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충돌 심각
채광·조형미 극대화, 반사된 하늘 실제로 착각… 철새들 비행하다 충돌
방지 대책은
맹금류 모양 실루엣 붙여 날아가던 새들 접근 방지… "생태 고려 설계" 지적도
이화여대 4학년 방모(24ㆍ법학과)씨는 지난달 9일 오후 5시쯤 수업을 마치고 나오다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교내 본관 건물 쪽에 있던 촉새가 좌우 대칭형인 이화캠퍼스센터(ECC) 사이로 날다가 건물과 충돌한 것. 빠른 속도로 날다 머리를 부딪힌 새는 10여 분 동안 숨을 헐떡거리며 파르르 떨다 피를 토하고 그 자리에서 죽었다. 방씨는 전날에도 ECC 건물 중간인 3번 출입구 근처에 울새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학교에 알렸다. 그는 "멀쩡한 새가 잘 날다가 갑자기 부딪혀 죽어서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주로 공항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졌던 '조류충돌(bird strike)'이 도심에서 빈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형 유리 건물이 늘어난 탓으로 추정하고 있다. 실제로 조류충돌이 빈발하고 있는 이화캠퍼스센터 건물은 채광을 위해 유리와 유광 스테인리스스틸로 만든 '거울 커튼 월(Curtain wall)'이라 불리는 거대한 거울 절벽으로 이뤄져 있다. 이대 관계자는 "거의 매달 건물 유리 벽에 부딪혀 죽어있는 새를 볼 수 있다"며 "건물이 완공된 초기에는 한 달에 2~3마리 꼴로 죽은 새가 발견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은 전국적인 현상이다. 낙동강하구에코센터 부산야생동물치료센터에 따르면 바다와 접한 부산의 경우 지난해 접수된 부상 야생동물 신고(730건) 중 새가 유리창에 충돌한 사례가 218건으로 30%를 차지했다. 이는 92건이던 2009년과 비교하면 2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반면 부산 인근에 위치한 김해국제공항에서는 지난해 단 6차례만 조류충돌이 일어나 도심의 조류충돌 현상이 상대적으로 매우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래 조류충돌은 공항에서 비행기 이ㆍ착륙 때 비행경로가 겹쳐 충돌하거나 엔진 속에 빨려 들어가는 일이 많아지면서 생긴 말이다. 하지만 도심에서의 조류충돌은 채광과 전망, 조형미 등을 극대화하기 위해 최근 유리로 장식한 건물이 늘어난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유리 건물 주변에 나무나 숲, 조경수가 있으면 새들이 유리에 비친 녹지공간과 하늘을 실제로 착각하고 날다가 부딪힌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변 지형에 익숙한 텃새보다는 철새들이 주로 충돌한다고 한다. 부산야생동물치료센터 관계자는 "조류충돌이 주로 발생한 곳은 산, 바다, 강 등 자연과 인접했으면서도 유리창이 큰 건물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지난해 12월엔 겨울철새인 새매가 통유리로 된 태종대 전망대 식당에 부딪히기도 했다"고 말했다. 특히 부산 기장군에서 조류 충돌이 빈발했는데 통유리를 많이 사용하는 전원주택과 펜션이 많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화여대 자연사박물관 윤석준 연구원도 "교내 조류충돌 사례를 분석한 결과 봄, 가을에 철새가 90%이상이고, 텃새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돼 비행 경험이 적은 어린 새들이 많았다"고 설명했다.
조류충돌이 늘어나자 방지대책으로 맹금류 모양의 실루엣(버드 세이버ㆍbird saver)을 유리에 붙이는 아파트도 생겨났다. 강원대 야생동물구조센터장 김종택 교수(수의학)는 "2년 전부터 조류충돌이 자주 발생하는 산 주변 아파트 유리창에 버드 세이버를 붙이고 있다"며 "날아가던 새가 다른 새의 영역으로 착각해 접근을 막는 효과가 있다"고 했다. 일각에서는 건물 설계 단계부터 건물 미관도 살리고 동물의 생태학적 행동을 고려해서 설계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라는 얘기다.
-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