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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기념비(66)—북평해방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3.03.15일 09:26
1949년 새해에 들어서면서 전반 중국의 해방전쟁 상황은 아주 좋아졌다. 동북에서의 대결전인 료심전역이 승리한후 1월 10일 성세호대한 회해전역이 승리적으로 끝났고 1월 15일에는 천진시가 해방됨으로써 북평이 고립되게 되였다. 막강한 인력과 물력을 갖춘 중국인민해방군 특히 강대한 정신력을 소유한 해방군장병들은 장강이북 광활한 지역에서 승리에 승리를 계속하고있었다.

회해전역의 실패로 하여 국민당 장개석은 장강이북의 주력부대를 거의 다 상실했다. 다만 장개석의 명령을 잘 듣지 않는 부작의집단이 북평에 고립되고 막다른 골목에 이른 염석산집단이 산서성 태원에 웅크리고있을뿐이였다.

대도시 공략전인 천진해방전투와 중원대지에서 펼쳐진 회해전역의 승리는 모든 국민당군의 간담을 써늘하게 하였다. 날로 성장되고있는 중국인민해방군은 정규화한 도시공략전과 대규모의 병퇀작전에서 모두 막강한 실력을 과시했던것이다.

천진시가 해방된후에도 동북야전군 특종병부대 장병들은 별로 쉴틈이 없었다. 승리적으로 호성하다리부설임무를 완수해 천진해방에 큰 기여를 했던 특종병부대 공병 1퇀 2영 6련의 조선족장병들은 다시 천진주변의 지뢰제거작업에 달라붙었다. 해방군의 공격을 막기 위해 국민당군은 천진시주변에 40만개에 달하는 지뢰를 매설해놓았던것이다. 이러한 지뢰들은 수시로 해방군장병과 천진시민들의 생명을 위협했다.

공병 6련의 위생원으로 있었던 김장규로인은 지뢰제거 작업과정을 소개했다.

《천진을 해방한 다음 지뢰제거임무를 맡았습니다. 지뢰제거는 우리가 많이 배웠던겁니다. 국민당은 천진주위에 40만개의 지뢰를 묻었습니다. 그걸 파야 했습니다. 게다가 전업국 일군들이 지뢰피해가 두려워 전기시설을 돌보지 않았기에 천진에 전기가 없는 곳도 많았습니다. 그래 우리는 먼저 전업국숙사에 가서 전업국 차를 타고 전력공급 핵심부분의 지뢰부터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우리가 앞에서 지뢰를 제거하면 전업국 일군들이 따라오면서 전기줄을 가설하거나 수선했습니다.

그때 천진에서 지뢰로 하여 4000여명의 인명피해를 보았습니다. 그때는 동삼인데 툭 터지면 사람은 없어지고 입은 옷은 솜밖에 안 남습니다. 어떻게 하는가 하면 지뢰탐진기를 가지고 지뢰를 찾아낸 다음 제거했습니다. 우리 련에서만 2만 7000여개 지뢰를 팠습니다. 물론 위험했습니다. 사고도 있었구요. 한번은 저녁 12시까지 늦게 지뢰를 파다가 전업국에 가져갔는데 갑자기 꽝~하는 소리가 나더니 주변 거리의 집유리가 다 부서지고 불길이 타올랐는데 다른 공병부대의 전사 셋이나 희생되였습니다.

아마도 너무 지쳐 제거한 지뢰의 뢰관을 다 뽑아놓지 않아 그것이 진동에 의해 폭파된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참 안타깝게 희생된겁니다. 그 치렬했던 천진해방전투에서 희생되지 않았는데 해방후 지뢰제거작업을 하다 희생되였지요. 우리 6련은 호성하의 다리부설과 지뢰제거작업을 훌륭히 완수하여 상급으로부터 모범 6련으로 표창받았습니다.》

위험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한달 남짓한 작업을 걸쳐 공병부대는 천진시의 지뢰제거작업을 승리적으로 완수했다.

1949년 2월에 있은 특종병부대 표창대회에서 공병 6련은 《다리부설영웅련》이라는 축기를 받았고 6련 2패 5반은 《도시규률 엄수반》이라는 축기를 받았다. 그리고 김창룡지도원을 비롯해 송천화, 라영필, 김영도를 비롯한 18명이 대공을 기입받았다.

천진해방전투에서 특종병 공병뿐만 아니라 포병과 12종대 포병부대의 조선족장병들도 큰 기여를 했다. 이들은 총공격에 앞써 막강한 포격으로 천진방어선을 헤치고 적의 화력을 효과적으로 제압함으로써 보병부대가 돌격하는 길을 열어놓았다.

공병 6련 위생원이였던 김장규로인.

1949년 1월 15일 새벽, 천진해방전투가 한창 진행되고있을 때 북평의 국민당군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국민당 선두부대는 북평남부로 포위를 뚫어보려고 시도했던것이다. 북평남부는 동북야전군 40군과 42군 주력이 포진하고있었다.

이날따라 안개가 짙었다. 국민당군은 광안문(广安门)으로부터 급작스런 포격을 가한 뒤 땅크를 앞세우고 공격해나왔다. 광안문부근을 수비하고있던 모부 3영 9련에도 조선족장병이 많았다. 그들은 미리부터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적의 동정을 감시하고있었다. 이날 적의 포격이 십여분 진행된후 짙은 안개속으로부터 적의 땅크가 나타났다. 국민당군은 10여대의 땅크와 장갑차를 앞세우고 련화지(莲花池)로부터 3영 진지를 공격해왔던것이다. 하지만 9련 전사들에게는 반땅크포가 없었다. 상황은 아주 위태로왔다.

9련 조선족 전사 리윤태와 박현길은 급히 3영 교도원에게 달려가 적의 땅크를 폭파해버리겠다고 자진해 나섰다. 교도원의 허락을 받은 그들은 탄우를 무릅쓰고 련화지부근의 작은 다리로 달려갔다. 적의 땅크가 진격할수 있는 유일한 길목인 다리를 통제하려 했던것이다.

리윤태와 박현길은 침착하게 기다렸다가 적의 첫 땅크가 다리에 올라서자 수류탄 묶음을 터쳤다. 하지만 땅크는 아무런 손상이 없이 계속 다가오고있었다. 급해난 리윤태와 박현길은 땅크에 올라서서 윗 뚜껑을 열려고 애를 썼지만 성공하지 못하고 모두 땅에 떨어졌다. 이때 뒷따르던 땅크도 다리에 올라서기 시작했다. 적의 땅크를 막지 못한다면 3영 진지도 지켜내기 어려울판이였다.

리윤태는 정신을 가다듬고 다시 첫 땅크에 매달렸다. 그는 땅크에 기여올라간후 가장 박약한 곳을 찾아 수류탄묶음을 장착한후 터뜨렸다. 《꽝~》하는 굉음과 함께 땅크는 불속에 휩싸여 더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뒤따라 오던 땅크들도 다리우에서 불타는 첫 땅크때문에 다리를 통과할수 없었다.

성공적으로 적 땅크의 공격로선을 막아내자 아군 7련과 8련 전사들은 모든 화력을 집중해 적보병을 소멸했다.

전투가 한창 치렬하게 진행되고있을 때 아군 진지로부터 강대한 포격이 시작되였다. 포병들은 적의 중형무기가 집중된 곳을 집중적으로 강타하였다. 포격이 있은후 대부대의 반격이 시작되였다. 전사들은 신속히 돌진해 북평에서 기여나온 적을 다시 성안으로 몰아넣었다.

전투가 끝난후 교도원은 두려움 없이 적의 땅크과 맨몸으로 싸웠던 조선족전사 리윤태와 박현길을 찾았다. 이곳저곳 찾아도 보이지 않자 련화지 다리가 있는곳으로 가 보았다. 이때 초연속을 헤치고 쩔룩거리며 걸어오는 두사람이 보였다. 모두 다리에 부상당했기에 서로 부축하면서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던것이다. 바로 교도원이 찾는 영웅적인 전사 리윤태와 박현길이였다. 그들의 솜바지에는 붉은피가 스며있었으며 얼굴은 피기가 없이 해쓱했다. 그리고 모자는 어디로 날아갔는지 없었고 머리카락은 불에 그을려 노르스름했다.

교도원은 달려가 그들의 손을 덥썩 잡아주었다. 《해냈구만, 장하오!》

리윤태와 박현길은 미소를 지으며 《아무렴요. 이 미련한 쇠덩어리를 이기지 못할라구요!》라고 대답했다.

천진을 지원하기 위한 북평국민당군의 포위돌파 시도는 실패로 돌아갔다.

북경련화지공원 이북의 북경서역건물.

옛 북평의 성곽 담.

북평을 평화적으로 해방한후 해방군이 입성(자료사진)하는 장면.

천진이 함락된후 부작의는 드디어 모든 환상을 버리게 되였다. 그는 북평의 공산당지하조직의 적극적인 설득과 쟁취하에 드디여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결의를 다지게 되였다. 1949년 1월 21일, 부작의는 드디어 력사적인 명지한 선택을 하고 해방군의 평화적인 개편을 접수했다. 그의 명령에 따라 북평 25만 수비군은 수비임무를 해방군에게 넘기고 북평성을 나와 개편을 받았다. 해방군은 승리적으로 북평에 진입했으며 25만 부작의 부대중 일부는 로비를 주어 고향에 보내고 일부는 해방군에 편입시켰다.

평진전역은 승리적으로 끝났다. 해방군은 52만여명 국민당정규군을 소멸하고 평진지역과 화북지역을 해방하였다. 다년래 동북대지를 전전하면서 싸워왔던 동북야전군내 수만명 조선족장병들은 피압박인민의 해방을 위해 관내로 진출해 용감히 싸움으로써 혁혁한 공훈을 세웠다.

/ 중앙인민방송국 김성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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