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성세희 기자]['비리 백화점' 김광준 검사, 검찰이 스스로 쳐낼 수 있을까]
↑(서울=뉴스1) 오대일 기자= 수억 원대 뇌물수수와 알선수재 혐의를 받고 있는 김광준(51) 서울고검 부장검사가 19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으로 출석했다.
호화캐스팅이다. 주인공은 검사, 조연은 대기업 대표를 비롯한 임직원과 다단계 사기꾼, 전 국정원 직원 부부와 속칭 '스폰서'까지. 지난 8일 세상에 드러난 김광준 서울고검 형사부장판사(51) 비리는 꼬리에 꼬리를 물며 터졌다. 지금까지도 특임수사에 의해 가려진 채 '현재진행형'이다.
국민이 부여한 권력인 수사권을 무기로 범죄자 잡는 검사가 스스로 범죄의 나락에 빠졌다. 김 검사는 부산지역 사업가 최모씨(57)에게 '부당거래'에 사용할 통장을 빌렸다. 경찰에 따르면 실명제법을 무시하며 '차명계좌'를 통해 돈을 받고,'기록이 남는' 수표로 뇌물을 받는 혐의까지 받는 등 대담함까지 갖췄다.
김 검사 비리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오르자 검찰은 곧바로 제 식구 감싸기에 나섰다. 수사 지휘권을 앞세워 경찰의 '손발'을 묶고 '비리를 척결'하겠다고 공언하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조희팔 차명계좌 뒤지던 경찰 "심봤다"
경찰은 다단계 사기로 숱한 서민들의 피눈물을 흘리게 한 '희대의 사기꾼' 조희팔씨(55)의 은닉자금을 추적했다. 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는 차명계좌 700여개에 분산된 780억원 규모의 은닉자금을 찾아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김 검사가 나타났다. 경찰은 조씨 차명계좌 실사용자를 찾기 위해 CCTV(폐쇄회로TV) 화면을 확보해 조사하던 중 김 검사를 발견했다. 경찰은 김 검사가 관리하던 사업가 최씨 차명계좌 거래내역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차명계좌 추적 결과 김 검사는 약 3조5000억원을 챙긴 다단계 사기꾼 조씨 측근과 유진그룹 등 기업 관계자에게 거액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노다지'를 캐낸 경찰은 유진그룹이 차명계좌로 뭉칫돈을 약 6억원 송금한 사실을 발견했다. 김 검사는 유진그룹 측에 전세자금을 빌렸다고 해명했다 차용증을 쓰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입을 다문 것으로도 수사 결과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김 검사는 소속팀이 납품비리 의혹을 수사하던 기업과 외유성 국외여행을 다녀왔다.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재직하던 2008년 KT 자회사인 KTF 임원과 중국 마카오 여행을 다녀온 혐의도 받고 있다. 유진그룹 내부정보를 이용해 주식차익 2억원 가량을 올리기도 한 의혹도 사고 있다.
◇특임검사 "의사가 간호사보다 더 잘해" 검·경 갈등 재현
'정의를 수호'하는 검사가 범죄자 뺨치는 비리를 저지르자 검찰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김 검사가 저지른 비리내역이 드러나자 검찰은 부산하게 움직였다. 대검찰청은 9일 김수창 특임검사(50)를 임명해 수사에 착수했다.
김 특임검사는 임명되자마자 구설에 올랐다. 김 특임은 지난 11일 "검사가 경찰보다 낫기 때문에 수사지휘 하는 거 아닌가"라며 "의학적 지식은 의사가 간호사보다 낫지 않느냐"라고 반문해 파장을 일으켰다.
일선 경찰은 검찰이 수사를 '빼앗자' 일제히 반발했다. 전국 일선 경찰관 60여명은 지난 16일 오후 8시20분부터 세종시 인근에 모여 '밤샘토론회'를 벌였다. 이 자리에서 경찰은 "검찰은 의사 아닌 장의사"라며 "죽은 권력만 상대하는데 스스로 비리도 못 쳐내는 집단이 의사나 간호사 운운할 자격이 있느냐"고 성토했다.
경기 화성 서부경찰서 소속 조성신 순경(30)은 토론회가 열린 날 유튜브에 영화 '타짜' 일부 장면을 편집해 특임검사 임명을 비꼬는 동영상을 올렸다. 조 순경은 영상에 '검찰이 비리를 스스로 조사하겠다며 제 손 자르기를 천명했다'는 자막을 넣었다.
'간호사' 경찰은 '의사' 김 검사가 저지른 추가 비리를 밝혀냈다. 경찰은 김 검사가 대구지검 서부지청 차장검사로 재직할 당시 전 국정원 직원 안모씨(59) 부인 김모씨(51·여)가 수사 무마 명목으로 5000만원을 건넨 사실을 확인했다. 또한 김 검사가 부산 대형 회센터 건설사업 고소사건에 연루된 김씨를 무혐의 처분 내린 정황도 포착했다. 김씨는 실형을 선고받고 옥살이를 했지만 법원에 보석 신청을 하고 풀려났다.
◇검찰에 넘어간 공…김 검사 비리가 더 드러날까
경찰과 검찰이 동시에 김 검사를 수사하면서 '이중수사' 논란이 커지자 김황식 국무총리가 경고를 내렸다. 검·경은 지난 15일 수사협의회를 열었지만 시각차가 커 성과 없이 끝났다. 양측은 이날 김 검사 수사여부를 놓고 사전 의제조율이 없는 상태라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차만 확인한 자리였다.
뒤늦게 수사에 뛰어든 검찰은 속도를 올렸다. 김 특임 측은 김 검사가 2006년 의정부지검 형사5부장검사로 재직할 당시 중견 건설업체 신도종합건설에서 금품을 받은 사실을 추가로 수사 중이다. 또한 업체가 남양주 마석지구에 아파트를 건설할 때 김 검사에게 분양권을 내준 정황도 포착했다.
경찰은 '이중수사'로 인권침해 등 수사상 문제점이 발생하자 김 검사 실명계좌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지만 지난 16일 기각됐다. 경찰청 관계자는 "영장 기각사유가 소명자료 부족이란 취지로 나왔으니 검찰 지휘를 따를 수밖에 없다"며 "경찰 수사 중인 사안이 드러난 뒤 사실상 (특임검사 측에) 모두 넘어갔다고 본다"고 말했다.
특임 팀은 김 검사 유진그룹과 사기꾼 조씨 측근 등에게 거액을 받은 혐의(뇌물수수 등)로 법원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서울중앙지법 이정석 영장전담판사는 19일 오전부터 김 검사에 청구된 사전구속영장 실질심사를 진행 중이다.
경찰은 새로운 제보나 첩보가 오기 전까지는 손쓰기 어려운 형국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검찰이 영장 청구 독점권을 가지고 강력한 수사력을 바탕으로 자기들이 수사 주도하면 경찰 수사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면서도 "기초 수사를 오래했고 참고인 조사도 마쳤으니 추후 특임 수사를 우리 자료와 검토하고 새로운 제보나 첩보가 들어오면 다시 수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