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1년 새 두 번씩 주장·퇴짜 반복
경제상황보다 반대 위한 반대 많아
전문가들 “독립된 심의기구 필요”
추가경정예산(추경)의 규모와 자금 조달 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여·야·정 협의체'의 17일 첫 회의는 신경전으로 시작됐다. 현오석 경제부총리는 “경기 회복을 위해 추경이 마중물 역할을 해야 한다”고 했고, 새누리당 나성린 정책위의장 대행도 추경의 시급함을 재차 강조했다. '마중물'이란 펌프의 물이 잘 나오도록 하기 위해 붓는 물이다. 지난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수석비서관회의에서 이 표현을 썼다. 이에 민주통합당 변재일 정책위의장은 “이번 추경안은 '박 대통령 지시 이행 추경'이 아니냐”며 “추경엔 공감하지만 적자 국채 발행을 줄이고 세출을 늘리는 방향으로 추진해야 한다”고 정부여당안에 대한 수정을 요구했다.
추경을 둘러싼 여야의 충돌은 최근 1년 새 벌써 네 번째다. 지난해 상반기 민주당은 일자리의 질을 높이고 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추경을 제안했다. 당시 이해찬 대표는 여·야·정 협의체까지 제안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야당이 이명박 정부의 실정을 선거에 활용하기 위해 추경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한국의 상황은 다른 나라보다 괜찮으며, 균형재정이 지켜져야 한다”고 반대했다. 두어 달 지난 8월엔 새누리당이 5조~6조원 규모의 추경을 들고 나왔다. 서민경제가 타격을 입고 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자 이번엔 민주당이 “박근혜 후보가 대선 출마를 하자 추경을 들고 나왔다. 이미 타이밍이 늦었다”며 반대했다.
그랬던 민주당이 12월 13일 대선 직전 20조원대 수퍼 추경 공약을 들고 나왔다. 당시 문재인 후보는 “위기극복 일자리·복지를 위해 20조원을 추가로 예산에 반영하고, 그게 안 되면 대통령에 취임한 후 추경을 요구하겠다”고 약속했다. 새누리당은 수개월 전 민주당의 논리를 그대로 활용해 “대선용 추경이며, 균형재정을 위해 과도한 국채 발행은 안 된다”고 반대했다. 새 정부가 출범한 뒤 박 대통령은 17조3000억원 규모의 추경을 추진하고 있다. 금융 기금과 공기업 투자를 합하면 실질 규모는 20조원 정도 된다.
이렇게 여야는 경제 위기가 부각된 지난 1년간 두 번씩 추경을 주장했고, 두 번씩 손사래를 쳤다. 정치 이해에 따라 자기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뒤집고, 상대 논리를 아무렇지 않게 가져다 쓰는 정치공방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치권 안팎에서는 “경제 상황이 심각한데 정치권이 반대를 위한 반대를 거듭하며 상황만 악화시키고 있다. 내가 하면 '위기 극복'이고, 남이 하면 '재정 악화'라고 한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치인의 이해로부터 자유로운 '독립적 추경 심의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연세대 성태윤(경제학) 교수는 “경제정책에 대한 솔루션을 제공하는 정치의 역할을 부정해선 안 되지만, 여야가 항상 부딪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필요는 있다”며 “여야 의원이 직접 추경 규모와 파이낸싱 방법을 논의하면 접점을 찾기 힘들기 때문에 여야가 동수로 추천한 전문가 그룹이 자율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추경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정확한 진단과 발 빠른 처방이 필수적인데, 정치공방으로 타이밍을 놓치거나 '누더기 추경'이 되는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강인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