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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카이 원주민 벼랑끝에 내몰리다

[기타] | 발행시간: 2013.06.12일 10:56
이들은 이제 관광산업과의 싸움에서 생명마저 위협받고 있다.

필리핀의 대표적인 휴양지인 보라카이는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섬 가운데 하나로 인정받고 있다. 아직도 그 아름다움이 완전히 발굴되지 않은 섬으로, 관광객은 낮에는 백사장에서 일광욕을 즐기고 밤에는 해변에 접한 숙소에서 파도소리를 들으며 술을 홀짝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또한 하우스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클럽들이 있고, 오후의 햇살과 파도를 눈부시게 가르면서 제트스키를 탈 수 있다.

개발로 인해 원주민 아티족 변두리로 밀려

지상의 낙원으로 불리는 보라카이 섬의 원주민들이 일터와 집을 잃고 섬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해 있다. 먼지가 쌓인 채 조그만 채소들이 자라고 있는 텃밭과 대나무 담장을 끼고 도로와 분리된 이엉을 얹은 오두막을 터전 삼아 살고 있는 아티족은 대부분이 배우지 못한 채 절대적인 빈곤 속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서 수백년을 이어오며 가난하지만 평화롭게 살아온 원주민 공동체에 위기가 찾아온 것은 20여년 전이다. 1990년 무렵까지 아는 사람만 알았던 보라카이의 비경이 전 세계적으로 알려지면서 관광개발 붐이 거세게 불었다. 수백개의 호텔과 술집, 레스토랑 등이 들어서면서 섬의 땅값은 천정부지로 치솟았다. 아티족은 관광산업에 밀려 점점 변두리로 쫓겨났다.

아티족 소년이 도마뱀을 들고 있다. 플리커

이들은 이제 관광산업과의 싸움에서 생명마저 위협받고 있다. 지난 2월 아티족의 젊은 지도자이자 대변인인 26살의 덱스테르 콘데스가 밤중에 총격을 받아 숨졌다. 땅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모임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던 중이었다. 목격자는 범인이 인근 크라운 리젠시 리조트의 경비인 다니엘 셀레스티노라고 밝혔다. 셀레스티노는 살인혐의로 기소된 상태이지만 리조트는 관련성을 부인하고 있다. 아티족의 족장인 델사 후스토(54)는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며 “오직 하나 확실한 것은 땅 문제 때문이다”라고 가디언에 전했다.

수년간 섬의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으로 쫓겨나길 반복했던 이들은 2011년 정부로부터 해변에 인접한 약 0.021㎢의 땅에 대한 소유권을 인정받았다. 이곳의 땅값은 1㎡당 약 138만원에 달한다. 정부가 이 땅이 원주민들이 선대로부터 물려받은 땅이라고 결정하자 부동산 개발업자와 호텔 주인 등이 소송을 제기해 자신들이 이 땅의 전체 혹은 부분을 소유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중 크라운 리젠시 리조트를 포함해 보라카이에서 세 곳의 호텔을 운영하

는 제이 킹이라는 사람은 아티족에 할당된 땅에 요트장을 갖춘 50채의 휴양용 주택 및 스노클링과 다이빙 체험장을 운영할 계획을 갖고 있었다. 아티족이 정부로부터 받은 땅으로 이주하자마자 무장한 크라운 리젠시의 경비들이 들이닥쳐 땅이 호텔 소유라고 주장하며 담장을 허물었다.

콘데스가 숨진 것은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필리핀 법에 따르면 용의자를 수색하려면 범죄를 저지른 2일 이내에 체포되어야만 한다. 경찰당국이 셀레스티노를 찾는 데는 며칠이 걸렸다. 이 때문에 그는 수색을 피할 수 있었고 살인사건의 증거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기소 이후에도 그는 아티족의 거주지와 인접한 술집에서 일하고 있다.

소유권 인정받은 땅마저 개발업자가 ‘눈독’

셀레스티노의 변호사이자 크라운 리젠시의 변호사이기도 한 아우후스토 마캄은 “의뢰인은 목격자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묘사한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며 “완전히 악의적이고 근거 없는 기소”라고 밝혔다. 크라운 리젠시 호텔의 대표인 리차드 킹은 아티족이 ‘무단 점거’하고 있는 리조트의 땅을 지켜내야 한다며 “언론이 우리를 나쁜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호텔이 콘데스의 죽음과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덱스테르 콘데스의 장례식에 참석한 사람들 모습. GMA네트워크

아티족은 그들 대변인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땅과 정의를 지키기 위한 싸움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콘데스의 이모인 에블린 수페트란은 “덱스테르가 숨진 것은 그가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들에게 맞설 만큼 용감했기 때문”이라며 “이제 우리가 그들에게 맞서야 한다”고 말했다. 아티족의 목소리를 대변해왔던 콘데스는 수십년간 아티족을 더럽고 바보 같으며 무시받아 마땅한 사람들로 낙인 찍었던 세상의 편견과 싸워왔다. 그는 아티족 10대들에게 학업과 구직활동을 권장하고, 매달 한 번씩 부족의 원로가 구전으로 이어온 부족사를 들려주는 저녁 모임에 참석할 것을 권유했다.

아타족 공동체를 도와 왔던 아시시 개발 재단의 차야 호는 “아타족은 오랜 차별을 받아 왔다”며 “더럽다는 이유로 아타족의 아이들이 해안가를 따라 수영을 할 때마다 호텔과 레스토랑에선 이들을 내쫓았다”고 말했다. 아티족은 마노마노로 불리는 곳에 작은 땅을 얻게 됐지만 사실상 섬 안의 작은 감옥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을을 비운 사이 개발업자들에게 땅을 빼앗길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들은 거의 외부 출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클란 주법원은 휴양지 소유주들이 낸 공사 중지 명령을 받아들여 아티족의 땅에 영구적인 주택을 건설하는 것을 금지시켰다. 지난 5년간 아티족과 함께 했던 헤르미니아 수타레즈 수녀는 “법원이 왜 이들에게 호의적인지 모르겠다. 그들은 땅의 소유권이 없다. 땅은 아티족에 속한다”며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릴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난개발을 우려하는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부동산 개발업자들은 보라카이 섬에 수상공원부터 고급 휴양주택에 이르기까지 원대한 개발 목표를 세워놓고 있다.

동남아 바다 집시들 강제추방 위기 직면

동남아시아의 열대섬에서 개발 붐으로 원주민이 쫓겨나는 것은 아티족만의 일이 아니다. 태국의 휴양지인 푸켓에서도 바다 집시들이 200년간 터전으로 삼았던 라와이 해변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섬의 땅을 소유한 이들은 이곳에 ‘바다 집시촌’을 세울 계획이다. 바다 집시촌은 일종의 테마 공원으로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물고기를 잡거나 한때 국적도 없이 떠도는 뱃사람이었던 바다 집시들이 어떻게 육지에서 살게 됐는지를 볼 수 있다. 지금까지 바다 집시 공동체는 이주를 거부해 왔지만 합의가 결렬될 경우 강제로 추방될 수 있다. 이웃한 지역의 카오 락 같은 부족은 이미 지난 수십년간 건설된 리조트와 호텔에 땅을 뺏기고 추방됐다. 미얀마 서쪽 메르구이 제도 주변의 바다 집시들도 섬을 관광지로 개발하려는 정부에 의해 강제이주를 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름다운 열대 섬의 이면에 폭력과 강제추방, 난개발의 그늘이 깊게 드리워져 있다.

<주영재 경향신문 국제부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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