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참 말 많은 한 해였다. 그만큼 유행어도 많았다. 긍정적인 표현도, 부정적인 표현도 있었다. 수많은 패러디물이 양산됐고, 입에서 입으로 전파됐다. 내년에는 또 다른 유행어에 자리를 내줄 숱한 유행어들이 2015년을 수놓았다. 요즘 유행어는 신세대들의 전유물이 아니다. 전 연령층이 공유하고 한 시기를 지배하는 집단 정서다. 다음 나열되는 9개 유행어 중 절반 이상을 아는 당신이라면 올 한해 문화 생활도 적절히 즐기고, 인터넷 서핑도 하며 쉼표가 있는 한 해를 보냈다 할 수 있다.
◇“저 마음에 안 들죠?”= 지난 2월 MBC 예능프로그램 ‘띠동갑내기 과외하기’ 녹화현장에서 잡음이 불거졌다. 출연자인 배우 이태임과 가수 예원이 다툰 사실이 알려진 것. 처음에는 이태임에게 욕설을 들은 예원이 피해자로 알려졌으나 두 사람의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공개되며 사태는 반전됐다. 특히 “너 어디서 반말이니?”라고 말하는 이태임에게 “언니, 저 마음에 안 들죠?”라고 응수한 예원의 한 마디는 온라인 상에서 갑론을박의 소재가 되며 숱한 예능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됐다.
◇“어차피 우승은 OOO”= 올 한 해 힙합 열풍을 주도했던 케이블채널 Mnet ‘쇼미더머니’에서 나온 유행어다. YG엔터테인먼트 소속 래퍼가 특혜를 받고 있다는 의혹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또 다른 참가자인 블랙넛이 YG 소속인 아이돌 그룹 위너의 멤버 송민호를 향해 “어차피 우승은 송민호”라고 외친 후 대중의 공감을 샀다. 결과적으로 우승은 송민호가 아니었지만 이 가사만큼은 힙합 지지자들 사이에서 다양하게 변주됐다.
◇“그렇쥬∼”= 2015년을 뜨겁게 달군 ‘쿡방’과 ‘먹방’의 선구자 역할을 한 요리연구가 백종원의 구수한 사투리가 많은 이들을 웃음 짓게 만들었다. 요리하는 과정을 보여주며 “잘 되쥬?” “맛있쥬?”라고 묻는 그의 인간미 넘치는 말투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흔히 쓰이던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 못지않은 매력을 발휘했다.
◇“힘을 내요 슈퍼파월∼”= 유행어는 의도치 않게 만들어진다. MBC ‘무한도전’에 출연한 개그맨 김영철은 타 출연진의 경기 장면을 보며 알 수 없는 멜로디로 이렇게 흥얼거렸다. “힘을 내요 슈퍼파월∼” 이 한 마디는 큰 웃음을 안겼고 김영철은 동명의 음원까지 발표하며 전성기를 맞았다. ‘무한도전’의 인기에 김영철의 재치가 더해져 만든 성과였다.
◇“기싱꿍꼬또”= 이 유행어는 최대한 몸을 배배 꼬며 귀엽게 소화해야 한다. 올해 초 어린 소녀가 출연한 동영상 한 편이 SNS 페이스북을 뜨겁게 달궜다. 귀여운 말투로 ‘기싱꿍꼬또(귀신 꿈꿨어)’라고 애교를 부리던 김재은 양은 일약스타덤에 올랐고, 예능에 출연하는 아이돌 가수들이 애교를 보여줄 때 활용하는 대표적 아이템으로 자리매김했다. 이 동영상 덕에 김재은 양은 유명 아이스크림과 출판사의 광고 모델이 됐다.
◇“모스트스럽게∼”= ‘로코(로맨틱 코미디)의 무덤’이라 불렸던 2015년 유일한 성공을 거둔 MBC ‘그녀는 예뻤다’가 탄생시킨 유행어다. 극 중 주인공들이 일하는 출판사인 모스트의 편집장(황석정·사진)이 외치는 “모스트스럽게∼”는 무엇을 하든 그 이상을 바라는 바람이 담긴 표현이다. 진부한 표현으로 바꾸자면 “뭐 더 좋은 거 없어?” 정도라 할 수 있다.
◇“어이가 없네!”= 1200만 관객을 모은 영화 ‘베테랑’ 속 재벌3세 조태오(유아인)의 명대사다. 밀린 품삭 ‘420억 원’이 아니라 ‘420만 원’을 받기 위해 회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운수노동자를 향해 그가 내뱉은 한 마디는 온갖 갑질 논란에 지친 대중의 공분을 사기 충분했다. 같은 영화가 탄생시킨 자매품 유행어로는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냐”가 있다.
◇“모히또에서 몰디브나 한잔해야 쓰겄네”
= 6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모으며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로는 이례적 흥행을 일군 영화 ‘내부자들’의 촌철살인 대사다. 극 중 배움이 일천한 안상구(이병헌)가 입에 달고 다니는 이 한 마디에는 유머와 해학이 담겨 있다. 이병헌이 촬영 중 애드리브로 외쳤던 이 대사는 개인사로 수렁에 빠진 그에게 대중이 다시금 손을 내밀게 만드는 계기가 됐다.
◇“∼전해라”= 가수 이애란의 노래 ‘백세인생’의 가사 중 일부인 ‘∼전해라’는 네티즌이 만든 유행어라는 측면에서 의미가 크다. ‘백세인생’을 듣고 재미있다고 느낀 네티즌이 해당 가사와 이애란의 모습이 담긴 캡처 사진을 SNS에서 활용해 호응을 얻었다. 덕분에 이애란은 25년의 무명 생활을 청산했다. 이 유행어들을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귀신 꿈을 꿨는데도 어차피 우승은 OOO이니 마음에 안 들고 어이가 없어서 모히또에서 몰디브나 한잔해야 쓰겄다고 전해라”정도로 표현할 수 있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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