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정치 > 정치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한국의 바나나우유 중국시장 개척 창시자 - 청도서성그룹 박진희 회장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2.09.14일 14:51



청도서성(瑞城)그룹 박진희 회장

  현재 중국대륙의 우유제품시장 업계에서는 한국의 바나나우유 중국시장 개척 창시자라고 하면 모르는 사람이 별반 없다. 경쟁이 치렬한 식품판매업계에서 2012년부터 판매액 1억원을 돌파하면서 꾸준히 성장해온 한국 빙그레표 바나나우유의 뒤에는 현장에 답이 있다는 집념으로 오늘도 전국 각지 대형 슈퍼마켓의 시장정세를 면밀히 관리해가는 박진희 회장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박씨가문의 막내, 군에서 잔뼈를 굳히다

  한국에서는 신생아가 가장 많이 태어나던 1955년-1963년사이를 베이비붐 세대라고 부른다. 그가운데도 1958년 개띠가 핵심층으로 불리운다. 최초로 신생아 수 80만명이상을 기록했던 이들은 '채이는 것이 58년 개띠'라는 신조어를 량산했다.

  중국에서도 베이비붐 시대가 있었다. 중국의 베이비붐 시대는 1970년도 좌우인데 그가운데서 1970년 개띠해에 최고봉을 이룬다. 사상 신상아수가 처음으로 2774만명 최고치를 기록한 것이다. 그후로는 점차 하강선을 긋다가 2020년도에는 신생아수가 1000만명으로 줄어들었다.

  형국이 이러하다보니 그당시 매개 가정에는 서너명 자식은 적은 축이고 보통 대여섯명이였다.

  박진희 가정도 마찬가지였다. 1970년 개띠해에 박진희 씨가 막둥이로 고고성을 울리며 태어났을 때는 그 위로 형님이 3명, 누님이 3명 합계 7명 자식의 대가족이였다.

  길림성의 가장 북쪽으로서 흑룡강성 오상시와 잇닿아 있는 서란시 수취류진 맹가촌(水曲柳镇孟家村), 박진희 씨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만 들어보아도 전형적인 한족마을이였다. 300여호 살고 있는 동네에 조선족 100여호가 수전농사를 하고 있었다. 편벽한 농촌이라 순 농민가정의 온집 식솔이 열심히 일해도 겨우 생활유지나 할 정도여서 박진희 씨 기억에는 어려서부터 새옷을 입어본 적이 없었다 한다. 큰 형님이 입던 옷이나 형제들이 입던 옷을 되물림 받아 입었는데 항상 헐렁한 옷을 입고 다닌 기억이 생생하다. 모내기철이나 가을철에 부모를 도와 논밭에서 일하다가도 힘이 들때면 멍하니 서서 자주 하늘을 바라보았다. 푸르른 하늘속에 뭉게뭉게 피어오른 구름들은 자유롭게 어디론가 흘러가는데 나는 왜 평생을 이렇게 살아야 하나. 어떻게든 농촌을 벗어나자. 그때의 박진희 뇌리에 떠오른 생각이였다.

  그러다가 기회가 왔다. 박진희 씨가 16세 나던 때에 그렇게 존경하고 선량하고 부지런하고 평생을 땅과 함께 살아온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것이다. 그는 자신의 뿌리가 흔들리는 느낌을 받았다. 군에 입대하자.

  당시 농촌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대학입학과 군 입대였는데 박진희 씨는 후자를 선택한 것이다.

  내몽골 적봉시에 위치한 무장경찰부대 주둔지, 이곳에서 박진희 씨의 잔뼈가 굳혀지기 시작하였다.

  새벽 군호소리에 맞추어 일어나 두부모처럼 이불을 가쯘히 갠후 운동장 달리기로 하루의 일과가 시작된다. 바로 섯, 경례 등 대렬훈련으로부터 5천미터 마라톤 달리기, 사격훈련, 극한 견디기 훈련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쉬운 것이 없었다. 워낙 체질이 약한 박진희로써는 처음에는 따라가는 것이 무척 힘이 들었다. 마을에 있을 때는 든든한 형들이 있어서 도움이 되였으나 군대조직에 들어오니 모든걸 혼자서 처리해야 했다. 집생각 고향생각에 밤을 지새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

  그러나 군에 근무하는 3년동안 그의 체력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마지막에 와서는 반에서는 물론 부대에서도 인정해주는 체력선수로 자리를 굳혔다.

  "군에서 입은 가장 큰 혜택이 바로 책임감과 끈기 그리고 담량입니다."

  박진희 씨의 군 생활에 대한 총화이다.

  군에서 제대하여 고향에 돌아온 그에게 좋은 소식이 날아들었다.

  "중국과 한국이 수교를 했대요-"

  그해가 1992년 8월 24일 지금으로 부터 30년전의 일이다.



  연태에 부는 한국투자 붐

  1992년의 중한수교는 동북3성에 살고 있는 조선족들의 삶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전에는 친척방문, 약장사로 '남조선'을 방문하던 것이 중국대륙에 진출하는 한국독자기업에 근무하는 통역과 관리인원이라는 새로운 직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개혁개방이후 중국은 1984년 대련, 진황도, 천진, 연태, 청도, 련운항, 남통, 상해 등 연해지역의 14개 도시를 개방한다고 선포했다. 중한수교이후 한국과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 위치한 산동성의 연태, 위해, 청도시가 대한국 합작의 선두지로 떠올랐다.

  1990년 9월 인천과 위해시를 잇는 중한간의 첫 카페리(客货班轮)-골든브릿지(金桥)가 개통되였다. 그후 4년이 지난 1994년 8월 27일 연태시와 한국의 부산시를 이어주는 카페리가 통항하였다. 이는 건국이래 연태시가 처음으로 개통한 해외운항선이다. 연후 연태부두와 인천부두를 련결하는 카페리도 통항하였다.

  중한수교전인 1989년에 연태시의 제1호 한국독자기업인 연태경방직제품회사가 오픈식을 거행했다. 한국에 살고 있는 화교들 가운데 가장 많은 비률을 차지하는 것이 연태출신 화교들이다. 이런 화교들이 중국의 개혁개방과 외국투자유치에 첫 코를 떼준 것이다. 실례로 한국에서 유명한 주현미 가수의 고향도 연태 모평(烟台牟平)이다. 초창기 연태진출 한국업체들은 대부분 로동밀집형 중소기업들이 많았다. 그러나 대기업진출로 말미암아 연태시의 한국투자기업수와 규모는 기하급수로 늘어나기 시작했다.

  1994년 총 투자 1억5천만달러에 달하는 대우중공업(후에 두산중공업으로 개명)이 연태개발구에 입주했다. 년 2만대 굴삭기 생산규모의 대우중공업 회사는 한때 년 매출액을 57억원까지 올리면서 중국장비업체에서 1위를 차지했었다. 동시에 대우지게차, 대우자동차, 대우공작기계, 대우공정기계 등 계렬회사들이 수십억원의 매출액을 올렸다. 이외에도 총 투자가 7900억달러에 달하는 럭키금성디지털이동통신회사, 총 투자 4억달러에 달하는 럭키금성디스플레이유한회사, 대우조선(총 투자 1억 8900만달러), 포항제철연태자동차부품제조(총 투자 3900만달러), 연태현대병륜(冰轮)중공업(총 투자 3천만달러) 현대자동차연구개발센터(총 투자 2억 9000만달러), 한화신에너지(래양)회사(총투자 5천만달러) 등 대기업들이 연태시에 집중투자하였다.

  연태에 투자한 한국기업 수는 가장 많은 때 4000개에 달했으며 몇만명의 한국인들이 거주하기도 하였다.

  2001년 중국국가교육부와 한국과학기재부의 비준하에 산동성 첫 한국인 국립학교인 연태한국학교가 설립되였다. 당시 800여명의 한국학생인수를 감안하면 연태에 불어닥친 한류의 위력을 느낄 수가 있을 것이다.

  군 제대후 형들이 먼저 자리를 잡은 연태시를 찾은 박진희 씨는 어느날 한국직원들끼리 하는 대화를 엿듣는다.

  "중국음식이 이젠 질려, 언제면 우리 한국식품을 마음대로 먹으려는지?"

  한국기업에 근무하는 한국직원들이 무심히 나누는 대화속에서 박진희 씨는 생애 첫 상업기회를 포착하게 되였다. 한국식품전매상점을 차려보자.

  그는 그동안 모아온 자금에 형제들 돈을 좀씩 꾸어서 연태부두가에 자그마한 한국식품가게를 차렸다. 이름은 청양마트(青洋超市), 박진희 사장의 한국식품 중국판매사업이 드디어 개장을 한 것이다. 그해가 1997년도였다.



  연태부두가 식품가게에서 마트체인점으로 발전

  박진희 사장의 예언은 적중했다.

  청양마트는 개점 첫날부터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매주 2차례씩 오가는 중한 카페리손님은 물론 연대 전역에 진출한 한국업체들로부터 주문전화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한국산 신라면, 김, 간장, 고추장, 된장, 다시다, 참치통졸임 등 식품류가 주종을 이루었다. 이외에도 진로소주, 맥주 등 주류에 이어 쿠쿠밥솥 등 주방용품으로 품목을 확대해갔다.

  식품가게 운영에서 첫번째는 물량확보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박진희 씨는 처음에는 따이궁(代工)을 많이 리용하였다. 따이궁이란 중국과 한국 수교이후 인천에서 중국으로 가는 저렴한 배편이 형성되면서 대거 생겨난 보따리상으로서 이들은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물건을 구입해 판매한다. 이들 대부분이 화교출신들이다.

  연태부두를 가장 많이 리용하는 따이궁들은 많을 때는 수십명이 되기도 하였는데 이들은 일년 사계절 배를 탄다. 처음에는 한국식품을 나르기 시작하던데로부터 그후에는 한국산 화장품, 홍삼 등의 상품을 저렴하게 구매하여 운송해오기도 하였다. 따이궁들이 연태부두에 내려 가장 먼저 들르는 곳이 바로 박진희사장이 운영하는 청양마트이다. 다른 가게보다 가격을 잘 받아주고 또 첫날 저녁에는 의례 한끼 접대해주는 표오로반(朴老板)의 인품이 단단히 한몫을 한 것이다.

  박진희 씨가 군에서 근무할때 한족전우들 가운데 산동출신이 몇몇 있었는데 그들과 가까이 접촉하면서 이들의 산동말을 알아듣고 또 허물없이 지내던 경험이 이번에 큰 효과를 발휘한 것이다.

  따이궁들과의 접촉시간이 길어지면서 점점 더욱 많은 한국상품 정보들이 청양마트에 집중되였다. 청양마트는 당시 연태부두에서 가장 유명한 정보집산지가 되였다. 따이궁들이 가져온 한국물건들이 이곳을 통해 청도, 제남 및 전국각지로 배송되였으며 한국으로 나가는 각종 국내 물건들이 이곳에 미리 집중되여 한국으로 나갔다. 특히 중국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업체들에서 급하게 내보내고 들여올 부품들도 벌써부터 청양마트를 리용하고 있었다. 그당시 박진희 사장의 전화번호는 한국인들 사이에서 114로 소문이 퍼졌다. 박사장한테로 전화하면 해결못하는 일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박진희 사장은 점차 시야를 청도시로 돌리게 되였다. 연태시에 진출한 한국인과 한국기업들도 많지만 몇배 이상의 한국인 상권이 청도에서 서서히 형성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2001년 8월에 그는 가게의 업무를 확장하여 청양(青洋)무역유한회사로 등록하였다. 2007년부터는 청도에서 한국인들이 가장 많이 진출해있는 성양구에 청양마트 춘양화원(春阳花苑)점과 대윤발(大润发)점 등 체인점을 련달아 몇개 오픈했다.

  업무확장이 산동 전역 및 전국으로 확장됨에 따라 250만원을 투자하여 청양투자자문컨설팅회사도 운영하기 시작하였다.

  10년간의 발전을 거쳐 연태와 산동지역을 아우르는 전국시장에 진출할 기초를 마련한 것이다.

  바로 이때 한국의 빙그레 우유회사에서 박진희 사장을 찾아왔다.



  거대한 중국대륙 14억 인구의 입맛을 잡아라

  한국의 빙그레회사에서 1974년 6월부터 판매하기 시작한 가공우유인 바나나우유는 바나나맛과 우유맛이 어우러진 국민우유로 편의점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상품 1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2003년부터 바나나 우유가 미국과 캐나다, 동남아 각국 등지로 수출되기 시작하였다. 그후 일본으로 수출되기도 했지만 생각보다는 잘 팔리지 않았다.

  그런데 유독 중국에서만은 바나나우유의 원조로 불리우며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중국에서 성공할수 있었던 것이 바로 박진희 사장을 만나면서부터 이루어진 것이다.

  한국 빙그레회사의 해외시장 담당 윤상무와 리차장이 어느날 청도에 있는 박진희 사장의 사무실을 찾아왔다. 빙그레회사는 그사이 수많은 대리인을 찾아 상담하면서 국내시장을 개척하려 했으나 번마다 실패하여 고민이 깊어가던 때였다.

  당시 박사장은 성양 지훙탄에 8천평방미터의 식품공장을 금방 완공하고 본격적인 국내 내수개척에 나서려던 참이였다.

  종이곽 포장으로 된 바나나우유맛을 보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박진희 사장의 눈빛은 점점 빛나기 시작했다.

  여직 중국시장에서 맛볼 수 없는 바나나와 우유의 신선한 맛, 든든한 경제실력을 자랑하는 한국 빙그레회사, 중국의 거대한 14억 인구 시장을 개척하려는 절박함, 이제 남은 것은 중국인의 입맛을 사로잡는 일 뿐이다.

  "한번 일을 저질러봅시다!"

  박진희 사장과 빙그레회사와의 전략적합작이 성사되는 순간이였다.

  그때로부터 상해, 북경, 광주의 대형마트에는 심심찮게 판촉행사를 하는 박진희 사장의 모습을 볼수가 있었다.

  전국적인 판매의 순조로운 진행을 위하여 2011년 5월에 1100만원을 투자한 청도서성(瑞城)국제무역그룹주식유한회사가 설립된다. 부두가의 식품가게로부터 유한회사를 거쳐 그룹회사로 발돋움한 것이다. 박진희 사장이 회장을 맡고 동시에 북경, 상해, 심천에 분사를 설립하면서 그룹체제로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2011년과 2012년 이 두해를 박진희 회장은 거의 출장으로 지냈다.

  인생의 2차 창업을 시작한다는 각오로 나선 것이다.

  치밀한 시장조사를 거쳐 중국의 경제수도인 상해에서는 대형 매장을, 정치수도인 북경에서는 할인매장을 주 고객으로 선정했다. 패밀리마트, 세븐엘레븐, 월마트, 화련체인점, 쟈스커 등 매장들에서 동시다발적으로 판촉행사가 시작되였다. 박진희 회장은 그때의 상황을 해방전쟁시기 3대전역에 비유하고 있다. 호텔에 거점을 잡고 지도를 펼쳐가면서 연구하고 매일매일 물량을 체크하고 부족된 부분은 수시로 채워가면서 일해나갔다. 남편의 마음을 그렇게 잘 리해하는 집사람조차도 "미쳤다"할 정도로 모든 정력을 쏟아부은 것이다.

  매번 판촉행사장소에는 박진희 사장의 모습이 빠지지 않는다. 그는 고객들의 뒤에 서서 시음한 후 그들의 반응을 귀동냥으로 듣는다. 하루종일 종합한 고객들의 반영내용을 정리한 후 한국측과 협상하여 개선방안을 토론, 실행한다.



  공든탑이 무너지랴!

  박진희 회장과 임직원들의 공동한 노력하에 먼저 상해에서 제일 먼저 대박이 터졌다. 워낙 소비가 높은 도시인지라 한번 바나나우유맛에 반한 고객들이 줄줄이 다시 찾기 시작한 것이다.

  마침 인터넷과 쇼셜미디어에 '전설속의 바나나우유 상해에 등장'했다는 내용의 문장이 핫이슈에 뜨면서 소비에 부채질하기 시작했다.

  매일마다 바나나우유를 꽉 박아실은 컨테이너 수십개가 중국부두에 도착했다. 제품들은 매대에 올려놓기 바쁘게 며칠이 안되여 동이 나군 하였다. 북경, 심천에서의 소비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2012년 년말 바나나우유 단일품목 중국대륙의 판매액이 처음으로 1억원을 돌파했다.

  5년내 상장 목표

  현재 바나나우유제품의 중국매출액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잠시 주춤하고 있지만 여전히 인민페 2억원을 초과하고 있다.

  회사는 북경, 상해와 심천에 지사를 운영하고 있으며 전국에 400여개의 대리상, 전국적으로 4만여개의 점포에 한국식품들을 공급하고 있다.

  박진희 회장이 이끄는 서성그룹의 지난해말 국내영업액은 4억원을 돌파했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거의 모든 업종들이 큰 타격을 받고 있는데 반하여 실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 성적표이기도 하다.

  서성그룹에서는 또 몇년전부터 티몰(天猫), 징둥(京东), 틱톡(抖音) 등 온라인 전자상거래 업무도 개척하고 있는데 그 비중이 전체 업무량의 30%를 차지하고 있다.

  서성그룹은 또 한국의 농수산식품류통공사(aT) 청도대표처와의 합작도 강화하고 있다. 대형 보온창고를 보유하고 있는 aT회사의 우세를 십분 발휘하고 있다. 한국식품을 실은 수백개의 컨테어너물량들이 전국각지로 나가는데 필요한 콜드체인 운송(冷链运输)환승역 역할을 톡톡히 잘 발휘하고 있다.

  이밖에 청도한국무역관(kotra)과의 긴밀한 업무협력도 중시하고 있다. 한국무역관은 한국내 식품회사들의 중국시장 개척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내에서 부단히 개발되여 오는 새로운 식품들을 접할 수 있는 좋은 창구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국에서 뜨고 있는 연세우유의 중국시장 개척에 신경을 쓰고 있다.

  무항생제, 건강식품으로 저탄소우유의 연세우유는 오곡적취물 등 다양한 내용물 품종과 종류로 우유의 새로운 발전방향을 대변하고 있다.

  참고로 박진희 회장의 바나나우유가 중국내륙에서 대 히트를 친후 중국에는 비슷한 포장의 바나나우유제품이 수십개 쏟아져나왔으나 현재 거의다 자취를 감춘 상태이다. 지금은 2-3개 브랜드밖에 남지 않았다고 한다. 역시 원조는 우리, 소비자들이 처음에는 가격이 싼 유혹으로 다른 회사의 바나나우유를 맛보지만 결국에는 첫 맛을 들인 빙그레 바나나우유를 다시 선택한다고 한다.

  이밖에도 까다로운 대형 매장의 입점조건을 맞추는 것이 조련치가 않다고 한다.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수입제 랭동식품에 대한 규제가 강화된 것도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모든 수입제품에 대해서 세관에서 격리를 진행하다보니 류통기한이 줄어든 것은 물론 매 제품에 추적큐알코드(追溯码)를 붙혀야만 류통자격이 주어진다.

  이러한 악조건들을 하나하나 이겨내고 빙그레 바나나우유의 국내시장 판매성장그라프를 13년째 거뜬히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2020년 4월 박진희 회장은 성양구의 노란자위인 흥양로(兴阳路) 완커매력신성(万科魅力新城商务楼) 6층에 800평방미터 되는 오피스텔을 구매하여 그룹본사를 입주시켰다.

  "앞으로 5년간의 목표는 그룹의 상장입니다"

  전체 임직원들이 모여진 자리에서 발표한 박진희 회장의 비전이다.

  고향인 맹가촌에서 모내기를 하다가 두둥실 흘러가는 희구름을 보고, 고되고 힘든 군생활시 내몽골초원을 질주하는 군마떼를 보면서, 배고동을 울리며 힘차게 연태부두를 떠나가는 륜선의 경적소리속에서, 상해와 북경의 대형 마트속에서 서서히 잉태하고 변화 발전해온 민족기업상장의 꿈이 서서히 영글어가고 있다.

출처:동북아신문

편집:김선화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10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33%
50대 67%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애니메이션 '짱구'에서 봉미선, 즉 짱구엄마 목소리를 연기했던 성우 강희선이 4년 전 대장암을 발견했던 때를 떠올리며 근황을 전해 화제가 되고 있다. 지난 17일 tvN 예능 '유퀴즈 온 더 블럭' 에서는 짱구엄마, 샤론 스톤, 줄리아 로버츠, 지하철 안내방송 목소리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밥카드폰' 은밀히 류행, 학교 및 부모 경계해야!

'밥카드폰' 은밀히 류행, 학교 및 부모 경계해야!

최근 일부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일종의'밥카드폰'이 류행하고 있다고 반영하고 있다. 이런 장비는 밥카드케이스에 넣어 보관할 수 있으며 화면에서 나오는 백색광과 밥카드가 융합되여 은페성이 매우 강하다. 사용자가 편광필름(偏光膜)이 있는 안경을 착용했을 때만

민정부 긴급 성명! '이양가원건설' 등 활동 조직한 적 없어!

민정부 긴급 성명! '이양가원건설' 등 활동 조직한 적 없어!

'중국민정' 위챗 공식계정에 따르면 최근 민정부 양로서비스부는 범죄자들이 민정부 양로복무사(养老服务司)의 이름을 사칭해 이른바 '이양가원건설(颐养家园建设)' 등 활동을 벌인 것을 발견했는데 관련 행위는 사기혐의가 있다. 이에 대해 민정부 양로복무사는 다음과

수분하통상구 1분기 화학비료 수입 전년 동기 대비 4배 증가

수분하통상구 1분기 화학비료 수입 전년 동기 대비 4배 증가

4월 18일, 염화칼륨(氯化钾) 비료를 가득 실은 컨테이너렬차가 서서히 수분하철도역에 들어섰다. 이는 올해 들어 9번째 비료 운송 렬차로 벨로루시(白俄罗斯) 물랴로프카(穆利亚罗夫卡)역에서 출발해 러시아 글로데코보(格罗迭科沃)국경역과 수분하철도역을 거쳐 심양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