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사회 > 사회일반
  • 작게
  • 원본
  • 크게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만일 당신이라면?

[기타] | 발행시간: 2013.03.27일 09:13
툭. 툭. 투두둑. 쏴아 - 하늘의 구름이 가르마처럼 열렸다. 구름의 경계 사이로 비가 와르르 쏟아지기 시작했다. 소나기인 줄 알았던 비는 1~2시간이 지나도 그칠 줄 몰랐다. 결국 촬영현장에서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우르릉 쾅쾅. 천둥도 가세했다. 차에 급히 오른 우리는 1시간 넘게 걸리는 숙소까지 빗길을 미끄러지듯 달려야만 했다.

온통 어둠인 가운데, 차 라이트 앞으로 길가의 사람들이 희미하게 보였다. 우산을 쓴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로지 온몸으로 장대비를 맞으면서 휘청대고 있을 뿐. 거대한 자연의 힘 앞에서 흡사 콩나물 줄기처럼 이리 휘청, 저리 휘청대며 어떻게든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눈앞에 있었다. 머리 위에는 그날 거둬들인 식량인 듯한, 제 몸 만 한 짐 더미가 위태롭게 올려져 있다.

자기 키를 훌쩍 넘는 나뭇짐이 담겨있는 자전거에서도 나무들이 부서져 나와 빗속에서 처량하게 날아가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비포장 황톳길도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차가 달리던 길은 사라졌다. 하지만 그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지옥’이 있다면, 여기일까 싶었다. 지난 주 아프리카의 작은 나라 말라위에서 내가 본 풍경 이다.

아침엔 날이 개었다. 대체 언제 천둥이 내리쳤냐는 듯 맑게. 현지인들은 우기 때는 매일 이런 날씨의 반복이라고 했다. 스콜답게 전쟁처럼 내리는 밤비와 낮에는 조용히 작열하는 태양. 태양은 오전 내내 내리 쬐더니 길을 바싹 말려놓았다. 열기는 몇 개 안되는 마을의 수원(水原)인 웅덩이마저도 덥혀놓았다. 더위에 목을 축이려고 나온 소떼들이 몰려왔다. 한쪽에서는 소들이 물속에서 반신욕을 하고 있고, 한쪽에서는 뜯어먹은 풀을 소화시켜 똥으로 쏟아낸다. 미지근한 물 위에는 모기들이 알을 잔뜩 낳아놓았다. 한눈에 봐도 물은 시커멓고 더럽다.

백시원 SBS 교양국 <희망TV> PD


잠시 후, 동네의 여인들이 제각기 머리에 플라스틱 물통을 들고 온다. 그리고 풍덩 웅덩이에 담근다. 소의 침, 배설물, 거죽의 찌꺼기, 모기, 파리, 흙이 혼연일체가 된 물이 물통에 채워진다. 여인들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물동이의 무게를 이겨가며 집으로 물을 떠간다. 밥을 하고, 설거지를 하고, 목을 축인다. 나는 그 옆에서 조용히 카메라를 돌리는 수밖에 없었다. 아프리카 말라위에서 내가 본 풍경 둘.

밤이 어두워졌다. 말라위는 전기보급률이 세계 최하위인 국가 중 하나다. 도시에서도 불을 보기가 힘든데, 이런 시골에서 빛을 본다는 건 말도 안 된다. 어둠이 내리고 나니, 정말로 상상도 못했던 어둠이 눈앞에 드리운다. 휴대폰 조명도 켜보고, 손전등도 켜보지만 바로 지척에 있는 것만 보이지 그 이상의 것은 가늠할 수 없다. 손전등마저 꺼버린 후 서로에게 몸을 의지해서 앞으로 나아가보지만, 온통 어둠뿐이라 소용이 없다.

넘어지고 까지며 가까스로 집 하나를 찾아 들어간다. 그곳에선 여인이 밥을 짓고 있다. 하지만 부엌에 들어서는 순간, 목이 콱 막힌다. 온 부엌 안이 연기로 가득 차 있다. 이곳의 가옥들은 굴뚝이 없어서 연기가 온 집안을 가득 채운다. 아이들은 간헐적으로 콜록거리지만, 어른은 이미 수십 년의 세월에 익숙해진 듯 눈도 꼼짝 앉는다. 화생방 훈련 받는 훈련병마냥 눈과 코가 벌개져 끝도 없이 콜록거리는 건 촬영팀인 우리뿐인 듯하다. 말라위에서 내가 본 풍경 셋.

3주간 아프리카 말라위에서의 촬영을 마치고 왔다. 여느 모금방송처럼 이곳의 어려움을 보고 눈물을 쥐어짜내기보단 뭔가 ‘돌파구’를 찾고 싶었다. 그 속에서도 ‘희망’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적정기술(현지의 인프라를 이용한 현지에 적당한 수준의 기술)’이라는 ‘무기’를 들고 갔다. 하지만 직접 마주한 현실은 상상했던 것보다 열악했다. 특히 당장 손쓸 수 없는 상황에서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병원에는 영양실조를 앓는 아이들이 기운 없이 늘어져 있었다. 눈빛은 나도, 카메라도 아닌 허공을 헤매었다.

마을의 아이들은 12시에 학교에서 돌아오면 온종일 담뱃잎을 손질했다. 담뱃잎을 만지작거리던 13살 소녀는 “이 담배가 어디에 쓰이는지 아니?”라고 물으니, 전혀 모른다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다국적 기업에게 사들여져 선진국의 소비자들에게 팔려나가는 담배의 효용조차 모른 채 하루 종일 일하는 아이들이 태반이었다. 시장에서의 인프라도 형편없기는 마찬가지였다. 신발이며, 전등까지 싸구려 중국산이 모든 걸 장악했다. 2차 산업은커녕 가장 기본적인 수공업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었다. 다국적 기업을 위해 뼈 빠지게 일해 중국산 제품을 사고, 깨끗한 물 한 잔 조차 제대로 마실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어떤 ‘희망’을 얘기해야 할까 많이 망설여졌다. 위에 열거한 세 가지 풍경 가운데 서서 나는 매번 스스로에게 물었다. 만일 나라면, 이 물을 마셨을까. 이 길 속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이 연기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만일 나라면 이 상황을 돌파해낼 수 있었을까. 나라면, 못했을 것이다. 여전히 자연의 힘은 위대하고, 살아온 방식의 관성을 고칠 만큼 외부와의 접촉도 없다. 그런 상황에서 ‘우리’가 희망이 될 수 있을까? 솔직히 아직도 의구심이 든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지난 수 십 년간 단 한 번도 이런 생각을 못해왔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온 나조차도 ‘완벽한 타인’이었던 그네들에 대해 ‘나라면?’이라는 고민을 처음 시작하게 됐다. 시청자라고 해서 크게 다를까. 우리 모두에게 있어서 그들은 늘 ‘시야 밖’의 존재들이었으니까. 다만, 이번 방송에서는 확실하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이라면?’ 이 물음에 우리는 얼마나 확신을 갖고 답할 수 있을까.

미디어오늘 백시원 SBS 교양국 <희망TV> PD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 길림일보사와 한국강원일보사, 전략적 협력 협정 체결 5월17일, 길림일보사와 한국 강원일보사는 한국 강원도에서 친선관계 체결 30주년 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을 체결, 쌍방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올해는 길림성과 한국 강원도가 우호적인 성도(省道)관계를 수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지력장애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다

지력장애인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다

취미유희 운동회 한장면 5월19일 34번째 전국 장애자 돕기의 날(매년 5월의 세번째 일요일)을 맞이해 연변지력장애자협회에서는 15일부터 16일까지 연길 오렌지호텔에서 기념행사를 벌였다. 올해의 장애자 돕기 행사는 ‘과학기술로 행복을 함께 누리자’를 주제로, 15일

동북도서교역박람회 분전시장 | 연길신화서점에서 기다릴게요!

동북도서교역박람회 분전시장 | 연길신화서점에서 기다릴게요!

-독서가 우리를 더 나은 미래로 이끈다 5월 17일, 제1회 동북도서교역박람회가 장춘국제회의전시쎈터에서 정식으로 개막된 가운데 당일 9시부터 연길시신화서점에서도 계렬 행사가 펼쳐졌다. ‘길지에서 만나서 책 향기를 공유하자’(相约吉地 共沐书香)를 주제로 한 이번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서장자치구 공식 방문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 서장자치구 공식 방문

권기식 한중도시우호협회장은 17일 오후 중국 서장(西藏)자치구를 방문해 라싸(拉薩)시 임위(任維) 부구장 등 지방정부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열고 한중 지방정부 교류 등에 대해 대담했다. 서장자치구 정부와 간담회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은 권기식 회장(왼쪽)과 임위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