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연구팀 성과, 네이처 게재
간·혈관·간엽 세포 함께 배양
3차원 간 초기 조직 형성
쥐에 이식해 제 기능 확인
일본 연구진이 유도만능줄기세포(iPSC)로 사람의 '미니 간'을 만드는 데 성공했다. 크기는 채 1㎝도 안 되지만, 단백질을 만들고 해독 작용을 하는 등 간 고유의 기능을 다 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여태껏 줄기세포를 이용한 다양한 장기 세포가 만들어졌지만 간과 같은 장기 조직 자체를 만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런 연구 결과는 4일 세계적 과학 학술지 네이처를 통해 소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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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요코하마시립대 의학대학원의 다케베 다카노리 박사 등 연구팀은 먼저 사람의 iPSC를 간 내배엽세포(iPSC-HE)로 분화시켰다. 이어 이 세포를 사람의 탯줄정맥내피세포(HUVEC), 간엽줄기세포(MSC)와 함께 배양했다. 탯줄정맥내피세포는 핏줄을 만드는 역할, 간엽세포는 세포와 세포를 연결해주는 중간 고리 기능을 한다. 이들을 섞어 4~6일간 배양하자 '간의 싹(liver bud)'이 만들어졌다. 크기는 직경 5㎜ 내외에 불과했지만 복잡한 혈관망을 갖춘 '작은 간'이었다. 유전자 테스트 결과도 실제 사람의 간에서 나타나는 유전자 형태와 유사했다.
연구진은 이 싹을 면역기능을 없앤 쥐의 머리 부위 등에 이식했다. 48시간 뒤 피가 돌기 시작했다. 줄기세포로 만든 세포만 이식했을 때보다 훨씬 쉽게 쥐의 몸에 뿌리를 내린 것이다. 이어 쥐의 알부민(체내 단백질의 일종) 수치가 올라갔다. 사람의 간만 해독할 수 있는 약물에 대한 대사율도 상승했다. 쥐에게 이식된 사람 간이 제 기능을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였다. 연구진은 지난해 4월 네이처에 논문을 제출했고 네이처는 1년여에 걸쳐 이를 검증한 뒤 논문 게재를 결정했다.
태반줄기세포를 이용한 간 세포 개발 연구를 해온 분당차병원의 황성규 연구부원장은 “지금까지 줄기세포 연구는 평면적인 2차원 세포를 만드는 데 머물러 왔다”며 “일본 연구진이 3차원 장기를 만드는 데 성공함으로써 줄기세포 연구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했다”고 말했다. 장기의 싹을 만들어 이식한 데 대해서도 “모판에 싹을 틔워 모내기를 하듯, 줄기세포로 장기 구조를 만들 수 있는 효율적인 방법을 찾아냈다”고 평가했다.
일본 연구진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에 대해 “이식용 장기 기증이 턱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장기의 싹을 만들어 이식하는 기술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자평했다. 자신들이 개발한 기술을 이용해 부족한 장기를 직접 만들어 쓰는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을 표시한 것이다.
국내에선 지난해 1283건의 간 이식 수술이 행해졌다. 2000년의 205건에 비해 크게 늘어난 숫자다. 하지만 아직도 필요한 수요를 다 채우지 못하고 있다. 지난달 기준으로 국내의 간 이식 수술 대기자는 6000여 명에 달하다. 전체 장기이식 대기자 2만4000명 가운데 신장(1만3000여 명)에 이어 두 번째로 많다.
대기자가 많은 이유는 간암·간경변 등 간 이식을 필요로 하는 환자 숫자에 비해 수술에 적합한 간을 구하는 게 어렵기 때문이다. 간 이식을 하려면 먼저 환자와 기증자의 혈액형이 일치해야 한다. 또 기증자는 바이러스성 간염과 같은 만성 간질환을 앓았던 병력이 없어야 한다. 줄기세포를 이용해 인공 간을 만드는 연구에 관심이 집중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권준혁 삼성서울병원 이식외과 교수는 “줄기세포를 이용한 기술을 당장 치료에 쓰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식된 만능줄기세포가 암 세포 등으로 변할 수도 있는 만큼 위험성을 철저히 규명하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황성규 부원장은 “임상화는 먼 훗날 일이지만 인공 간을 신약개발 과정에서 독성테스트 등에 활용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한별·장주영 기자
◆유도만능줄기세포(iPSC)=줄기세포는 다양한 인체 세포로 분화될 수 있는 원시 세포를 가리킨다. 배아줄기세포는 수정란, 복제배아줄기세포는 다 자란 세포와 여성의 난자를 융합해 만든다. 이에 비해 유도만능줄기세포는 다 자란 성인의 세포를 유전자 조작을 통해 줄기세포로 만든 것이다. 일본 교토대 야마나카 신야(山中伸彌) 교수가 세계 최초로 만들어 노벨상을 받았다. 배아·복제배아 줄기세포에 비해 생명윤리 논란에서 자유롭다.
김한별.장주영 기자 idstar@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