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현 성화조선족향 춘복양로원 최춘복원장의 이야기
(흑룡강신문=하얼빈) 최계철 기자 = "양로원을 로인들이 만년을 즐길수 있는 보금자리로 만들겠다." 이는 화천현 성화조선족향 춘복양로원의 최춘복원장(58세)이 늘 입버릇처럼하는 말이다.
최춘복원장은 어렸을때부터 아주 어렵게 생활해왔다.가난한 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세살때 의외의 사고로 다리를 상해 장애인이 되였으며 십여살때에 량친 부모가 세상을 떠나 어렵게 살다가 두 오빠마저 병으로 돌아가게 되자 녀자형제 넷이 어렵게 나날을 보내야했다.그러다 20살이 넘어 가정을 이루고 두 아들의 엄마가 되였다.
비록 한쪽 다리를 못쓰는 장애인이기는 하지만 그는 가정의 생계를 위해 논농사도 억척스레 지었고 아이스크림장사도 했으며 수놓이로 돈벌이를 하면서 근근히 생활을 유지해나갔다.그러다가 러시아장사길에 올라 간난신고를 겪기도 했고 나중에는 한국에 가서 일을 하기도 했다.한국에 있는 기간 그는 로인가정에서 로인을 돌보는 일을 꾸준히 해 3년간 20만원을 벌었다.
어렸을때부터 어렵게 살아온 그는 언젠가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뭐라도 해보고싶었다.특히 한국에서 돈벌이를 하면서 조건이 허락되기만하면 고향에 돌아와서 양로원을 꾸려보기로 마음먹었다.
그가 2006년에 고향에 돌아와보니 마을엔 어린이와 로인들밖에 없었고 로인들이 집을 외롭게 지키며 사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노라니 가슴이 쓰라렸다.여러번 고민하던끝에 그는 양로원을 꾸려보기로 결심했다.
2008년, 그는 한국에서 벌어온 돈에다 광주에서 개인회사를 운영하는 아들의 도움을 받고 대출까지 내 도합 100만원을 투자해 양로원을 번듯하게 일떠세웠다.600평방미터에 달하는 양로원은 방 20칸에 모두 온돌방으로 되여있으며 기타 부대시설도 구전히 갖추었다.그리고 양로원주위에 2000평방미터에 달하는 채소밭과 3000평방미터에 달하는 양어장까지 마련했다.
최춘복원장은 양로원을 경영하면서 로인들을 잘 모시기 위해 여러모로 신경을 썼으며 모든 일에서 로인들의 편리를 첫자리에 놓았다.로인들에게 삼시세끼 맛나고 따뜻한 음식을 대접하는것은 물론 병환에 계시는 로인들도 일일히 돌봐드렸다.로인들을 자기의 친 부모처럼 잘 살펴드려 어떤 로인들은 양로원에 와서 병이 호전되기도 했다.어떤 로인은 한국에 자식들 보러 갔다가 기한이 차기도전에 양로원이 그립다며 앞당겨 오기도 한다.
이뿐이 아니다.양로원의 로인들이 생일을 쇨때면 꼭 미역국을 끓여 대접하고 함께 생일을 쇠며 축복을 해드린다.그리고 로인들이 양로원에서 세상을 뜨면 후사처리도 자식들대신 한다.
양로원에 활기를 불어넣기 위해 경상적으로 오락활동도 조직하는데 피리,손풍금,전자풍금도 마련하고 노래공부도 종종 조직한다.작년에 이 양로원에서는 로인들을 조직해 탕원현과 가목사시 교외의 일부 촌들을 찾아다니며 문예공연을 조직했는데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다.
춘복양로원에는 현재 20여명의 로인이 있는데 당지 성화향외에도 가목사,의란,화남 지어는 연변,상해에서도 온 로인들도 있다.
양로원을 경영하는 일이 쉽지는 않지만 최춘복원장은 "로인들이 건강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면 힘이 나며 이 일을 평생의 락으로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오로지 로인들을 위한 일만 할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