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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엔 비 오든 말든…경희궁에 비가 와야 서울에 비가 온 거다

[기타] | 발행시간: 2013.04.26일 21:45

기상청 신윤희 주무관이 지난 24일 서울 종로구 송월동 기상관측소의 관측장에서 적설량을 재는 세 종류의 적설판을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은 초음파를 이용하는 자동적설관측장비이고, 왼쪽 뒤편의 백엽상 안에는 온도센서가 들어있다. | 김문석 기자 kmseok@kyunghyang.com

ㆍ‘서울날씨 공식적 기준’은 종로구 송월동 기상관측소

ㆍ“기술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 눈으로 직접 관찰하는 게 가장 정확”

퇴근길 동네 어귀에 들어서는데 부슬부슬 비가 내린다. 조금 전 버스 속에서 접한 뉴스 일기예보에서 서울 날씨는 분명 ‘맑음’이었다. 구름만 보이는 산 위에서 ‘서울에 첫눈이 내렸다’는 예보가 들릴 때도 황당하긴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서울의 날씨를 결정하는 공식 기준이 따로 있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구 송월동 1번지. 80년간 서울의 날씨를 공식 기록해온 서울기상관측소가 있는 곳이다. 관측소는 경희궁 서쪽 언덕 위에 서 있는 고풍스러운 흰색 건물에 입주해 있다. 일제는 1933년 낙원동에 있던 경성측후소를 이곳으로 옮겼다. 그때부터 서울의 기상관측사에 송월동 시대가 열린 것이다. 한국전쟁 직후인 1953년부터 기상청 건물로 사용되다 1998년 기상청이 동작구 신대방동 새 청사로 옮기면서 현재의 관측소만 남게 됐다.

■ ‘30년 평균 날씨’ 통계 위해 1곳 기준 변함없이 유지

관측소가 신대방동 본청과 떨어져 현 위치를 지킨 것은 기상관측의 특수성 때문이다. 관측은 정해진 시각, 일정한 장소에서 반복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어제와 오늘의 관측 시각과 장소가 다르면 분석 자료로서 의미를 갖기 힘들기 때문이다. 날씨 보도에서 흔히 접하는 “평년 기온보다 낮다” “평년 강수량을 웃돈다”의 ‘평년값’은 최근 30년간(1981~2010년)의 기록을 종합해서 10년마다 새로 작성된다. 평년값 도출에만 30년 이상이 걸리기 때문에 관측소 위치를 함부로 바꾸기 힘든 것이다.

기상청 사람들이 날씨 비사를 얘기하다가 이의제기를 받는 것도 이 대목이다. 송월동에 눈·비가 와야 서울에 눈·비가 온 것으로 공식 기록되기 때문이다. 서울 외곽에 아무리 비가 와도 경희궁 터에 해가 쨍쨍하면 서울은 맑은 날씨로 공표된다. 기상청 관계자는 “서울 전역에 골고루 설치된 자동기상관측장비(AWS)로 날씨 변동 상황을 항상 체크하고 예보에도 반영하지만, 서울 날씨의 공식 기록은 송월동 관측소를 기준으로 삼는다”며 “그렇게 사시사철 써온 송월동의 기록지가 벌써 80년이 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의 주요 도시에도 기상관측 기준점이 있다. 부산(용두산공원 옆 복병산), 원주(원주종합운동장 근처)는 서울처럼 관측소가 도심에 있다. 1905년부터 관측을 시작한 인천기상대는 자유공원 안에 있고, 송도해수욕장 입구에 있는 포항기상대는 대표적인 해안기상대로 꼽힌다.

24일 직접 들어가 본 송월동 서울기상관측소의 근무자는 5명이었다. 한 명이 기상관측 업무를 총괄하고, 4명은 주야간으로 12시간씩 교대근무를 한다. 기상관측의 기본은 눈으로 관찰하는 목측(目測)이다. 관측 업무를 맡은 주간근무조 직원은 아침 8시에 출근해 매시 50분부터 10분간 눈으로 기상 상태를 관찰한다. 그 내용은 매 정시에 자동기상관측장비에서 수집된 온도·바람·적설·강우 데이터와 함께 기상청에 보고된다.

목측은 가시거리 파악부터 시작된다. 관측자는 관측소 내 야장에 서서 남쪽을 바라보고 대표적인 지형지물이 잘 보이는지 확인한다. 왼쪽으로 남산 서울타워가 3㎞, 오른쪽으로 여의도 63빌딩이 6㎞ 거리에 있다. 늘어선 고층빌딩 사이로 관악산의 가운데 능선이 선명하게 보인다면 이때 가시거리는 14㎞ 이상으로 기록된다.

거리를 재고 나면 구름의 양과 높이를 확인한다. 높이와 모양에 따라 상층운인지 중층운인지 혹은 양떼구름인지 새털구름인지 한눈에 보고 맞혀야 한다. 그러자면 수십종에 이르는 구름을 훤하게 꿰고 있어야 한다. 기상청 입사 후 관측 업무만 14년 가까이 해왔다는 서울관측소 신윤희 주무관은 “사실 구름 관측이 제일 어렵다”고 털어놨다. 종류도 다양하고, 자료에 나온 사진과 실제 눈으로 보는 구름이 달라 애먹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구름도감을 아무리 뒤져보고 하늘 위 구름을 봐도 모르겠다 싶을 땐 어찌하냐고 물었다. “더 경험이 많은 선배에게 도움을 청하는 수밖에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 진눈깨비·싸락눈 등 시시각각 변화 기계는 구분 못해

사람의 관찰과 판단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목측 방식을 두고 불완전하고 틀리기 쉬운 것 아니냐고 다시 물었다. 기술도 많이 발전했는데 왜 컴퓨터나 기계로 관측하지 않느냐는 의문도 제기했다. 기상청의 공식적인 답은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이 직접 관찰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는 것이었다. 일전에 만난 이일수 기상청장도 “태풍 방향은 인공위성이 잘 쫓아가고, 날씨는 슈퍼컴퓨터가 종합하지만, 그래도 한국의 날씨 변화를 가장 잘 짚어내는 것은 여전히 관측소”라고 말했다. 쌓여가는 목측에 대한 신뢰이고, 기계가 대신할 수 없는 영역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서울관측소 사람들은 관측소에 있는 강우감지센서가 비 내리는 순간 데이터를 자동 전송하지만, 시시각각 변하는 강우 형태는 잡아내지 못한다고 했다. 펑펑 내리던 눈이 갑자기 진눈깨비로 변하고 다시 싸락눈으로 바뀌어 내리는 모습, 빗물이 땅에 고이거나 지표면에 넘쳐흐르는 모습도 사람의 눈이 아니고서는 일일이 구분해 기록지에 남기기 힘들다는 것이다.

기상 관측은 매일 시간과 분 단위로 쪼개서 한다. 관측자들은 더 나아가 계절의 변화도 감지해내야 한다. 계절 관측에는 동물 관측과 식물 관측이 포함된다. 봄이 오면 제비, 나비, 종다리, 개구리 같은 지표동물이 눈에 띄는지 유심히 살핀다. 여름에는 매미 울음소리가 들리거나 잠자리가 보이는 첫 순간이 기록지에 상세히 적힌다. 서울관측소 둘레를 사시사철 장식하고 있는 벚나무와 배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진달래 등 10여종의 수목도 계절 관측 표준목으로 활용되고 있다. 관측소 벚나무의 가지에 세 송이 이상 꽃이 피면 기상청은 공식적으로 서울의 벚꽃 개화 소식을 알린다. 지난 3월 기상청이 서울과 여의도 윤중로의 벚꽃 개화 시점을 4월8, 9일로 하루 차이를 둬 발표한 것에도 이런 배경이 깔려 있는 셈이다. 지방 기상대에서는 새벽에 첫 서리가 내리는 시점과 기간을 파악하는 것이 연례적으로 중요한 임무다. 인근 농가의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긴요한 정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울관측소 근무자들은 가을철 단풍 소식을 전하기 위해 출장을 나서기도 한다. 단풍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도움을 받아 북한산에서 관찰한다. 대표 봉우리를 정해 전체의 20% 이상 단풍이 들면 첫 단풍으로 기록하고 80% 이상이면 단풍이 절정에 이른 것으로 본다.

한겨울에 영하 10도 이하의 날씨가 며칠간 계속되면 관측자들은 한강 결빙 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수시로 한강대교를 찾는다. 한강 결빙의 기준점은 한강대교 남단 두번째에서 네번째 교각 사이에서 상류쪽으로 100m 지점이다. 마포대교나 서강대교 주위가 아무리 꽁꽁 얼어도 한강대교에서 얼음이 관측돼야 공식 기록으로 남는 셈이다. 눈과 비도, 꽃도, 얼음도 특정 지점을 고집하는 게 다소 불합리해 보이지만, 관측의 일관성을 높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다는 게 기상청의 설명이다.

■ “날씨 탓에 손해, 물어내라” 시민들 막무가내 전화도

관측자들은 때로 위험한 상황을 맞기도 한다. 태풍이 오거나 천둥·번개 칠 때가 대표적이다. 신윤희 주무관은 “폭우 속에서 번개의 방향과 거리를 파악하고 다시 천둥이 칠 때까지 시간을 계산하다 보면 오금이 저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과거에 수동으로 강우량을 측정할 때는 빗속에서 번개에 맞으면 어쩌나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순환근무 원칙상 이따금 겪게 되는 백령도·흑산도·울릉도 등의 격오지 근무도 관측자들은 힘든 코스로 꼽았다.

기상청 직원들에게 가장 힘든 것은 뭐냐고 물었다. 시민들의 항의성 전화였다. 날씨 정보를 알려주는 기상 콜센터가 따로 있지만 서울관측소에는 하루에도 수십통씩 민원전화가 걸려온다. 상당수가 예보를 묻는 것이지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다짜고짜 욕설부터 하는 전화도 적잖다. 자녀의 밀린 방학숙제 일기 때문이라며 지난 날씨를 가르쳐달라고 하는 것은 애교 수준이다. 마당에 널어놓은 고추가 비에 쫄딱 젖었다며 손해배상 청구를 하겠다는 사람도 있고, 농약을 뿌렸는데 날씨가 맞지 않아 망쳤다며 손해를 물어내라고 소리지르는 사람도 있다.서울관측소 한지숙 주무관은 “기상청장에게 말해 잘라버리겠다고 위협하거나 청와대까지 들먹이며 협박을 하는 등 레퍼토리가 다양하다”며 “하도 욕설을 많이 들어 무뎌진 듯하지만 수화기를 들자마자 심한 욕을 퍼붓는 민원인을 대하게 되면 아직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마음을 가라앉히기가 힘들다”고 말했다.

기상청의 예보 정확도는 차츰 높아지는 추세다. 48시간 단기예보의 강수 유무 정확도는 2007년 85%에서 지난해 92.1%로 크게 나아졌다. 지난해 일본 기상청이 기록한 84.3%보다 7.8%포인트 높다. 중기예보(일주일)의 정확도 역시 2012년 기준 81.3%로 일본의 73.1%보다 8.2%포인트 높다.

30년 가까이 예보 업무를 해 온 기상청 이재병 예보정책과장은 “예보란 원래 어느 정도 오차를 갖고 있는 정보”라고 말했다. 미래의 참값에 대해 어림값을 주는 것으로 이해해야지 반드시 그렇게 될 거라고 믿거나 요구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오차범위를 전제하고 그것을 최대한 좁히는 게 관건이라는 것이다. 그는 “한국보다 예보 정확도가 낮은 일본에서는 ‘가족 다음으로 믿는 것이 기상청’이라는 말을 한다”며 “외려 정확도가 더 높아지고 있는 한국에서 어쩌다 기상청이 ‘동네북’ 취급을 받을 때는 아쉬운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요즘 공공기관의 홈페이지 접속 횟수에서 기상청은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생활 날씨의 수요가 많아진 것이다. 그 공급의 출발점이 관측소다.

<김형규 기자 fidelio@kyunghyang.com>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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