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혁명 (1) 끝 모를 진화
판후이 2단 이긴 후 3개월 만에 9단 실력
10여차례 의문수…나중에 보니 계산된 수
이세돌의 변칙에 오히려 허 찌르며 반격
고도의 계산력…후반에 갈수록 더 강해
구글 알파고의 실력은 예상 밖이었다. 9일 알파고와 이세돌 9단 간 대국이 열린 서울 포시즌스호텔 대국장 밖에서 해설을 했던 김성룡 9단은 경기 시작 전 “이 9단이 100% 이긴다”고 자신했다. 그러나 실제 경기 양상은 이와 크게 달랐다. 바둑 전문가들도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유창혁 9단은 “알파고의 실력은 상상 이상이고 인공지능이라고 전혀 얕볼 수 없는 수준”이라며 “구글이 왜 자신감을 가졌는지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기존에 봤던 알파고와 다르다”며 “특히 승부수가 될 수도 있는 위험한 수를 굉장히 빨리 두는 점이 놀랍다”고 덧붙였다. 알파고는 인간의 직관력을 흉내낼 정도로 진화했다. 정책망(수의 위치를 계산)과 가치망(승률을 계산)을 활용해 프로기사와 비슷하게 바둑을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9단은 경기 전 “인간의 직관과 감각이 훨씬 우수한 것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바둑을 두겠다”며 각오를 다졌다. 그러나 알파고 역시 전체적인 행마에서 바둑 고수 못지않은 실력을 보이면서 대국 내내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다.
○“실수도 거의 없었다”
알파고는 지난해 판후이 2단과 대국 때와 달리 실수도 거의 하지 않았다. 지난해 판후이 2단과의 두 번째 대국에서 사활 문제를 실수하면서 잡을 수 있던 돌을 놓쳤고 다섯 번째 대국에서는 엉뚱한 수로 자신의 돌을 위험에 빠뜨렸다.
이번 대국에서는 프로 기사들조차 의아해할 만한 착점을 10여 차례 한 것처럼 비쳐졌지만 이내 실수가 아닌 것으로 판명났다. 대국 중반이 지나면서 중앙 아래쪽에서 이 9단이 미끼를 던지며 허점을 파고들었지만 알파고는 미끼를 물지 않았다. 이 9단의 공격적이고 예상을 깨는 공격에 침착함으로 대응했다.
이정원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선임연구원은 “알파고가 판후이 2단과 대국이 끝난 뒤 지난 3개월 동안 이 9단 바둑에 대해 학습을 많이 한 결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좁은 지역에서 더 잘해
오히려 좁은 지역에서 이 9단의 실력을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알파고는 경우의 수가 많은 초반부보다는 후반에, 또 텅 빈 지역보다는 돌이 많이 놓인 경우 고도의 집중력을 보여줬다. 후반으로 넘어서면서 이 9단과 알파고의 점수 차가 줄어든 것도 같은 이유다. 정두석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선임연구원은 “좁은 지역에서는 인공지능 컴퓨터의 장점인 고도의 계산 능력이 발휘되기 가장 좋은 조건”이라고 말했다.
○사람보다 오히려 공격적
전반적으로 알파고가 이 9단보다 더 공격적인 바둑을 뒀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현욱 8단은 “많이 발전했을 것으로 생각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며 “원래 알파고는 잘 싸우지 않고 철저한 계산 바둑을 둔다고 들었는데 의외로 잘 싸운다”고 설명했다. 강나연 아마 6단은 “알파고는 계산된 방식으로 둔다고 들었는데 오늘 경기를 보니 사람처럼 허를 찌르고 들어오는 점이 놀라웠다”고 했다.
알파고가 전체적인 판세를 가늠하는 능력도 크게 올라간 것으로 분석된다. 20여년 전 체스 세계챔피언을 이긴 IBM의 인공지능 슈퍼컴퓨터 ‘딥블루’는 1초에 2억 가지의 착점 방법(경우의 수)을 계산했지만, 알파고는 1초당 10만 가지를 계산하는 데 불과하다. 이 9단은 이곳저곳을 옮겨다니며 허를 찔렀지만 알파고는 변칙을 사용하는 이 9단의 바둑 스타일을 적은 계산량으로 적절하게 맞섰다는 얘기다.
송 책임연구원은 “이 9단이 정석대로 뒀더라도 상당히 어려운 대국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한 마디로 이날 대국은 인공지능의 발전 속도가 얼마나 빠른지 여실히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