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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족전통각궁 부활시킨 80후 장인 김광빈: 력사와 얼이 깃든 활문화 전승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24.04.30일 11:00
요즘처럼 바쁜 시대... 장인은 진짜로 존재할가?

꾸준히 무엇인가를 다루고 있는 장인의 모습을 담은 다큐를 보며 이런 생각에 빠질 때가 있었다. 현실에 장인은 진짜로 존재할가? 그러면서 3D기술이 발전해 기계로도 생산할 수 있는 물건을 굳이 옛날 방식을 고집해 손으로 만들 필요가 있을가 하는 의문을 가끔 가지게 된다.

요즘같이 생활절주가 빠른 시대에는 자기 입에 들어갈 음식마저 만드는 것이 귀찮아 배달음식으로 하루 삼시세끼를 에때우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그런데 고독을 이겨내며 남다른 인내심을 가지고 물건 하나를 만들기 위해 1년 심지어 몇년간의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조선족 청년이 연변에 있다는 말을 듣게 되였다.



첫 반응은 물론... 이거 가짜 아닐가? 이런 시대 진짜로 할 수 있을가 라는 의구심과 함께 내심 관심이 생기고 탄복이 절로 나왔다.

전통활 제작에 인생을 건 조선족 젊은 장인을 찾아



우리가 만났던 그날의 첫 순간을 일기처럼 쓴다면 다음과 같다.

새싹이 움트는 봄날과는 거리가 멀고 꽃샘추위가 한창인...

연변조선족자치주 연길시 근교의 한 외진 곳...

통통하게 살이 오른 닭들이 자유롭게 노닐고...

무섭게 생긴 게사니가 마당에 들어선 우리를 경계하듯 꽥꽥 소리를 질렀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바로 희경조선족전통궁화살제작연구소(熙景朝鲜族传统弓箭制作研究所)였다.



대가 끊겨 공백이나 다름없던 조선족전통활 제작기법을 80후 조선족 청년이 부활시켰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고 한걸음에 뛰여갔던 우리는 그곳의 순수하고 소박한 젊은이들과 여기저기 놓여진 이름모를 장비들을 보며 “제대로 왔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전통활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희경조선족전통궁화살제작연구소의 소장인 김광빈 씨를 만나 처음 건넨 물음이 바로 이 물음이였다.

"1년 이상, 200여개 절차"가 그의 답이였다. 전통방식의 각궁(传统角弓) 제작은 놀랍게도 재료, 기예 모두 온도, 습도... 즉 날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고 한다.



각궁을 만들려면 기본틀이 될 탄력이 좋은 대나무가 필요한데 여름의 대나무는 수분이 많아 구워 제작할 때면 내부구조가 파괴되여 각궁의 전체 질에 영향을 주게 된다고 한다. 때문에 매년 늦가을부터 겨울에 각궁에 쓰일 대나무와 기타 목재를 수집한다. 또 활을 만들 때 가장 중요한 민어부레(鳘鱼鳔)로 만든 접착제며 소힘줄 등도 계절 요구에 따라 준비해야 한다.



1근에 수천원씩 하는 민어부레

또 기예로 볼 때 겨울에 채집한 대나무와 기타 목재는 여름에 가공해 그늘에 말리워야 한다. 절차마다 온도와 습도에 대한 요구가 까다로워 기후조건이 나쁜 해에는 좋은 전통활이 나오기 어렵다는 것이 장인의 주장이다.

그러다보니 연구소의 전통각궁 생산량은 해마다 40개~50개 밖에 되지 않는다.



전통활 제작기법은 어떻게 찾아왔는지?

전국 범위에서 보아도 전통궁을 만드는 장인은 열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희소하다. 료해에 따르면 연변에서는 전통각궁을 만드는 장인이 아직까지는 김광빈 씨 한 사람뿐이다.

우연히 궁에 관심을 가진 그는2010년 연변대학 체육학과에 진학해 궁도(弓道)를 전공하게 되였다. 우수한 성적으로 궁도부 팀장까지 맡았던 그에게는 국내외 활쏘기대회 출전 기회가 많이 주어졌다. 출전 때마다 국내 기타 지역 선수나 외국선수들은 자체의 전통기법에 따라 만든 활을 가지고 출전했지만 그는 조선족전통활을 구할 수 없어 항상 아쉬움이 남았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연변에 와서 각궁을 만드는 한국의 한 각궁장인을 알게 되였는데 그는 틈만 나면 찾아가 일손을 도우며 어깨너머로 기술을 배웠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체계적으로 배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혼자힘으로 만들 수준은 아니였다.

그게 큰 아쉬움으로 남아 그는 2014년 졸업을 앞두고 체육교사라는 '철밥통'까지 포기하고 각궁 제작기예를 배우기 위해 무작정 출국을 선택했다. 비록 대학교 은사님의 추천으로 한 장인을 스승으로 모셨지만 예로부터 장인들은 제작기술을 쉽게 물려주지 않았던 터라 학도로 있으면서 갖은 고생을 다했다.

자그마한 실수도 용납하지 않았던 극히 엄격한 스승이 미울 때도 있었지만 그 가운데서 김광빈 씨는 제일 중요하고 필요한 제작기법들을 하나하나씩 익혀갔다.

학도생활이 거의 마감되여 갈 무렵 그의 섬세한 솜씨와 바른 인성이 마음에 들었던 장인은 그를 남겨두려 극구 애를 썼다. 그러나 김광빈 씨는 조선족전통활 제작기법을 복원하려는 꿈을 이룩하기 위해 모든 것을 접고 고향으로 다시 돌아왔다.

단돈 몇천원으로 시작된 어려운 창업

외국에 가서 몇년 일하면 부자는 아니더라도 주머니는 넉넉해졌을 것이라는 주변사람들의 생각과는 달리 김광빈 씨는 단돈 몇천원을 들고 귀국했다. "외국에 나가 열심히 일하지 않았겠구나"라며 나무람하는 사람들도 가끔 있었다.

사실 학도 생활은 힘들고 고달픈 경력이였다. 정신을 가다듬고 밤낮없이 지루하고 따분한 한가지 작업에 집중해야 하고 까다로운 스승의 핀잔을 귀따갑게 듣다보니 심신이 많이 지쳐있었다. 어렵게 기예를 익히긴 했지만 그사이 직업병으로 젊은 나이에 요추, 경추에 여러가지 문제가 생겨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의 육체적인 아픔을 겪었다. 그리고 학도 신분이다보니 정상적인 월급을 받지 못했고 짬짬이 시간을 내 밖에서 아르바이트로 돈을 모아야 했다.



귀국한 뒤 그는 대량의 력사자료와 문헌, 그리고 기타 민족의 전통활 제작기법을 결부해 연구를 거듭하면서 조선족전통활 복구작업에 착수했다. 하지만 실제 작업에 들어가려니 쉽지 않았다. 전문 제작장소가 있어야 하고 또 제작에 필요한 여러가지 재료와 설비들도 구입해야 했다. 전부 돈이 들어가야 할 부분이였다.

여기저기 지인에게서 돈을 빌리고 인터넷 플랫폼에서까지 대출을 받아 겨우 자그마한 공방을 차렸다. 하지만 어려움에는 끝이 없었다. 전통활을 만드는 데 필요한 재료와 기예는 계절 영향이 커 활이 상품으로 나올려면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수입이 없어 짬짬이 아르바이트를 하고 고장난 활을 고쳐주며 푼돈을 받아 생계를 유지했다.

그렇게 밤낮없이 일을 하다보니 두 팔은 라사못 하나 틀기 어려울 정도로 망가졌고 골극, 요근손상 등 경추, 요추에 문제들이 잇달아 생겼다. 할일이 태산같고 주문도 많은데 주변에는 도와줄 사람이 없고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그는 몇번이고 포기하고 싶었다.

"그때는 심지어 약을 살 돈마저 없을 정도로 단돈 몇원 때문에 고민했었습니다."

"포기하려 했지만 활을 만들 때 자신이 제일 행복하다는 생각 때문에 버텼습니다"

꿈도 꿈이지만 빚만 쌓여가고 좀처럼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그는 흔들리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그의 어머님만은 "우물을 파도 한 우물만 파라"고 타일렀다.

잠깐 쉬여가면서 생각해보니 그동안 비록 몸과 마음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활을 만들 때가 제일 행복했었다. 몸과 마음을 추스리고 그는 다시 공방 문을 열었다.




김광빈의 안해 왕천천

그 사이 그는 친구의 소개로 지금의 안해를 만났다. 안해 왕천천(王倩倩)은 산동에서 태여나 연변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무던하고 현명한 안해의 덕에 인생의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시기를 넘기게 되였다고 말했다.

그동안의 노력이 점차 결실로 이어졌다. 긴시간을 들여 만든 수제 전통각궁은 활애호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전국소수민족운동회 전통활경기에 이어 국내외 여러 전통활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그를 찾아 맞춤형 활을 주문 제작했다. 특히 놀라운 것은 미국, 카나다, 체스코 등 외국 선수들에게서도 주문이 들어왔다.



1년을 기다려 김광빈이 만든 활을 받았다는 이담문화원 최영화 원장

수작업으로 고전방식으로 만들어낸 전통각궁은 손맛부터 다르다는 것이 고객들의 일치한 평가였다. 또 매년 만들 수 있는 전통각궁이 제한되다 보니 1, 2년 심지어 3, 4년을 기다리는 고객들도 적지 않았다.

장인이란?

갖은 노력을 다해 조선족전통각궁의 제작기예를 되찾은 김광빈 씨는 '장인'에 대해 이렇게 해석했다.

"사실 하는 일이 다를 뿐이지 장인이란 그냥 자기 앞에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있는 일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은사 윤학주와 제자 풍곤과 함께 활을 제작하고 있는 김광빈

지금으로선 '성공'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옆사람들의 시선을 뒤로 하고 자신이 하고싶었던 일을 고집하며 그 일에 모든 정성을 쏟아붓는 그의 모습이 바로 우리가 찾고자 했던 장인의 모습이 아닐가 싶다. 물론 '성공'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지극히 세속적인 '경제적인' 가치의 성공을 말한다. 그것이 아니라면 오늘날 김광빈 씨는 장인으로서 이미 성공한 인생이다.

지금까지 만들어낸 활 가운데서 가장 마음에 드는 활이 어떤 것인지를 묻는 질문에 김광빈 씨는 이렇게 말했다.

"아직 마음에 드는 활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만들고나면 꼭 부족점이 보이고 더 좋은 것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요. 여전히 성장단계입니다. 제자들이 앞으로 저에게 가장 마음에 드는 활을 만들어 선물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은 갖고 있습니다."



중국국민당혁명위원회 흑룡강성 산하 문화6부 선전위원 등등(腾藤)과 함께 협력협의서 체결

과거에는 자신의 작품이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또 그들이 자신의 기예를 높이 사주길 바랐다면 지금은 단지 건강을 유지하면서 계속 활을 만들어가고 또 날로 더 좋은 활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장 큰 기대라고 한다.

잃었던 기예를 복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승은 더 중요해

자신의 손재주를 아껴 전수를 꺼리는 일부 장인들과 달리 김광빈 씨는 기예를 배우고 싶다는 사람만 나타나면 아주 기쁘게 받아들이며 무상으로 아낌없이 자신이 갖고 있는 모든 기술을 손수 가르치고 있다.



제자 풍곤(冯坤) 무한생물공정학원 졸업생



제자 정빈(郑斌) 퇴역군인

현재 희경조선족전통궁화살제작연구소에서 활제작 기술을 배우고 있는 제자 풍곤(冯坤)과 정빈(郑斌)은 김광빈 부부와 함께 생활한지도 1년이 넘었다. 평소 김광빈 씨는 제자들에게 활제작 기술뿐만 아니라 활쏘기 기법도 배워주고 있다.

"아주 유머스럽고 편한 분입니다 우리는 평소 친구처럼 지내고 있습니다."

"기술을 전수하며 돈은 한푼도 받지 않고 심지어 달마다 생활비까지 줍니다."

1년을 같은 공간에서 먹고자고 일해온 제자들은 스승을 유머스럽고 친구처럼 편한 분이라고 평가한다.



"누구든지 전통활 제작을 배우려고 하면 저는 두손 들어 환영합니다. 언제든지 저희 공방에 와서 참관하시길 바랍니다."

인터뷰 마지막으로 김광빈 장인이 우리에게 했던 이 말이 지금도 생생하다.

/중앙인민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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