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익위, 과로사한 임신 여군 '순직' 권고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지난 2월 2일 강원도 인제군 원통리의 한 군부대에서 근무 중이던 운영부 소속 이신애 중위(28·여)가 갑자기 쓰러졌다.
여군사관 55기인 이 중위는 2010년 10월 소위로 임관해 할아버지와 아버지에 이어 3대째 직업군인의 길을 걷고 있었다.
당시 이 중위는 임신 7개월째에 접어들어 만삭인 상태였지만 다음날 있을 혹한기 훈련을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부서장 공석으로 인한 대리업무, 운영과장 교체 등은 이 중위의 업무 스트레스를 더했다. 사망 한 달 전인 1월에는 50시간이 넘는 초과근무를 하기도 했다.
이 중위는 결국 쓰러져 뇌출혈을 일으켰고 치료를 위해 강릉의 한 병원으로 옮겨졌다. 의료진은 시술에 앞서 제왕절개를 통해 아기를 출산시켰다.
하지만 이 중위의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고 다음날 오전 7시 아기의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채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부대의 의료 체계가 취약했던 점이 이 중위의 사망으로 직결됐다. 당시 이 중위는 속초를 거쳐 강릉에 있는 병원까지 이송돼야 했다.
앞서 부대는 이 중위의 임신에 따라 정상적인 진료와 생활이 가능하도록 배려했지만 이 중위는 산부인과 진료를 위해 왕복 3시간을 오가야 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육군본부는 이 중위의 죽음을 순직으로 보지 않았다. 육군본부는 지난 4월19일 이 중위의 뇌출혈이 임신성 고혈압으로 인해 발생했지만 군 복무가 임신성 고혈압 발생이나 악화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국민권익위원회는 이 중위의 사망원인인 뇌출혈과 임신성 고혈압은 직무의 급격한 과중 등이 원인이 돼 발생 또는 악화됐다고 판단하고 10일 육군본부에 이 중위에 대한 순직 인정을 권고했다.
권익위는 ▲이 중위가 사망하기 1개월 전 받은 마지막 산부인과 검진에서도 아무런 문제가 발견되지 않은 점 ▲지휘관 교체, 부서장 대리업무 등으로 업무부담이 급격히 늘어난 점 등을 이유로 들었다.
또 ▲주변 관련자들 모두 이 중위가 책임감이 강한 성격으로 임신 전후 동일하게 임무를 수행해왔다고 진술한 점 ▲근무상 과로가 임신성 고혈압의 진행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한 의료 자문 결과 등도 지적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지난해 7월 관련규정 개정 이후 국방부는 권익위의 권고가 있는 경우 순직 여부를 재심의하고 있다"며 "이번 권고에 따라 이 중위의 순직이 인정돼 8000여명 여군의 권익이 한 단계 더 보호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 중위의 남편 연두봉씨(32)는 "고인의 희생을 바탕으로 또다른 피해가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고인이 근무했던 부대처럼 의료 취약 지역에 대한 지원도 함께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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