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대학교 안산병원 한쪽 병동에는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생존자 수십 명이 입원해있다.
또 다른 병동에서는 희생자 유족들이 조문객 행렬을 받고 있다.
이처럼 생과 사가 한 장소에 공존하고 있는 모습은, 한국 사회가 이번 비극 앞에서 보여주는 크고 작은 갈등 양상을 축소해놓은 모양새다. 사고 선박에 탑승한 승객 476명 가운데 안산 단원고 학생은 325명이다.
유족들은 오열하고, 실종자 가족들은 늑장 구조에 분노를 터뜨리는 가운데, 생존자와 생존자 가족들은 자신들에게 떠안겨진 부담감과 씨름하고 있다.
단원고 배드민턴팀 팀원이라는 박준혁 군(16세)은 수요일, 다른 승객들의 구출을 돕고 자신도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왔다.
배가 기울기 시작할 무렵, 박 군은 다른 승객 10여 명과 3층 복도 여자 화장실 앞에 있었다. 승선원들이 위험을 경고하면서 승객들에게 그 자리에 가만히 있으라고 명령하자 학생들은 원래 있던 자리에 앉아 1시간 정도 기다렸다.
박 군은 “처음에는 그렇게 심각한 상황인 줄 몰랐다”고 말했다. 그런데 배가 한쪽으로 더 기우뚱하면서 물이 차올랐다.
“바깥에서 헬리콥터 소리가 들렸다. 구조대가 오고 있다는 소리도 들렸다.”
박 군과 친구들은 열 살 남짓 된 소녀가 구명조끼 입는 것을 도와주고 위로 들어올려 문 밖으로 빠져나가게 했다. 문 밖에는 구조대가 기다리고 있었다. (박 군은 소녀가 무사하게 구조됐으리라고 믿는다.)
정작 출입구에 접근하지 못한 박 군 일행은 빠져 나갈 길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그때쯤에는 물이 제법 차올라 퇴로가 막힌 상태라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박 군 일행은 물속으로 풍덩 뛰어들었다. 탁한 물속에서는 안전하게 빠져나갈 경로가 쉽사리 눈에 띄지 않았다. 물속에서 사방을 살피던 박 군은 출입구를 발견하고 그 곳을 통해 바다로 나갔다. 박 군은 수면 위로 떠오른 지 20분이 지났을 무렵, 구조됐다.
“아무 생각도 안 났다. 빨리 물 밖으로 나가자는 생각밖에 안 들었다.”
구조된 박 군은 부모님께 전화를 걸어 무사하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군은 부모님께 진도까지 굳이 올 필요 없다고 말했다. 건설 근로자인 아버지가 자기 때문에 회사에 휴가를 내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아버지 박재덕 씨는 “준혁이는 항상 자신보다 남을 생각하는 아이”라고 말했다.
사학과 교수가 되는 게 꿈이라는 박 군은 이번 사고로 중상은 입지 않았으며 사고 당시 상황을 비교적 편안하게 증언하는 듯 해 보였다. 하지만 입을 꾹 다물고 말하지 않으려는 부분도 있는 듯했다. 아버지는 준혁이가 겉으로는 강해보여도 마음 속은 고통 받고 있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월스트리트저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