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사망 가해자 전화와...”
출처 - 박원숙의 같이 삽시다3
같이삽시다3’ 박원숙이 아들의 사망에 대한 심경을 고백하며 오열했다. 4일 오후 방송된 KBS2 예능프로그램 ‘박원숙의 같이삽시다3 에서는 관계 교육 전문가인 손경이가 출연했다.
이날 박원숙은 홀로 어두운 표정을 보였고 “내 이야긴데 우리 아들 사고로 잃고 나서…”라고 말을 꺼냈다.
아들의 교통사고 피의자를 알고 싶지도 않았고 이야기를 꺼내기도 싫었다며 그저 덮어두기 급급했다고 밝혔다. 박원숙은 손경이에게 “이런 제가 정상인가요?”를 조심스레 물었다. 본격적인 상담에 앞서 손경이는 “말해줘서 고마워요.”라며 용기를 낸 박원숙을 격려했다.
이에 박원숙은 눈물 버튼이 켜진 듯 참았던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손경이는 아무 말 없이 박원숙을 토닥였다. 박원숙은 인생에서 마주할 수 있는 가장 지독한 상처인 아들의 죽음을 경험했다. 박원숙의 아픔에 공감한 자매들은 함께 눈물을 흘리며 슬픔을 나눴다.
출처 -박원숙의 같이삽시다3, 온라인 커뮤니티
이어, 박원숙이 말한 내용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얼마 전에 20일전에 전화가 왔다. 잘못걸려온 전화인 줄 알았는데 '박원숙 선생님이시죠?'라고 말한 뒤 ‘저는 선생님한테 맞아야 하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면서 울기만 하더라” 고 전했다. 이어 전화건 사람은 ‘한 열흘 안으로 다시 전화드리겠습니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 박원숙은 사실 "그날 무섭고 섬짓했다”라며 “기도를 하면서 있다가 갑자기 ‘혹시 사고를 낸 운전사 아닌가’ 했다. 그런데 누군지도 모르고 알고 싶지 않았다”라고 고백했다.
당시를 회상한 박원숙은 “사고 당시, 어떤 처벌도 바라지 않았다. 고의가 아니니까 놔두라고 했다. 형사처벌도 하지 말랬는데 해야 하는 거라더라. 묻지도 않고 덮어두고 있다. 그저 편하게 지내길 바란다”며 “아들은 먼저 갔다고 생각하며 스스로 치유됐다고 생각했지만 아니었다”고 말했다.
아들 잃고 20년동안 언론 외면…“나는 0점짜리 엄마”
박원숙은 “전화한 그 운전기사인지도 모른다. 아들의 사망후에 의사가 사인을 설명한다고 해도 안본다고 했다. 그 후에 기사도 안 봤다”라고 말했다. 박원숙은 “내가 울려고 해도 울 때가 없더라. 주차장에서 울다가 “내가 기본적으로 엄마로서 (안소영이) 아들에게 너무 헌신을 했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내가 우리 아들을, (내가) 일하러 다니는 게 뭐가 잘난 거라고, 걔를 위하는 거라 생각하고 다녔던 건지. 내가 좋아서 다녔던건데”라고 말했다.
그는 “엄마가 최선을 다해서 할 도리를 다했는데 그러면 가슴이 아플텐데, 나는 0점짜리 엄마가 갑자기 그런 일을 당하니까 너무 미안하다는 말로 다 못할 만큼 너무 미안한 거다”라고 슬퍼했다. 이어 그는 “나중에 부활해서 만나면 미안하다는 말을 꼭 하고 싶다”라며 “전화가 왔으니, 그 사람에게도 편하게 지내라고 말하고 싶었다. 뭔가 빗장 닫은 적도 없는데 문이 열린 것 같다”라고 후련함을 보였다.
박원숙, 아들 사고 소식에 "촬영있으니 나중에 하면 안되냐" 했는데…
출처 - 모던패밀리
박원숙은 2003년 11월 외아들 A씨를 교통사고로 떠나 보냈다. 사고 당시 A씨 나이는 35세였다. 박원숙 아들은 지난 2003년 11월 내리막길을 걷던 중 주차돼 있던 트럭이 굴러 내려와 부딪혀 그 자리에서 숨졌다. 한 프로그램에서 박원숙은 아들의 교통사고 당시 "아주 조금 다쳤다" "차에 조금 부딪쳤다"라고 전달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촬영이 있는데 나중에 하면 안되냐'라고 말했다"라며 당시를 전했다. 하지만 계속 오라는 병원 측의 말에 급하게 찾아간 뒤 아들의 사망 소식을 들었다고 밝혔다. 예상치 못했던 사고로 아들을 잃은 박원숙은 오랫동안 아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편, 박은숙은 1970년 MBC 2기 공채 탤런트로 데뷔하였고, 지금까지 활발한 연기활동을 이어온 한국 대표 중견 배우 중 하나다. 현재 박원숙은 남해에서 거주하고 있으며, 카페를 운영 중이기도 하다.
출처 - 박원숙의 같이삽시다
한 인터뷰에서 박원숙은 "카페를 했을 때 첫 매출이 18만 원이었다. 잊을 수 없는 매출이었다. 임현식 씨랑 같이 와서 방송을 한번 하고, 한 달도 안 돼서 120만 원, 220만 원으로 올랐다. 하루 최고 매출이 540만 원이었다"고 밝힌 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