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이자 앱 | | 모바일버전
뉴스 > 사회 > 사건/사고
  • 작게
  • 원본
  • 크게

나가토미 히로유키, 중국 여성과 아이를 동굴집에 몰아 넣고 방화 살인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4.07.16일 10:29

(흑룡강신문=하얼빈) 중앙당안관의 나가토미 히로유키의 1955년 2월 서면 자백서에 의하면, 그는 1916년 일본 구마모토현에서 태어나, 1938년 중국 장쑤성 우장현에서 화중파견군 선무반 인원으로 임직했다. 1945년 일본침략군이 투항한 후 국민당 옌시산(阎锡山) 부대에 귀순했다. 1949년 산시에서 포로되어 수용되었으며 1950년 12월 9일 체포되었다.

  중요 죄행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1938년 1월 국사관 학생으로서, 난징 샤관에 도착하기 전 길에서, '몇 만 명이나 되는 헤아릴 수 조차 없이 많은 시체를 보았다." 난징 샤관에서는 강에 뛰어든 '포로를 총으로 쏴 죽였다.'

  1938년 4월, 장교들에게 시범 교육을 하기 위해, 우장현에서 포로 1명을 '일본도로 참수했다'. 또한 '모 중국 여성을 강간했다. 그 후 일주일을 경과해, 다시 쑤저우로 갈 때 이 여성을 우장으로 데리고 가 일주일 동안 강간했다'.

  1938년 11월, 안칭에서 '중국인 여성 한 명을 불러다 기관 내에서 강간했다'. 또한 다음 날 모 중국인의 집에서 소개해주는 중국인 여성을 한 번 강간했다. 12월, '안칭 성내의 모 중국인 집에서 모 여성(16세)을 나에게 소개해 주어서 그날 밤 강간했다.

  1940년 10월, 쑤저우 우중식당에서 심부름꾼에게 중국 여성(20대 전후)을 소개해 줄 것을 명령해, 강간했다.

  1941년 5월, '신병 50명에게 백병전 교육을 시키기 위해', 포로들 중 '한 명을 10m 밖의 거리에서 뛰어 가 총검으로 찔러 죽였다.'

  1942년 5월, 산시 원시현에서의 소탕 중 중국인 공작대(한간대오)에 명령하여 길 안내를 거절하는 중국인을 총살해, '그 시체를 길에 버렸다.'

  1942년 8월, 원시현 헝수이진 둥호우촌을 수색할 때, 주민 5명을 '헝수이진 소북문 외 공터에서 일본도로 참수했다'.

  1942년 10월, 원시현 윈취안촌 니유좡촌 일대를 수색할 때, 붙잡은 중국 인민을 '모두 총검으로 찔러 죽이거나 혹은 보총으로 쏘아 죽였다'.

  1942년 11월, 원시현에서 소탕할 때, 진남야전군 전사 3명을 체포했는데, 헝수이진 첩보실에서 '첩보소가 중국인 철공에게 시켜 만든 일본도의 참수 가능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헝수이진 밭 우물 옆에서 참수했다'.

  1942년 12월, 원시현 샤위커우촌에서 '창으로 8명의 둔부를 마구 찔러 살해했다'. 원시현 둥산디촌에서 체포한 20여 명 주민을 '일본도, 풀 베는 칼 등으로 참살했다', 또한 '참살한 중국 인민 2명의 머리를 남문에 걸어 효시했다'.

  1943년 2월, 원시현 베이바이스촌에서 소탕할 때 '15명을 마을 북쪽 와지에 끌어다 보총으로 총살했다' 같은 날, 가이싸이촌에서 '내가 명령을 내려', 공작대(한간대)가 보총으로 9명을 총살했으며, 길 안내한 사람을 태워 죽였다.

  1943년 10월부터 11월까지, 타이웨산맥에서 중국 주민 6명을 '높은 산 정상에서 아래로 밀어 뜨려 전부 살해했다'. '모 촌에서 중국 여성과 아이 20명을 동굴 집에 몰아 넣고 방화 살인했다'.

  1944년 7월, 런훠현에서 보안대 지도관으로 있을 때, 위안소를 개설했다. '목적은 보안대의 병사들을 여색으로 마비시켜 그들이 도망치는 것을 막기 위해서였다. 더구나 나 자신도 공공연히 수욕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

  1944년 12월, 두이훠현 리자산 일대에서 소탕할 때, 촌민 3명을 체포해 고문했다. 이들이 어떻게 고문해도 말하지 않았으므로 '병사들에게 그들을 모두 살해할 것을 명령했다'. 시쉬촌 남쪽에서 11명을 보총으로 쏘아 죽였다.

  1945년 4월, 보안대를 지휘하여 포로를 받아들이었고 '9명을 눈을 가리고 손을 묶어 총살하였다'.

  '일본군 시절, 옌시산을 협조하던 시절, 및 해방 되어서까지 범한 모든 죄악에 대해 통계하면', 주민 88명을 사살, 9명을 척살, 2명을 생매장, 26명을 방화 살인, 1명을 익사, 6명을 추락사, 41명을 일본도 혹은 풀 베는 칼로 참살했다. 중앙군, 진남야전군, 항일 전사 61명을 살해했다.

  '일본이 중국을 침략해서 전패하기까지, 내가 범한 죄악을 통계해 보면, 직접 살해한 중국인은 모두 61명이었다', 명령을 내려 살해한 전체 인원은 166명이었다. 명령을 받고 지령을 내려 참살한 사람은 41명이었다.

  '여성에 대한 강간 죄악은 7건이었다(그 중 유부녀가 5명이고, 미혼자가 2명이었음). 위안소를 설치해 일본군과 보안대의 수욕을 채우게 한 죄악은 3건이고 12명 여성과 관련된다. 내가 강간한 중국 여성은 18명이었다(위안소 여성 5명, 식당 여급 4명, 사창 8명, 하녀 1명).'

출처:CCTV.com

뉴스조회 이용자 (연령)비율 표시 값 회원 정보를 정확하게 입력해 주시면 통계에 도움이 됩니다.

남성 100%
10대 25%
20대 0%
30대 75%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여성 0%
10대 0%
20대 0%
30대 0%
40대 0%
50대 0%
60대 0%
70대 0%

네티즌 의견

첫 의견을 남겨주세요. 0 / 300 자

- 관련 태그 기사

관심 많은 뉴스

관심 필요 뉴스

사진=나남뉴스 레전드 시트콤 '세 친구'의 주역이었던 윤다훈이 이동건과 만나 기러기 아빠 근황을 공개했다. 최근 방송한 SBS '미우새'에서는 윤다훈이 오랜만에 출연해 오랜 인연 이동건과 만남을 가졌다. 윤다훈은 "7년째 기러기 아빠, 할아버지로 지내고 있다. 큰
1/3
모이자114

추천 많은 뉴스

댓글 많은 뉴스

1/3
"왜 피해자 행세하냐" 최병길PD, 전처 서유리 저격 '억울하다' 고백

"왜 피해자 행세하냐" 최병길PD, 전처 서유리 저격 '억울하다' 고백

사진=나남뉴스 방송인 서유리와 이혼 소식을 알리면서 충격을 주었던 최병길 PD가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19일 최병길 PD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참고만 있으려니 내 앞길을 계속 가로막는다"라며 "싸우고 싶진 않지만 내 상황이 너무 좋지 않으니 최소한 방

"술 마셔도 무죄" 김호중, '이창명 음주 사건' 혐의 입증 어렵다 왜?

"술 마셔도 무죄" 김호중, '이창명 음주 사건' 혐의 입증 어렵다 왜?

사진=나남뉴스 뺑소니 혐의를 받고 있는 트로트 가수 김호중이 국과수에서 음주 소견을 받았음에도 무죄 가능성이 제기돼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현재까지 김호중이 접촉사고를 일으키기 전 술을 마신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이 계속해서 포착되고 있다. 먼저 지난 17

미니영화 《결혼등기》...황혼재혼에 대한 사색의 여운

미니영화 《결혼등기》...황혼재혼에 대한 사색의 여운

연변영화드라마애호가협회에서 올들어 네번째 작품으로 내놓은 미니영화 《결혼등기》가 5월16일 오전 연길한성호텔에서 시영식을 가졌다. 연변영화드라마협회 부회장 김기운이 감독을 맡고 전영실이 극본을 쓴 미니영화 《결혼등기》는 리혼한 부모의 재혼을 둘러싸고

모이자 소개|모이자 모바일|운영원칙|개인정보 보호정책|모이자 연혁|광고안내|제휴안내|제휴사 소개
기사송고: news@moyiza.kr
Copyright © Moyiza.kr 2000~2024 All Rights Reserved.
모이자 모바일
광고 차단 기능 끄기
광고 차단 기능을 사용하면 모이자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
모이자를 정상적으로 이용하려면 광고 차단 기능을 꺼 두세요.
광고 차단 해지방법을 참조하시거나 서비스 센터에 글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