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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기도 싫은 상상 ‘블랙아웃이 된다면…’

[기타] | 발행시간: 2013.08.10일 12:49

긴급전력수급에 분주한 전력거래소. |김기남 기자

8월 7일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산업계 휴가가 마무리되고 찜통더위와 열대야가 계속되는 8월 중반까지 전력수요는 절정으로 치달을 것으로 보인다. 전력수요가 급격하게 치솟아 전력이 부족해지면, 최악의 경우 모든 전력시스템이 정지하는 ‘블랙아웃’이 찾아올 수 있다.

한전측은 전국의 전기가 모두 나가는 ‘블랙아웃’이 찾아올 확률은 극히 희박하다고 말하지만, 전력수요가 급증하는 여름·겨울마다 블랙아웃의 위험성은 늘 경고돼 왔다.

‘블랙아웃’이 발생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사회적 위험을 전문가들의 자문과 관계기관의 자료를 토대로 가상 시나리오로 재구성했다.

8월의 한낮, 신풍역에서 대림역을 향하던 7호선 지하철이 갑자기 멈춰섰다. 열차 내 조명등도 모두 꺼졌다. 캄캄한 터널 안에서 승객들은 암흑 속에 갇혔다. 대정전 ‘블랙아웃’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공포에 떠는 승객들이 술렁이는 가운데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다행히 역사의 통신기계실은 한 시간 정도 버틸 수 있는 자동전원공급장치(UPS)가 장착돼 있어 긴급대피 안내방송은 가능했다. 기관사는 대정전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승객들에게 알리고 터널 내 비상등을 따라서 대피하라고 전했다. 역과 역 사이 거리는 1~2㎞ 정도. 보통 성인의 걸음으로 10~20분 정도면 걸어나올 수 있는 거리다. 하지만 띄엄띄엄 설치된 비상등 불빛만을 따라서 터널을 지나가는데, 어느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걸음은 더딜 수밖에 없다. 특히 눈이 어두운 노인들은 쉽게 지하철역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전기가 끊기면서 배수펌프는 작동하지 않아 바닥에는 지하수가 스며들기 시작했다. 전기가 끊기면서 작동하는 비상조명등의 배터리는 수명이 30분 정도. 30분이 지나면 희미한 비상조명등마저 꺼지게 된다. 캄캄한 공포 속에서 승객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지하철은 암흑천지, 수술실엔 비명

같은 시간, 서울 시내 병원들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곳곳에서 비명과 고함, 울음소리가 터져나왔다. 환자들의 생명줄이던 인공호흡기가 멈춰서면서 사망환자들이 속출했다. 갑자기 멈춰버린 신호등으로 교통사고가 급증해 응급환자는 밀려들어 왔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작동하지 않는 치료장비들이 태반이었다. 자동전원공급장치(UPS)가 의무사항인 대형병원은 다른 중소병원들보다 상황은 낫지만, 대형병원이라고 비상전력체계가 모든 병실에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응급실, 중환자실, 수술실, 회복실, 분만실, 신생아실 등 모든 곳에 전력을 공급할 여력이 안 되다보니 환자의 경중과 우선순위를 두고 환자와 보호자들의 항의가 빗발쳤다. 물론 이마저 의무규정으로 하지 않아 전력이 모두 나가버린 중소병원의 상황은 더욱 혼란스러웠다. 수술은 중단됐고, 인공호흡기는 꺼져버렸다. 시간이 갈수록 피해환자는 더욱 늘어갔다. 블랙아웃이 발생하자 서비스업과 네트워크의 집결지였던 서울은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일순간에 마비되어버렸다. 효율성을 위해 전력망, 통신망, 가스망 등 모든 네트워크망을 동아줄로 묶듯이 묶었던 서울은 전력이 무너지면서 그와 함께 묶여 있던 다른 기능도 한순간에 무너져버리게 된 셈이다.

물류도시이자 공업도시인 부산에서는 블랙아웃으로 공장 가동이 멈추면서 지역경제의 심각한 위기가 이어졌다. 블랙아웃으로 부산이 입게 된 경제적 피해는 거의 재난 수준이었다. 부산 시내 대개의 공장들은 블랙아웃과 동시에 멈춰버렸다. 부산을 떠받치고 있는 산업은 철강제조업, 냉동창고업, 항만하역업 등이다. 전기로를 연속 가동하는 철강제조업과 냉동·냉장시설을 24시간 가동해야 하는 냉동창고업은 전력사용 비중이 높은 전력의존 산업이다. 주로 석유를 연료로 사용해 전력사용 비중이 낮은 편인 항만하역업도 24시간 가동 체제라 전기조명이 안 들어오면 작업이 불가능해진다. 결국 블랙아웃이 발생하면서 직격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산업구조인 셈이다.

하지만 정전에 대비해 전기가 아닌 다른 원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열병합 발전기나 이동식 발전기 같은 자가발전시설을 확보해놓고 있는 기업은 10개 중 1개 꼴에 불과했다. 겨우 몇몇 대기업들만 자가발전시설을 구비하고 있었을 뿐, 중소기업들은 자가발전시설이 없었다. 겨우 버티고 있는 중소기업으로서는 값비싼 자가발전시설을 구비해놓기란 현실적으로 어려웠다. 대기업 또한 자가발전시설로 하루를 넘기기 어려운 경우가 많아 블랙아웃 복구가 길어질 경우 작업을 중단해야만 했다. 최근 가뜩이나 어려워진 경기에 겨우 버티고 있던 기업들이 이번 블랙아웃으로 줄줄이 도산할 위기에 처해버린 셈이다. 전력이 한 시간만 안 들어와도 하루 생산량이 평균 14.1% 감소하는데, 블랙아웃 복구에 며칠이 소요되면서 피해규모는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경기침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부산 경제는 블랙아웃으로 더욱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전력공급 확대만으론 위험제거 안 돼

피해는 극심했지만, 복구는 예상보다 더뎠다. 한전측은 블랙아웃이 발생할 경우를 가장한 시뮬레이션으로 긴급한 복구는 7시간 정도면 가능하다고 예측했고, 완벽한 복구는 짧게는 3일 길게는 10일 걸릴 것이라고 말해 왔었다. 하지만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던 블랙아웃인 만큼 실제 복구시간은 시뮬레이션으로 예측했던 기간을 넘어서고 있었다. 다시 발전소를 가동시키 위해서는 양수가 필요했는데 충분한 양수가 확보되지 않았고, 전기가 끊어지면서 통신망이 두절돼 책임자들간의 원활한 통신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실제 블랙아웃에는 시뮬레이션보다 너무 많은 변수들이 있었던 셈이다.

시뮬레이션이 예측했던 시기보다 며칠을 더 경과해 사태가 수습되면서 블랙아웃에 따른 경제적 피해보상을 위해 한전을 상대로 한 소송이 빗발쳤다. 블랙아웃으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해 사망한 환자들, 사고로 다친 사람들, 블랙아웃으로 도산위기에 처한 중소업체들은 한전측에 피해보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한전의 전기공급약관은 “수급조절 때문에 부득이한 경우 전기공급을 중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고, 그로 인한 손해는 배상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블랙아웃은 ‘수급조절’을 원인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약관만 따지자면 한전측에 책임을 묻기가 어렵다. 일반 정전사고의 경우에도 한전의 ‘중대한 과실’이 입증되지 않는 한 배상책임을 인정한 판례는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15 순환정전 때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양식장에서 순환정전으로 철갑상어 3120마리가 폐사하고 장비가 고장나 양식장측은 한전을 상대로 소송을 했지만, 위 약관을 근거로 소송은 기각됐다.

블랙아웃이 발생하기 이전, 한전을 비롯해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블랙아웃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진단했다. 한국은 세계에서 절전 시간이 가장 짧은 나라였고, 한전은 그만큼 자신들이 공급하는 전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예기치 못하게 전력사용량이 치솟고, 여기에 악재가 겹쳐 발전소나 송전탑 등에서 사고가 발생한다면 갑자기 모든 전력시스템이 정지하는 블랙아웃의 가능성은 언제나 상존해 있었다. 안전하다고 자신하던 타이태닉호가 예기치 않게 빙산에 부딪혔던 것처럼 원자력발전소도 일본 후쿠시마 사고가 나기 전에는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늘 장담해 왔다. 블랙아웃이라는 쓰나미가 전국을 휩쓸고 간 후, 블랙아웃 또한 100만분의 1이라도 발생할 위험성이 있다면, 그 여파가 워낙 크기에 더욱 철저히 대비했어야 했다는 후회만 남았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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