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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행복은 한소장이 준것입니다》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2.08.18일 11:14
팔가자진사법소 한금준소장의 사적

석방인원 류국경의 가정을 찾은 한금준소장(가운데)

화룡시 팔가자진 사법소 소장 한금준(47살)은 다년간 형기만료 석방인원에 대한 안치공작을 참답게 진행하기 위하여 그들에 대한 교육과 방조를 결합하고 추적봉사를 착실히 하였는데 지역사회의 안정을 수호하고 석방인원들이 새로운 삶을 영위하도록 부축하여 좋은 성과를 거두고있다.

형기만료 석방인원들은 감옥이나 구류소에서 개조를 거쳤지만 사회와 주변사람들의 외면과 불신으로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기가 힘들고 불온정한 심리 때문에 쉽게 재범하여 감옥에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한금준소장은 2009년부터 2012년 상반기까지 44명의 석방인원들에게 책임전을 락실시키고 취업정보를 제공하는 외 기술강습, 심리자문 등을 통하여 따분한 감독교육을 인성화교육으로 전환시켜 석방인원들로 하여금 사회를 전면적으로 리해하고 사회의 따사로움을 느낄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였다.

형기가 만료되여 지난 2007년 4월에 석방된 화룡시 팔가자진 남구촌의 촌민 류국경(한족)은 형님과 함께 3무의 경작지에 의거하여 생활하였는데 일가 5식구의 생활형편은 말이 아니였다. 거기에 어머니가 병으로 늘 앓았는데 류국경이 외지에 일하러 가려해도 집사람들의 반대로 나갈수 없고 장사를 하려해도 밑천이 없어 시작할수 없었다.

하는수 없이 집사람들을 도와 농사일을 수걱수걱 하던 류국경의 머리속에는 진사법소의 한금준소장이 떠올랐다. 석방된 날부터 줄곧 자신의 일상생활과 사상개조를 관심해주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찾아오라고 늘 부탁하던 마음씨 곱고 믿음직한 한소장이였다.

2009년 3월의 어느날, 류국경은 한소장을 찾아 속심의 말을 터놓았다. (아무리 일해도 돈은 모여지지 않고 어머니 병치료할 돈도 모자라는 형편이다. 나이도 점점 많아지는데 이러다간 장가도 못 가고 총각으로 늙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한소장은 한숨섞인 류국경의 말을 끝까지 들어보고 앞으로의 타산에 대해서 물어보았다. 류국경은 친구들과 함께 서성세멘트공장의 하역작업을 하고싶은데 도급맡자면 5만원의 자금이 수요된다고 말하였다.

류국경이 돌아간후 한소장은 서성세멘트공장에 찾아가 정황을 료해하여 보았다. 확실히 하역작업을 도급주는데 잘만 하면 짭잘한 수입을 올릴수 있다는것이였다.

석방인원들의 고충을 헤아려주고 그들을 방조하여 새 사람이 되게 하는 외 그들로 하여금 행복한 삶을 꾸려가게 하는것이 바로 사법일군들의 책임이라고 생각한 한금준은 진농촌신용합작사의 책임일군을 찾아 사실정황을 이야기하고 대부금을 신청, 4월 20일에 5만원의 대부금을 쟁취하여 류국경이 순리롭게 사업을 시작하게 하였다.

지난 2년 반사이 류국경은 20여명의 일군들을 모집하여 해년마다 7개월간 매일 600~800톤의 세멘트 하역작업을 완성하였는데 지난해 8월에는 7만여원을 주고 살림집도 장만하였고 10월에는 친구의 소개로 아름다운 처녀와 결혼식까지 올렸다. 올해에 떡돌같은 아들까지 본 류국경의 얼굴에는 웃음이 떠날줄을 모른다.

《제가 열심히 살지 않으면 한소장한테 미안합니다. 저의 행복한 오늘은 모두 한소장이 준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저를 외면할 때 한소장이 친형제보다 더 두터운 사랑으로 저를 도와주었습니다. 당과 정부의 배려가 한소장과 같은 사람들의 노력으로 우리에게 전해지는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자가 만약 한소장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고 물었을 때 류국경은 《저도 모르겠습니다》 한마디로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오늘의 행복한 생활을 아끼고 소중이 여기는것으로 당과 정부의 배려에 보답할것이라고 말하였다.

올 7월에 석방된 리모(50세)씨는 룡산촌의 농민이다. 집에 돌아왔지만 돈도 없고 일자리도 없는데다 주변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해도 선뜻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8월초에 이런 사정을 알게 된 한금준소장은 진내 여러 기업들을 돌면서 리모의 정황을 소개, 끝내 일자리를 찾아주었다. 화장품통을 생산하는 그 기업의 책임자는 한소장에게 엄지를 내든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친척의 일자리를 알아보는 줄로 알았습니다. 꼬치꼬치 캐묻고 일하러 오는 사람을 잘 대해주라고 부탁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세집에서 홀로 생활하는 리모씨에게 텔레비죤을 가져다주는 한금준(왼쪽)소장.

한금준은 소장으로 사업한 지난 10여년간을 돌이키면서 석방인원들에 대해 한시도 시름을 놓은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도 재범하여 교도소나 감옥에 다시 들어가는 사람들을 볼때면 사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자책감에 밤잠을 설친다고 한다.

올 년초에 석방된 왕모씨가 한소장이 알선해준 직업이 월급이 낮다고 찾아왔을 때 한소장은 류국경을 떠올렸다. 하역일군들이 하는 일은 힘들지만 월급은 5000원 좌우로 꽤 높은 편이였다. 한소장을 은인처럼 생각하는 류국경이 거절할리 없었다. 하지만 한소장이 왕모씨를 다시 찾아갔을 때 왕모가 동네집 물건을 훔쳐 다시 구류소로 들어간 후였다. 불과 3일사이에 벌어진 일이라 한소장은 자기의 소홀함을 얼마나 후회하였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노력은 알찬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한금준소장이 이끄는 팔가자진사법소는 2007년에는 길림성사법행정계통 《3가지 쟁취》활동에서 《선진사법소》로, 2009년에는 《길림성규범화사법소》로 평의되였다.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련속 3년간 화룡시당위와 정부로부터 《선진집체》와 《우수단위》로 표창받았고 한금준소장은 각급 정부로부터 《선진공작자》, 《선진개인》의 영예를 받아 안았다.

한금준 소장은 자기가 한 일에 비하면 너무나 큰 영예들이라고 하면서 당과 정부가 맡겨준 일을 더욱 착실히 하는것으로 보답하겠다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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