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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촌관 안민:《조선족마을 내가 지키련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12.08일 08:44
《조선족농촌에 가보다》


새농촌건설에서의 통화현 조선족농촌 현황(3)

광신촌 안민서기


안민(安民), 통화현 금두조선족만족향 광신촌(广信村)의 30대 초반의 나젊은 조선족 촌서기, 해볕에 그을러 검실검실한 얼굴에 튼실한 체구의 촌관 이미지와는 달리 왜소한 체구에 안경을 쓴 온순한 모습은 보는 이들에게 어느 학교의 교원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게 한다.

《지금 농촌에는 조선족젊은이들이 너무 적어요. 더 많은 조선족젊은이들이 타향에서 성공한 후 고향을 잊지 말고 찾아와 고향건설에 한몫 보탰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올해 33세, 5년 촌서기 경력을 가지고있는 조선족 대학생촌관ㅡ안민이 기자에게 털어놓는 소박한 념원이다.

근일 기자일행은 통화현민족종교국 리춘원부국장의 안내하에 쾌대무진에서 1시간정도 달려 금년에 새롭게 건설된 2층짜리 광신촌 촌사무실에 이르렀다.

그날따라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져 기자일행은 경비난으로 아무런 난방시설도 갖추지 못한 촌서기사무실에서 추위에 떨면서 취재를 했다.


농사경험도 없는 나젊은 촌서기, 해낼수 있을가?


젊은 나이에 촌서기를 담임한 안민은 처음부터 촌민들의 만장일치 옹호를 받은것은 아니였다. 젊고 경험이 없는 《어린애》가 과연 촌사무를 제대로 볼수 있을가? 대학생촌관의 실제문제해결능력에 대해 많은 촌민들은 반신반의의 태도를 보였다.

농촌기층의 사무는 구체적이고 복잡하여 당선된후 안민은 정말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대야 하고 어떻게 촌민들을 상대해야 할지 두서를 잡지 못했다.


촌서기로 당선된 후 안민은 겸손하고 허심한 태도로 촌의 어르신들을 하나하나 찾아뵙고 촌건설에 관련한 그들의 의견도 청취하고 자기의 생각을 터놓기도 했다. 안민은 마을어른들을 《스승》으로 모시고 일에 부딪치면 꼭 마을어른들의 의견을 먼저 들어보군 했다.

안민은 촌에서 일어난 사소한 모순을 하나하나 해결하면서 농민들을 진일보로 알기에 애썼고 농민들과 어우러져 그들의 신임을 얻기에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사유가 활약적이고 대담하며 지식면이 넓은 대학생촌관은 차츰차츰 촌민들의 인가를 받기 시작했다.


광신촌로인협회 김후찬(金后赞)회장은 《지금은 전체 촌민들이 안민서기의 사업을 긍정하고 지지하고있지유. 젊은 사람인데 생각이 대담하고 일을 참 잘하고있어유. 앞으로도 촌을 잘 이끌어나갈것으로 믿습니다》라고 말한다.


대학생촌관의 과감한 첫 창업


2000년 장춘전력학교를 졸업한 안민은 광신촌 전공으로 한동안 일했다. 2005년 성당위 조직부에서 조직한 농촌청년간부 제1기훈련반 학원으로 추천을 받은 안민은 길림농업대학 약식용균(药食用菌)학부에서 3년동안 단과대학공부를 하게 되였다.

2007년에 졸업한 그는 고향으로 돌아와 약식용균재배농장을 꾸리려고 했다. 허나 시초자금에 발목이 잡히고말았다.


《꼭 해내고야 말겠다.》 안민은 용기를 내여 금두조선족만족향 조강염(赵江艳) 서기를 찾아가 자기의 창업구상을 터놓고 향재정으로부터 1년의 로임을 미리 내여줄것을 요구하고 버섯재배를 시작했다. 3000포대의 식용균을 재배한 그는 밤낮으로 식용균재배 비닐하우스에서 지내면서 버섯생성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책에서 배운 지식을 실천에 옮기는것은 생각처럼 쉽지가 않았다. 버섯의 생산량이 예상보다 절반밖에 안되였고 시내에서 팔아야 하니 운수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안민의 첫 창업은 실패의 쓴맛을 보았다.

안민은 실패의 경험을 적시적으로 총화해보았다. 규모생산을 이루지 못한것도 원인의 하나이지만 기술부족과 인맥, 판로, 운수비용 문제도 큰 걸림돌이였다.


안민은 《제가 배운 전공이 바로 약식용균입니다. 앞으로 기회가 되면 경험, 교훈을 총화하여 다시 식용균재배를 시작할가 합니다》라고 말한다.

금두조선족만족향 당위서기 조강염(赵江艳, 왼쪽 두번째), 광신촌의 안민서기, 광신촌 부녀주임 김명옥(오른쪽 첫번째).


조선족농촌 인재류실 심각


알아본데 의하면 광신촌을 떠난 우수한 조선족젊은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해외나 국내 대중도시에 발을 붙이고 그곳에서 근무하고 생활하면서 도시생활에 완전히 융합됐다.

자식이 타향에서 출세하자 부모들도 자식따라 도시로 많이 떠나갔다. 이러다보니 광신촌에 남은 조선족들은 점점 적어졌고 농촌에 정착하려는 조선족젊은이들이 거의 없다싶이했다.

《나마저 떠나면 우리 고향땅은 누가 지켜줍니까?》 안민의 아버지가 광신촌에서 서기로 있으면서 잘해왔는지라 촌민들은 안민의 아버지를 몹시 존경하고 그리워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의 뒤를 이어 촌서기로 있는 안민, 그는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광신촌에 특별한 정이 있었고 광신촌을 위해서는 무엇이든 하고싶었다.

한창 젊은 나이에 농촌에서 일하면서 안민은 정말 고되고 힘들 때가 많았다고 한다. 특히 하고있는 일이 촌민들의 리해를 받지 못할 때 더욱 힘들었단다.

《젊은 나이에 외자기업이나 한국에 가면 정말 톡톡한 보수를 받으며 일할수 있으나 차마 촌을 버리고 꿈을 버리고 떠날수 없어요.》 안민서기의 말이다.

촌서기로 일하면서 1년의 보수가 고작 8000여원, 실제 일하다보면 이보다 더 많은 정력이 들며 더 많은 고생을 해야 한다고 한다.


안민도 흔들리고 동요할 때가 많았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꿈을 버리지 않았다. 고향을 떠나 연해나 해외에서 일하고있는 고향분들도 광신촌을 잊지 않고 고향건설에 한몫 하리라고 믿고있는 그다.

오른쪽으로부터 통화현민족종교국 리춘원 부국장, 광신촌로인협회 김후찬회장, 안민


발전의 최대 걸림돌은 여전히 자금문제


안민은 현재 광신촌발전과정에서 최대의 걸림돌이 자금문제라고 생각한다. 자금이 딸리기때문에 많은 좋은 항목이 있어도 착수하지 못하고있는 상황이다. 통화일양보건품유한회사가 광신촌의 1대1 지원기업으로 되면서 기업에서는 해마다 광신촌에 적지 않은 자금을 후원하고있다. 허나 촌의 전반 사업계획에 대비하면 판부족이라고 한다.

금년에 광신촌에서는 30만원을 투자하여 2층으로 된 300평방메터 되는 촌사무실을 지었다. 촌사무실건설에 처음에는 적지 않은 촌민들이 반대해나섰으나 안민은 촌사무실은 촌의 대문이고 얼굴이라면서 촌사무실건설은 광신촌을 위해 더 많은 혜택을 가져다오기 위함이라고 촌민들을 설득했다. 안민의 노력으로 새로 촌사무실이 건설되고 아담한 로인협회 활동실도 있게 됐다.

특색산업으로 새로운 발전 도모


광신촌에서는 매년 투자유치에 많은 정력을 기울이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는다. 생산산업이 있어야 촌경제수입도 늘릴수 있다. 안민은 촌의 특색산업을 일떠세우기 위하여 여러모로 고심했다.

2012년에 광신촌 5조 부근에 수천만원에 달하는 투자로 습지공원이 일떠서게 되는데 이 기회를 빌어 안민은 습지공원부근에 조선족특색이 다분한 민속가옥을 몇채 건설하여 촌민들의 수입을 올리고 촌경제를 발전시켜 볼 타산이다.

대형기계화농장건설도 광신촌 사업목표의 하나이다. 광신촌에는 1600여무의 논과 800여무의 밭이 있는데 조선족촌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짓지 않는다. 총 인구가 820여명, 이중 470여명이 연해지역이나 해외로무를 나가고 대부분 경작지는 타민족에게 임대시켜 경작하고있다.


현재 광신촌에서 농사를 짓는 조선족촌민이 10호밖에 되지 않는다. 광신촌에는 반기계화로 200무의 논을 다루고있는 조선족부부가 있는데 1년에 15여만원의 수입을 올려 한국에서 일하기만 낫다고 한다. 안민전화: 13944515599

광신촌 일각

편집/기자: [ 홍옥, 장춘영 기자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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