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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점인터뷰] 박지성① - 누가 그를 지쳤다고 하는가?

[기타] | 발행시간: 2014.01.02일 12:29
[포포투] 2000년대 한국 스포츠계를 관통하는 이름이 있다. 바로 '박지성'이다. 프로스포츠라는 테두리를 넘어 그는 사회적 믿음이자 희망 그리고 현상이다. 국가대표 은퇴 기자회견 장면이 '축구종가' 영국에서 보도되는 한국인 아니 아시아인이다. 가끔 우리는 국적과 언어가 같다는 이유로 그를 더 냉정한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하지만 뒤돌아보면 그마저도 사치였고 특권이었다.

지금 그는 유럽에서 12번째 시즌을 보내고 있다. 한국 나이로 서른넷, 15년차 프로축구선수이다. 이제 더 이상 그는 메가 클럽의 일원이 아니다. UEFA챔피언스리그 축구도 당연하지 않아졌다. 태극마크를 내려놓은 지도 벌써 3년이 되어간다.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제 후반전 막판에 다다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박지성은 말한다. 그의 체력은 떨어졌어도 그의 축구는 지치지 않았다고. 아직 그의 게임은 계속되고 있다고.



"딱 한 번, 대표팀 선수들에게 쓴소리를 한 적이 있다."

"(2007년 무릎 수술로)선수 생활을 접을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었던 순간이 가장 두려웠다."

"6경기 연속 결장했을 때 맨유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LEADERSHIP: 앞에서 이끄는가

2010년 당시 국가대표팀에서 주장을 맡았다. 혹시 리더의 위치에서 팀에 쓴소리를 해본 적이 있는가?

딱 한 번, 팀 전체에게 뭔가를 얘기한 적이 있다. 그게 쓴소리였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선수단이 코칭스태프에게 어떤 조건 하나를 요구한 적이 있었다. 코칭스태프는 선수단의 의견을 받아들여 선수들의 바라는 대로 해줬다. 하지만 선수들은 당시 코칭스태프가 요구했던 조건을 지키지 않았다. 그래서 선수들에게 우리 또한 약속을 지켜야 하는 것 아니냐고 얘기했다. 스스로가 말한 것에 대해선 확실히 지키자는 점을 강조했다.

대표팀의 분위기를 다잡기 위해 노력한 적이 있다면?

2010년 남아공으로 향할 23인 명단이 확정된 뒤에 선수들에게 한 가지 당부를 한 적이 있다. 국가대표가 되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남아공으로 가는 국가대표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 지에 대해서 얘기했다. 사실 굉장히 많은 선수들이 나가고 싶어하는 대회다. 명단에 들었다가도 부상 때문에 결국 가지 못하는 선수들도 있었다. 이런 모든 점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 국가대표이며 대표팀 선수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라 얘기했다."

필립 코퀴(Philip Cocu) 감독이 특별히 기대하거나 주문하는 점들은 없는가? 그런 주문이나 기대가 부담이 되진 않는지?

일단 코퀴 감독은 나와 선수 생활을 같이 했기 때문에 내가 어떤 성격인지 또 어떤 유형의 선수인지 잘 알고 있다. QPR에서도 경험이 많은 선수 중 한 명으로서 리더 역할을 맡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 팀에서는 나는 주장도 아니고 그때만큼 큰 역할을 맡은 상황이 아니다. 여기선 내가 맡아야 할 일의 범위가 축소되었다고 생각하기에 QPR 시절과 비교하자면 감독의 그런 주문을 받아들이기가 더욱 수월하다.

QPR 시절에는 선수단이 전반적으로 어리거나 젊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PSV는 팀이 정말 어리다. 그런 면에서 내가 영향력을 발휘하기가 더 쉽다. 감독의 그런 주문이나 기대에 부응하는 것이 큰 부담으로 작용하지 않는다.



WHO YOU CALLING DONE?: 박지성은 끝났는가

2003-04시즌 에레디비지에(네덜란드 1부)는 박지성에게 힘든 기억이다. "내가 여기서 끝인가?"라는 생각도 많이 했다고 들었다. 그 시절을 이겨내고 지금의 박지성이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

내가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못했다는 점이 가장 컸던 것 같다. 내가 가진 실력을 모두 보이지도 못했기 때문에 극복할 수 있었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싶었고 또 살아남고 싶었다. 더 좋은 선수가 되기 위해서 유럽에 왔기 때문에 계속해서 노력했다. 연습과 훈련을 통해 점점 자신감이 쌓여갔다. 그러자 이전에는 할 수 없던 움직임과 내가 할 수 있는 플레이들이 경기장에서 나오기 시작했다.

2007년 순항 중이던 축구 경력에 시련인 무릎 부상이 찾아왔다. 혹시 선수 생활을 접어야 하는 것 아닌가 라는 걱정은 없었는가?

처음에만 두려웠다.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던 순간이었다. 수술에도 두 가지 방법이 있고 각기 장단점이 있다는 설명을 들었다. 수술이 잘되면 결장기간이 어느 정도 될 것이며, 최악의 경우, 선수 생활을 접을 수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그 순간이 가장 두려웠다.

어떻게 견뎌냈는가?

일단 수술 방법을 정하고 나니 오히려 담담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뭔가를 한다고 한들 바뀌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잘못되면 어쩌나 라는 불안감이 있었다면 더욱 힘들었을 것 같다.

수술을 잘 받고 재활을 잘 마치면 복귀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를 들었을 땐 그저 스스로 최선을 다해 재활을 잘하자, 그리고 나서 결과를 지켜보자 라는 생각으로 지냈다. 다행히도 수술도 이상 없이 끝났고 후유증도 없었다. 게다가 난 꽤나 긍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잘 견뎌낼 수 있었다.

그때 들었던 얘기 중에 잊혀지지 않는 얘기가 하나 있다. 내가 만약 10년 정도 일찍 태어나 프로 축구선수 생활을 했다면 당시 의술로는 내가 당했던 유형의 부상을 고칠 길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 부상을 당했던 선수들은 은퇴를 했다고 한다. 돌이켜 보면 나는 운도 꽤나 따랐던 것 같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팀을 떠나야겠다고 느끼는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고들 한다. "맨체스터유나이티드를 떠나야겠다"라고 생각한 순간은 언제였는가?

맨유를 떠나야겠다고 느낀 결정적인 이유는 맨유에서 뛰었던 마지막 시즌(2011-12) 당시 6경기를 내리 결장했던 것 때문이었다. 사실 맨유 이적 이후 부상도 없이 몸이 괜찮은데도 6경기나 출전하지 못했던 적은 없었다. 그때 "내가 여기서 할 수 있는 게 여기까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퍼거슨 감독님과 결장에 대해서 얘기를 한 적도 있다.

그 일이 없었다면 그때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 전까지는 아무리 경기를 못 뛰어도 3경기 정도 쉬곤 다시 뛰었다. 내가 처음 들어온 선수였다면 6경기 정도 못 뛰었다고 해서 팀을 떠나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7년이나 뛴 상태에서 계속 결장했기 때문에 떠나기로 결심을 했던 것 같다.

사실 엄밀히 말하자면 맨유에서 한창 뛸 때도 "지금 상황이 내가 계속해서 출전을 하는 걸로 받아들여야 하나?"라는 딜레마는 있었다(웃음). 하지만 그때는 분명히 중요한 경기에서는 꾸준히 출전했다는 점이 중요했다.

퀸즈파크레인저스가 강등되며 한국 축구의 영웅 박지성이 저물고 있다는 이야기들이 있었다. 어떤 기분이 들었는가?

저물고 있다는 얘기에 대해서는 내가 맨유를 떠난 순간부터 충분히 나올 수 있는 얘기라 생각한다.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이러면 안 되는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저물고 있음을 현실로 받아들일 때 당시 나는 "'급'하락 하지는 말자"라고 생각했다. QPR 이적 이후 경기도 많이 뛰지 못하고 팀도 강등당하면서 축구선수 박지성은 '급'하락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맨유에 남았다고 하더라도 나쁜 일이 벌어졌을지 아니면 좋은 일이 벌어졌을지는 아무로 모른다. 분명한 것이 있다면 그때(QPR)의 경험이 박지성이라는 사람에게는 앞으로의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좋은 경험이 되었다는 점이다.

* 박지성의 독점 인터뷰 두 번째 이야기(3일 12:30 송고 예정)로 이어집니다.

인터뷰 정리=홍재민, 사진=나이키, Gettyimages/멀티비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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