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미납 추징금 환수’에 나선 검찰이 대대적 압수수색을 마치고 다음 단계인 불법재산 입증 작업에 착수했다. 검찰은 지난 이틀 사이 전두환 전 대통령 주변인과 관련 회사 등 30여곳을 뒤지며 ‘위력 시위’를 했다. 수백점의 미술품과 불상, 공예품 등은 물론 전 전 대통령 가족 회사에서 각종 회계장부와 전산기록 등이 대거 확보됐다. 이를 두고 검찰이 자녀 형사처벌을 전제로 한 ‘수사’ 카드를 내밀어 전 전 대통령의 ‘항복’을 받아내려 한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검찰 관계자는 “그분이 압박에 굴복해 자진 납부할 사람이 아니지 않느냐”고 했다.
◇추적+자진납부 유도?=‘전두환 일가 미납 추징금 특별집행팀’은 18일 “압수수색은 어제부로 끝났다. 당분간 추가 압수수색은 없다”고 말했다. 다만 전 전 대통령 장남 재국씨가 운영하는 시공사·허브빌리지 사옥에서 워낙 많은 미술품이 쏟아져나와 이를 포장하고 나르는 작업은 이날까지 이어졌다. 검찰 수사관 4~5명은 전 전 대통령 변호인과 함께 미술품이 보관된 경기도 한 박물관을 찾아 압수물 목록을 점검했다.
향후 검찰 조사는 확보한 현물들이 전 전 대통령 가족의 불법재산인지 또는 여기서 유래된 재산인지를 가리는 데 집중될 전망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시공사와 관계사 간 자금 흐름을 쫓는 작업도 병행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집행팀은 대검찰청 회계분석팀 4명과 계좌추적 요원 4명을 추가로 보강했다. 검찰이 ‘작심하고’ 뛰어든 만큼 법인자금 횡령이나 배임, 조세포탈 등 혐의가 새롭게 드러날 가능성도 크다. 특히 향후 본격 수사로 전환할 시 재국씨가 주요 표적이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30여곳 압수수색 대상 중 절반 이상이 재국씨와 관련된 곳에 집중되기도 했다.
검찰이 재국씨 등의 형사처벌 가능성을 부각시켜 전 전 대통령 내외를 압박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2004년 검찰이 차남 재용씨를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하자 어머니 이순자씨가 추징금 130억원을 대납한 전례도 있다. 검찰 한 간부는 “전 전 대통령이 추징금을 자진해서 내는 것이 가장 깔끔한 방식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행팀은 “현실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대하지도 않는다”며 “연결고리를 추적해 정면승부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불법재산’ 입증 어떻게=검찰이 압수한 현물을 몰수할 수 있으려면 불법재산 관련성을 밝혀내야 한다. 현행법상 입증 책임은 검찰에 있다. 채동욱 검찰총장은 이를 ‘굉장히 지난한 작업’이라고 했다.
압수물의 ‘뿌리’를 찾기 위한 우선적 방법은 재국씨 등 관계자를 불러 소명케 하는 것이다. ‘무슨 돈으로 구입했느냐’를 추궁해서 그에 대한 해명을 하면 그 진술의 신빙성을 따지고, 거래에 쓰인 자금을 본인 수입으로 감당할 수 있는지 등을 비교 분석하는 방식이다. 검찰은 동시에 작품의 원작자와 이를 유통시킨 화랑 등을 탐문해 매매 시기, 거래 방식 등을 확인하는 작업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림과 돈의 흔적을 역추적해 가다보면 결국 자금 원천에 도달할 수 있다.
자녀들이나 친인척들이 갖고 있는 부동산, 금융자산 등도 이런 과정을 통해 일일이 불법재산 여부를 가려야 할 전망이다. 여기에는 국세청, 금융정보분석원(FIU) 등의 협조도 필요하다. 검찰 관계자는 “지난 십수년간 돈이 섞이고 엮이다 보니 단 번에 비자금과 연결되는 경우는 거의 없을 것”이라며 “대기업 수사 때보다 많은 검사 8명을 투입한 것도 추적이 만만치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호일 문동성 기자 blue51@kmib.co.kr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