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표재민 기자] 드라마 ‘구가의 서’가 판타지와 로맨스 속에 가려져있던 진짜 기획의도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아이들 장난처럼 보일 수 있다는 위험에도 반인반수 소재를 다룬 숨은 의도가 빛을 발하며 시청자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지난 13일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구가의 서’ 11회는 반인반수 최강치(이승기 분)가 그동안 삶의 이유 중 하나였던 박태서(유연석 분)가 자신을 배신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충격에 휩싸이는 이야기가 펼쳐졌다. 이로써 가족 같은 백년객관 식구들을 잃게 되는 시발점이 되면서 본격적인 2막에 접어들었다.
이날 태서는 동생 박청조(이유비 분)를 기생에서 벗어나게 해주겠다는 조관웅(이성재 분) 부하의 꼬임에 넘어갔다. 그는 목숨을 걸고 동생 청조를 구한 강치를 배신하고 강치의 도주로를 관웅 부하에게 알려줬다. 그리고 관웅 부하의 지시대로 강치의 목에 칼을 들이밀고 짐승의 본능을 억제하는 팔찌를 끊으려고 했다.
배신감에 휩싸인 강치의 귓가에는 무술 스승 공달(이도경 분)의 걱정 어린 조언이 맴돌았다. 강치는 그동안 백년객관 식구들을 가족처럼 여겼다. 아울러 진짜 사람이 돼서 태서와 청조를 지키겠노라 다짐했다. 인간에 대한 한없는 믿음을 드러내는 강치에게 공달은 “인간이란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나약한 존재다. 나약하기 때문에 잔인해지기도 한다”고 우려했다.
동생을 지키기 위해 잔인할만큼 강치를 내친 태서의 배신과 공달의 이 같은 말은 시청자들의 가슴을 후벼팠다. 인간성에 대한 통찰력이 있는 고찰은 단순한 무협 로맨스 활극으로 여겨졌던 이 드라마의 정체성을 다시 한번 확인시켰다.
‘구가의 서’는 사람은 될 수 없지만 인간적인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강치를 통해 진정한 인간애와 자아가 무엇인지 살펴보는 이야기를 다루겠다는 기획의도를 가지고 있다. 기획의도대로 그동안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지난 달 30일 방송된 8회에서 이순신(유동근 분)은 사람이 되겠다는 강치의 선언에 “사람으로 태어나서도 금수만도 못한 이들이 많다. 사람임을 규정 짓는 것은 본디 태생이 아니라 마음에 있다”고 따뜻한 위로를 해서 감동을 안긴 바 있다. 강치를 향한 이순신과 공달의 말에는 진짜 인간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기획의도가 숨어있다.
이처럼 인간에 대한 진지한 접근은 이 드라마가 반인반수라는 판타지를 덮어씌웠기 때문에 더욱 부각되고 있다. ‘구가의 서’는 비현실적인 소재 탓에 몰입도가 다소 떨어질 수 있다.
하지만 누구나 고민하고 깨닫는 시간이 될 수 있는 인간애를 다루면서 시청자들에게 재미와 함께 감동까지 안기는 드라마가 되고 있다. 이는 판타지라는 위험을 감수하고 반인반수 소재를 밀어붙인 제작진의 숨은 의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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