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환경을 만들자는 취지로 등장한 ‘친환경 상품’ 시장에서 고가품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20만원대 에코백(천으로 만든 가방)이 등장했고, 화장품 업체들은 값을 올리는 명분으로 친환경을 표방한다. 일회용 식기를 사용하는 레스토랑이 버젓이 친환경 간판을 내거는 등 ‘무늬만 에코’ 마케팅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직장인 박모(27·여)씨는 최근 인터넷 쇼핑몰에서 외국 브랜드의 에코백을 어렵게 주문했다. 배우 공효진씨가 들면서 유명세를 탄 제품이다. 국내에서는 구하기가 쉽지 않은데 찾는 이들이 많아지자 해외 구매 대행 쇼핑몰이 등장했다. 이 천가방의 가격은 20여만원. 박씨는 3일 “가죽 가방보다 연예인이 드는 에코백이 더 멋있는 것 같아 샀는데 생각보다 비싸서 놀랐다”고 말했다.
보통 에코백과 달라 보이지 않는 마가란 호웰 브랜드의 에코백은 15만원 정도다. 이 브랜드를 뜻하는 알파벳 세 글자(MHL·사진)가 새겨졌을 뿐인데 7000∼1만원인 여느 에코백보다 10∼20배가량 비싸다. 이자벨 마랑 등의 해외 브랜드에서 출시한 에코백은 국내에서 수십만원에 팔린다. 이런 제품 중 일부는 재활용 원단이나 자연에서 100% 분해되는 천연 소재를 사용하지 않고 합성 코팅을 해서 판매된다. 하지만 소비자들 사이에선 사각형 천에 끈이 달렸다는 이유로 ‘에코백’으로 불린다.
친환경 소재나 원료를 사용한다고 선전하면서 일회용 용기를 사용하는 반쪽 에코 마케팅도 있다. 화장품 업체 E사는 파라벤 등 화학 성분이 들어있지 않은 샴푸를 출시했지만 용기는 기존 제품과 마찬가지로 자연 상태에서 분해되기 어려운 플라스틱이다. 가격은 5만원대로 일반 제품보다 10배 가까이 비싸다. 대형 커피전문점의 경우 매장에서 개인 컵이나 텀블러(음료수 용기)를 이용하면 300원가량 할인해주며 일회용 컵 줄이기에 나서고 있지만 이런 곳에서 판매되는 텀블러는 몇 만원은 줘야 살 수 있다.
인공 화학 첨가물 없이 친환경 식재료를 사용한다는 D레스토랑에선 음료를 주문하면 일회용 플라스틱 컵에 나온다. 매장에서 식사하더라도 비닐 포장이 돼 있는 빨대와 함께 플라스틱 컵에 음료가 나온다. 이곳을 찾은 전모(28·여)씨는 “몸이 건강해지는 식재료라고 해서 자주 찾는데 식기는 대부분 일회용이어서 환경에는 건강하지 않은 곳 같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자발적 참여보다 정부 규제로 ‘녹색 소비’가 추진됐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서울환경운동연합 이세걸 사무처장은 “고가의 에코 마케팅은 친환경 소비가 확산되는 데 바람직하지 않다”며 “자발적 참여로 환경에 관심을 갖게 해야 지속가능한 녹색 소비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유나 기자 spring@kmib.co.kr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