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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돗물조차 없어 ‘지하수 분유’ 먹는 아기들

[기타] | 발행시간: 2014.01.13일 14:25

만 3살 미만의 아기들이 지난달 18일 오후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강남보육원에서 <한겨레> 취재진과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직원 등 방문객을 신기한 듯 내다보고 있다. 이곳에는 이런 아기 16명을 비롯해 3살부터 대학생까지 모두 57명의 원생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한겨레]

버려지는 아기들, 그 뒤

① 베이비박스에서 강남보육원으로

영아시설 부족하자 보육원 배정

강남보육원 지난해만 13명 받아

구룡산 자락을 휩쓰는 바람이 칼날처럼 달려들었다. 난방이 안 되는 거실과 복도에도 한기가 들이닥쳤다. 천장 곳곳은 어지럽게 뜯겨 있었다. ‘베이비박스’에 버려진 뒤 옮겨온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강남보육원은 황량했다.

지난 12월18일, 태어난 지 석달 된 희망(가명)이는 순하게 잠들어 있었다. 썰렁한 거실과 달리 난방을 하고 있는 방 한쪽에 누워 있는 희망이의 뽀얀 얼굴 너머로 분유 냄새가 희미하게 번졌다. “낮잠 잘 시간이에요. 분유 먹고 방금 잠들었어요.” 남녀 보육교사가 한목소리로 속삭였다.

희망이는 지난해 10월 이곳에 왔다. 세상 빛을 본 지 보름도 안 돼 서울 관악구 난곡동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에 버려졌다. 아이에게 남겨진 것은 태어난 날짜·시각이 적힌 작은 쪽지뿐이었다. 이름조차 얻지 못한 아이는 관악구청을 통해 서울시아동복지센터로 보내졌고, 다시 강남보육원으로 옮겨졌다.

난방 부실한 이곳마저…1년반 뒤면 떠나야할지 모른다

강남보육원에서 생활하는 희망이 또래는 모두 16명이다. 대부분 버려진 아이들이다. 저마다 부모는 다르지만 모두 김씨다. 보육원에서 앞서 근무한 원장의 성을 받아 이름을 짓고 출생등록을 했다. 이 가운데 13명이 2013년 한 해 동안 베이비박스를 통해 들어왔다. 서울에 있는 26개 보육시설 가운데 지난해 가장 많은 베이비박스 아기를 받은 곳이다.

애초 이 보육원은 영아시설이 아니었다. 3살 이상 아이들부터 대학생까지 돌보는 곳이었다. 이곳은 1957년 경기도 시흥에서 재단법인 시흥육아원으로 출발해 1989년 구룡산 자락으로 옮겨왔고, 1990년 사회복지법인 강남보육원으로 이름을 바꿨다. 지금 원장은 황양수(56·여)씨다. 2003년 취임했다. 보육원 규모는 대지 3062㎡(926평), 건평 1359㎡(411평)로 2층 건물에 방은 16개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강남보육원에서 지난달 18일 오후 한 아기가 낮잠에서 깨어나 울음을 터뜨리고 있다. 서울시는 부족한 영아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2012년 7월부터 강남보육원과 같은 일반 보육시설에도 아이들을 보내고 있다. 이정아 기자 leej@hani.co.kr

서울시의 관리·감독을 받는 강남보육원이 영아들을 받기 시작한 건 2012년 7월부터다. 전국의 유기 아동이 서울로 몰리면서 부족한 영아시설을 확충하기 위해 서울시가 일반 보육시설에도 아이들을 보내기 시작했다. 강남보육원에는 희망이처럼 2살이 채 안 된 영아 16명뿐만 아니라 3살부터 대학생까지 모두 57명의 원생이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강남보육원은 여태까지 수돗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이곳 아이들은 모두 지하수에 기대 산다. 지하수를 정수해 끓여 마시고, 지하수를 데워 씻는다. 아이들이 분유를 먹을 때도 지하수를 정수해 쓴다. 김현실 강남보육원 사무국장은 “구청에 상수도 설치를 요청했지만 보육원 진입로에 사유지가 섞여 있는 등 공사비가 많이 들고 절차가 복잡하다고 해서 지하수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강남구청 쪽은 지원이 쉽지 않다고 설명한다. 배경숙 강남구 아동청소년팀장은 “보육원이 정부와 지방정부의 지원을 일부 받고 있지만, 기본적으로 민간시설인 만큼 상수도 설치 비용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구청으로서도 지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서울시 강남수도사업소 관계자도 “보육원에 상수도를 설치하려면 1000만원가량 들 것으로 예상되지만, 사유지가 섞여 있으면 상수도 배관을 설치하기 어렵기 때문에 부담해야 할 공사비용이 대폭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보육원의 빠듯한 살림으로는 감당할 길이 없다.

정부 지원 1명당 월 18만원

분유·기저귀값 빠듯한데다

후원금은 최근 2년새 반토막

상수도 설치·난방비 감당 못해

아동복지법 시행령 개정 따라

19개월 내 시설확충 의무화

“법 지키려면 비용 수억원 필요

결국 정원 줄이는 방법밖엔…”

아이들이 지하수를 마시고 있는 탓에 강남보육원은 구청에 ‘특별관리대상’으로 올라 있다. 강남구 치수방제과 관계자는 “상수도는 안전하지만 지하수는 오염 우려가 있기 때문에 특별관리대상으로 정해 2년마다 정기적으로 수질검사를 하는 것 말고도 수시로 수질을 체크하고 있다”고 말했다.

건물이 낡고 오래된데다 겨울철 난방도 제대로 하지 못해, 아이들은 방문을 나서면 두꺼운 외투를 입는다. 보육원 쪽은 난방비를 감당할 수 없어 아이들이 생활하는 방을 빼고는 거실과 복도 등엔 난방을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시설 관계자는 “부분 난방을 하는데도 한 달 난방비만 400만원이 넘게 나온다”고 말했다. 화재 예방을 위한 스프링클러 설치 공사도 후원을 받아 최근 진행했다.

부모가 버려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정부의 도움은 1인당 월 18만원의 생계비가 사실상 전부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 지원금만으로는 살 수가 없다. 분유와 기저귀만 사기에도 부족하다. 막내인 희망이보다 5~6개월 먼저 태어난 10개월가량 된 중간 개월수 아이들의 경우, 한 달에 분유 6통을 비운다. 분유는 한 통에 2만5000원 정도다. 한 달 기저귀 값도 7만~8만원이 든다. 이것만 벌써 20만원이 넘는다. 이유식을 비롯해 간식, 옷, 물티슈, 로션, 아기전용세제 등 기타 육아에 필요한 용품은 국가 지원금으로는 엄두도 내지 못한다.

나머지 비용은 시민들의 후원금으로 충당할 수밖에 없다. 김현실 사무국장은 “부족한 식비와 간식비, 생활필수품비를 비롯해 아이들 교육비와 각종 교육사업비 등은 후원받아 쓰고 있다. 정부 지원만으로는 운영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후원금은 급감하는 추세다. 강남보육원의 후원금 수입 내역을 보면, 2011년 1억9300여만원에 이르던 후원금이 지난해 7880만원으로 뚝 떨어졌다. 반면 유기 아동 증가로 필요한 예산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베이비박스에 후원금이 답지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보육원 식구들은 바뀐 법 때문에 더욱 시름겹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에 하루하루 버티기도 버거운데, 2012년 개정된 아동복지법 시행령·시행규칙에 따라 2015년 8월까지 아이들이 생활하는 공간을 두 배가량 늘려야 한다. 아이들이 여유롭게 생활할 수 있도록 하자는 뜻에서 법이 바뀌었지만, 유기 아동이 증가하는 현실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강남보육원은 유기 아동을 위한 공간을 만들면서 이미 포화상태다. 아이들은 6.6㎡(2평) 남짓한 방에서 5~6명씩 생활하고 있다. 한 보육교사는 “한 아이가 감기에 걸리면 나머지 아이들도 함께 감기가 든다. 아이들이 아프면 다 같이 아프다”고 말했다. 시설을 넓히려면 수억원의 비용을 추가로 마련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정부는 아동복지시설과 관련한 내용은 ‘지방이양 사업’이라며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법이 정한 기준을 맞추려면 정원을 줄일 수밖에 없고, 아이들을 지키려면 법이 정한 기준을 못 맞춰 법을 어기게 되는 구조입니다.” 김 사무국장이 어렵게 말을 꺼냈다. 갈 곳 없는 아이들에게 정원 조정은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법이 전면적으로 적용되기까지는 앞으로 19개월 남았다. 또다시 어디론가 내몰릴 위험을 안은 채 아이들은 위태롭게 자라고 있었다.

김경욱 기자 dash@hani.co.kr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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