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지구 무산·화상경마장 '줄악재' 집값 20%나 빠져 주민들 '폭발직전'
"도박장 이전 결사반대" 10만명 서명운동 돌입, 땅값마저 계속 떨어져 하락률 전국에서 최고
남산그린웨이 표류 등 각종 사업도 지지부진
다음 달 마사회 화상경마장이 들어서는 서울 원효로의 한 신축건물 앞에서 인근 학교 교사들이 경마장 입점 반대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때 일본의 대표적인 재개발 복합단지인 롯폰기힐을 넘어서는 세계 최대 규모의 복합단지 조성을 꿈꾸던 서울 용산이 시름하고 있다. 각종 개발사업과 서울의 중심이라는 지리적인 이점에도 2009년 용산참사부터 올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무산, 정비사업 및 남산그린웨이사업 지연, 화상경마장 이전 등 각종 악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집값과 땅값 역시 계속 하락세를 보여 일각에서는 용산이 서울의 디트로이트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한다. 자동차산업으로 유명한 미국 디트로이트는 한때 최고 부유층이 거주하던 곳이었으나 현재는 가장 저렴한 지역 중 한 곳이 됐고 지난달에는 파산보호 신청에 이르렀다.
가장 최근의 악재는 마사회의 화상경마장 이전이다. 용산역 인근에 있던 화상경마장이 오는 9월 전자상가가 밀집한 원효로 전자랜드 옆 신축건물로 이전을 앞둬 주거환경 악화, 이로 인한 집값 하락을 걱정하는 주민들 반발이 거세다. 용산구도 10만 서명운동에 나선 상황이다.
■화상경마장 갈등까지 심각
지난 2일 화상경마장 설치 예정인 원효로 신축건물 앞에는 인근 성심여고 교사들의 시위가 벌어졌다. 한 교사는 "경마도박장이 설치되면 술집이나 노숙인 등도 함께 들어와 주거환경이 악화될 것"이라며 "과거 대전에 경마도박장이 들어섰을 때 주민 이전으로 초등학생의 5분의 1이 줄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일대에 전자상가가 있어 비교적 깔끔한 편이었는데 경마장 때문에 상권도 나빠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 주민도 "도박꾼들이 득실대는 주변이 통학로가 될 텐데 아이를 어떻게 학교에 보내겠느냐"며 "차라리 전세를 주고 이사갈 생각도 있다"고 전했다.
용산구 관계자는 "지난 7월 29일부터 동주민자치센터를 통해 10만명 서명을 받고 있다"며 "서명부를 마사회와 국토교통부에 전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기존 화상경마장이 있던 용산역 부근은 역 광장과 용산개발사업 철도부지 때문에 주민이 거의 없었지만 이곳으로 옮기면 인근 성신여중.고 등의 딸 가진 부모들 염려가 크다"고 덧붙였다.
중개업자들 전망도 밝지 않다. 인근 D부동산 관계자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무산으로 지금까지 20%가량 떨어졌다"며 "경마장 이전으로 더 하락할지는 두고봐야 안다"면서도 "급매물이 과거에 비해 많아진 것은 주거환경이 좋지 않은 데다 나아질 것으로 보지 않으니 떠나는 게 아니겠느냐"고 설명했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이달(2일 기준) 용산구 아파트의 3.3㎡당 매매가는 2332만1600원으로, 올 초 2447만7700원에서 매달 떨어지고 있다. 지난 2009년 3.3㎡당 2578만8700원으로 고점을 찍은 후 하락세를 면치 못하는 것이다. 땅값도 마찬가지다. 국토부에 따르면 지난 6월 용산구 땅값은 0.23% 하락하며 전국 지가 하락률 1위를 기록했다. 국제업무지구 사업 백지화로 3개월 연속 하락세 1위를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발목 잡는 지지부진한 사업들
용산 부동산 하락세는 지지부진한 개발계획도 한몫하고 있다. 오세훈 전임 시장 때 추진되던 남산그린웨이사업은 사실상 표류하고 있다. 당초 남산~용산민족공원~한강을 잇는 서울 최대의 녹지공간을 조성하려 했으나 해방촌(용산2가동) 주민 보상문제 등으로 지지부진한 상황.
재개발.재건축 사업도 속도를 못 내고 있다. 특히 용산구는 2009년 용산4재개발구역에서 발생한 '용산참사' 등 사건 때문에 어느 곳보다 추진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박원순 서울시장의 뉴타운 출구전략 발표 후 한남뉴타운 사업도 주민 간 찬반 갈등으로 추진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박원갑 국민은행 부동산전문위원은 "과거 용산은 개발 기대감으로 시장을 이끌어왔으나 용산개발사업 무산 이후 기대감마저 사라졌다"며 "지금은 투기수요가 사라지고 거품이 꺼져가는 상태로, 당분간 조정시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nvcess@fnnews.com 이정은 기자
파이낸셜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