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름이 무성한 7월, 중앙민족가무단 변영화가수(25세)는 연변대학 예술학원에서 석사모를 정히 쓰고 졸업기념촬영을 하며 한껏 환희에 젖어있었다. 그동안 연구생공부로 고달팠던 로고를 가신듯 잊고 마냥 행복하기만 한 변영화였다.
《변영화가수는 중국음악학계에서 조선족전통공연예술인 〈판소리〉표현창법에 대해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전방위적으로 해석하여 리론적으로 집성한 첫 사람입니다.》
이는 석사생지도교사인 연변대학 예술학원 남희철교수의 평가이다.
변영화는 워낙 조선족음악에 대해 할말이 많은 가수였다. 어린시절 노래를 즐겨부르는 어머니한테서 동요를 따라부르며 노래부르기를 배웠고 학교에 입학하면서 연길시소년궁에서 민족음악에 어섯눈을 뜨게 되였다. 노래가 즐거움이 되고 생활이 되면서 음악소녀 변영화에게서 민족음악의 길은 곧 유일한 출로로 자리잡았다. 12살에 민족예술의 전당인 연변대학 예술학원에 진학하여서부터 줄곧 15년동안 민족음악계 권위자의 일원인 강신자교원의 지도아래 음악예술을 전공하면서 가수지망생의 길을 튼실하게 걸어왔던것이다.
《강신자선생님께서는 민족음악에 대한 깊은 연구를 동반하면서 비교론적 각도에서 연변음악의 특점을 많이 가르쳐주셨습니다. 웬지 모르게 그분앞에만 서면 민요를 부르고싶었고 또 부르면 신이 나고 흥이 나 잘 불렀습니다. 선생님은 언제나 〈잘한다〉고 치하를 하면서 저희들을 키워왔습니다. 그의 손길아래서 저희는 민족가수의 생애를 드팀없이 확실하게 걸어오게 된겁니다.》변영화가수는 감회로 벅찼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벌써 전국무대에서 민족가요를 불러 크고작은 상을 거머쥐면서 전도유망한 가수로서의 싹수를 보여주었다. 그는 거창하고 깊음있는 시원한 목소리, 남다른 가창력으로 2000년부터 선후로 연변민족전통음악절민요 소년조금상, 전업조 금상, 2002년 제1기전국조선족성악경연 민족창법 특별상, 중국조선족가수경연 민족창법 1등상, 2003년 남녕국제민요예술절 제2차중화민가대경연 우수상, 2004년 중앙텔레비죤서부민가경연 원생태민요 독창조 금상, 2006년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전국청년가수대경연 원생태조 은상, 제9차공청단 《5개1》우수청년신인상 등 화려한 수상경력을 자랑하며 민족가수의 일로를 순탄하게 걸어왔다. 하여 그는 대학교졸업전부터 중앙민족가무단에서 점찍어둔 특별초빙가수로 되였다. 그녀는 국내 중앙텔레비죤방송국 음력설야회며 신강, 내몽골, 광서 경축문예야회뿐만 아니라 세계민요박람회, 한국, 미국 ,대만, 향항, 오문, 애급 ,수단 등 해외공연장으로 활동무대를 넓혀나갔다.
가수가 되는것이 최종 목표가 아니고 상을 타는것이 최고목적이 아니였던 그녀는 국가급 민족가무단에서 여러 소수민족 가수들과 어울려 서로 배우고 비교를 하면서 민족가수로서 자기의 민족음악창법의 정체성과 그 특성에 대해 보다 완벽하게 알아야겠다는 각오를 가지게 되였다. 하여 대학졸업시 《판소리표현의 재창조》에 대한 론문을 집필하여 우수한 성적을 따냈던 그는 계속하여 민속음악의 대표성을 구현한 《판소리》가 연변지역으로 류전되면서 형성한 자체의 특색에 대해 보다 깊은 연구를 하면서 민족창법의 폭을 넓혀갔다. 여기서 그는 가수로서 판소리의 표현에 립각점을 두고 학문적으로 파헤치는 작업에 착수하였던것이다.
그는 석사공부를 하는 동안 중앙민족대학에서 학과목공부를 견지하는 한편 자료수집과 론문집필 시에는 비행기편으로 연변을 날아다니기도 하고 장거리전화로 한시간씩 담당도사 남희철교수의 가르침을 받고 상론도 하면서 각고의 노력을 경주하였다. 그것도 한어로 된 론문을 완성, 답변에 통과하기까지는 애로가 컸지만 그녀는 우선 자신의 선택을 믿었고 의지를 확고하게 가졌던것이다.
중앙민족가무단에서 가수로 있으면서 그는 중국음악계의 많은 사람들이 조선족음악에 관심이 크다는것을 발견하였다. 그런데 조선족음악에 관련한 한문으로 된 자료들은 별로 없었다. 론문자료수집을 하면서 예술분야 석박사들이 집필한 론문집을 읽으려니 훌륭한 내용의 론문들이 조선문그대로 인터넷에 올라있어 중국주류사회에 널리 알려질수 없는것에 못내 안타까왔다. 그는 자기가 아는것만이라도 중국음악계에 널리 알려질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났다. 하여 아무리 큰 어려움이 있더라도 기어코 한어로 된 론문을 집필해내기로 작심하였고 또 그것으로 자신의 론문의 가치를 더욱 높이게 되였다.
변영화가수는 석사공부과정을 돌이키며 《필경은 자신에게 남기는 공부라는걸 깊이 깨닫게 되였다》고 한다. 《조선족가수로서 자신의 자질과 수준을 제고함으로써 우리 민족의 모든것을 노래로 세상사람들에게 알리는것이 자기의 소망이고 또 사명》이라고 한다. 언제 어디서나 조선족대표가수 일원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할것이며 계속 노력하는 가수, 도전하는 가수, 성취하는 가수로 거듭날것이라고 밝게 웃어보였다.
그러면서 노래부르기를 일깨워준 어머니, 가수의 길을 이끌어주 강신자교수님, 학문의 길을 인도해준 남희철도사님은 자신의 음악생애에서의 등대같은 은사님들이라고, 그분들이 있었기에 자신의 오늘이 있다고 감격에 젖어 고마움을 토로하였다.
편집/기자: [ 김청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