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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의 재발견(3) 번역은 창작이다 "잘도 그러겠다"

[온바오] | 발행시간: 2013.08.05일 18:45

▲ 한국 온라인에서 화제가 된 게시글 캡쳐

한글의 중문 번역 업그레이드,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나?

한동안 누리꾼들 사이에서 '한국어는 예외'라는 게시글이 화제를 모았다. 게시글의 내용은 이러하다.

대학 강의 중 어느 언어학자가 "부정+부정이 긍정이 되는 경우는 있어도 세계 어느 언어에서도 긍정+긍정이 부정이 되는 경우는 없다"고 했는데, 뒤에 앉아 있던 학생 하나가 "잘도 그러겠다"고 해 폭소가 터졌다는 것이다. 순조롭게 이뤄진다는 '잘'과 긍정의 의미를 나타내는 '그러겠다'가 만났지만 의미상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표현이었던 것.

누리꾼들은 "역시 한국인 재치는 최고", "개그감은 민족적으로 뛰어난가봐", "언어학자 놀랬겠네", "반박해 봐요" 등 다양한 반응을 보였다.

사실 '-아/어야 한다'와 '-지 않으면 안 된다'의 경우에서 보듯 부정+부정이 강한 긍정이 되는 예는 많지만, 긍정+긍정이 부정이 되는 예는 극히 드물다. 하지만 그 학생은 기막힌 반어법으로 이걸 돌파했다.

선생을 골려먹는 건 예나 지금이나 학생들 고유의 특권인가 보다. 고등학교 때 매우 실력 있는 고전문 선생이 있었다. 다년간 고3 학생들을 지도하는 가운데 당신만의 지도기법이 정리가 되어서 참고서를 저술해 이른바 저자 직강을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실력에 자아도취한 나머지 늘 수업 도중 오만한 태도가 좀 문제가 되었다. 다들 실력을 인정하면서도 그 태도를 고깝게 여기고 있던 차 어느 날 사단이 벌어졌다. "에~ 또~ 그럼 하나 가르쳐 줄까"하며 특유의 말투로 어느 고시(古詩)를 설명하려는데 코앞에 앉아 있던 학동 한 녀석이 맞받아쳐 "에~ 또~ 그럼 하나 배워 볼까."로 댓구(對句) 삼아 직격탄을 날렸다. 체벌이 당연시되던 시절이라 그 즉시 끌려나가 곤죽이 되도록 쥐어박힌 건 불문가지.

미세한 감정을 세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한국어는 가히 으뜸이다. 적어도 내가 접해본 주요 언어 중에서는 그러하다. "언니, 내게 그러면 안 돼~~~~~요"에서 보듯 존칭어미 '-요'를 떼었다 붙였다 하는 방법으로 존댓말과 반말 사이를 오가며 내심 불만을 가진 연장자를 적절히 농락하기도 하고, 회식자리에서는 아예 '5분간 야자 타임'을 만들어 상하체계를 완전히 뒤집어 놓을 수도 있다. 일본어도 존칭이 발달하긴 했지만 우리랑 문화가 달라 '야자 타임' 같은 익살스런 분위기가 있다는 말은 아직 못 들어보았다.

색채를 표현하는 형용사에 이르면 이건 예술적인 경지다. 노랗다, 노르스름하다, 노릇노릇하다, 노리땡땡하다, 누렇다, 누르스름하다, 누르죽죽하다 등등. 알래스카 원주민들의 언어에는 생활환경의 영향과 필요에 따라 흰색을 의미하는 단어가 무수히 많다는 말은 들었다. 눈 내리는 허공의 흰색과 지표면에 떨어진 눈의 색깔, 그리고 발자국 남긴 눈의 흰색이 각각 다를 것이니 구별할 필요성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국제적 대중성을 가졌다고 판단돼 UN이 한국어 포함 10대 국제어로 지정한 언어 중 어디에도 한국어의 형용사에 나타나는 이런 다양한 색채 표현법은 찾아 보기 힘들다.

중국 TV에서 방영되는 한류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한마디로 좀 답답하다. 음성으로 듣는 대사에 비해 자막으로 번역된 내용은 건조하기 짝이 없다. 줄거리만 파악할 수 있는 수준인데도 중국인들이 재미있게 보아 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극중 상황에서 대사 하나하나의 맛깔까지 살릴 수 있다면 좀 좋을까. 마치 한국어로 번역된 밋밋한 느낌의 영시(英詩)를 보는 듯하다. 역시나 감정을 제대로 살릴 수 있는 한국어의 존재가 한류의 밑그림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어렵다. 언어 고유의 표현체계에 한국인 특유의 감성이 입혀져 예술로 승화한 모습이다. 그러다 보니 '재미'라는 경쟁력이 확보되었을 터이다.

번역의 한계를 넘어 우리말의 이 맛깔을 어디까지 살려 갈 수 있을까? 언어가 지닌 고유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겠지만 최대한 근접한 표현을 찾는 노력은 있어야 할 터인데 적어도 우리말의 중국어 번역에 아직까지 그러한 노력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나마 잘 알려진 드라마는 좀 나은 편이지만 그 외 다른 영상물은 민망한 수준이 아니면 다행인 정도에 머물고 있다. 앞으로 얼마나 더 시간이 흘러야 고르게 자리를 잡을런지 안타깝기만 하다.

한국 드라마 일부에 종종 등장하는 어설픈 중국어 대사는 물론이고, 올해 선양한국주 행사에서도 그런 실태는 여지없이 드러났다. 한국영화제 행사에 상영된 한국 영화들은 한국에서 작품성과 흥행성을 동시에 확보했던 좋은 작품들이었다. 또 관람객의 편의에 맞춘 티켓 사전 배포도 순조로웠다.

그러나 정작 객석을 메운 중국 관객들을 위한 중문 자막은 터무니없는 수준이었고 심지어 한국어 대사와의 타이밍조차 맞지 않았다. 줄거리 파악이 안 돼 영문을 몰라 하던 관객들이 급기야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자리를 뜨는 모습을 지켜보는 건 참으로 애석하고도 괴로운 일이었다. 홍보성 무료상영이었기에 망정이지 유료였다면 본전 따지는데 철저한 중국 관객들로부터 어쩌면 무슨 봉변을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영문 자막이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도 들었다. 모르긴 하지만 아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문 번역시스템이 영상물 전반에 제대로 가동되지 않는 한 한국 영상문화의 중국시장 개척은 요원한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우리말 특유의 맛깔을 외국어에 그대로 재현하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러나 상황을 적절히 감안한 문장 전반의 분위기와 흐름은 노력을 통해 어느 정도까지는 재현 가능하다. 이제는 영어 일변도 번역을 벗어나 영어 이외의 주요 외국어에도 번역 역량이 돋보이는 우리말을 보고 싶다. 그것은 역으로 우리말 사랑이기도 할 것이다. (pjt0041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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