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표재민 기자] 무려 자메이카까지 날아가서 육상의 신 우사인 볼트를 만났다. 폭설 피해로 시름에 빠진 강원도 지역 주민들을 묵묵히 도왔다. 이것만으로도 거창한 대형 특집인데 ‘무한도전’은 내심 가벼운 특집마냥 ‘쿨하게’ 포장해버렸다. 뭔가 특별한 것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난 MBC 예능프로그램 ‘무한도전’의 웃음 형성 방식이 그렇다.
‘무한도전’은 지난 1일 방송에서 자메이카로 날아간 정형돈, 하하, 노홍철, 스컬이 우사인 볼트를 만나겠다고 그에게 자신들의 자메이카 행적을 일일이 트위터에 남기는 과정을 전했다. 또한 기상 관측 사상 최장 기간의 폭설로 인해 그야말로 일상이 마비된 강원도 오지 마을의 제설을 돕는 유재석, 정준하, 박명수, 길의 모습을 교차적으로 담았다.
두 가지의 대형 특집은 벌써 2주째 전파를 타고 있는데, 접근방식은 의도된대로 가볍기 짝이 없다. 자메이카에서 일주일가량 머물면서 레게 페스티벌에도 참석했고, 우사인 볼트에게 자신들의 얼굴을 알리겠다고 자메이카 곳곳을 탐방했다. 설국이 된 강원도 지역 주민들의 시름을 덜고자 입에 단내가 나도록 눈을 치웠지만 평소 웃고 떠드는 다른 가벼운 특집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자메이카에 머무는 멤버들은 암벽 다이빙에서 한없이 겁쟁이였지만 서로를 생각하며 뛰어내리며 9년 우정을 과시했다. 우사인 볼트를 만나겠다고 모교를 찾아 어린 학생들과 달리기 대결을 할 때는 언제나처럼 모자란 구석이 많았고, 누드 비치를 찾은 멤버들을 사춘기 청소년마냥 해맑았다. 우사인 볼트를 만나겠다고 그가 운영하는 식당에 가서는 실없는 농담을 했다. 어딘지 모르게 부족하지만 우사인 볼트와의 만남을 성사하겠다는 격한 의지는 모든 것을 내걸고 달려온 ‘무한도전’의 9년의 길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 결과 클럽에서 잠깐이나마 우사인 볼트를 만났고, 한국을 찾게 된다면 정식으로 출연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고야 말았다. 장난스럽게 시작했고, 그를 만나기 위한 방법도 터무니없었으며, 제작진의 사전 도움 없이 무턱대고 시작한 현지에서의 분투는 모자란 구석이 많아 더욱 응원하게 되는 정감이 묻어났기에 더욱 즐거웠다. 세계적인 육상 선수를 만나는 과정은 과하게 포장할 수 있었지만 언제나처럼 소소하게 치부하는 ‘무한도전’의 담백한 행보는 제설 특집에서도 이어졌다.
최악의 폭설로 눈앞이 깜깜하게 된 강원도 주민들을 감싼 ‘무한도전’ 멤버들은 스스로를 양념으로 표현했다. 자메이카 특집과 연계돼 진행된 탓에 웃음 제조는 자메이카로 떠난 멤버들의 몫이라고 짐짓 가볍게 넘겨버렸다. 대신에 이들은 제설에 열중했다. 그야말로 진정성이 넘치는 제설 특집이었다. 웃음을 만들기 위한 제설 작업이 아니라 어려움에 빠져 있는 이들을 돕고자 하는 마음은 말도 없이 삽질을 해대는 멤버들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더욱이 유재석이 “우린 양념이다. 웃음은 자메이카 특집에서 나올 것이다. 우린 제설하러 왔다”고 외치면서 눈 치우는 일을 더욱 가열차게 하자고 독려하는 모습은 안방극장을 훈훈하게 만들었다. 그렇다고 웃음기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잠깐 숨을 돌리고 쉬는 시간에도 이들은 누가 삽에 더 많은 눈을 푸는지 몰두했고 누가 더 재밌게 몸개그를 펼치는지 대결을 했다. 잠깐의 놀이 후 더욱 힘차게 움직이는 삽은 감동을 안겼다. 이들의 격려 섞인 농담에 간만에 웃음을 짓는 할머니의 표정은 ‘무한도전’이 제설 특집을 만든 배경을 가늠하게 했다.
다른 예능프로그램이라면 제설 특집 자체가 주가 됐겠지만 ‘무한도전’은 곁들이는 양념으로 활용하는 대인배 행보를 보였다. 뭔가 큰 일을 벌여야 하고 뭔가 큰 웃음을 안겨야 하며 뭔가 큰 감동을 선물해야 한다는 강박증에서 벗어나 담백하게 펼쳐놓은 자메이카와 제설 특집이 ‘무한도전’을 더욱 훈훈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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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무한도전’ 방송화면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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