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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귀현 씨, 나무뿌리에 피여난 아름다운 조각예술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3.03.17일 14:18
  우리들에게 조금은 생소한 나무뿌리조각예술이 나무뿌리조각장인인 박귀현의 손끝에서 아름답게 피여나고 있다. 그가 나무뿌리조각예술에 손을 붙인지도 어언 20여년이 되였다. 20여년래 시간과 열정을 쏟으면서 만들어낸 나무뿌리조각예술품들이 국내의 대중도시들에서 구매하여 가고 있으며 한국과 일본으로도 수출되고 있다.



박귀현 씨

  박귀현은 녕안태생으로서 금년에 66세이다. 녕안진의 광명아파단지에 있는 그의 집에 들어서면 벽면에 걸린 세폭의 유화미술작품이 한눈에 안겨온다. 그가 직접 그린것이이라고 한다. 텔레비전 탁상우의 량켠에 '붓걸이'와 같은 실용적인 나무뿌리조각품들이 보기 좋게 놓여있어 마치도 미술전람관에 들어선 기분이다. 일찍 녕안시 나무뿌리조각예술협회 회장과 목단강시 공예미술협회 리사로 활동하여 온 박귀현은 녕안시와 경박호 지하삼림관광구에서 나무뿌리조각창작을 하여왔고 한국과 일본으로 건너 가서 4년넘게 나무뿌리조각품을 만들었으며 지금은 경박호 북쪽 가장 자리에 있는 폭포촌에다 근 300여평방미터 되는 '근석(根石)조각 전람관'을 꾸리여 경박호를 찾아오는 유람객들에게 자신의 나무뿌리 조각예술품과 돌조각품들을 홍보하고 판매하고 있다.



  어려서부터 미술에 특별한 흥취를 가진 박귀현은 그림그리기에 남다른 솜씨를 보여주군 하였다. 예나 지금이나 무대공연을 즐겨보는데 그의 눈은 항상 무용조형에 초점을 맞춘다고 한다. 아마 그것이 그의 문화수양을 제고하는데 그리고 나무뿌리조각예술가로 성장하는데 있어서의 밑거름으로 되였다고 한다 나무뿌리조각은 조형미술의 하나가 아닌가! 떡잎때부터 남달랐던 박귀현이였다.

  21살되던 1977년에 참군한 박귀현은 부대에서도 미술재능을 보여 주어 퇀(团)정치부에서, 사(师)정치부에서 계속하여 그림을 그렸다. 미술인재라고 하면서 부대에서는 1979년에 박귀현을 할빈사범학원에 보내여 미술학부에서 1년넘게 배우게 하였다. 하여 그의 미술수준은 현저히 제고되였다.



  1982년에 제대한 박귀현은 녕안세멘트공장에 배치되여 사무실비서로 활약하면서 이미 배운 미술지식과 그림그리기재간을 바탕으로 선전화를 수없이 그렸고 분경을 비롯한 공예품가공도 많이 하였다. 특히 외출이 많다보니 여러 기업들의 선전화와 공예품가공 그리고 조각품들을 많이 보아오면서 그의 미술안광도 더욱 넓어지기 시작하였다. 열심히 배우려는 그에겐 행운이 뒤따르는것 같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1988년 6월에 안휘성 합비시에서 안휘성 분경협회 송종우회장의 나무뿌리조각예술품을 보면서 깜짝 놀라지 않을수가 었었다. 확실한 인물이나 동식물의 형상이나 모호하고 불명확한 나무뿌리조각예술형상들을 보면서 나무뿌리조각예술에 혼을 빼앗기고 말았다. 우리 동북지역에서 아직 흥성하지 않은 나무뿌리조각을 해야겠다는 욕망을 가지게 되였다. 그 이듬해에 박귀현은 송종우조각예술가한테서 6개월동안 나무뿌리조각 기술을 배웠다. 송종우회장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와 함께 일하고 생활하면서 많이도 물어보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익히면서 미술수양을 높이는 동시에 조각기술도 고심히 련마했다. 성실하고 부지런하고 특히 상상력이 풍부한 박귀현을 보고 송종우회장은 이런 훌륭한 제자를 처음 만났다고 하면서 그의 열정과 인내를 따라 배우라고 다른 제자들한테 자주 이야기를 하였다고 한다.



  6개월간의 학습을 마치고 돌아온 박귀현은 본격적으로 나무뿌리 조각에 뛰여 들어 나무뿌리조각예술품을 만들어 나갔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그의 나무뿌리조각품을 보고서 감탄을 금치 못했고 그의 조각재능이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지게 되였다. 한번은 한 개체기업주가 박귀현을 찾아와서 자신의 기업에서 손잡고 일해 보자고 했다. 자기의 기업으로 이적하여 오는데 2만원의 현금을 드리고 신봉은 지금 공장에서의 두배를 주겠다는 것이였다. 개혁개방이 시작된지 얼마 안되는 그 때 그 세월에 '만원호'를 우러러 볼 때인데 이적비 2만원은 정말 사람의 마음을 끄는 금액이였다. 결국 공장에서 허락하지 않았고 따라서 안해도 견결히 반대하여 개체기업으로 가는것을 포기하고 말았다.



  1991년에 형님 내외가 한국으로 로무수출을 떠나면서 년로하신 부모님이 둘째 아들인 박귀현의 집으로 옮겨와 함께 생활하게 되였다. 병원 신세를 자주 지는 부모님의 병치료와 더불어 멀지 않아 대학교를 다녀야 할 아들의 대학에 다닐 경비도 마련해야 하는데 쥐꼬리만한 박귀현의 봉급으로는 가정생활지출을 감당하기가 힘에 겨웠다. 어떻게 할것인가? 고민끝에 공장에서의 간곡한 만류도 마다하고 또 어렵게 안해도 설득하여 1991년에 공장에 사표를 낸 박귀현은 나무뿌리조각회사를 꾸리고 창업의 길에 들어 섰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 했다.

  일단 일을 시작하면 끝을 보고야 마는 군인성격인 박귀현은 창업초기의 이런저런 곤난들을 하나하나 헤쳐가면서 나무뿌리조각에 열정을 불태워 갔다. 일은 작업도구가 한다는 박귀현의 익살스러운 말이다. 그가 갖춘 작업도구는 엄청 많았다. 조각칼과 끌의 종류가 12개나 되는데 크고 작은 여러 모양의 조각칼과 끌이 60여개나 되였고 톱과 줄의 종류가 11개가 되는데 역시 크고 작은 여러가지 톱과 줄이 30여개나 되였으며 망치, 도끼, 정등의 종류도 10여개에 20개나 되였고 전기톱이나 전기드릴과 같은 전동기계 도구도 10여종이 되였고 크고 작은 붓도 10여개나 되였다. 이외에도 나무뿌리를 운송할 소형객화차도 마련하였다. 실로 적지 않은 투자였다.



  창업을 하면서 예나 지금이나 나무뿌리를 수집하거나 수거하는 일을 게을리 한적이 없다. 어느 림장이나 길 딲이 공사장에서 버린 나무뿌리가 있다는 친구들의 전화에 모든 일을 제쳐놓도 달려간다. 때로는 친구들이 직접 나무뿌리를 실어다 주기도 하고 때로는 돈을 주고 사오기도 하며 때로는 본인이 직접 나무뿌리를 캐기도 한다. 그가 특히 즐기는 나무뿌리는 채석장이나 음달진 산에서 자란 나무뿌리이다. 험악한 돌틈새에서 자란 나무뿌리는 보통 납작하고 기이하고 특이한 살결무늬가 있어서 립체로 감상하기가 좋으며 뿌리가 질기여 좋은 조각예술작품이 되기에 손색이 없다고 한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낭떨어지 밑에서 나무뿌리를 채집하다가 그만 돌덩이가 떨어지면서 그의 왼쪽 집게 손가락을 찢어 놓았는데 아쉽게도 손가락 한마디를 잃고 말았다. 가족들과 지인들의 걱정에 박귀현은 히쭉 웃으면서 '모닥불이 좋으면 연기를 참아라'라는 속담을 얘기하기도 한다.



  조각가의 손은 마술사의 손이라 하지만 박귀현의 손은 막 로동을 하는 일군의 손이였다. 나무뿌리가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때로는 망치질에, 때로는 톱질에, 때로는 곡갱이 질에 때로는 도끼와 삽질로 체력이 바닥이 날때가 많다고 한다.

  경험은 책보다 더 많은 지식을 가져다 준다는 말이 틀림이 없는것 같다. 박귀현이 선호하는 나무뿌리는 난방과 달리 우리 동북지역에서 자라는 나무들을 얘기하면서 그 나무뿌리들의 좋은점을 하나하나 이야기 했다. 살구나무는 뿌리가 썩지 않으며 비술나무는 무늬가 아름다운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그리고 들메나무(水曲柳), 느릅나무(榆木), 자작나무(桦木)등 나무뿌리들이 좋다고 한다. 이런 나무뿌리들은 좋기는 가을철에 수거하는데 그 원인은 그 때면 나무잎이 없고 벌레나 뱀이 없다는 것이다.

  남들에게 하찮게 보이는 나무뿌리는 박귀현에게 있어서는 보배와도 같은 귀중한 물건이다. 거칠고 보잘것 없는 나무뿌리가 박귀현의 손을 거치면 아주 멋진 예술품으로 되는것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조각에 의거하는 너무조각과는 달리 나무뿌리조각은 뿌리의 형태에 의해서 거기에 잠재하고 있는 미를 발견하고 상상을 펼쳐 나무뿌리를 다듬고 가공하여 조각품을 완성하는것이다. 나무뿌리조각예술의 가치는 자연미를 최대한 으로 표현하는데 있다고 한다. 여직껏 나무뿌리조각을 하여 오면서 가장 절실히 느낀 점이 바로 나무뿌리조각예술은 발견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근면한 사람은 못해낼 일이 없다. 박귀현이 20여년래 만든 나무뿌리 조각품은 얼마나 되는지 자신도 잘 모른다고 한다. 작품 만들려면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고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볼 때마다 받는 감수는 다르지만 흡족한 마음은 하냥 같다고 한다.

  박귀현이 처음으로 15메터나 되는 룡의 형상을 조각한 대형 나무뿌리 조각품을 제작한것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고 한다. 자기 아이를 보살피듯이 인내와 정성을 기울였다고 한다. 필요없는 나무뿌리를 처리 할 때에는 나무뿌리의 굵기에 따라 톱이나 칼을 선택하여 사용하면서 무늬가 상하지 않도록 특별히 신경을 써야 했고 너무 마른 뿌리에는 분무기로 물을 뿌리면서 손으로 나무껍질을 벗겨야 했다. 그리고는 기생충을 제거하는 약을 뿌리고 나무 뿌리의 표면이 반들반들하고 윤택이 나도록 잘 다듬고는 기름칠을 하였다. 이렇게 완성된 룡이란 나무뿌리 예술작품은 10분의 7이 천연적이고 10분의 3은 인공작이라고 박귀현은 겸손스레 말하면서 이런 대형적인 나무뿌리예술작품은 보통 기업이나 기관 또는 큰 호텔이나 절당에서 사간다고 하면서 가격도 톡톡하다고 한다.

  정성을 기울여 완성한 조각품을 바라보면서 조각가 박귀현은 다음번 창작품을 더욱 멋지게 더욱 자랑스럽게 하리라 마음속으로 다지군 한단다. 한번은 길이가 3미터 남짓이 되는 나무뿌리에 옹이 세개가 달린것을 만났다. 뿌리를 반복적으로 여러각도로 세심하게 관찰한후 하늘에서 내여온 선녀 3명이 팔을 올려 상을 받드는 개성있는 형상을 표현하도록 뜻을 세웠다. 세개의 나무뿌리에 달린 옹이는 선녀의 얼굴로, 그 아래로 튀여져 내려간 뿌리는 몸통이로, 옹이 아래에서 머리우로 뻗은 나무뿌리는 선녀의 팔로, 가느다란 잔 뿌리는 선녀의 머리카락으로, 선녀의 팔 두께 20cm 두께로 된 나무밑퉁을 자른것을 올려 놓으니 하나의 큰 상이 되였다. 3명의 선녀가 크나큰 상을 올려 받치는 형상이였다. 이 작품을 어느절에서 큰 돈을 내고 매우 흡족하게 사갔다고 한다.

  여기서 재미를 본 박귀현은 하나의 온전한 나무뿌리 전체를 리용하여 대형적인 동물이나 또는 장수로인, 력사 인물, 하늘의 선녀, 신화전설의 인물, 관음보살 등 다양한 인물들을 형상화하여 나무뿌리 조각예술작품들을 적지 않게 만들었다. 고객들은 순박하고 포만하며 대범한 박귀현의 조각작품들을 보면서 오묘한 나무뿌리조각예술의 매력에 빠져들어간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특히 기업문화를 중시하고 기업을 홍보하기 위한 기업가들은 조각가나 미술가와 함께 와서 나무뿌리조각품들을 둘러보고 사가거나 예약을 한다고 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지금은 사람들의 문화수준이 제고되고 생활이 나날이 좋아져 품위있는 생활을 추구하는 일반 백성들도 나무뿌리예술을 받아들이고 즐기면서 실용성 나무뿌리조각품을 잘 사간다고 한다. 나무뿌리의 독특한 조각예술은 이렇게 자연미와 사람들의 심미 소양에 의하여 그 아름다움을 감수하는것이다. 하여 많은 고객들은 나무뿌리 예술품을 소장하거나 또는 집장식을 위하여 사가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일반 백성들의 이런 취미와 수요에 근거하여 박귀현은 나무뿌리의 예술성, 실용성, 장식성을 하나로 융합시켜 예술작품의 공능을 더욱 넓히기에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지금은 박귀현이 제작한 적지 않은 나무뿌리조각예술품들이 귀중한 례물로 친척이나 친구, 전우나 학우들에게, 그리고 스승이나 선배 들에게 또는 외국손님들에게 증송되고 있다고 한다.

  나무뿌리조각예술을 널리 알리기 위한 박귀현의 발자취는 한국과 일본 으로도 이어졌다. 2014년에 한국으로 건너가 4년이나 나무뿌리조각품들을 제작하였고 일본에서도 1년남짓이 나무뿌리조각품을 제작하였다. 특히 한국에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절에서 많이들 사가는데 보통 호랑이나 황소, 명견이나 사슴같은 형상의 나무뿌리조각을 즐기고 일본인들은 고양이, 새, 물고기와 같은 동물형상을 표현한 나무뿌리조각품들을 선호한다고 한다. 그리고 중국인과 마찬가지로 자연계의 산이나 물 또는 원림중에 있는 기이한 나무나 돌들을 표현한 경관형 나무뿌리조각품들을 즐기며 부동한 형식의 여러 나무뿌리를 조합해서 만든 조합식조각작품들을 특별히 즐긴다고 한다. 한족학교를 다닌 박귀현은 한국말이 서툴어서 그리고 일본어도 익숙치 못하여 고객들과의 교류에서 원활하지 못한것이 참으로 아쉬웠다고 한다.

  "열정이 나를 그대로 두지 않는다."는 박귀현의 말이다. 조형미술가인 박귀현은 항상 끓어 넘치는 열정으로 나무뿌리조각을 하면서 나무조각, 돌 조각, 옹기 조각 등을 융합시켜 전통과 현대가 아울리는 기업이나 식당정원의 대문들을 멋지게 장식하여 준다고 한다. 그의 이런 종합적인 정문조각작품이 전성의 유람구나 여러 기업에 자리를 잡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20여년래 나무뿌리와 씨름질 하면서 수많은 나무뿌리조각예술품들을 만들어 오면서 어려운 점과 아쉬운 점도 있다고 한다. 가장 어려운 것은 자신이 알심들여 제작한 성공적인 나무뿌리예술품에 이름을 달아 주는것이라고 박귀현은 말한다. 성공적인 좋은 예술작품들은 모두가 자기의 이름을 가지고 있듯이 자신이 제작한 좋은 나무뿌리조각예술품에 몽땅 이름이 지어져야 했다. 그러나 자신이 지은 이름이 고객의 만족을 자아내지 못하는지 고객들 모두가 자체로 이름을 지어 달겠다고 한다. 하여 이름을 짓는 작업은 아예 고객들에게 맡겨주고 만것이다. 아쉬운 점은 창업초기에 제작한 멋진 작품들을 사진으로 남겨 놓지 못한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나무뿌리조각예술을 배우려는 조선족 젊은이들이 없어서 참으로 아쉽다고 한다.

  여직껏 열심히 일하다 보니 수익도 괜찮다고 겸손하게 말하는 박귀현은 부모님의 병치료도 잘 해드리면서 효성을 다 했고 대학을 다니던 아들의 뒤바라지도 잘해 주었고 장가도 보내주었으며 아파트도 마련하였다고 한다. 북경의 아들집에서 손군을 돌보는 마누라와 그리고 아들 며느리도 모두 일을 그만하고 북경에 와서 함께 편히 지내자고 권고를 하지만 박귀현은 나무뿌리조각에 손을 놓지 않고 있다. 나이를 무색케 하는 열정은 식을줄 모르고 그가 제작한 나무뿌리조각예술품도 일품이여서 보기 좋았지만 열심히 일하는 그의 모습이 보기가 더 좋았다. 그의 열정은 자신이 즐기는 일을 하는데서 오며 많은 사람들의 칭찬과 격려에서 온다고 한다. 하여 박귀현은 자신이 나무뿌리조각예술인으로 된것에 대한 자부심에 날개가 달린다고 한다. 나이가 70고개에 가까와 오지만 오늘도 독특한 나무뿌리예술을 창작하고 널리 알리기 위한 박귀현의 예술혼은 지금도 나무뿌리에서 생생하게 피여나고 있다.

  출처:흑룡강신문

  편집:김선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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