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룡문8대의 80년지기 《파수군》 전팔룡, 《20년만 더...》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4.09.17일 11:08

고향마을의 《파수군》전팔룡(80)과 리금숙(76) 내외.

80년 고향 지킨 파수군, 마을력사 산증인

추석날 오전, 성묘객들이 찾아올 시간이 다가오자 그는 검은 구름으로 뒤덮힌 하늘을 쳐다보며 《오늘은 몇놈이나 조상들의 산소를 찾을가?》 혼자말처럼 곱씹으며 구부정한 허리를 쭉 펴고 멀리 동구밖 아스팔트길을 내다본다.

그는 이른 아침부터 낫을 갈았다. 전날 오후에 이미 3자루를 갈아놓았지만 어쩌면 성묘객들이 많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앞서 추석날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자 집에 남은 낡은 낫 2자루까지 반짝반짝 갈아놓았다.

그는 십여년래 해마다 청명이면 삽을 준비하고 추석이면 낫을 갈아 준비해둔다. 마을 뒤산에 묻힌 조상들의 산소에 성묘하러 오는 옛이웃들에게 편리를 도모하기 위함이다.

그의 안해도 왕년과 다름없이 초두부를 한 대야 듬뿍 만들어놓고 옛이웃들을 기다린다.

전팔룡은 1934년에 이 마을에서 태여나 뼈가 굵고 장가들고 아들 다섯을 낳아기르고 80년째 마을을 지키고있는 《파수군》이자 《산증인》이다.

전팔룡이 80년째 지키고있는 고향마을은 화룡시 투도진 룡문촌 제6조이다.

마을 남쪽으로 2리쯤 가면 해란강이 유유히 동으로 흐르고있고 지세가 좀 높은 곳에서는 서쪽으로 연변의 유명한 피서지, 봄가을원족 최적의 목적지인 아동저수지와 룡두산이 보이며 북쪽으로 3리쯤 가면 항일녀영웅 김순희 등이 순국한 약수동항일기념지가 있다.

마을 뒤산에는 전팔룡의 조상, 형제, 친척과 옛친구, 옛이웃들이 묻혀있다.

10년전까지만 그는 후대들이 찾지 않는 빈 묘지들을 대신 손수 수선해주었다. 하지만 최근 몇 년래 허리가 많이 휘면서 더 이상 묘지수선을 할수 없게 되었다.

함경북도 길주 이주민 전씨네가 개척한 마을

근 100년전인 1910년대말의 어느 추운 겨울날, 전팔룡의 아버지 전기호와 큰아버지 전병철, 삼촌 전기철, 전기원 등 전씨 4형제는 조선 함경북도 길주에서 떠나 10여일간 허기진 배를 달래며 이불짐만 꿍져멘채 인가가 없는 이곳에 찾아와 터를 잡았다.

전팔룡이 어릴때 마을에 근 20가구의 촌민이 살고있었는데 전부 조선 이주민과 그들의 후대들이였으며 전씨가 대부분을 차지했다고 한다.

마을의 《전성기》는 지난 세기 70년대말, 80년대초였는데 40여가구에 200여명의 조선족이 왁짜지껄 살고있었다.

하지만 외출할 때 문을 잠그지 않을 정도로 마을은 인심이 후덥고 아늑했으며 맛잇는것이 있으면 이웃과 나눠먹고 특히 남정네들의 생일때면 집집마다 10원, 20원씩 부조했고 그것도 없으면 흰술 한병이라도 들고가서 축하해주고 희사나 상사가 생기면 온 마을이 팔걷고 나서서 도와주던 살기 좋은 조선족마을이였다.

단오나 추석마다 소를 잡으면 마을 아이들은 소고기 끓이는 구수한 냄새에 폴짝폴짝 뛰였고 남정네들은 아낙들이 부뚜막을 분주히 오르내리며 차린 주안상으로 술상을 벌이며 온마을은 명절의 분위기에 흠뻑 빠졌었다.

마을의 유일했던 한족 청년 촌민소조장으로

1979년도에 마을에서 집체건조실을 지으면서 산동성으로부터 일군 4명을 청해왔다. 건조실을 다 지은후 목수 송씨가 가족들을 데리고와서 마을에 정착하면서부터 유일한 한족주민으로 되었다.

중한수교전인 90년대초에 마을의 한 촌민이 한국에 가서 목돈을 벌어온후로 마을의 젊은이들도 하나둘 한국으로 떠나더니 귀국하여서는 가족을 데리고 화룡으로, 연길로, 청도로 이사갔다.

지금 마을 주민은 조선족 4가구에 10명, 한족 7가구에 30여명으로서 도합 11가구에 40여명, 마을 인구가 《전성기》의 5분의 1수준을 유지하고있다.

1965년도에 설립된 룡문공사가 1983년에 룡문향으로 변경했다가 1998년에는 룡수진과 함께 투도진에 합병되였다. 하여 원래 룡문촌 1대와 8대로 되여있던 마을도 촌민들의 급감으로 현재의 제6조로 재탄생하기에 이르렀다. 전팔룡이네는 원래 8대 소속이였다.

조선족청장년들이 전부 마을을 떠나자 우리 말을 능슥하게 구사하는 송씨의 막내아들(38세)이 몇년전부터 촌민소조장을 맡았다.



200여명이 살던 마을의 집터들은 옥수수밭으로, 잡초가 무성한 풀밭으로 변했다.

조상들이 일군 밭은 타민족에게로, 학교는 페교

마을의 20여헥타르의 논밭과 50헥타르의 밭은 이젠 거의 전부가 마을과 타동네의 한족들이 낮은 가격으로 양도맡아 부치고있다.

전팔룡내외도 다섯 아들과 마을에서 함께 살 때 부치던 논밭 1헥타르와 밭 3헥타르를 한족들에게 양도하여 해마다 8000원의 수입을 챙기고있다.

빈집이 많이 생기면서 이주해온 한족들이 공짜로 빈집에 살기도 하고 저절로 무너져버리는 집들도 생겨났다. 전팔룡이네는 이웃들이 버리고간 집터에 밭을 일구어 옥수수를 심어 키워서 생활비를 벌고있다. 하지만 작년까지 부치던 터밭 1000여평방메터가 올해는 절반으로 줄었고 래년부터는 전부 양도할 타산이다.

90년대초까지만 해도 마을에는 문구장이 한 개뿐, 해마다 농한기만 되면 30대후반의 청장년부터 70대초반의 로인들까지 여러개 년령별로 문구시합을 조직했다.

빈집터가 늘어나면서 족히 문구장 대여섯개를 닦을 공간도 되지만 문구장에서 왁짜지껄하던 조선족 남정네들은 이제 찾아볼수 없다. 농한기에는 아래동네와 윗동네의 조선족로인들이 삼삼오오 찾아와서 겨우 한 개 팀을 무어서 그들의 유일한 업여생활을 즐긴다.

3리쯤 떨어진 곳에 있던 룡문향중심소학교는 10여년전에 페교되여 전팔룡의 9살난 손녀는 근 20리 떨어진 투도진신흥소학교에 통학한다. 마을 어구에 있던 룡문중학교는 지난 90년대 중반에 페교되여 양계장으로 사용되다가 이젠 텅텅 비여있다.

남은 인생도 계속 고향을 지키고싶다

안해 리금숙은 1959년에 이 마을에 시집와서 아들 다섯을 낳고 55년째 살고있다. 하여 그들내외는 《오형제아비》, 《오형제어미》로 더 잘 통한다.

그동안 전팔룡내외는 2년전 막내아들 학봉의 결혼식때 대련에 가보았는데 이것이 제일 멀리 가본 외출행이였다.

청도와 한국에 나가있는 다른 아들들도 놀러오라고 로비도 여러번 부쳐왔지만 《이젠 나이가 들어 운신이 힘들다》며 사절한다.

마을에서 부모들과 가까이에 살던 넷째아들까지 올해 년초에 한국에 나가고 집에는 며느리와 손녀가 남았다.

해마다 청명이나 추석때마다 옛주민들이 마을을 찾고 의례히 전팔룡의 집을 찾아와서 소식을 전하다보니 전팔룡의 집은 산지사방에 갈라져있는 옛주민들이 서로 련락하는 《정보집산지》가 돼버렸다.

《농촌에서 아들 다섯만 낳고 장가나 갈수 있을가 근심도 많이 했는데 이젠 자식들이 전부 자수성가하여서 기쁘기 한량없소. 마음같아서는 조상들이 개척한 이 마을을 한백년 지키고싶수다. 이제 20년만 더 살면 되는데...》떨리는 손으로 잎담배를 말아 피운 전팔룡의 주름진 입가에 미소가 피여오른다.

/유경봉기자(yujf@jlcxwb.com)

편집/기자: [ 유경봉 ] 원고래원: [ 길림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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