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으면서 장난치듯 사과해서 더 화가났다."
어처구니 없는 '폭력 축구'의 피해자 심상민(22·FC서울)이 언론에 처음 입을 열었다. 심상민은 태국 킹스컵에서 우승을 차지한 뒤 22세 이하 축구대표팀 동료들과 함께 9일 새벽 귀국했다. 1주일도 더 지난 일이지만 아직도 분하고 어이없는 듯 사건을 돌아보는 심상민의 목소리는 떨렸다.
지난 1일이었다. 킹스컵 1차전에서 우즈베키스탄의 샴시디노프는 경기 도중 한국 선수와 엉겨 넘어진 뒤 두 주먹으로 심상민의 얼굴을 3차례나 강타했다. 마치 복싱을 보는듯 했다. 동영상을 본 국내 축구 팬은 물론 외신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국 데일리 미러는 "킹스컵은 축구대회인가 마상 창 게임(말을 타고 서로를 창으로 찌르는 경기)인가"라며 "화가 난다고 해서 상대 턱이 돌아갈 정도로 가격하는 게 이성적인 행동인가. 살인 미수죄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일갈했다.
심상민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다. 언론에서는 저에게 대처를 잘 했다고 해 주시는데 전 그냥 어이가 없어 멍하니 있었던 것 같다"고 기억했다. 축구를 하면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그는 "고등학교 축구에서도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대표팀 경기에서 이런 일이 나오니 더 당황스러웠다"고 털어놨다.
심상민은 더 화나게 한 것은 우즈벡의 사과 태도였다. 가해자인 샴시니노프는 2일 한국 숙소를 직접 찾아 고개를 숙였다. 심상민은 "대화가 안 되니까. 그냥 오케이면 다 되는 거니까"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이어 "샴시니노프 전에 다른 선수가 찾아왔다. 제가 식당에서 과일을 접시에 담고 있는데 해맑게 약올리는 식으로 사과를 해서 더 화가났다"고 토로했다. "'내가 지금 그냥 접시에 과일을 담고 있을 때인가'라는 생각을 했다"는 심상민의 말에서 당시 분노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축구협회는 우즈벡축구협회가 와서 정식 사죄했고 사과 공문까지 보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정작 피해 선수는 그 사과에 대해 진정성을 못 느끼고 있는 듯하다. 형식적인 제스처가 아니었나 의구심이 드는 대목이다. 협회 차원의 해명이나 다른 조처가 필요해 보인다.
심상민의 마음을 풀어지게 한 사람들은 역시 팀 동료들이었다. 그는 "애들과는 그냥 장난을 많이 쳤다. '쫄은거(위축됐다는 뜻의 비속어) 아니냐'는 소리를 젤 많이 들었다"고 했다. 이 때서야 심상민은 조금 웃음을 지었다. 주장 연제민(22·수원 삼성)은 "우리는 상민이에게 장난도 많이 걸고 하면서 잊었다"면서도 "그런 폭력은 축구하면서 처음 봤다. 상민이가 대처를 잘 해서 마무리됐지만 앞으로는 절대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인천공항=윤태석 기자 sport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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