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 차례에 걸쳐 빈 사무실을 털면서 늘 불안했다. 경찰에 잡히는 꿈도 여러 번 꿨다. 지난 13일 서울 영등포구의 한 화상경륜장에 경찰이 들이닥쳤을 때 조모(52)씨는 이렇게 말했다. “형사님, 왜 이제야 오셨습니까.”
조씨는 빈집털이로 붙잡혀 징역형을 살다가 2008년 출소했다. 1년 동안 회사원 생활을 하며 범죄와 멀어지려 했다. 하지만 돈을 쉽게 벌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 2011년 1월 조씨는 교도소에서 만난 ‘스승’에게 배운 대로 빈집 대신 빈 사무실을 목표로 삼았다.
그해 1월부터 올해 6월까지 밤늦은 시간에 서울 강서·양천·영등포·마포구를 돌며 빈 사무실 문을 따고 들어갔다. 상품권이나 컴퓨터 부품을 훔쳤다.
범행 수법은 치밀했다. 그는 사전 답사를 해서 CCTV 위치를 파악했다. DSLR카메라 등 부피가 큰 물건은 눈에 띌 것을 우려해 훔치지 않았다. 노루발못뽑기(일명 빠루)로 문을 따거나 디지털 도어록 암호를 풀고 침입했다. 도어록 숫자판을 살핀 뒤 손때가 많이 묻은 번호를 조합해 암호를 풀기도 했다고 한다.
조씨는 경찰의 끈질긴 추적 끝에 4년반 만에 검거됐다. 그는 사무실 500곳 이상을 털었다고 경찰에서 진술했다. 경찰은 이 중 148곳에서 6000만원가량을 훔친 사실을 밝혀냈다. 피해자 중에는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촬영하는 감독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씨는 언젠가는 잡힌다는 생각에 항상 불안에 떨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왜 나를 진작 잡아주지 않았느냐”고 원망했다고 한다. 서울 강서경찰서는 상습절도 혐의로 조씨를 구속하고, 조씨에게 훔친 물건을 사들인 최모(41)씨 등 3명을 업무상과실장물취득 혐의로 불구속입건했다고 23일 밝혔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