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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마가 떠난 자리ㅡ박인환 읽기 리은실

[인터넷료녕신문] | 발행시간: 2019.03.22일 09:16
목마가 떠난 자리ㅡ박인환 읽기

리은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 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벼웁게 부숴진다.

그러한 잠시 내가 알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것

?한때는 고립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보아야 한다

등대에 불이 보이지 않아도

거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거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 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거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 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ㅡ박인환 / 《목마와 숙녀》

그러니까 이 시를 처음 접한 것은 대학 2학년 어느 겨울, 자습실에서였다. 그저 외롭고 싶어 외롭던, 눈물을 흘리기 위해서는 배경음악이 필요했던 포즈만 커다란 한 문학소녀는 완전히 이 시에 매료되었다. ‘버지니아 울프’가 누구인지, ‘페시미즘’이 무엇인지 숙녀가 타고 떠난 것이 백마도 아니고 낙타도 아니고 왜 하필 목마여야 했는지 몰라도 괜찮았다. 이 시를 통째로 느끼는 데 그것들은 그다지 중요한 요소가 아니었다.

“술병 속에 별이 떨어진다"잖아, “세월은 가고 오는” 거라잖아,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리고 떠난다”잖아… 아, 슬퍼… 그거면 충분했다.

그 이후에도 나는 여름비가 내려서 감성적이고 싶은 날 밤이면, 와인 한 잔 하고 애수에 젖고 싶은 날이면 어김없이 이 시가 생각났다.

지금도 나는 가끔 식구들이 다 잠든 밤이면 작은 방에 우두커니 앉아 이 시를 소리내어 읊어본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거늘” 하는 구절을 입속으로 읊을 때면 당장이라도 울고 싶은 기분이다.

이 시에 대한 많은 평가들을 보면 대개 허무의식, 현대문명에 대한 비판의식으로 귀결된다. ‘경박한 겉멋’, ‘싼티나는 감상주의’, ‘값싼 유행의 숭배자’라고 혹평을 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박인환 스스로도 “내 시는 다 거짓말이야” 하며 자책하기도 한다. 가진 것 없으면서도 늘 스카프를 치고 중절모를 쓰고 다녔던 그의 화려함처럼 어쩌면 그의 시어도 과장된 화려함과 그런 허세가 곳곳에 숨어있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동시대를 살았던 전혜린이 그랬던 것처럼 박인환에게 위로를 해주고 싶다. 설사 언어의 빈곤과 생각의 깊이의 결여로 인한 경박이라 하더라도. 그 시 한 구절에 터지는 가슴을 위로받는 독자도 많다고…

대학 때 학교 기숙사 옆에서 자취하고 있었던 친구가 있었다. 멋쟁이었던 친구에게는 머리핀도 셀 수 없이 많았다.

어느 하루 친구 자취방에 놀러 갔더니 자기 악세서리 상자를 열어서 자랑하는 것이었다. 오색령롱한 악세서리들 속에서 유난히 굵은 빛을 뿜는 커다란 머리핀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포도송이 모양의 머리핀이었는데 커다란 자수정이 포도알인 듯 알알이 꽉 박혀있었다. 그 화려함은 그 상자 속 모든 악세서리들의 빛을 무색케 했다.

“이쁘긴 한데 너무 화려하네. 너 이거 머리에 꽂고 다니게?” 하고 내가 물었더니 친구가 그랬다. “아니, 달고 다니진 못할 것 같은데 너무 갖고 싶어서 샀어. 그냥 이렇게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이 돼.” 그날 우리는 한참동안이나 그것을 해빛 아래에서 요리조리 돌려보며 그 빛깔에 도취되였었다.

그로부터 몇 년 뒤, 갓 취직을 하고 대도시에서 박봉으로 꽤 어렵게 살던 때였다. 정말 예쁜 구두를 매장에서 보고 집에 왔다. 저녁에 자려고 누웠는데도 나는 그 구두가 눈앞에 아른거려 다음달 생활비 걱정을 하면서 거금(그때 나에게는 거금이었다.)을 치르고 그 구두를 사온 적이 있다. 하루 두 시간을 만원의 지하철에 꼿꼿이 서서 다녀야 하는 내가 신기에는 굽도 너무 높았고, 점잖기만 한 우리 회사 분위기에도 어울리지 않게 화려한 색깔이었다.

어느 하루는 신고 나갔다가 살이 다 벗겨지고 발이 퉁퉁 붓기까지 했다. 그 이후로는 한 번도 그 구두를 신은 적이 없다. 아직도 그 구두는 신발장 가장 높은 곳에서 영롱한 빛을 뿜는다. 나는 지금도 가끔 신발장을 열어 그 구두를 꺼내 한참씩 감상하고는 다시 넣어둔다. 소유 자체로 그 구두는 자기 가치를 다 하고 있다.

친구 악세서리 상자 속의 포도모양의 머리핀처럼, 내 신발장 안의 예쁜 구두처럼, 박인환의 시가 그런 존재라면 시에 대한, 이미 고인이 된 시인에 대한 모독이 될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내게 박인환의 시는, 문학의 효용성이니 메시지니 하는 것 따위를 잊게 만드는 존재이다. 그 내용 없는 아름다움이 좋다. 신고 다니는 제 기능을 아예 상실했지만 여전히 사랑스러운 내 구두처럼, 그리고 그냥 보기만 해도 마음 벅차는 머리핀처럼.

실제로 누군가의 비평처럼 그의 시는 죽음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지 못하고 리듬을 위해 일부러 필요없는, 아니면 필요없는 듯 보이는 많은 시어들을 장식처럼 치렁치렁 달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적어도 나는 그래서 이 시가 좋다. 그저 눈으로 읽는 것보다 소리내 읊어야만 직성이 풀리는 이 시는 근원을 알 수 없는 슬픔과, 대체 불가능한 몽환적인 분위기도 한몫하지만 편안한 리듬때문에 “그래, 이것이야 말로 시지.”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그런 감각적인 언어와 리듬때문에 더 ‘시’같아서, ‘시’ 아니면 아무것도 아닌 것인 것만 같아서 나는 이 시가 더 좋다.

이 시의 저자인 박인환은 멋쟁이였고 ‘댄디보이’였다고 한다. 주머니엔 일전 한푼 없었지만 외모로만 보자면 그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잘생긴 외모에 한껏 멋을 내고 당시 문인들의 아지트였던 명동의 술집에서 돈도 없이 외상으로 술을 마셔도 아무도 그럴 미워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늘 정장을 하고 스카프를 치고 중절모를 멋지게 쓰고 다니는 그의 뒤에는 여성팬들이 들끓었고 그는 늘 한껏 과장된 제스처로 시를 읊고 다녔다고 한다. 그렇게 자유롭게 여성들과 데이트를 즐기고 다녔지만 그는 의심할 바 없는 애처가였다니 몹시 아이러니하게 느껴지지만 그 주인공이 박인환이라면 수긍도 간다.

그는 여름에 마시는 술, 겨울에 마시는 술, 계절마다 마시는 술도 달랐다고 한다. 한여름에 두꺼운 정장차림에 명동에 나타나서는 “겨울이여 어서 오라, 여름은 허위고 거짓이다.” 하는 구절을 뽑아올리기도 했다고 한다. 또 어느 날은 허리띠가 달리고 발끝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긴 외투를 입고 나타나서 친구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단다. 그는 의기양양하게 “이게 바로 에세닌이 입던 외투란 말이야.”라고 말했다 한다. 잡지에서 자살하기 전 에세닌의 외투 입은 사진을 보고 그것을 본떠 미군용 담요를 뜯어 만들어 입은 것이었다.

그는 로맨티스트였다. 그의 이런 철없음과 허세가 좋다. 그것이 그대로 시에 드러나 장식 많고 겉멋 많은 시를 썼다는 사실도 좋다. 적어도 그는 문학과 일치하는 삶을 살았다는 증거가 될 터이니.

그는 자주 스스로를 자책했다. 자신의 시어가 너무 난해하고, 억지였다고, 친구인 김수영에 비해 자기는 비겁하고 허위적이라고 자책하기도 했다.

그럴지도 모른다. 그는 김수영처럼 자기의 슬픔과 고통을 직시하지 못했다. 그러기에 그는 너무 여린 사람이었다. 그리고 사람 좋고 철없어 보이는 그의 슬픔은 그 누구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외로운 슬픔이기도 했을 것이다. 여렸던 그는 차마 고통을 직시하지 못하고 슬픔의 부스러기들을 가볍게 으스러뜨려서 딱 그만큼의 가벼운 시를 썼다.

죽음의 징후를 알고 있었던지 그는 평소 숭배했던 시인 이상의 기일에 사흘 밤낮을 쉬지 않고 술을 마시고 알콜성 심장마비로 31년의 생을 마감했다. 가볍게 흩날려버렸던 슬픔의 덩어리는, 외면하고 방치해두었던 그 슬픔의 덩어리는 점점 커져 마침내 그를 잠식하고 만 것이다. 그다운 죽음이였을 것이다.

그러려고 그는 화려하게 멋을 내고 화려한 척 살았을지도 모른다. 요즘 말로 하자면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폼생폼사’였다.

그가 시에 썼던 것처럼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하”다면 그는 그렇게 허망하게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인생이 통속한 것을 참을 수 없었던 이상주의자였고 관념론자였다.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나는 박인환의 생애와 허망하게 가 버린 그의 코트자락을 이야기한다.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했”던 박인환처럼. 한 잔의 술을 마시고 나는 사랑스러운 나르시시스트였고 로맨티스트였던 그를 첫사랑을 추억하듯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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