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성택 처형…北·中 접경지 단둥을 가다 ◆
정혁훈 특파원
황금평 굴착기 소리 뚝…국경경비 삼엄
북한 체포조 투입·근로자 소환說·說·說
15일 오전 10시 45분 중국 랴오닝성 단둥역. `빠아앙…빠아앙….` 북한 평양행 국제열차가 기적 소리와 함께 서서히 출발했다. 단둥역에서 불과 600m 떨어진 중조우의교(압록강철교)를 건너면 바로 북한 신의주다. 이날 국제열차에는 17일 개최되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 사망 2주기 추모식에 참석하는 손님들이 대거 탑승했다. 중국에서 활동하는 북한 기관원과 무역 일꾼, 중국인 대북 사업가들이다. 여기에는 조선족 사업가 10여 명도 포함됐다. 조선족인 한연옥 세계한인무역협회(월드옥타) 단둥지회장은 "장성택 처형 이후에도 북한 쪽에서 별다른 연락이 없어 예정된 인원 모두 북한으로 향했다"고 전했다.
북한으로 넘어가는 화물차들이 거치는 단둥세관도 지난주까지 정상 운영됐다. 북ㆍ중 접경지 단둥의 겉모습은 평소와 차이가 없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북ㆍ중 국경 지역으로 사단급 병력을 이동시키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으로 전해졌지만 단둥 인근에서 구체적인 군부대 움직임이 포착되지는 않았다.
다만 북ㆍ중 압록강 접경지를 지키는 중국 측 국경수비대 경비가 강화됐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압록강 유람선 회사의 한 관계자는 "강폭이 좁아지는 상류로 올라갈수록 경비가 강화되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했다.
북한을 상대하는 중국인 사업가들은 비상이 걸렸다. 그동안 `장성택 라인`이라는 말만 믿고 북한 광산이나 공장에 투자한 사례가 많기 때문이다.
단둥에서 만난 한 중국인 대북 사업가는 "장성택 처형 이후 북한 철광석이나 무연탄 광산에 거금을 투자한 저장성 원저우와 푸젠성 샤먼 부자들의 전화가 빗발치고 있다"고 전했다. 투자비 회수가 가능하겠냐는 걱정 때문이다.
이 사업가는 "장성택의 죄목에 자원을 헐값에 팔았다는 내용이 담긴 것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며 "대부분의 사업가들이 투자비를 전액 날리는 것은 아닌지 노심초사하고 있다"고 전했다.
단둥에서 20년째 사업을 하고 있는 한국인 사업가 A씨도 "북한 광산에 500만달러를 투자한 조선족 후배가 걱정된다"며 "이들의 투자금 회수에 문제가 생기면 북ㆍ중 경협은 상당 기간 복구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인 사업가들의 또 다른 고민은 단둥 인근 봉제공장 등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들의 신변 문제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집권한 이후 외화벌이 수단이 줄어들면서 북한 근로자들이 대거 북ㆍ중 접경지 소재 공장 근로자로 취업했다.
한 소식통은 "지난해부터 급증하기 시작한 북한 근로자 수가 단둥 인근에만 최소 2만명을 넘어서고 있다"며 "장성택 처형 이후 북ㆍ중 경협에 장애가 생겨 이들에 대한 귀국 조치가 내려지면 당장 공장 가동을 멈춰야 하는 중국 업체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이곳 주민들이 장 전 부장 사건에 더 큰 충격을 받은 이유는 2011년 6월 황금평 경제특구 착공식에 참석했던 그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윤달생 단둥중방식품유한공사 대표는 "중국 정부가 당시 장성택에게 국가원수급에 버금가는 의전을 제공한 것이 화제가 됐다"며 "중국 측에서 칙사 대접을 받았던 그가 불과 2년여 만에 총살형을 당했다는 소식에 중국인들이 많이 놀라고 있다"고 전했다.
장 전 부장 처형으로 북ㆍ중 경협의 상징이었던 황금평 특구 개발도 장기간 표류를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둥 시내에서 압록강을 따라 하류로 30분 정도 자동차를 타고 내려가면 나타나는 황금평 출입구에는 이날도 멈춰선 굴착기 몇 대가 보이는 것이 전부였다.
100년이 넘은 조중우의교를 대체하기 위해 건설 중인 신압록강대교 완공도 예정된 내년 9월에서 한참 뒤로 밀릴 조짐이다. 북ㆍ중 교역에 반드시 필요한 보세구역 공사가 북한 쪽에서는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 문제다.
흉흉한 소문도 난무하고 있다.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요원들이 북ㆍ중 접경지에 대거 투입돼 장성택 세력 뿌리 뽑기에 나섰다는 소문도 그중 하나다.
북한 측 체포조가 투입되면서 외화벌이를 위해 파견된 북한 무역 일꾼 중 일부가 벌써 북한에 잡혀들어가 처형됐다는 소문도 있다. 이를 피하기 위해 서둘러 잠적했다는 소문도 퍼지고 있다. 상당수 무역 일꾼들에게 이미 귀국 통보가 내려졌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매일경제 [단둥(중국 랴오닝성) = 정혁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