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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윤호 조카다

[인터넷료녕신문] | 발행시간: 2023.01.31일 01:24
나는 한윤호 조카다

한영남

우리 맘속의 붉은 태양 조국변강 비춰주니

장백천리 해란강반 붉은 기발 물결치네

천만송이 해바라기 태양따라 활짝 피고

연변인민 한맘으로 모주석을 노래하네

아 모주석

우린 그대 열애하며 그대 교시 명심하리

연변인민 그대의 만수무강 축원하네

천안문의 붉은 태양 찬란히 빛뿌리고

변강인민 붉은 마음 북경으로 나래치네

천만수의 송가 엮어 공산당을 노래하며

각족 인민 그대따라 승리에로 나아가네

아 모주석

우린 그대 열애하며 그대 교시 명심하리

연변인민 그대의 만수무강 축원하네

세상에 널리 알려진 라는 이 노래의 작사가는 나의 삼촌 한윤호 선생이다.

이 노래와 더불어 항상 거론되는 다른 한 노래는 라는 노래이다. 그 노래 역시 우리 삼촌이 작사하셨다.

지난 세기 60년대 김봉호 작곡가와 우리 삼촌은 그야말로 황금파트너로 삼촌이 가사를 쓰면 김봉호 선생이 곡을 붙여서 수많은 명곡들을 탄생시켰다. 지금도 여전히 명곡으로 세상사람들한테 불려지고 있는 이런 노래들을 작사한 삼촌은 우리와 유명을 달리하신지 벌써 20년 세월이 흐르고 있다.

그토록 유명한 삼촌인데 사실 사람들은 노래만 기억하지 작사가를 잘 기억해주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까지 술상에서 통성명할 때 상대방이 너무 기가 세게 나올라치면 라고 한마디 한다. 그러면 상대방은 끔쩍 놀라고 좌중도 술렁인다. 그럴 때면 나는 위대한 삼촌을 둔 조카로서 무한한 긍지를 느낀다.

삼촌은 20대에 고향을 떠나 화룡으로 가셨고 화룡현문공단에서 밤낮없이 가사창작에 극본창작에 무대감독까지 하고 또 온돌공연에 전국순회공연도 하느라고 언제 고향에 다녀올 겨를도 없이 보냈다. 그래서 나는 솔직히 친삼촌인데도 몇번 만나뵐 기회도 없었다.

불행중 다행(?)이랄가. 1998년 삼촌이 병환으로 운신이 어렵게 되자 그때 집에서 백수로 지내던 나는 삼촌네 집에 가서 삼촌의 병시중을 들게 되였다. 그렇게 삼촌과 함께 지낸 반년이 내게는 삼촌에 대한 거의 유일한 추억으로 남는다.

물론 그전에 삼촌을 전혀 뵙지 못한 것은 아니다.

할머니께서 병환으로 자리에 드러눕게 되자 효자(아버지네 5남매는 지금의 내가 봐도 효자효녀들이다)인 삼촌은 내가 철들어 처음으로 우리 집에 오셨다. 삼촌과의 첫 만남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어느 늦여름의 오후였다. 문득 대문 밖에서 누군가 우리 집을 찾고 있었다. 내가 달려나가보니 키가 훤칠한(참고로 우리 집 식구들은 다 키가 작다) 웬 남자가 대문 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나를 발견하고 눈을 크게 뜨더니(삼촌은 눈도 굉장히 컸다) 불쑥 고함치듯 말한다.

-네가, 영남이겠구나!

나는 그렇게 모를(?) 사람한테 확 안기게 되였고 그 사람이 어찌나 팔로 힘주어 끌어안았는지 숨조차 쉬기 어려웠다.

친삼촌과 친조카의 첫 만남이였다.

그때 한 시내에 같이 있던 오촌숙부(파출소 민경이였는데 문학열성분자임)네는 할머니께서 몸져누우셨지만 오랜만에 친척들이 모였다고 집에서 식사를 대접하게 되였다. 할머니 곁에는 우리 어머니와 큰 고모, 작은 고모만 지키고 있었다.

우리 집에서 오촌숙부네 집까지는 3리 남짓하게 떨어져 있었다. 밖에 나오자 삼촌은 대뜸 나를 목마를 태우는 것이였다. 그때 소학생이였던 나는 내리겠다고 떼를 썼으나 삼촌이 놓아줄리 만무했다. 아버지도 큰소리로 꾸중하셨다. 다 큰 녀석이 삼촌 힘들게 목마를 탄다고. 그러나 삼촌은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ㅡ 이래서나 영남이 목마 태우지 내 평소 언제 이렇게 영남이를 안아나 보겠소?

그덕에 나는 오촌숙부네 집까지 오가며 줄곧 삼촌의 목마를 타는 호사를 누리게 되였다.

그리고 할머니께서 사망하시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어머니께서 세상뜨시고, 작은 할머니와 작은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마다 삼촌은 우리 집을 찾으셨다. 그때는 왜 우리 집안에 즐거운 일이 그토록 없었던지. 만일 즐거운 모임이였으면 삼촌한테 어리광도 부리고 했을텐데 말이다.

아 맞다. 누나가 시집갈 때 삼촌께서 오셨다. 그때 우리는 이미 집안 어른들을 다 떠나보내고 친가편으로는 삼촌이 좌상이셨다. 그리고 정말 우리 집안에서 처음으로 되는 경사였다.

술들이 거나해지고 웃음꽃이 만발했다.

그리고 술상을 파한 다음에 의례 오락이 벌어졌다. 우리 한씨가문은 어머니말씀을 빈다면 예술세포가 넘쳐나는 집안이라 누구나 춤노래에 막힘이 없었다. 큰 고모의 은 리미자 가수가 울고 갈 지경이고 작은 삼촌은 군복무시절 심양군구에서 그 노래를 합창할 때 선창을 하실만큼 노래실력이 대단했다. 작은 고모는 노래면 노래, 춤이면 춤 막힘이 없었는데 소학생시절부터 독무를 춰서 안도시내를 들썽하게 했던 분이다. 물론 아버지께서 살아계셨더라면 백년설 가수가 부른 이나 을 건드러지게 불렀으리라.

그런데, 그런데 내가 그토록 믿던 삼촌이 구석장군일 줄이야.

잔치집 오락판은 자연스레 두 사돈들의 경쟁으로 치닫는 법이다. 한창 이 백열화되고 있을 때 사돈집에서 누군가 한마디 불쑥 하셨다.

ㅡ 이 집 큰 삼촌이 그 노래 작사가라고 들었는데 어디 노래 한번 들어봅시다.

그 말에 좌중에서 우렁찬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나는 승리를 눈앞에 둔 우리 친가편에서 이제 그 유명한 삼촌이 척 나서서 멋진 노래를 불러 승리에 맞침표를 찍어줄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어의심치 않았다. 나는 가장 기대하는 눈으로 삼촌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 유명한 작가사인 삼촌이 구석에 숨어서 어린애처럼 두 손을 홰홰 내저으며 생떼를 쓸 줄이야.

나는 깜짝 놀랐다. 그래도 명색이 그때까지 유일하게 문공단계통(삼촌은 그때 연길시조선족예술단에서 근무하고 계셨다)에 계신다는 삼촌이, 그것도 그 유명한 노래들을 만든 삼촌이 노래를 못하겠다고 나누울 줄 누가 알았겠는가.

곁에서 작은 삼촌, 큰 고모, 작은 고모가 나서서 역성을 들어준다. 예전부터 집안에서 삼촌의 노래를 들어본 사람이 없다고.

목소리때문에 노래를 절대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한다고 나눕던 막내오촌숙부마저 사돈들의 등쌀에 못이겨 주제가를 부른 잔치판인데 이게 웬말인가.

결국 삼촌은 마지못해 일어나 한 소절을 부르고야 말았다. 노래를 영 못 부르는 수준은 아니였다.

삼촌과 함께 한 시간은 많지 않지만 추억 만은 결코 적지 않다.

아버지께서 병환에 누워계실 때였다. 아버지의 병세가 위중해서 나는 친척들한테 소식을 알렸다. 큰 고모, 큰 삼촌, 작은 삼촌, 작은 고모 다 오셨다.

저녁이 되여 식사가 끝났는데 아버지한테 가서 상황을 살피던 나는 추울가봐 아버지의 이불 속에 넣어드렸던 온수주머니가 새는 것을 발견했다. 급히 꺼냈고 이부자리를 새로 바꿔드렸다. 한밤중에 새로 사러 갈 수도 없고 랑패였다.

그런데 온수주머니를 살펴보니 작은 구멍이 하나 뚫려있는지라 나는 그것을 어떻게 땜질할가 궁리하고 있었다. 고무로 된 온수주머니는 열전도가 더 잘 되게 하느라 곁면을 탁구채면처럼 수많은 돌기를 만들어놓은 것이였다. 그러니 그것을 깎아버리고 그우에 고무조각을 덧대는 방법이 있었다. 내가 공구들을 벌려놓고 땜쟁이노릇을 막 시작하려는데 삼촌이 물었다.

ㅡ 너 어떻게 하려고 그러냐?

ㅡ 겉을 깎고 고무조각을 덧대려구요.

ㅡ 그러면 보기 흉하지 않겠니?

ㅡ 근데 이건 뒤집을 수가 없게 된 거잖아요?

ㅡ 그럼 방법을 대봐야지. 자, 어디 보자.

삼촌은 온수주머니를 들고 이리저리 살피더니 한 마디 하셨다.

ㅡ 이거 물 넣는 아구리 있잖아? 여기로 덧댈 고무조각을 넣고 붙이면 안으로 붙이게 되잖을가?

아구리로 작은 고무조각을 넣는 것도 만만치 않는데 문제는 또 있었다. 설령 고무조각을 넣었다해도 그것을 찾는 것도 문제이고 설령 찾아다해도 그 고무조각의 가운데에 뚫려진 작은 구멍이 놓여야 하는 것이다. 내가 사뭇 난감한 기색을 띠는 것을 본 삼촌이 한 마디 하셨다.

ㅡ 일단 고무조각을 붙일만큼 동그랗게 베라. 그리고 그 가운데에 원주필로 점을 찍어두라. 그러면 아구리로 넣은 다음 그 점을 찾으면 틀림이 없어. 그담 뚫려진 작은 구멍으로 502풀을 짜넣고 눌러주면 되잖겠니?

세상에나! 또 그런 방법이…

삼촌은 가사만 잘 쓰시는게 아니라 생활에서도 달인이셨구나!

다른 친척들도 삼촌한테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그 광경을 보시던 작은 삼촌이 곁들었다.

ㅡ 너 큰 삼촌 있잖아? 집에서 망치질도 변변히 못하지만 반자동카텐 있지. 그걸 도르래 몇개 사고 줄 사서는 혼자서 그걸 만들어 단 사람이야.

나는 그만 혀를 홰홰 내두르고 말았다. 도르래의 원리는 물리시간에 배웠지만 그 도르래 서너개를 가지고 반자동카텐을 만들어단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였기 때문이다.

그뒤 삼촌의 병시중으로 삼촌네 집에 가서 반년가량 머물면서 나는 삼촌의 들을 친히 목격할 수 있는 을 누리게 되였다.

담배재 따위가 널린다고 방구들에 와이셔츠박스를 놓아두고 거기에 담배며 라이터와 재털이까지 담아둔 것도 그때 삼촌한테 배워서 나는 지금도 내 집에서 그렇게 담배를 놓아두고 있다.

정말이지 삼촌과 같이 지낸 시간은 많지 않으나 삼촌은 나에게 많은 가르침과 계시를 주셨고 그것이 지금도 내 생활의 구석구석에서 빛을 발하군 한다. 내 시쓰기를 비롯한 나의 삶의 여기와 저기에서.

중국공산당 탄생 100주년을 맞아 요즘 주변에서는 다시 삼촌이 재조명되고 삼촌이 작사한 노래들이 또 성수나게 불리우고 있다. 그런 노래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훌륭한 삼촌의 조카라는 긍지감을 뿌듯하게 느끼군 한다.

그저 삼촌에 대한 그리움이 자꾸 짙어가는 것을 빼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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