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사회 > 사회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막차가 끊기면, 지하철 선로 개·보수 2시간의 전쟁이 벌어진다

[기타] | 발행시간: 2013.06.28일 22:13

지난 20일 오전 1시30분 지하철 2호선 막차가 성수역을 지나고 선로의 전력이 끊어지자 서울메트로 노동자들이 선로 위에서 야간 유지·보수 작업을 하고 있다. | 홍도은 기자 hongdo@kyunghyang.com

ㆍ매일 밤 서울메트로 134㎞ 노선을 지키는 사람들

ㆍ자갈 채워 넣고 각종 설비 점검 등 서울시민의 안전을 위한 이들의 뒤바뀐 낮과 밤

사람들은 지하철을 역과 열차로만 기억한다. 1000만 서울시민이 지하철을 타지만 전동차가 다니는 선로에 제 발을 디뎌본 이는 드물다. 그러나 지하철 막차마저 끊기고 불야성의 도시도 잠잠해지는 새벽, 고적한 철도길 위를 지키는 사람들이 있다.

지난 20일 오전 2시 서울메트로 지하철 2호선 성수역과 뚝섬역 사이 선로 위에서 박창준씨(69)를 만났다. 박씨가 밤마다 선로를 더듬어온 지도 40년째다. 전동차가 지나는 선로에는 자갈이 58㎝ 높이로 쌓여 있다. 열차와 시민들을 떠받치는 자갈이 닳아서 선로가 미세하게 내려앉은 궤도 구간을 찾고, 다시 자갈을 채워넣어 편평하게 만드는 게 박씨의 일이다.

■ 134㎞ 노선 위 매일 600~1000여명 투입

실제로 작업이 가능한 건 단 2시간이다. 지하철 막차가 끊기고 새벽 1시 반에 단전된 뒤부터 첫차가 오기 직전까지, 모두가 곤히 잠든 틈을 타 박씨와 동료들은 가쁘게 일한다. 철도길만이 아니라 각종 설비가 낡아 개·보수가 필수지만 서울에서 지하철 운행을 중지하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1974년 지하철 1호선이 처음 개통한 데 이어 마지막으로 4호선이 개통한 지도 30~40년이 흘렀다. 매일 밤 같은 시간에 서울메트로 1~4호선 134㎞ 길이 노선 위 130여개 지점에서 선로 보수, 레일 연마, 터널 및 전차선 정비 등 각종 개·보수 공사가 진행된다. 매일 이를 위해 600~1000여명이 투입된다.

일흔을 앞둔 박씨는 낮에 일하는 평범한 일상에 대한 동경을 체념한 지 오래다. 그는 “밤에 일하는 게 만성이 됐다”며 “길이 망가져서 열차 진동이 심했던 게 내가 작업한 뒤에 다시 타보면 매끈하게 빠지는 게 기분 좋다”고 말했다. 박씨의 한평생은 기찻길 위에 얹혀 있다. 어릴 적 기차역 부근에서 태어나 자란 그에게는 기차와 역무원이 무엇보다 익숙했다. 자연스럽게 철도회사에 들어갔다. 1971년 철도청에 입사해서 10년 일했고, 이후 서울메트로에서 30년을 꼬박 채워 근무했다. 2001년 정년퇴직한 뒤에는 철도 궤도점검을 하는 회사에 들어가 선로를 보수할 일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다녔고 올해는 서울메트로 하청을 받았다.

박씨가 손봐야 할 자갈길 구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서울메트로는 2001년부터 자갈길을 콘크리트길로 교체해왔다. 자갈이 튕겨 나가거나 모양이 변해 생길 수 있는 안전사고를 막고, 돌가루 분진과 진동 등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서다. 콘크리트길이 수명도 더 길다. 서울메트로는 지하철 운행을 중단하지 않고도 열차길을 개선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 수년에 걸쳐 실험을 진행했다. 해외 전문가들은 운행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발상부터가 “미친 짓”이라고 했지만 결국 서울메트로는 ‘B2S’라고 불리는 기술을 자체적으로 개발해 특허까지 받았다. 서울지하철 1~4호선 선로 총연장 283.15㎞의 대부분이 애초에는 자갈길이었지만 이제는 콘크리트길이 130.75㎞로 절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날 밤 박씨가 자갈길을 정성스레 고르던 중에도 수m 떨어진 곳에서는 콘크리트길을 까는 작업이 진행됐다. 서울메트로의 용역을 받은 회사 동원궤도는 매일 밤 지하철 2호선 강변역부터 뚝섬역까지 1.5㎞, 양선 3㎞ 구간 자갈길을 콘크리트길로 바꾸는 작업을 3년째 해오고 있다. 작업 중인 구간도 아침이 오면 다시 기차가 그 위를 지나가야 한다. 안전과 한정된 작업시간 때문에 하루 10여m를 교체하는 게 고작이다.

동원궤도의 사공영식 과장(32)은 두 달 뒤 동생이 결혼한다는 소식도, 상견례가 이틀 뒤라는 이야기도 이날에서야 들었다고 했다. 보통 오후 10시 반에 출근해 아침에 퇴근하는 사공씨는 “생활하는 게 남다르다 보니 고향집과 통화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주말은 더 바쁘다. 주말 지하철은 평일보다 빨리 끊겨서 작업시간은 1시간 더 늘어난다. 애인이 주말에 쉬기 때문에 사공씨도 낮에 쉬는 대신 데이트를 하고, 밤에 여자친구와 헤어져 곧바로 작업을 나간다.

사공씨는 돈을 벌겠다고 무작정 상경했던 스무 살에 우연히 열차 궤도 일을 시작했다. 중앙선, 경춘선 등 각종 철도 궤도 일을 맡아 해온 지 10년이 넘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역 사이사이 컴컴한 터널도, 남들은 무심히 바깥 풍경만 살피며 지나치는 고가 구간도 사공씨에게는 모두 기억의 길이다. 그는 열차를 타고 시공에 참여했던 구간을 지나면 “내 작업이 눈에 보이는 건 아니어도 당시 레일 곡선 각도를 얼만큼 줬는지, 어디는 장마기간에 하느라 고생했구나, 하는 기억들이 생생하다”고 했다.

열차를 받치는 자갈이나 콘크리트길 위에는 열차 바퀴와 닿는 레일이 깔려 있다. 노후된 레일 표면이 닳거나 결함은 없는지 점검하고 연마하는 작업도 마찬가지로 밤중에 진행된다. 레일 표면이 매끄럽지 못하면 열차가 선로를 벗어날 위험이 있다. 레일 표면을 반듯하게 연마하는 장비차는 48억원짜리로 매일 밤 300m 구간을 연마한다. 이 차를 운행하는 서울메트로 철도장비사업소 김선용씨(47)는 21년째 장비차를 몰았어도 매일 불안하다고 했다. 그는 “지하철 첫차가 오기 전 혹시 갑작스러운 사고가 나면 어쩌지 하는 강박이 크다”며 “우리 아이도 내가 뭘 하는지 잘 모른다. 그래도 레일 균열을 발견했을 때 내가 큰 사고를 막았구나 싶어 보람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는 승객이 타는 지하철 전동차 외에 각종 시설을 유지·보수하기 위한 용도의 대형 장비차를 8종 13대 보유하고 있다. 낮에 차량기지에서 잠자던 장비차들도 사람과 함께 밤에 나와 일한다. 모두 수십억원에 달하는 고가 장비로 잘못된 궤도를 고치거나 자갈길을 다지는 멀티플타이탬퍼, 초음파로 레일에 문제가 있는지 검사하는 레일탐상차, 궤도·전차선·레일·구조물을 한번에 점검하는 종합검측차, 터널 내 미세 분진을 제거하는 분진흡입차 등이 있다.

■ 큰 사고를 막았을 때 쾌감과 보람 평생 가

철로에는 기차를 받치는 길만이 아니라 열차가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 있도록 진로를 설정하는 선로전환기, 선행 열차와의 안전거리를 계산해 운행속도를 지시하는 궤도회로, 신호기 등이 장착돼 있다. 이 설비 작동은 안전한 열차 운행과 직결되기 때문에 매일 밤 전문가가 점검한다. “선로전환기에는 지하철의 심장이 들어 있다”고 말하는 서울메트로 궤도관리사업소의 김준수씨(57)는 24년째 야간에 선로 위에서 신호시스템을 점검해왔다. 다른 철도쟁이들처럼 김씨 또한 가장 강렬하게 기억하는 순간은 사고를 막았거나 혹은 사고를 겪었을 때다. 그는 “15년 전 신답역 부근에서 신호시스템 설비에 문제가 생겨 낮에 외부 업자까지 투입됐지만 원인을 못 밝혔다. 밤에 혼자 선로에 들어가서 결국 문제를 찾아냈는데 그때 쾌감이 평생 간다”고 했다.

영화에서 지하철 터널은 종종 괴물이나 비밀스러운 범죄자들의 출몰 장소로 그려지곤 한다. 매일 밤 1~4호선 지하철 터널 구간에서는 벽에 붙은 미세 분진을 제거하기 위해 고압살수차가 투입돼 물청소가 벌어진다. 19년째 살수차 등 각종 장비차를 운행해온 서울메트로 임영국씨(44)는 “운행 중에는 엄청난 물소리에 귀도 정신도 멍멍하다. 사고가 없도록 집중해야겠다는 생각, 입고지에서 멀어질수록 시간에 맞춰 돌아올 생각만 하고 일한다”고 말했다. 고압살수차는 하루 5㎞를 다니면서 1년이면 1~4호선 터널 내부를 총 9번씩 청소한다.임씨는 “지하철 하면 보통 기관사, 역무원만 알지 내 일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아내에게는 일하는 걸 사진 찍어서 보여주곤 한다”고 말했다.

<김여란 기자 peel@kyunghyang.com>

경향신문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100%
10대 0%
20대 0%
30대 10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트로트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가수 '김호중'이 최근 교통사고를 내고 달아낸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고 있는 가운데, 그의 소속사 대표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매니저에 김호중을 대신해 경찰에 출석하라고 지시한 이가 자신이라고 주장했다. 김호중은 지난 9일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사실은 유부남, 자녀도 2명" 손태진, '불타는 트롯맨' 의혹에 솔직 고백

"사실은 유부남, 자녀도 2명" 손태진, '불타는 트롯맨' 의혹에 솔직 고백

사진=나남뉴스 '불타는 트롯맨' 우승자 손태진이 소문으로 떠돌던 유부남 의혹에 솔직한 답변을 내놓았다. 오는 17일 방송하는 MBN '전현무계획'에서는 전라도 로컬 맛집 검증에 나선 전현무, 곽튜브, 손태진이 등장한다. 손맛으로 유명한 전라도 제철 맛집은 광주, 나

"시부모님 백화점 오너" 김정은, '♥연봉 10억 남편' 직업 공개 깜짝

"시부모님 백화점 오너" 김정은, '♥연봉 10억 남편' 직업 공개 깜짝

사진=나남뉴스 배우 김정은이 연봉 10억원을 받는 자산가 남편의 직업을 밝혀 이목을 끌었다. 지난 15일 이경규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 '르크크 이경규'에는 배우 김정은이 게스트로 출연해 토크 시간을 가졌다. 평소 홍콩에 머무른다고 알려진 김정은에게 이경규는 "

"돈 필요 없어요" 김호중 팬카페, 뺑소니 논란 속 기부했다 '퇴짜 당해'

"돈 필요 없어요" 김호중 팬카페, 뺑소니 논란 속 기부했다 '퇴짜 당해'

사진=나남뉴스 가수 김호중이 뺑소니, 운전자 바꿔치기, 음주운전 의혹 등 각종 논란에 휘말린 가운데 팬클럽의 기부금이 전액 반환된 사실이 알려졌다. 이날 16일 김호중의 팬클럽 '아리스'는 학대 피해를 당한 아동을 위해 사용해 달라며 비영리단체 희망조약돌에 기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