리는 오전 10시에 20도구에 있는 심선생의 ‘별장’에 도착하였다. 면적이 50평방 남짓한 집이였는데 통칸이였다. 아주 오랜 집이여서 허름하였다.

  집에는 장백 사람들이 ‘조양장’이라 부르는 식장 하나와 침대 하나, 밥상 하나, 그리고 걸상 몇개가 있었는데 다 낡은 것들이였다. 그리고 랭장고와 무엇을 만들어 먹을 때 쓰는 기구는 여러가지가 구전하게 갖춰져있었다. 집의 앞뒤 마당에는 채소전이 있었다. 낡은 집에 낡은 ‘가구’들의 조합이였다. 그런데 그렇듯 잘 어울렸다. 오히려 집안에 그 어떤 새 가구가 들어오면 아주 생경한 느낌을 줄 것 같았다. 이 ‘별장’이 허름하긴 해도 자주 사용된단다. 그리하여 ‘심씨별장’으로 불리울 정도라고 한다.

  그날 여섯명이 식사를 함께 했는데 채소반찬 몇가지에 소고기를 굽고 닭고기를 삶고 내가 즐겨먹는 돼지머리고기를 사고 하여 아주 맛나게 먹었다. 우리는 그 곳에서 김선생(시인)의 멋진 〈두루미〉노래를 경청하였다. 조용한 ‘별장’이라 저가락 장단에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어도 동네에 절대 지장이 되지 않았다. 사실 나에게도 먼곳에 나만의 ‘별장’이 있다. 아주 면적도 크고 시설도 훌륭하지만 멀어서 다니지 못하니 ‘별장’이 아니라 ‘빈집’으로 되여버렸다. ‘별장’은 그 집의 우렬에 따라 등급이 나뉘여지는 것이 아니라 그 사용빈도와 사용효과에 따라 나뉘여지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심씨별장’은 가히 ‘3성급 별장’은 될 상 싶다.



‘3성급 별장’에서의 오찬

  입맛이 당기는 음식

  나는 띠가 돼지띠여서 그런지 조만에 음식 타발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려행을 다니다 보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을 때가 드문히 있다. 특히 장가계에 유람을 갔을 적에는 밥이 풀기가 없는 밥이여서 참으로 먹기가 힘들었다. 이때 궁여지책으로 고추장도 넣고 채소도 넣고 하여 막 비벼먹었더니 그래도 먹을 만했다. 참으로 고추장의 위력을 느끼는 순간이였다. 하여 이전에는 한족 지역으로 갈 때에는 그냥 고추장을 갖춰가지고 떠났던가 싶다. 지금은 도처에 고추장이 있으니 많이 편리해진 상태이다.

  이번에 심선생네 집에 체류하면서 음식이 아주 맛있었는데 기본상 때마다 내가 좋아하는 돼지고기가 있은 것과도 관련이 있었겠지만 아침마다 사오는 초두부가 너무도 구수하였고 저녁에 해주는 청국장이 너무도 시원하였다. 어려서부터 습관돼 온 음식맛은 언제나 그리운 법이다. 초두부나 모두부, 토장국이나 청국장은 언제 어느 때 먹어도 좋은 음식들이다. 거기에 시원한 배추김치나 깎뚜기가 곁들여진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인 셈이다.



  개성이 넘치는 장백장

  같은 민족의 음식문화이면서도 좀씩 다른 양상을 보이는 경우가 드문히 있다. 이번에 장백에서 발견한 바지만 여기에는 토장이 따로 없고 고추장이 따로 없다. 토장 속에 고추장이 들어있고 고추장 속에 토장이 들어있는 셈이다. 여기서는 이런 장을 오래동안 먹어왔단다. 어찌 보면 중용장(中庸酱)이라 할 수가 있겠다. 장백의 김선생님(녀성)에게 그런 장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물었더니 다음과 같은 문자회답이 왔다.

  “메주를 작은 덩이로 깨서 냄새를 빼며 말리웠다가 마른 통고추를 함께 넣고 갈아 메주가루를 내요. 거기에다가 죽(찹쌀죽이 최고)을 무르게 써서 식혀놓고 소금과 함께 버무려 장독에 넣고 밀봉한 후 발효시켜요. 일년간 잘 발효시켜야 제맛이 납니다. 잘 발효된 장에서는 딸기냄새가 나요”.

  산토끼와 '조화로운 만남'

  장백에 도착하는 첫날 심선생과 함께 탑산에 올랐다가 깜찍한 산토끼를 만나게 되였다. 사람이 익숙하여서인지 우리가 사진을 다 찍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달아나는 것이였다. 이전에 교하에 가서 라법산에 오를 때에는 처음으로 보는 검은색 다람쥐를 보게 되였고 장강의 소삼협을 려행할 때에는 숲속에서 깜찍한 원숭이들을 만나게 되였다. 나는 시력도 좋은 사람이 아닌데 이런 동물들을 언제나 제일 먼저 발견하군 한다. 이런 깜찍한 동물들을 보면 마음이 절로 즐거워진다.

  나는 모멘트에 글을 자주 올리는 사람이다. 내가 발표한 글이거나 인생철리를 적은 짧은 글을 주로 올리고 사진의 경우 내용물이 적을가 봐 그냥 9장씩 올리기를 즐긴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사진 한장만을 올리기도 한다. 례를 들면 2년전에 약수동에 갔을 때 등산 과정에 만난 산딸기 사진을 찍어 그 자리로 모멘트에 올렸는데 한시간 만에 다녀간 사람이 가장 많은 새 기록을 창조하였다. 이번에도 토끼사진 한장만을 올렸었는데 반향이 상당히 좋았었다.



  탑산에서 만난 깜찍한 토끼

  모멘트에 올리면 그에 대한 반향이 참 재미난다. 많은 분들이 깜찍하다는 글을 올리고 롱담도 걸어오군 하는데 그중 가장 재미나게 느껴진 것은 ‘조화로운 사회’라는 댓글이였다. 간단한 한마디지만 음미할수록 감칠맛이 나는 한마디였다. 우리의 사회가 조화로운 사회의 경지에 올랐다는 뜻을 나타냄과 동시에 인간과 인간 뿐만이 아니라 인간과 동물들도 이렇게 조화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아주 높은 경지에 대한 평가이기도 했다. 말하자면 우리는 조화로운 사회에서 토끼와 조화로운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이다. 어허! 멋진 만남이군!

  [나오는 말]

  나는 두만강의 발원지인 화룡시에서 성장했다. 그런 연고 때문인지 압록강의 발원지인 장백현이 그렇듯 살갑게 느껴진다. 그리고 여러 차례 다니면서 느꼈던 인상 때문에 장백현에 대한 감정이 남다른 것 같다. 산도 좋고 물도 좋고 공기도 좋고 풍경도 좋지만 그보다도 더욱 좋은 것은 풋풋한 인심이다. 하기에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하는 만큼이나 ‘삼성급 별장’도 마음에 와닿는 것이리라.

  장백현은 ‘전국 문명현’ 답게 실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도로 건설만 보아도 눈에 뜨이게 발전했다. 하지만 아직도 해야 할 일은 너무도 많고 걸어야 할 길은 너무도 멀다. 이번에 며칠 동안 체류하면서 이전에 감수하지 못했던 것들을 새롭게 알게 되였고 이전에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생각하게 되였다. 사람은 많이 보아야 하고 많이 배워야 하고 많이 생각해야 하고 많이 교류해야 한다는 소박한 도리를 더욱 심각하게 깨친 것 같다.



  조선족민속전람관 앞에서

  려행이란 언제나 가슴을 설레이게 하면서도 또한 얼마간의 도전성을 띠고 있다. 이번 려행은 대서절기에 그것도 중복의 더위에 도전장을 던진 려행으로서 무더위가 내가 이겨야 할 주요한 대상이였다. 려행은 원만히 끝났다. 나의 이번의 려행에 많은 관심과 방조를 준 분들에게 참으로 고맙다. 어느 생활의 모퉁이에선가 기회를 찾아 될수록 갚아드리도록 노력할 것이다. 장백산천지와 망천아, 그리고 령광탑 등의 모습이 우렷이 떠오른다. 그리고 더욱 발전한 장백현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신기덕(2022년 8월 8일)

출처:길림신문

편집:김철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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