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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기 119]바다의 끝머리는 시내물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22.12.28일 14:48
지구촌이 코로나19 라는 불청객에 휘둘려 시끌법적하는데도 내가 사는 룡정의 해란강기슭만은 외세의 무차별공격에도 사각지대인양 하루에 하루를 잇는 거의 똑같은 리듬이 깨여지지 않아 다행스럽다.

비가 오든 바람이 불든 요즘에는 눈까지 퍼붓든 정연하게 다듬어놓은 해란강유보도에는 답답한 집안에서 탈출하여 잠간이라도 거뿐한 바깥바람을 들이켜 보려 찾아오는 사람들로 술렁거린다. 이들은 삼삼오오 혹은 쌍쌍이 늦은 걸음으로 담소하거나 강가의 목조식으로 마련한 벤취에 앉아 세상만사를 담론하거나 온통 거대한 얼음덩어리 속에서도 거침없이 무서운 게 없이 소리치며 흘러내리는 보둑의 거창한 물결앞에서 가슴속의 불안과 번뇌를 털어버리려는듯 이윽토록 하염없이 바라본다. 이들의 착잡한 심경을 아는듯 마는듯 맑은 해란강은 사품치며 흘러서 얼음속으로 들어가 사라진다. 그러면 다시는 시야에서 그 강물이 다시 나타나지 않아 퍼그나 허전해지기만 하다. 저 강물을 다시 볼 수 있을가 하는 일말의 기대에 잠간 갸우뚱해도 한낱 사치에 지나고 만다.

오늘따라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강기슭 후미진 곳에서 책을 보는 녀자애의 얼굴도 어렴풋이 보인다. 사뭇 반가워난다. 아침 일찍 강가에 나와 책을 보는 학생들을 쌀의 뉘만큼이라도 찾아보기 힘든게 요즘 세태이다. 나아가 베란다에 다정하게 앉아 데이트 즐기는 련인들도 어데로 사라졌는지 보기 힘들다. 분명 모든 게 달라진 게 분명한데 어데가 어데인지가 궁금할 뿐이다.

오늘은 천불지산의 송이버섯을 인공공예로 가운데에 다듬어세우고 후련히 세워놓은 해란강 베란다에 앉아 썰매 타는 아이들을 흥미롭게 구경하노라니 오래만에 룡정에서 이도백하쪽으로 떠나가는 파란색바곤 렬차도 오래만에 보게 되였다. 한때는 하루에도 싫증나게 보아오던 파란색 렬차도 고물같이 서먹해지게 된다. 저 렬차를 탔던 때가 언제이던가 얼결에 손가락 꼽아보는데 책을 보는 저 녀자애와 하나의 풍경선을 이루면서 견물생심이라 할가 고속도로 개통전 장춘행 파란 렬차에서 만났던 한 녀자애가 떠올랐다.

그 녀자애를 만난건 한여름철 장춘행 렬차에서였다. 스무살쯤 돼보이는 애된 녀자애였다. 동행도 없었고 짐이라야 어느 제품을 홍보한 종이빽이 전부였다. 이쁘고 귀여운 얼굴과는 서운하다 할만큼 옷차림은 수수하고도 간소했다. 은연중 ‘저 얼굴에 패션을 조금이라도 둘렀으면 금상첨화일걸…’ 하는 싱거운 생각이 스치는 첫인상이였다.

그녀와 말을 건넬 수 있은 건 종이빽에서 《상용 조선어한어》라는 책을 꺼내는걸 보고서였다. 승무원이 침대번호를 확인할 때도 류창한 한어로 대답하길래 내처 한족인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우리말 책을 꺼내드니 반가움과 함께 호기심이 부쩍 몰려들었다.

“아가씬 조선글에 꽤 흥미가 있는 모양이지요?”

내 말에 그녀는 대답 대신 초롱초롱한 두눈을 반짝이며 생긋 웃었다.

“선생님 보기엔 제가 한족 같아요, 조선족 같아요?”

솔직히 얼굴을 분별하는데 그닥 밝지 못한 나로서는 이쁘다는 인상을 빼놓고는 민족까지 가려낼 만한 그 어떤 특징도 잡아내기 어려웠다.

“한어말 하는걸 보면 조선족 같지는 않고…”

내가 짐짓 여지를 두며 뜸을 들이는데 그녀가 먼저 고개를 살래살래 저었다.

“조선족 같지 않다고요? 뭐래도 당당히 조선족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뭘로 ?…”

“아가씨 조선말을 한마디라도 해본다면…”

“감사합니다. 안녕하십니까?”

그녀는 서투른 억양으로 조선말을 입에 올렸다. 솔직히 다른 민족이 입에 올리는 조선말과 별로 다를바 없이 어색하고 거친 편이였다. 설마 하는 내 표정을 읽었는지 그녀가 드디여 까닭을 밝혔다.

“실은 어머니가 조선족이예요.”

채씨라는 그녀는 화룡 백리림장 심심산골의 림업로동자 자녀였다. 학력은 초중, 연길에다 매대를 앉힌지 3년째 된다면서 녀자애는 가정 래력을 굳이 숨기지 않았다.

“우리네는 네 자매, 남자동생하여 모두 다섯남매예요. 부모님들은 그냥 화룡에 계시고 출가한 언니가 연길에서 살아요. 그 연줄로 저도 연길에서 발을 붙이게 되였고요…”

얼핏 들어보아도 특이한 가정이라 할 수 있었다.

어머니에 이모도 한족남성에 시집갔다는 말에 알아보니 친가 외가 할아버지때부터 죽마고우였다는 걸 보아 어른들의 뜻에 따라 맺어진.연분으로 짐작할 수 있었다

녀자애는 자기 말이 당돌해보였는지 귀엽게 생긋 웃었다.“어머니는 워낙 소학교 교원이였어요. 지금 아버지가 그냥 어머니한테 짐을 지고 사는 것 같아보여 안스러울 때가 가끔 있어요. 장차 부모님은 제가 모실거예요. 그래서 지금 열심히 돈을 모으고 있어요. 오늘도 장춘중동시장으로 물건 구입 가는 거예요.”

“참 기특하네. 그러면 장차 조선족총각이려나. 한족총각이려나?…”

“글쎄요. 그런 연분이 맺어진다면 마다할 것 없지요. 그래서 지금 조선말까지 배우고 있지 않아요?”

그녀는 일주일에 다섯날씩 연길의 한 학원을 다니고 있었다. 낮에는 장사를 하다보니 공부는 밤시간을 짜내야 가능할만큼 고달펐다.

“조선족의 정취를 느낀 것은 연길에 온 다음이였어요. 여기서 진정 조선족이 뭐란걸 느낄 수 있었거든요. 나의 래력을 알았다면 진작 조선말을 배우겠다고 졸랐을거예요. 저 이래도 배짱이 이만저만이 아니거든요. 어머니는 인제야 가끔 조선말을 가르치거든요…”

“어머니가 조선족이라는 걸 자랄 때부터 알았나요?”

“아니요. 크면서요.어머니는 자립해야 한다고 늘 당부하셨어요. 어머니는 남들과 달리 언제나 손수 장을 담그고 김치를 절구었어요. 전부 한족들이 살아가는 우리 마을에서 그런 일을 하는 게 어머니밖에 없었어요. 후에 자라면서 그게 조선족음식이라는걸 알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게 되였고 나중에 어머니가 조선족이라는걸 할아버지한테서 알게 되기에 이르렀죠.”

“꿈틀하던가요?”

“아니, 별로 놀라지 않았어요. 잠재적인 의식이 있어서였겠지요.”

“서먹서먹하지도 않고요?”

“어머니가 저에게는 어디까지나 똑같은 어머니인데요. 뭘. 실은 그런 방식속에서 살아왔는가봐요. 어머니는 우리들에게 뜨개질, 코바늘뜨개도 배워주었어요. 시집갈 때 손수 떠가지고 가야 녀자 구실을 하는 거라고. 그리고 알뜰한 녀자라고 받들릴 수 있다면서 말이예요. 저의 언니들도 그렇게 했고 저도 지금 한창 코바늘뜨개를 익혀가고 있어요.”

요즘 우리 주변에 뜨개보 들고 시집가는 신부들을 볼 수 있던가? 분명 어제날의 풍경으로 사라지는 전설이 화룡의 어느 림장마을에서 고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감격스러우면서 코마루가 시큰시큰해났다. 눈앞의 발랄한 채양의 얘기를 들으면서 어쩐지 어느덧 예순고개를 바라보고 있다는 그녀의 어머니 나아가 우리 주변에서 평범하면서도 빛갈나게 살아가고 있는 보통인들의 삶을 돌아보게 되였다.

분명 그날 려행길에 우연히 들은 이야기는 살아숨쉬는 풍속이자 전설이였다. 오는날 살아가는 하루에 지쳐서 힘들어하고 주눅들어하는 이들이 늘어나셔 더구나 동병상련이여서인지도 모른다.

오늘따라 녀자애가 떠올라 근황이 무척 궁금했으나 그때 련락번호를 남기지 못하였기에 아쉬움으로 남고 말았다. 그때의 오기나 예지 나아가 세상을 바라보는 여유로운 자세를 보아도 지금쯤 자기의 터전을 거뜬히 가꿔가고 있으리라 믿고 싶었다.

개울물이 흘러 강을 이루고 강이 모여서 바다를 이루듯이 인류 개개인들의 삶이 녹아 저 거창한 강을 이룬다 불안을 떨쳐버리기 힘든 요즘에도 유유히 강가를 산책하는 시민이나 썰매를 타는 어린이도 책보는 녀학생도 나아가 렬차에서 만났던 상기의 채양도 주어진 운명에 곱사란히 굴하지 않고 슬기롭게 헤쳐나가는 개개인들의 빛갈이다. 보다싶이 흔들림없는 거대한 자연의 장벽앞에서도 우리 개개인이 삶은 나와는 별유세상 야담인듯이 미약한듯 해도 구슬도 꿰면 보배가 되듯이 얼마나 정당하고 끈질기고 거룩한가.

/리원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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