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빈 리홍규
당신의 목소리
문득 당신이 보고싶어져
당신이 주무시던 방을 기웃거린다
해빛 잘 드는 남향 침실엔
전기온돌 장판만 그대로 깔려있고
당신의 손때 묻은 소지품들은
당신 가시는 길에 딸려보내 보이지 않는다
당신처럼 창턱을 짚고 천천히 일어서서
우두커니 창밖을 내려다본다
엄마와 함께 시골서 올라오셔 사시다가
엄마를 먼저 떠나보내신 당신
아침저녁 반주술 한잔 하시고나서
밥상에 앉아 책읽는 시간 제외하고 당신은
매일 이렇게 하염없이 무엇을 바라보았을까
열다섯 소년시절 떠나온후로 다시는 못가본
강원도 춘천의 산과 물을 그토록 못잊어하시던 당신
그런 당신의 팔을 붙잡고 나란히 서서 이 아들은
언제 한번 이렇게 흘러가는 구름을 지켜보았던가
여든을 넘기신 당신이 더 오래오래
사실줄 알았던가…
뒤늦은 후회에 문득 목이 꺽, 메어오는데
홀연 어디선가 어험--, 하는
당신의 목소리 들려온다
화들짝 놀라 둘러보니 당신은 보이지 않고
창가에 세워둔 거울에
비쭉코와 꺼진 눈확 그리고 넓은 이마까지
당신을 빼닮은 사내가 멍청하게 서있다
어험--, 사내가 입을 여니
어험--, 하는 당신의 목소리가 방안에 울린다
사내는 얼른 고개를 돌린다 고개 돌려
당신처럼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바람 한점 없는 시월의 한 복판에
노란 국화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고
꽃속에서 개구쟁이처럼 벌씬--, 웃어버린 당신
또다시 어험--, 하고 이 아들을 부르신다
당신이 그리울 때 당신처럼
어험—, 하고 조용히 불러봅니다
내 몸에서 울려나는 당신의 목소리로
당신을, 당신을 불러봅니다
별 심는 밤
검푸른하늘에 반짝이는 별무리들이
논배미마다에 쏟아져 찰랑대는 밤
개굴개굴 개구리를 쫓던 아들은
엄마의 옷자락을 붙잡고 칭얼댑니다
--엄마, 아직 얼마 더 심어야 해?
검은 땅에 하얀 호박씨를 심던 엄마는
허리를 펴시고 밤하늘을 향해 뭔가 잡아쥡니다
--엄마 뭐하는거야?
--엄마가 하늘의 별을 한줌 잡았단다
엄마는 다시 허리 굽혀 호미로 땅을 파고
하얀 별들을 한 알 두 알 땅에 심습니다
--엄마 나도…… 심을래!
아들도 하늘 향해 작은 손을 펼치자
엄마가 별을 따서 아들의 손에 꼭 쥐어줍니다
하나
둘
셋
넷…
엄마는 이제 하늘의 별이 되였습니다
별이 되신 엄마는
밤이면 밤마다 사뿐사뿐
아들의 별밭에 내려앉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