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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브 잡스 닮으라면서 월급쟁이 권하는 한국 부모

[기타] | 발행시간: 2013.04.17일 03:11

<2> 아이디어 못키워주는 사회

[동아일보]

대학교수 A 씨는 얼마 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늦둥이 딸의 담임교사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따님이 희망직업을 ‘새(鳥) 조련사’라고 적어냈는데 걱정이 돼서요. 다른 애들은 다들 변호사, 의사라고 했거든요.”

A 씨는 “딸의 꿈이 독특해서 걱정이라뇨. 그 나이엔 원래 다양한 꿈을 꾸는 게 정상 아닐까요?”라며 오히려 교사의 말이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서울 B초등학교 6학년 이선영(가명·12) 군도 마찬가지다. 아인슈타인을 가장 존경한다는 그는 커서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다. 취업하기보다는 회사를 차려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고 돈도 많이 벌겠다는 게 목표다. 하지만 엄마는 이 군이 의사가 되길 바란다. 의사가 아니면 크고 안정적인 대기업에 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에서 창업하려면 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잖아요. 내 아이만큼은 세상을 편하게 살았으면 해요.”(이 군 엄마)

○ 12세의 꿈, 40대 부모의 걱정

동아일보와 베인앤컴퍼니코리아가 공동으로 평가한 ‘동아·베인 창조경제지수(DBCE지수)’에서 한국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발굴해내는 ‘아이디어 창출’ 단계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과 중국 등 전체 35개국 가운데 31위에 그쳤다. 학업성취도는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뛰어나지만 최하위권에 머문 자기주도적 학습역량이 순위를 끌어내린 것이다.

한국인은 어릴 때부터 아이디어가 부족하고 창업하려는 의지도 약한 것일까. 혹시 한국 특유의 주입식 교육, 남과 다른 사람은 ‘괴짜’로 몰아가는 분위기가 발목을 잡는 건 아닐까.

답을 알아보기 위해 동아일보는 KOTRA의 도움을 받아 작은 실험을 했다. 이 군이 다니는 B초등학교 6학년생 27명과 그들의 부모 27명, 미국 핀란드 이스라엘의 초등학교 6학년생(중학교 1학년생)과 부모 90명 등 총 144명을 대상으로 3일부터 14일까지 설문조사를 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초등학교 6학년은 꿈이 구체화되는 때인 동시에 중고교생에 비해 학교 성적이나 문·이과 성향에 관계없이 직업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시기여서 조사 대상으로 적합하다.

아이들에게는 △미래의 희망 직업 △닮고 싶은 인물 △창업과 대기업 취업 가운데 무엇을 선택할 것인지를 물었다. 부모들에겐 △아이가 가졌으면 하는 직업 △아이가 닮았으면 하는 인물 △아이가 창업과 취업 중 무엇을 선택했으면 좋겠는지 종이에 자유롭게 쓰도록 했다.

○ ‘잡스를 닮되 창업은 말라’

실험 결과 한국 어린이들은 다른 나라 어린이들 못지않게 꿈이 다양했다. 문제는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부모 세대의 미흡한 창업의식이었다.

한국의 부모 27명 가운데 ‘아이가 대기업에 취업하길 바란다’고 대답한 사람은 절반이 넘는 16명이었다. 창업에 반대하는 한국 부모들은 ‘창업은 불안정하고 힘들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아이가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를 롤 모델로 삼았으면 한다’는 학부모 4명 가운데 3명은 ‘창업은 위험부담이 크기 때문에 취업을 권유하겠다’고 했다. 미국 부모 10명 중 7명, 이스라엘 부모 9명 중 6명이 ‘아이가 고생하더라도 창업했으면 한다’고 한 것과 상반되는 결과다.

희망하는 자녀의 미래 직업에서도 차이가 났다. 한국 부모들이 꼽은 최고 인기 직업은 의사, 검사 같은 전문직(9명)이었다. 교사(5명), 공무원(2명) 등 안정적인 직업이 뒤를 이었다. 반면 핀란드의 부모 21명 중 14명은 ‘아이가 원하는 직업’이면 된다고 했다.

이번 조사결과는 자녀의 삶에 깊숙이 관여하는 한국 부모들의 성향을 잘 보여준다. 다양한 꿈을 가졌던 아이들도 어른이 되면 어느덧 부모 세대가 이상적이라고 여기는 천편일률적인 모습으로 자라나는 이유다. 서울 강남의 C초등학교에서 6학년 담임교사를 맡고 있는 김모 씨(29·여)는 “학부모 상담을 하면 아이의 능력이나 희망에 관계없이 국제중학교에 보내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 창업도 남의 시선 따라

어렸을 때부터 ‘남들과 다르면 안 된다’고 강요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젊은이들의 진로 선택에 많은 영향을 미친다. 창업을 하고 싶어도 주변의 시선에 기가 눌려 남들 따라 취업을 택하는 학생이 많다. 한국고용정보원이 지난해 9월 전국의 남녀 대학생 1000명을 조사한 결과 ‘창업할 의향이 있다’는 사람은 633명이었지만 실제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은 5명도 안 됐다.

서울대 창업동아리 출신의 벤처사업가 조민희 프라이스톤스 대표는 “미국의 하버드대나 스탠퍼드대 학생들은 ‘실패해도 4년 열심히 일해 빚 갚자’는 생각으로 창업을 하지만 한국은 학벌이 좋을수록 주변 기대치 때문인지 더 보수적”이라고 지적했다.

창업을 하는 사람 중 상당수는 자신의 오랜 꿈을 실현하기 위한 ‘기회형 창업’이 아니라 취업이 어려워 어쩔 수 없이 선택하는 ‘생계형 창업’에 그친다는 분석도 나온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이 2011년 한국과 핀란드의 15∼29세 청년 각각 1000여 명을 조사한 결과 한국에서는 ‘괜찮은 일자리에 취업하지 못한 사람이 창업한다’는 의식이 강했다. 핀란드 청년은 창업에 따른 위험을 즐기는 반면 한국 청년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정도가 강하다는 조사결과도 나왔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관계자는 “부가가치 창출 능력이 충분한 아이디어는 집중적으로 지원해 1인 창조기업의 질적 수준을 높이고 창업에 대한 두려움을 덜어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동아일보 김지현·박창규 기자 jhk8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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