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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620원 더 벌려…1시간 거리 고물상까지 리어카 끈다

[기타] | 발행시간: 2012.12.31일 20:24

인생의 황혼녘을 맞은 조아무개(79)씨가 27일 오전 손수레에 폐지를 가득 실은 채 서울 강서구 마곡동 ㅎ고물상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떼고 있다. 손수레 뒤를 따르는 부인 양아무개(78)씨와 조씨는 늘 함께 다녀 고물상 사람들은 이들을 ‘부부 리어카’라고 부른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2013 기획 격차사회를 넘어

밀려난 삶의 공간 ① 고물상

폐지줍는 이학선씨

중동 현장 누비던 산업역군

외환위기 충격속 병마 덮쳐

생활고 짓눌려 고단한 나날

한국 사회에서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 사이의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는 동시에 굳어지고 있다. 양극화의 거대한 흐름에 밀려 삶의 사다리에서 미끄러진 이들은 배제된 공간에 둥지를 튼다. <한겨레>는 익숙한 듯하면서도 낯선 그곳에 돋보기를 들이대고 격차사회의 해법을 모색해본다. 첫번째 공간은 남루한 물건과 인생이 모여드는 곳, 고물상이다.

고물은 쓸쓸함이다. 태어날 때부터 고물이 있을까. 한때는 누군가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았을 밥그릇과 물병, 책도 쓰다 보니 낡고, 그러다 보니 고물이 됐을 뿐이다. 고물상은 그래서 식어버린 열정의 집합소다. 고물을 고물상으로 실어나르는 인생도 고물의 처지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부르르∼릉.

‘오토바이 투’의 가벼운 엔진소리가 때이른 동장군에 얼어붙은 고물상의 아침을 깨운다. 지난 12월21일 아침 8시45분 서울 강서구 마곡동 ㅎ고물상 입구에 들어선 이학선(66)씨의 120㏄ 오토바이 짐칸에는 폐지가 가득 살려 있다. 오토바이 배기구와 이씨의 마스크는 동시에 뜨거운 김을 연신 토해냈다. ‘오토바이 투’는 오토바이로 폐지를 실어나르는 노인 가운데 아침에 두번째로 출근하는 이씨에게 고물상 직원들이 붙여준 별명이다. ‘오토바이 원’은 이미 1시간 전에 다녀갔다.

뜨거운 커피 한잔이 그리울 법한 날씨인데도, 이씨는 “오늘은 금요일이니까…. 담배나 피워야지, 이게 보약이야”라며 거절했다. 월·수·금요일은 그가 혈액 투석을 받으러 병원에 가는 날이다. 투석 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다. 이씨가 왼쪽 팔뚝을 걷어 마치 작은 소시지 하나를 피부 아래에 밀어넣은 듯 불뚝 튀어나온 흉터를 보여줬다. “15년 동안 계속 주삿바늘 찔러 혈관이 뭉친 거래. 투석할 때마다 아프고 힘들어. 기운도 없고 다리에 쥐도 나고 그러지 뭐.”

이씨는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의 충격파에 휘말리던 1997년 말 만성신부전증 판정을 받았다. 서울 양재동의 한 아파트 보일러실에서 일하던 때다. 그보다 10년 전, 이씨가 중동의 공사현장을 드나들며 10여년째 달러벌이에 몰두하던 1987년은 한국 경제도 ‘3저(달러·유가·국제금리) 호황’의 단물을 빨았던 때다. 배관기술자인 그는 많을 때는 한달에 1200달러까지 받았던 기억이 아직도 또렷하다. 산업화의 역군은 이렇게 국가경제와 흥망을 함께해왔다.

60대 임야순 할머니

멀지만 ㎏당 20원씩 더 쳐주니

빙판길 운전도 대수롭지 않아

한달이면 1만8600원이나 돼요

폐지를 고물상 바닥에 다 부린 이씨는 다시 출발 채비에 나섰다. 홀로 사는 가양동 11평 임대아파트로 돌아가는 길에 빈 박스와 폐지를 거둬들여야 그는 내일 아침 여기에 또 돈 벌러 올 수 있다.

부르르~릉.

폐지 145㎏을 가져온 대가로 1만3500원을 손에 받아든 이씨의 세 발 달린 오토바이가 다시 희뿌연 김을 내뿜으며 골목길을 내달렸다.

‘오토바이 투’ 이학선씨의 어릴 적 기억은 화려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조국근대화 사업을 벌이던 때 이씨의 아버지는 서울 명동 거리를 양복 입고 넥타이 매고 활보했다. 잘나가던 ㅊ제화 공장장으로, 당시 한국에서 손꼽히는 구두기술자였다. 그러다 이씨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즈음 아버지가 돌아가시며 가세가 기울었다.

군에 들어간 그는 1년 동안 비둘기부대 소속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미군이 인체에 치명적인 고엽제를 그렇게나 많이 베트남 밀림에 갖다 부었다는 사실은 한참 뒤에야 알았다. 이씨가 1992년 뇌경색으로 쓰러지고 5년 뒤 만성신부전증에 걸린 데 이어 녹내장으로 왼쪽 시력을 잃기까지, 고엽제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래도 나라가 그를 국가유공자로 인정해 한달에 70여만원씩 주니 고맙다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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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신정자 할머니

새벽 4시반이면 길에 나와

차곡차곡 폐지 도로에 쌓아요

언제까지 못살아야 할지…

■ 하늘엔 영광, 땅엔 노동 맹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23일 낮 12시가 다 된 즈음 ‘오토바이 투’가 다섯살 연상의 신정자(71)씨를 보조의자에 태우고 ㅎ고물상에 들어섰다. 신씨는 이씨의 ‘고물 파트너’다. 이씨가 몸이 좋지 않아 많이 돌아다니지 못하는 탓에 임대아파트 옆 동에 사는 신씨가 수집 일을 주로 한다. 오로지 몸을 쓰는 노동만이 부가가치를 생산하는 고물의 세계에서 나름 일궈낸 협업체계다.

평소 고물상에 올 일이 없는 신씨를 불러낸 건 이 고물상 윤석건(44) 사장이다. 윤 사장이 가입한 고물상단체 ‘고물연합’ 회원들이 돌아가며 고물 줍는 노인들을 모시고 점심식사를 대접하는 행사가 이날 ㅎ고물상 2층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에는 60여명의 노인과 고물상 인근 장애인시설의 장애인들이 찾았다. 신씨도 여느 참가자들처럼 주최 쪽이 제공한 라면 10봉지들이 한 상자를 옆구리에 끼고 돌아갔다.

신씨를 다시 만난 건, 땅에는 평화, 아이들에게는 산타가 찾아온다는 24일 새벽 6시 가양동 임대아파트 입구였다. 새벽 4시반에 나온 그는 이미 고정적으로 박스를 대주는 채소가게와 인근 상점에서 폐지를 가져다 차곡차곡 도로변에 쌓고 있었다. 그는 매일 새벽을 이렇게 연다.

조그만 고철통에 지핀 곁불을 쬐는 그도 다른 고물 노인들처럼 ‘걸어다니는 병동’이다. 2년 전 봄 경기도 김포에 나물 뜯으러 갔다가 갑자기 쓰러진 뒤 심장혈관 확장 수술을 받았고, 당뇨 진단도 받았다. 수술 뒤 퇴원해보니 인공심장박동기를 달고 살던 옆집 할머니는 그새 숨져 장례까지 끝난 뒤였다며 신씨는 한숨을 지었다. “주변에 이런 병 가진 사람 많아. 세상이 어떻게 되려나. 잘사는 사람은 갈수록 더 잘살고 못사는 사람은 계속 못살아야 하니….”

신씨는 자식을 넷이나 두고도 국민기초생활수급자다. 시집간 두 딸은 먹고살기 힘들고 막내 아들은 중3 때 뺑소니차에 머리를 심하게 다친 뒤 30여년째 장애인시설에 머물고 있는 탓이다. 따로 사는 큰아들이 낳은 손자, 81살 된 남편과 14평짜리 임대아파트에 사는 그가 답답함을 털어놨다. “50만원 나오던 수급비가 재작년 손주 녀석 군대 갈 때부터 절반으로 뚝 잘렸어. 올해 7월 제대하고 지금까지 직장도 못 잡고 있는데 말야. 병원은 만날 가야 하고, 의료보험 적용 안 되는 약이 아직 많잖아. 사람은 3명이 2명으로 줄었는데 수급비는 왜 절반이 되냐고.”

■ 고물은 곱셈의 예술이다 고물을 팔러 오는 이들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 바로 ‘바닥 저울’이다. 고물상 정문 바로 안쪽에 매립돼 있는 저울은 4.5t 트럭도 거뜬히 올라갈 만큼 크다. 손수레든 오토바이든 트럭이든 고물상에 들어오는 모든 운송수단은 일단 무게를 달아야 한다. 짐을 다 내려놓고 나갈 때 잰 무게와 들어올 때 잰 무게의 차이가 바로 그날의 수입이다. 고물의 세계에서는 ‘킬로그램’이 돈이다.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린 이번 겨울, 지난 21일 오전 11시20분께 함박눈을 뚫고 임야순(62)씨가 폐지를 가득 담은 카트를 끌고 고물상에 들어섰다. ㎏당 90원씩 쳐주는 박스를 31㎏ 싣고 왔다. 서울 등촌동 임대아파트에 사는 임씨는 2850원을 손에 넣기 위해 옆집 박희숙(가명)씨와 함께 1시간을 걸어 왔다고 했다. 여기보다 훨씬 가까운 동네 고물상이 있음에도 굳이 ㅎ고물상을 찾은 까닭은 단가 차이 때문이다. ㅎ고물상이 동네 고물상보다 ㎏당 20원을 더 쳐준다. 더 먼 길을 걸어온 대가로 임씨는 620원을 더 벌었다.

박씨가 끌고 온 손수레에 임씨의 카트를 싣고 ㅎ고물상에서 등촌동까지 대신 끌어보았다. 눈 쌓인 도로는 미끌거렸다. 맨 끝 차선에서 힘겹게 나아가고 있는 손수레를 피해 자동차들이 아슬아슬 스쳐 추월하다보니, 끊임없이 불안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선택하지 않을 듯한 이 행동을 윤 사장은 곱셈의 원리로 설명했다. “하루 620원을 한달 동안 계속 받으면 1만8600원인데, 이게 노인들에게는 적지 않은 돈”이라는 것이다.

임야순씨는 다음날에는 폐지와 빈 생수병을 싣고 두번이나 빙판길을 왕복하는 ‘모험’을 마다지 않았다. “돈만 한 움큼 쥐여달라”는 임씨 손에는 이날 3000원이 쥐어졌다. 34살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사는 임씨는 기초생활수급비에다 취로사업에 나가 일한 대가까지 포함해 정부에서 한달에 40여만원을 받는다.

매일 새벽 6시30분께 아직 문을 열지도 않은 ㅎ고물상에 와서 지키고 있는 ‘오토바이 원’ 김청평(75)씨도 곱셈의 원리에 충실하다. 집이 인천 계양구 ㅇ초등학교 부근인데도 중간의 여러 고물상을 제쳐 놓고 여기까지 온다. “여기가 10원이라도 더 주니까”라는 게 이유다. 하루 기름값이 5000원인데 가까운 고물상 가서 기름값 2000원 아끼는 것보다 폐지값 3000원 더 받는 게 이익이라는 계산이다. “고생스러워도 이게 내 직업이니까 하는 거지. 어딜 가도 나이 먹었다고 일도 안 시켜주니까.”

무게가 돈이다 보니 때로 고물을 가져오는 이와 고물상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한다. 폐지 사이에 무게가 나가는 이물질이 끼어 있거나 폐지가 눈이나 비를 맞아 물기를 흠뻑 머금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때는 고의성이 문제가 되기도 하는데, 이런 부분을 고려한 돈계산이 이뤄진다.

한 고물 수거 노인이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강서구 마곡동 ㅎ고물상에서 폐지가 가득 담긴 리어카의 줄을 풀고 있다. 노인과 리어카가 선 자리의 바닥에 장치된 저울에서 무게를 잰 뒤에야 짐을 부릴 수 있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40대 이정근씨

치매노모 모시며 결혼도 안해

강남 유흥가 골목서 고물 수집

종종 구역다툼 심하게 나요

■ 고물에도 등급이 있다 고물상은 이 세상 모든 물건의 집합소다. 어디선가 봤고 썼을 법한 물건은 다 들어온다. 성분으로 보면, 이곳에서 ‘물랭이’라고 불리는 플라스틱류와 철 종류, 스테인리스류, 알루미늄·구리 같은 비철류, 폐지 등이다. ㎏당 단가가 최고 8000원에 이르는 구리는 물론이고, 그게 그것인 것 같은 알루미늄도 양은냄비부터 자동차휠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단가도 물론 다르다. 스테인리스도 크롬 함량에 따라 등급이 나뉜다. 종이도 재활용 정도에 따라 단가가 다르다. 박스 종류가 가장 싸고 그 위가 신문지다. 광고지나 책 등은 값을 가장 많이 쳐준다. 이 모든 것이 버려지는 게 아니라 고물상을 거쳐 어디론가 가서 재활용되지만 사람들은 그냥 고물 혹은 폐기물이라고 부른다.

고물에 등급이 나뉘듯 고물을 가져오는 사람도 운송수단에 따라 계급이 나뉜다. 제일 아래가 카트이고 바로 위가 손수레다. 그 위에 오토바이가 있고, 1t 트럭이 최상위권을 차지한다. 주로 할머니들이 이용하는 카트나 유모차는 폐지를 얼마 싣지 못하는 탓에 고물상에 한번 오가는 비용 대비 수익이 낮다. 반면 트럭은 싣고 싶은 만큼 실을 수 있다.

‘1t 리어카’ 정영배(56)씨는 예외적인 경우에 속한다. 손수레에 주로 폐지를 싣고 오는데, 1t 트럭보다 많은 짐을 싣는다고 해서 ‘1t 리어카’라는 별명이 붙었다. 이 고물상에서 3년째 일한 60대 후반의 김정대 부장은 “실제 1t 트럭이 폐지를 400㎏ 이상 싣고 오는 경우도 많지 않은데, 정씨는 리어카에다 500㎏ 이상 싣고 온 적도 있다. 게다가 정씨는 무게를 절대 속이지 않는 정직한 사람이다”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씨의 몸 상태를 알고 나면, ‘1t 리어카’의 괴력은 믿기지 않을 정도다. 건축 일을 하던 정씨는 서른네살이던 1988년 12월8일 경기도 안양의 건물 철거작업을 하다가 3층 비계에서 떨어졌다. 그 사고로 정강이뼈가 다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는데, 무심한 병원이 결핵 환자와 같은 방을 쓰게 하는 바람에 정씨까지 감염됐다. 결국 정씨는 늑막 한쪽을 못쓰게 됐고 추락의 후유증이 허리까지 번져 철심을 12개나 박고 산다. 양쪽 귀의 청력까지 안 좋아져 일상적인 대화도 쉽지 않다. 부정맥과 전립샘 비대증까지 괴롭힌다.

취로사업에 일 나가는 부인, 직업을 구하지 못한 아들과 함께 93년부터 가양동의 11평짜리 임대아파트를 얻어 사는 ‘1t 리어카’에게 우리 사회는 참 불공정한 곳이다. 산업 현장에서 열심히 일하다 재해로 몸을 제대로 못쓰게 된 자신에게 국가는 정당한 보상을 해주지 않고 있다. “민주주의 운동 한 사람은 보상해주는데, 왜 나처럼 일 열심히 하다 다친 사람은 보상이 없는 거죠? 삼청교육대 갔다 온 사람들도 다 보상해주잖아요. 내가 이 나이에 몸이 멀쩡하면 왜 고물을 하겠냐고요. 수급비 나오는 것으로는 세 식구 생계가 안 돼요.”

■ 없는 자들의 전쟁 고물이 곧 돈이 되는 시대이다 보니 고물을 서로 가져가려는 다툼도 치열하다. 1t 트럭을 몰고 저녁 7시께부터 새벽 2~3시까지 서울 강남의 상가와 유흥가 골목을 다니며 폐지와 고철, 물랭이, 옷가지 등 각종 고물을 수집하는 이정근(47)씨는 미혼에다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고 산다. 그는 “고물은 타이밍이 중요하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고물은 먼저 발견한 사람이 임자이기 때문에 물건이 나올 시점을 잘 잡아 때맞춰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다. 이씨는 “고물을 두고 종종 구역다툼이 나기도 한다”고 전했다. ‘오토바이 투’도 “길거리에 잘 쌓아 놓은 폐지는 누구 것인지 아니까 손 안 댄다. 그거 가져가다 걸리면 죽는다”고 말했다.

노부부가 함께 리어카를 밀고 다니다 ‘부부 리어카’라는 별명을 얻은 남편 조아무개(79)씨와 부인 양아무개(78)씨는 지난 24일 오전 11시10분 손수레에 폐벽지를 잔뜩 싣고 ㅎ고물상에 나타났다. 그들은 “도배일 하는 아는 사람이 줬다”며 뜯어낸 벽지 여러 묶음을 폐지 칸에다 던져 넣었다. 양씨는 커피 한잔 마시고 돈도 받으려 고물상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얼굴을 붉혔다. 활동 무대인 가양1동에 웬 젊은 고물수집인이 나타나 ‘부부 리어카’의 구역을 침범하고 있다는 불만이었다. 이 바닥의 질서를 지켜야 하지 않느냐는 투정이다. 누군가는 지저분하고 귀찮다며 버리는 폐기물이 노인들에게는 이미 서로 다투고 빼앗아야 할 재산이다.

없는 자들의 전쟁은 반대 영역에서도 펼쳐진다. 폐지를 주워다 고물상에 팔기 전까지 임대아파트 복도나 계단에 쌓아놓으려는 노인들과, 지저분하니 이를 치우라는 다른 주민들과의 숨바꼭질도 숨가쁘게 펼쳐진다. 임야순씨는 “아파트 복도에 폐지를 쌓아놨는데, 누가 신고해서 관리사무소에서 나보고 ‘치우라’며 찾아온 적도 있다”고 말했다.

80대 차복례 할머니

대장암 수술 후유증 시달려

2~3일에 한번밖에 일 못해

남편 부조금으로 병원비 충당

■ 마지막 재활용 ㅎ고물상에서 멀지 않은 가양2단지 임대아파트에 혼자 살며 2~3일에 한번씩 고물 수집일을 하는 차복례(81)씨는 1년 전 큰 수술을 받았다. 국립암센터에 갔더니 대장암이라고 했다. 수술 후유증으로 계속되는 설사에 밥을 잘 못 먹었더니 몸무게가 40㎏으로 3㎏이나 줄었다. 23일 고물상에서 열린 점심행사 때도 신씨는 바나나 조각 달랑 3개만 먹었을 뿐 멸치육수로 끓인 잔치국수에는 손도 대지 않았다.

차씨는 최근 가슴 통증에 계속 시달렸다. 정형외과와 내과를 거쳐 지난 28일 보라매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잘 못 먹어서 빈혈이 왔다”고 했다. 그는 30일 “의사가 처방한 약을 먹었더니 조금 속이 좋아졌다”며 웃었다. 두달에 20㎏들이 쌀 한포대를 받고도 다 먹지 못하던 차씨는 죽이 아닌 밥을 지어 먹을 수 있을까. 복지관에서 받아와 한참 동안 냉장고에 처박혀 있던 김장김치는 꺼내 먹을 수 있게 될까.

한달에 38만9000원의 기초생활수급비를 받는 그는 대장암 수술 뒤 의료보험 혜택을 받고도 본인부담금과 2~3인실 입원비 등으로 모두 400여만원을 냈다. 인천에 살고 있는 외아들도 두 자식을 키우는 처지라 손 벌릴 계제가 못 된다.

“내가 돈이 어딨어. 2년 전 우리 할아버지 88살로 돌아가실 때 받은 부조금 모아 놓은 걸로 병원비 했지.” 먼저 간 이의 노잣돈은 이렇게 고물상 노인의 삶을 위해 재활용됐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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