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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뤄도 괜찮아

[기타] | 발행시간: 2013.11.14일 11:45

몇년 새 미루기와 게으름에 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미루기를 막는 방법, 심리학적 접근이 이채롭다. 박미향 기자 mh@hani.co.kr

[한겨레] [esc/커버스토리] 미루기 극복 신드롬

취업·결혼·출산 등 인생의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망설이는 이들에게 보내는 경험자 3인의 조언

심리학자나 정신분석학자들은 결혼·출산·취업을 미루는 일에 대해 일상적인 미루기의 영역과 구분돼야 할 문제라고 얘기한다. 하지만 미루기에 대한 과학적인 접근은 아직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데다, 가장 중요한 결정이 필요한 순간은 바로 이런 ‘큰일’들이라는 점에서 몇가지의 글을 받아봤다. 이들은 미루기에 대해 남다른 경험을 지닌 사람들로서, 남들에게 강요하거나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각자 참고가 되길 바란다는 뜻을 전해왔다.

 ‘제때 강박증’ 들어보셨나요

어린 시절부터 나에게는 ‘모범생 콤플렉스’가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표준적인 삶에 대한 강박이었다. 제때 대학 가고, 제때 취직하고, 제때 결혼하고, 제때 아이 낳고, 이렇게 부모님 잔소리 듣지 않는 ‘남들처럼’ 라이프스타일 말이다.

그렇게 철저히 한국적 기준으로 나는 제때 진학하고 제때 취직하고 제때 결혼했다. 그런데 제때가 이뤄지지 않은 게 있으니 바로 출산이었다. 1년 동안의 준비 시간을 가진 뒤 발동을 걸었는데 다시 1년이 지나도록 감감무소식이었다.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날을 받기도 하고 과배란 주사도 맞았지만 별 소득이 없었다. 그보다 더 힘든 건 ‘왜 내게 이런 시련이’라는 분노와 좌절이었다. 늘 짜증이 났고 남편과 언성을 높이는 일도 잦아졌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었다. 아이가 없어서 불행한 삶이라면, 아이가 있다고 행복해질 수 있겠나. 나는 ‘에라, 모르겠다’ 하고 고민을 봉인해 ‘보류’ 파일에 던져버렸다.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매달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다면 일시정지 버튼을 누르는 수밖에 없었다.

5년 뒤 남편이 마흔살을 눈앞에 둔 시점에 보류 파일을 클릭했다. 나이로 따지면 더 초조해져야 할 텐데 마음은 가벼웠다. 미루는 시간 동안 나는 삶이 뜻대로 굴러가지 않는다는 걸 별다른 깨달음 없이도 받아들이게 된 것 같다.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거라도 그게 꼭 내 것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거다. 드라마였다면 이렇게 멋진 결론을 내는 순간 저절로 임신이 됐겠지만 지금 이곳은 현실. 몇번의 실패가 있었지만 처음처럼 힘들지 않았다. 딱 1년을 노력 기간으로 삼고 안 되면 그냥 지금까지 살아온 것처럼 살기로 했다.

지금 나에게는 아장아장 걷는 아이가 있다. 친구들은 모두 학부형이다. 그래서 뭐? 오히려 비슷비슷한 상황에서 가지게 되는 긴장감이나 경쟁심에서 벗어나 좋다. 늦게 가진 아이 덕에 나는 ‘제때’의 강박에서 벗어났다.

박상정/회사원

남들 손에 내 결혼을 맡기다니

나는 8년 전 이혼했다. 가끔은 이런 인생도 나름 나쁘지 않군, 생각하다가도 그때 조금만 더 현명했더라면 하는 후회가 든다.

내 첫 결혼은 20대 중반이었다. 졸업 전에 직장을 구했기 때문에 결혼을 빨리 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집에서도 어서 결혼하라는 부추김이 심했고, 남자 집안에서도 결혼을 서둘러서 나 말고 모두가 나의 결혼을 원하는 것 같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나 또한 부모님이 정정하실 때 결혼을 해 효도를 하고 싶었다. 몇달 동안 넋 놓고 양가에 끌려다니다가 결혼 한달쯤 전에야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나’ 싶은 생각이 들어 파혼을 선언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주워 담을 순 없었다.

몇년을 살다 고비를 맞았다. 무진장 애를 썼지만 경제적으로 갑자기 어려워진데다 고통스런 일들이 파도처럼 겹겹이 밀려왔다. 이혼을 미루려고 했지만 그것만은 미루거나 견딜 만한 게 못 됐다. 내 인생을 구한다는 굳은 결심으로 마지막 남은 단 한가지 선택을 하기로 했다. 그때부터 나는 인생의 큰일을 조금쯤 미뤄도 상관없다 생각하며 충분한 시간을 두고 신중하게 결정하며, 주변 사람들보다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찾는 훈련을 시작했다.

요새는 늦게 결혼하는 사람들이 많다. 다른 사람들은 비아냥거릴지라도 나는 박수를 보낸다. 결혼이야말로 자기가 가진 모든 ‘공력’을 들여 결정해야 하는 난이도 최상급의 ‘인생 실험’이기 때문이다. 이혼을 줄이기 위해서라도 좀더 인격적으로 성숙해지길 기다렸다 하는 ‘만혼’이 나쁘지만은 않을 것 같아, 주변에도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충고하고 있다.

김여름(가명)/음악인

 ‘취뽀’가 이제 무섭지 않아

지금 나는 협동조합 카페 50에서 일을 한다. 일주일에 사흘 정도 나가지만 놀려고 가 있기도 해서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한다. 이곳을 알게 된 것은 작년 여름, 취업 준비를 하면서다. 뭐 하나라도 더 배워야 하지 않나 고민하던 중에 스페인어를 싸게 배울 수 있다는 친구 말을 듣고 이곳에 들어섰다. 처음엔 스페인어를 배웠지만 ‘재능나눔’이 다양하게 있어 내친김에 스윙댄스를 배우고, 뜨개질을 배우다가 재정 자립 모임에 가게 되고, ‘적게 벌고 행복하기 모임’에도 나갔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나는 매일 이곳에 나가게 되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대학원 졸업 때부터 심란해하면서 뒤적이던 취뽀(취업 뽀개기) 게시판과 토익, 오픽 요점 정리 글들이 무시무시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이대로, 이렇게 사는 건 어떨까 싶어 아예 일을 하기로 했다.

협동조합 카페니까 출자금을 냈다. 그런데 하고 싶다고 바로 되는 게 아니어서 그 친구들은 몇개월 정도 친해질 기간을 가진 다음에야 나를 받아주었다. 처음에는 이렇게 살아도 되나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사람을 만나고 든든하게 서로 지지해주면서 ‘일하지 않아도 괜찮아’, ‘방황해도 괜찮아’, ‘망해도 괜찮아’ 하는 식으로 마음이 점점 넓어지고 불안이 없어졌다.

우리 엄마는 남들 놀 때 다 놀고, 안 놀 때도 노는 나와 카페 친구들을 정말 답답하게 여기신다. 당장 돈을 모아 집을 사고(우리는 ‘셰어하우스’인 ‘우동사’도 함께 하고 있다. 나는 이달 3호점에 들어간다) 차를 사겠다는 생각이 아무도 없으니 그냥 주인 의식을 갖고 하루에 충실할 뿐이다.

카페에는 누구나 앉으면 졸린 마법의 소파가 여러개 있다. 오늘도 나는 여기서 낮잠을 잔다. 자고 있으면 손님 중 누군가 흔들어 깨운다. 잘 자라고 쪽지를 써두기도 한다. 남들과 다른 시간으로 느릿느릿 흘러가는 내 시간이 난 참 좋다. 그런 속도를 가진 게 나니까. 남들 쫓아가느라 헉헉대봤자 안 되는 것을 알고 있으니, 이런 나를 만족스럽게 여기게 된 요즘이 참 좋다.

김윤희/카페50

미뤄야 할 것들, 미루지 말아야 할 것들

계획이나 결심을 쉽사리 이행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전문가들이 주로 권하는 방법은 ‘목록 만들기’다. 인간은 인정의 동물이므로, 점검표나 ‘할 일 목록’(투 두 리스트)을 만들어 두면 지울 때 쾌감이 크고 뿌듯해지면서 긍정적인 행동 강화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의 심리학자 윌리엄 너스는 미루기의 장·단기적 이익과 당장 해치울 때의 장·단기적 이익과 불이익을 표로 만들어보라고 한다. 미뤄도 될 것들과 미루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정리해보는 것도 마음의 부담을 덜 수 있다. 아래 표는 ESC가 자체 선정한 것이다.

미루는 버릇에 태클 걸기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당신에게서 그런 것을 기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 자동화된 미루기 의사결정이 발동하려는 것을 느낄 때마다 마음속으로 ‘멈춰!’를 외쳐보라. 예를 들어 자신도 모르게 “나중에 하자”라고 혼잣말이 나왔을 때, 곧장 ‘멈춰!’라고 외치는 것이다.”(<심리학, 미루는 습관을 바꾸다>, 윌리엄 너스)

“초점을 벗어나는 일들에 대해서는 과감히 단념할 줄 알아야 한다. 새로운 삶에 대한 열정이 아무리 높아도 우리의 에너지는 제한되어 있고 할 일은 많다. 게으름은 할 일이 없다고 느낄 때도 나타나지만, 할 일이 너무 많다고 느낄 때도 찾아오는 법임을 명심하라. … 큰 것과 작은 것을 나누는 것이 비전임을 잊지 말라.”(<굿바이, 게으름>, 문요한)

“마음속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하면서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은 자신을 책임감 있고 힘 있는 존재라고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그렇게 느낀다는 것을 깨닫는 그 순간, 즉시 책상 위를 정리하겠다고 ‘선택’하거나 그 일을 뒤로 미루어서 생기는 결과를 책임지겠다고 ‘선택’하면 된다.”(<지금 바로 실행하라, 나우>, 닐 피오레)

“체계적인 미루기쟁이는 세상에서 가장 효율적인 인간은 아닐지 몰라도, 아이디어와 에너지를 자유로이 발산하게 내버려두면 체계적인 업무 습관을 고수할 경우에 놓쳤을지 모를 온갖 종류의 일들을 성취해낼 잠재성 있는 인간이다. … 할 일 목록, 알람시계 등 여러가지 방법들을 활용해 주변 환경에 제약을 걸자. 아무것도 성취하지 못하는 불상사를 맞지 않게 협력자를 곁에 두자. 그러나 다른 무엇보다 인생을 즐기자.”(<미루기의 기술>, 존 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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