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스포츠 엄동진]
MBC '나는 가수다'는 '전설적인 프로그램'으로 남는 편이 나을 뻔 했다.
다시 돌아온 '나는 가수다'는 향수를 불러일으키는데도, 그렇다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하는데도 실패했다. 녹화 전 객석을 휩쓴 우천까지 '나가수'의 부활에 방해가 됐다.
2011년 시작된 '나는 가수다'는 갖가지 논란 속에서도 이슈와 화제를 몰고 다녔다. 시청률로도 일요 예능프로그램을 지배했다. 음악적으로도 훌륭한 성과를 냈다. 공연 사운드에 각별하게 신경 써, 지상파 가요 프로그램의 질을 한 단계 높였다. 김범수·박정현·윤민수·김경호 등 아이돌에 밀려 고전하던 가수들에게도 재기의 발판을 마련해줬다.
하지만 9일 방송된 추석 특집 '나는 가수다'는 전편의 미덕을 모두 실종시켰다. 기대감이 컸기에 실망도 컸다. 먼저 가수들의 히트곡 무대를 통편집에 가깝게 잘라냈다. 김종서가 부른 '플라스틱 신드롬'을 고작 1분 30초 내보냈다. 27년차 로커에 대한 예의가 실종됐다.
화려한 야외무대는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오히려 무대의 열기가 실종되는데 가장 큰 역할을 했다. '나가수'의 가장 큰 미덕은 가수와 객석의 호흡이다. 하지만 이날 야외무대엔 김범수의 노래에 눈물을 흘리고, 윤도현의 샤우팅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던 관객들이 실종됐다. 가수들에게 책임을 떠넘기기도 힘들다. 공연도 하기 전에 날씨가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한차례 비가 내려 관객들이 움츠러들었다. 당연히 '나가수'의 전매특허 같은 관객 클로즈업 영상이 생생하게 살지 않았다. 본 경연에서 김종서가 '일어나'를 부르자 객석 앞줄이 자리에서 일어난 게 이날 가장 뜨거웠던 반응이다. 굳이 화려하기만 한 야외무대가 왜 필요했는지 이해가 어려웠다.
긴장감도 실종됐다. '나가수'의 가장 큰 재미는 가수들의 우승과 탈락에서 찾을 수 있었다. 하지만 특집 프로그램으로 편성돼, 1위 자체에 큰 의미가 없었다. 당연히 탈락자도 없었다. 씨스타 효린, 플라이투더스카이, 더원, 박기영, 김종서, 시나위, 윤민수 등 쟁쟁한 가수 7팀이 경쟁했지만 ‘경쟁’이란 단어가 아까울 만큼 싱거웠다. 더원이 몇 표를 받아 우승했는지, 2위와는 몇 표 차이가 났는지에 대한 설명도 없었다. ‘나가수’는 전설적인 프로그램으로 남는 편이 나을 뻔했다.
엄동진 기자 kjseven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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