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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진항풍금달금속구조유한회사 박동호 리사장의 성공 스토리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2.11.25일 13:41
천진직할시 정해개발구에는 퇴역군인, 공무원, 기업가로 변신을 거듭하며 구멍가게에 불과했던 업체를 업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시킨 조선족기업가의 성공스토리가 화제가 되고 있다. 그가 바로 천진항풍금달금속구조유한회사(天津恒丰金达金属结构有限公司)의 박동호리사장(70)이다. 천진항풍금달금속구조유한회사는 공장의 부지면적이 2만평방미터에 달하고 직원이 200여명, 10여명의 연구일군이 근무하고 있으며 자동용접생산라인, 니스작업장에 디지털선반, 프레이즈반, 프레스 등 최신식 설비를 구전하게 갖춘 건축용 파이프, 조절식금속구조물, 비계, 비계부품, 조절식 받침판 등을 생산하는 기업으로 제품이 한국, 일본, 미국, 영국, 캐나다, 이탈리아, 중동지역 등 40여개 나라와 지역에 수출되고 있다. 회사의 년간매출액이 한때 최고로 근 1억원에 달했으며 코로나 영향을 받은 올해에도 4천만원이상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천진항풍금달금속구조유한회사 박동호 리사장

'철밥통'버리고 창업에 도전, 거듭되는 시련을 딛고 성공의 발판 만들어

퇴역군인인 박동호씨는 고향인 흑룡강성 밀산시에서 '철밥통'인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했다. 하지만 도전정신이 남달리 강했던 그는 아침에 출근하고 저녁에 퇴근하는 늘 한결같은 생활패턴에 안주하지 않고 창업의 기회를 엿보았다. 1997년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한국, 동남아 등 나라들이 심한 타격을 입었으며 중국경제도 전례없는 위기를 맞았다. '위기는 곧 기회이다'라는 좌우명을 갖고 있던 박동호씨는 45세의 나이에 과감히 '철밥통'을 버리고 창업에 나섰다. 주변에서 몇년만 지나면 퇴직도 하고 안정하게 살수 있는데 굳이 무모한 선택을 한다고 반대했지만 그는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상해, 위해 등지를 전전하며 시장관리도 하고 제품판매도 하면서 자금축적에 나섰다.

일정한 자금이 모아지자 그 돈을 믿천으로 장사에 나섰다. 할빈의 호박농가와 련계해 호박도매를 하려고 자신의 자금과 친척, 친구들에게서 빌린 돈을 합하여 10만원을 종자돈으로 할빈의 호박도매상과 계약을 체결하고 선불금을 지불했다. 하지만 납품기일이 되였는데 기다리는 호박도 오지 않고 호박도매상은 련락이 두절되였다. 사기군에게 걸려들어 돈벌기는 고사하고 빚만 잔뜩 지게 되였다. 첫 장사의 학비치고는 너무 비쌌다.



  '설상가상'으로 기침이 멈추지 않아 병원에 갔더니 '페암'이라는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듣게 되였다. 후에 할빈, 천진 등 대도시의 병원들을 찾아 다니며 숟한 검사를 한 결과 일반 페염이란 진단을 받았지만 당시 정신적 타격은 엄청났다.

집에서 쉬면서 한동안 치료를 통해 몸이 회복되자 2002년 그는 재차 도전에 나섰다. 천진의 한 금속회사에 취직해 또 다른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당시 부동산이 호황일때라 우연한 기회에 만난 부동산업자와 의기투합해 부동산에 뛰여들었다. 8천여평방미터의 부지에 집을 지었는데 집이 팔리지 않아 600만원의 천문학적 빚만 지게 되였다. 살길이 막막했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세상을 떠나자니 여직껏 쌓아온 자신의 신용에 오명을 남길 것 같았다. 별의별 생각을 하며 그래도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는 말을 믿어 보기로 했다. 생각을 바꾸니 막혔던 출로도 보이기 시작했다. 그동안 판매에만 열중했던 탓에 부동산 임대라는 노다지판을 간과했던 것이다. 당시 천진에도 한창 개발단계에 있어 외지의 로무일군들이 많아 세집 수요가 많았다. 세집 광고를 내자 숟한 사람들이 찾아왔고 부동산 임대호황에 힘입어 2년만에 모든 빚을 청산하고 새로운 소생의 기회를 맞이하게 되였다.



  자신의 우세를 발휘하면 성공이 뒤따른다

부동산 임대로 성공의 발판을 마련했지만 부동산 시장이란 예측불가능하며 언젠가 한계가 온다는 걸 미리 판단한 박동호씨는 업종전환에 정력을 몰부었다. 군대 공정병으로 있을때 련마한 숙련된 기계조작기능과 금속회사에서 다니면서 쌓은 경험 및 부동산에 종사하면서 파악한 시장수요가 바로 자신의 우세라고 생각한 그는 수중의 자금으로 용접기, 타공기, 절단기를 구매하고 건축용 철골구조 생산에 나섰다. 그가 건축자재생산에 나선 것은 또 우연한 기회에 얻은 정보와도 련관이 있었다. 하루는 TV를 시청하다가 중동관련 뉴스를 접하게 되였는데 아랍에미리트, 오만,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등 중동지역에 건축붐이 일고 있는데 건축방식을 보면 철골구조가 대부분이였다. 기업가의 민감성으로 순간의 뉴스를 상업기회로 전환했다. 한국, 일본의 바이어들과 교류하면서 중동지역 시장잠재력에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



  거래에 성공하려면 고객들이 만족해야 하고 고객들을 만족시키려면 제품의 질이 좋아야 한다는 것을 철칙으로 삼는 박동호씨는 외국바이어를 공장에 직접 초청하여 현장에서 제품의 생산 전반 과정을 돌아보게 하며 확인시켰다. 당시 외국 바이어들은 현장을 고찰한후 즉석에서 제품을 주문했는데 그 수요가 너무 많아 130명의 직원들이 밤낮으로 교대하며 생산에 투입되였으며 한달에 적어서 30-40 컨테이너, 많으면 100여개 컨테이너를 수출했다.

하지만 호황도 잠깐, 2009년 닥친 세계적인 경제위기로 원자재가격이 폭등하면서 또 한차례 시련을 맞이하게 되였다. 가격이 맞지 않아 주문량이 급감했고 울며 겨자먹기로 공장창고에 쌓인 재고품을 헐값에 처리해야 했다. 불과 몇달사이에 300만원의 빚만 지게 되였고 100여명의 공장일군들이 5-6명 밖에 남지 않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였다.



  전화위복의 계기를 틀어쥐고 재기의 발판 구축

  한국 현대그룹 고 정주영회장의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는 것에 령감을 얻었다는 박동호리사장은 '시련은 있어도 포기는 없다'는 것이 자신의 오늘을 있게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창업 첫 시작부터 수많은 시련을 맞이했지만 용케 살아남은 것은 포기를 모르는 도전정신이였다. 2009년의 세계적 경제위기가 그에게 가져다준 타격은 엄청났다.

자금이 고갈되고 직원도 고작 5-6명 남은 비참한 현실이였지만 그는 포기할수 없었다. 어떻게 하면 새로운 탈출구를 찾고 전화위복의 계기를 삼을 것인가 많은 고민을 했다. 환갑이 다된 나이였지만 평소 새로운 것을 배우기 좋아하고 젊은 직원들과 교류하기를 즐겼던 박동호리사장은 전통판매방식에 비해 홍보효과가 높고 효률이 높으며 원가가 낮은 온라인 판매방식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중국 최대의 온라인 쇼핑몰인 알리바바와 련계해 제품판매를 시작했다. 제품이 온라인에 등록되자 원래 거래처였던 중동지역은 물론 아프리카, 미국 등지에서도 주문이 날아들기 시작해 부도위기에 처했던 회사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하게 되였다. 2012년 얼어붙었던 시장이 다시 활성화되면서 주문량도 기하급수로 늘어났다.



부도위기에 몰려서 하는수 없이 보내야 하는 직원들에게 한푼이라도 더 쥐여 보내며 평소 직원들을 가족같이 대해왔던 박동호리사장의 인품을 알기에 공장에서 다시 일군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떠났던 직원들이 하던 일도 팽개치고 달려왔다. 박동호리사장은 당시 리산가족 상봉의 심정이였다고 회고했다. '사람이 곧 생산력이다'는 것을 알고 있는 박동호리사장은 직원복지에 더욱 신경을 기울였다. 없는 자금을 쪼개서라도 직원숙소의 난방과 환경개선에 투입했으며 화식도 다른 공장들에 비해 월등히 좋았다. 잔업수당, 개근수당, 목표완수수당 등 다양한 장려책으로 직원들을 격려했으며 우수직원들을 뽑아 특별장려도 했다. 상하가 일심동체가 되여 분투하니 회사는 성장일로를 걸어 일약 업계 굴지의 기업으로 성장하게 되였다.



  박동호리사장은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있지않고 고향의 행사나 불우이웃돕기에도 늘 성금을 쾌척하고 있어 호평을 얻고 있다. 그는 창업의 초심을 잊지 않고 칠순의 나이에도 산업1선에서 분투하며 아름다운 인생스토리를 계속 엮어가고 있다.

출처:인민넷 조문판

편집: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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