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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중국의 제1세대 조선족비행사 유병주

[길림신문] | 발행시간: 2011.12.30일 09:25
료심전역 평진전역 중남전역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했던 로전사의 이야기

장춘에 새 중국의 제1세대 비행사로 폭격기 기장, 대대장으로 있었던 조선족 유병주로인이 계신다는 말을 듣고 기자는 12월 22일 장춘시 록원구에 있는 청년로 로간부휴양소를 찾아갔다.

미리 취재련락을 해온 상황이나 유병주로인은 기자를 만나자 《정치심사》를 했다. 기자증을 보자는것이였다. 비행사였고 또 《문화대혁명》시기에 3년 8개월동안 《학습반》에 들어가 《반성》을 한 경력이 있었기때문에 조심하고있다는것이였다.

올해 83세 나는 로인은 나이와는 달리 신체가 좋아 보였다. 말소리가 똑똑하고 사유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는 자기는 별로 해놓은 일이 없다며 자기보다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을 소개하겠으니 그분을 취재하라며 취재를 거절했다. 기자가 중국의 제1세대 조선족비행사란 점에 흥미를 가진다고 하자 그는 흔쾌히 승낙했다.

비행사라면 신체조건을 빼놓고 엄한 정치심사를 거쳐야 하는데 조선족으로서 어떻게 뽑혔는지 알고싶다는 물음에 유병주로인은 신체도 좋고 무엇이나 잘해서였다며 말머리를 뗐다.

폭격기비행사로 첫 전투서 승리

1928년 3월 6일 길림성 훈춘현 경신에서 태여난 유병주는 1946년 2월에 조선의용군 제5지대 교도대에 입대하고 1947년 4월에 동북군정대학 길림분교를 졸업한후 동북민주련군 길동독립제1사공급부(후에 제4야전군141사공급부로 개편)에서 복무하였다. 해방전쟁시기에 료심전역, 평진전역, 중남전역 등 크고 작은 전투에 참가했다.

1949년 9월 중국인민해방군에서 제1세대 비행사를 양성한다는 상급의 지시에 따라 전국 륙군 패장이상 간부들가운데서 비행사를 뽑았다. 네번의 신체검사에서 최상위를 차지했고 지나온 성적이 뛰여난지라 유병주는 정치심사에도 통과되여 순조롭게 할빈 제1항공학교에서 항공리론과 기술을 배우게 되였다.

유병주는 《당시 항공교원이란 구쏘련 교원들이고 비행기도 구쏘련비행기였다》며 《 제1세대 비행사가운데 조선족비행사가 8명이나 있었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학교에서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고 항공기술을 열심히 익힌 보람으로 유병주는 침착한 심리자질과 숙련된 비행기술을 장악하게 되여 학교에서는 그에게 3등공을 기입해주었다.

1950년 6월 25일 조선전쟁이 폭발되고《38》선을 넘어서는 안된다는 중국정부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맥아더가 지휘하는 《련합군》은 《38》선을 넘어 계속 북상하였다. 이런 위기상황에 모택동주석은《항미원조 보가위국》의 기치를 높이들고 전국 군민들이 이 운동에 뛰여들것을 호소하였다.

1950년 11월 상순 유병주는 항미원조전쟁에 참가할 준비를 하라는 상급의 명령을 받고 비행훈련을 다그쳤다. 1951년 11월 29일 밤 11시, 유병주소속 대대에서는 미군에게 점령당한 조선의 서해안 대화도를 야간 폭격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10대 비행기가 항행등을 켜지 않고 동시에 밤하늘을 꿰뚫고 대화도를 향했다. 예정된 위치에 다달으자 앞에서 비행하던 비행기가 조명탄을 투입하고 폭격기비행사인 유병주는 그 뒤를 이어 한매 또 한매의 폭탄을 적군목표에 정확하게 던졌다. 첫 전투에서 원만하게 임무를 수행한 유병주와 그의 전우들은 상급의 표창을 받았고 유병주는 3등공에 기입되고 기장, 대대장으로 임명됐다.

폭격기 기장 겸 대대장으로 있을 때의 유병주(왼쪽 첫번째)와 그의 전우들


목숨을 잃을번한 두차례의 비행시험


유병주는《1952년 항미원조전쟁에서 돌아온 나는 비행시험원으로 배치받고 많은 비행시험을 했지, 그때 20대 초반이였는데 위험천만한 일을 두번이나 겪었소》라고 하며 위험의 고비를 넘긴 두차례의 비행사고를 얘기했다.

한번은 비행기가 리륙해서 얼마 안돼 속도, 고도, 비행방향 등 주요 표시의기가 돌연 전부 고장이 생겨 유병주앞에는 의거로 될만한 아무런 수자도 보이지 않았다. 비행기와 함께 땅에 굴러떨어질 아찔아찔한 위기일발의 시각에 유병주는 침착하고 숙련된 비행기술과 경험으로 성공적으로 착륙했다.

또 어느 한번은 비행시험을 마치고 착륙하는데 비행기뒤바퀴가 고장이 나서 비행기가 고속으로 활주로를 벗어나 곧장 옆에 있는 공장건물로 향했다. 유병주는 위험앞에서 두려워하지 않고 격렬한 요동속에서 태연하게 작동하여 비행기를 건물앞에 뚝 세웠는데 공장건물와의 거리가 17메터도 채 안되였다. 한차례의 큰 악성사고를 피면하게 된것이다.

공군병원에서 만난 인연


할머니를 보니 할머니도 군대출신 같다고 하자 옆에서 줄곧 우리 얘기를 듣고있던 유병주의 안해 오민지는 인제야 차례가 왔다싶어 유병주로인과의 련애사를 얘기했다.

올해 76세 나는 유병주의 안해 오민지는 목단강시 사람으로서 15살도 되기전에 입대하고 공군제1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있었다. 후에 북경의학원을 졸업하고 공군부대 군의로 있다가 1980년에 민항병원에서 근무했다. 오민지는 1952년 말에 공군병원에서 간호원으로 있을 때 맹장수술을 하러 온 유병주를 만났다. 같은 민족이라 간호하고 간호받고 하는 사이에 둘은 서로 호감이 생겨 1956년에 결혼했다.

그 사이 1954년부터 1958년 유병주는 구쏘련공군학원에서 류학하게 되였는데 이 학원은 전문 공군 중급지휘관과 참모를 양성하는 학원이였다. 공부하는 시기 유병주는 구쏘련방문을 온 모택동주석의 접견도 받았다.

오민지할머니는 《나는 이리 가고 저리 가고 하면서 평생 령감따라 다녔소》하면서 《남편이 류학을 마치고 온후로 중국인민해방군 공군학원에서 교편을 잡게 되자 우리는 북경에서 생활하다가 1971년 4월에 남편이 신강민항국 부국장으로 임명되자 나는 또 그를 따라 신강에 가고 1981년 9월에 부참모장으로 중국인민해방군 장춘공군비행학원에 오게 되자 장춘에 오게 되였소》, 《령감이 3년 8개월동안 <학습반>에서 <반성>할때는 혼자서 애 셋을 키웠소, 그때 제일 큰 애가 12살이고 작은 애가 5달밖에 안되였소. 몸이 고달픈것은 둘째치고 마음고생을 많이 했소》라고 털어놓았다.


《1983년에 리직휴양하고 지금은 로친과 함께 태극권을 하고 게이트뽈도 치고 신문도 보고 참으로 재미있고 여유로운 생활을 누리고있소》. 이렇게 말하는 유병주로인의 모습이 참으로 즐거워 보였다.

안해 오민지와 훈장을 정리하고있는 유병주

편집/기자: [ 홍옥 ] 원고래원: [ 길림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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