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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단상- 이것저것 생각하며

[흑룡강신문] | 발행시간: 2015.06.30일 09:28
(흑룡강신문=하얼빈)

  1. 드라마를 가끔 건너 띄면서 본다

  어쩌다가 중국 드라마를 보게 되었다. 중국 드라마는 아니라 싶어서 늘 보지 않았었는데 이제 보니 제법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국 사람들이 쌓는 재부와 함께 중국 사람들이 쌓는 문화와 함께 현실성과 진실성에 바탕을 둔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는 일이 참 사람을 기쁘게 해준다.

  이야기도 좋았고 인물 연기도 좋았다. 무엇보다 인물들의 생신한 대화가 좋았다. 그래서 연속 며칠을 보았다. 이야기 속에 끌려들어 다음은 어떻게 될까 호기심이 돋는 작품이었다. 드라마 속의 기쁨을 같이 하며 하하 웃기도 하였고 드라마 속의 슬픔에 동감하여 눈시울을 붉히기도 하였다. 좌우간 매일 저녁 정해진 시간에 그 드라마를 보는 일이 정말 나쁘지 않았다.

  물론 문제가 좀 있었다. 어떤 날 저녁은 미팅이 있어 드라마 시간을 놓쳐버리게 되었다. 이 작품만은 꾸준히 다 봐야 하겠다고 생각한 것이 틀려 내심 아쉽기도 하였다. 하루에 2집씩 하는 것을 놓쳐버리면 이야기 맥락이 툭 끊어져 버리는 것이 아닐까, 완정하게 다 보지 못할 것이면 아예 시청을 포기하고 말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루를 건너서 보아도 역시 재미가 있다는 것이었다. 만든 이들의 사로를 떠나서 두 집을 뭉청 던져버리고 보아도 역시 좋은 드라마였다. 오히려 모르고 넘어간 부분들이 있어서 완정하게 다 본 것 보다도 더 신기하고 생동한 것 같았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드라마도 제작인이 다 보여주려고 하는 것들 때문에, 작품의 완정성을 시도하기 때문에 저도 모르게 상식적인 내용이 들어가게 되고 군더더기가 가첨되게 된다. 그것이 작품의 신빙성을 떨어뜨린다.

  작품은 인간세상 속의 현실보다 훨씬 짜여졌고 훨씬 논리적이며 훨씬 완미하다. 때문에 우리 삶의 현장보다 생신하지 못한 일면이 있게 마련이다. 우리 개개인은 완미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늘 우발적인 일, 앞뒤가 맞물리지 않은 일, 아름다운 소망과 어울리지 않는 일들과 조우한다. 그래서 우리는 논리적으로 완정한 틀에서 벗어난 미완성적이고 비대칭적인, 지어 우연적이고 기형적인 삶을 살아가기도 한다.

  아주 균형이 잡히지 않은 때로는 편면적인 그런 작품이 출시 될 수는 없을까. 이 세상의 수많은 인생들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2. 나라도 지구촌도

  중국은 이제 빈부 차이를 줄이고 다 같이 잘 사는 그런 사회를 만들어야만 한다는 이치를 깨달은 것 같다. 농촌, 농민에 대한 지원, 도시 최저임금 인상, 국유기업 고층의 임금제한 그리고 세제 개혁, 반부패 혁명…… 개인 욕심과 만민의 이익을 융합시키는 그런 길을 모색하고 있다. 발달한 나라일수록 중산층이 많고 자선사업이 잘 되고 있다.

  누구나 다 아는 바이지만 사람이 이 세상에서 사실 혼자 가질 것은 많지 않다. 많은 것은 공유하면 된다. 공평하게 같이 소유하고 같이 이용하면 된다. 꼭 내 집이 있어야만 하는가? 꼭 내 차가 있어야만 하는가? 꼭 핸드폰이 있어야만 하는가? 아니다. 세집 정책과 문화가 잘 되어있어 편하게 살 수만 있다면 집은 없어도 되는 것이다. 집을 내 재산으로 생각하지 말고 내가 살림할 수 있는 공공건물로 생각할 수도 있다. 자가용도 그렇다. 자가용이 너무 많아서 길가의 쓰레기처럼 보이는 것이 중국 현실이지만 앞으로 대중교통을 잘 마련하여 갈수록 많은 사람들이 자가용을 보유하고 싶지 않게 해야 한다. 핸드폰도 사람마다 가지고 다니게 하지 말고 언제 어디서 누구든 이용이 가능하도록 시설을 갖춰놓으면 안 될 것 없다. 여하튼 사람들 마음속에서 “내욕심”을 깨버리도록 인도하는 것이 오늘날 시대적 의무로 나졌다.

  국가라는 테두리 안에서도 내욕심을 깨버려야 하는 것이지만 대외적으로 나라들 사이에도 국가적 이기심을 없애야 한다. 영해나 영토를 조금이라도 더 소유하려고 아웅다웅하는 국제사회다. 정치가들, 외교가들이 다 꼴불견이다. 내 것을 위해 아직도 전쟁을 일삼고 있는 나라들, 영토분쟁 때문에 원수처럼 사이하는 나라들…… 소위 세계를 지도한다는 미국 대통령도 말끝마다 “미국의 이익”을 입에 담으면서도 부끄러운 줄을 모른다.

  언제 가야 나라들 사이의 국경이 무너지고 지구촌 모든 사람들이 운명공동체로 될 수 있을까.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필요로 하는 세상, 강자와 약자가 공평하게 사는 세상, 개인소유보다 공동소유물이 훨씬 더 많은 세상, 가지는 것 보다 이용하는 것이 더 중시를 받는 세상 이런 세상을 선망하는 가치관이 보편화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개인이익이 공동이익 속에서 더 잘 보장될 수 있는 그런 지구촌이 되어야 한다.

  3. 마음이 사람을 지킨다

  “미국에서 93달러 어치의 식사를 한 뒤 2000달러의 봉사료를 낸 사례가 알려졌다……. 이 손님은 계산서 아래 쪽에 1000달러는 요리사에게, 500달러는 음식을 가져다 준 종업원에게, 500달러는 식당주인에게”라고 써놓았다.(‘국민일보’ 기사)

  다른 사람이었다면 이렇게 맛있게 먹고 돈도 적게 썼다고 좋아하면서 93달러만 물었을 수가 있다. 돈은 적게 쓰고 너무 잘 먹었다고 기분이 좋아졌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내가 고객으로서 소비를 했으니까 식당을 도왔다고 당당해 할 수까지 있다.

  그런데 봉사료를 낸 그 미국사람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얼만큼 대접을 받았다면 그만큼 보답을 해 주는 것이었다. 내가 내 마음에 충직했던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실력 안에서 내 마음을 즐겁게 해준, 심지어 나를 감동하게 해준 사람들에게 내 뜻을 행동으로 전해야 내가 행복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누구에게서 무슨 도움을 받았을 때도 그렇다. 내가 오늘 운이 좋아 좋은 사람을 만났다고 좋아하는 선에서 끝나지 말고 고마운 내 마음을 실제 행동으로 전해야 옳은 것이다. 마음에 고마움이 느껴졌을 때는 그 고마움의 무게만큼 실천하는 것으로 내 마음의 순결과 희락을 지켜야 한다. 절대 아까와 하지 말아야 한다. 아까와서 누구한테 주었어야 할 팁을 주지 않았다면 당신의 마음은 순수와 행복을 잃게 된다.

  모든 사람들이 받은만큼 보답하며 산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더 의로와지는 것일까. 좋은 사람은 좋은 대접을 받을 것이고 좋은 사람을 대접한 사람은 순수해질 것이다. 이 세상에 좋은 사람과 순수한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세상으로 가기 위해서 모든 사람들이 신경을 써야 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을 지키면 된다. 절대 마음과 행동을 분리시키지 말아야 한다. 늘 공짜가 좋아서 고마울 때도 굽썩 인사만 하지 말고 마음이 씨이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의 일을 해야 한다. 좀 아까운 것은 잠시고 편해지고 당당해지는 것은 오래 간다. 이렇게 세상에도 좋고 내 자신에게도 좋은 일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

  내가 내 마음을 지킨다.

  4. 나도 그 강의 주인이다

  “낙동강 유역에서 물고기에 이어 새우도 죽은채 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 소식을 접한 그날 나는 하루종일 기분이 나빴다. 중국에 살고 있고 한국인도 아닌 조선족이지만 왠지 생각이 민감해졌다. 낙동강 환경청에서 조사에 나섰다고 하니까 일이 원만히 풀리겠지만 나는 왠지 자꾸자꾸 기분이 나빠졌다.

  한국의 3대강으로 낙동강은 태백산 계곡을 흘러 드넓고 풍요한 유역을 형성하여 흘러 흐른다. 이 유역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먹여살렸고 얼마나 많은 동식물들을 키워줬던가. ‘낙동강’이란 장편소설이 있듯이 낙동강 유역에는 우리 민족의 한과 행복이 깃들어 있다. 말하자면 민족의 얼이 스며있는 강이다. 그래서 내가 비록 이국타향에서 살지만 낙동강 하면 금방 심장박동이 세차진다.

  가능했다면 나는 언녕 낙동강 유역 그 어디에 집을 잡고 살았을 것이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유혹에 이끌려 낙동강이 바다로 흘러드는 부산, 을숙도가 바라보이는 부동산개발을 관심하기도 했었다. ‘명지대방노블랜드’라는 아파트단지에서 살림집을 한채 마련하고 싶기도 하였다. 거실에 앉아 낙동강을 내다보며 명상에 잠기고 글을 쓸 수 있다면 얼마나 큰 낭만일까!

  오래 전부터 나는 낙동강에 유혹되어 있었다. 비록 한 번도 가보지 못했지만 낙동강은 신비로운 기운으로 내 마음 속을 파고 들었다. 세상에서 가장 신선한 공기가 거기 있을 것 같앴고 세상에서 가장 값진 약재가 거기 있을 것 같앴으며 세상에서 가장 맛좋은 음식이 그곳에서 날 것 같앴다. 낙동강은 언녕 내 마음의 고향이었었다.

  낙동강은 단 그 유역 주민들의 강만은 아닌 것 같다. 거기를 가본 사람들의 몫만도 아니겠다. 한국에 살든 해외에 살든 마음에 낙동강이 스며 있으면 곧 그 강의 주인이라고 할 수 있다.

  나도 낙동강의 주인이고 싶다.

  5. 나의 기도

  나는 매일 잠자기 전에 하나님께 기도를 올린다. 그 내용이 여러 가지지만 가장 핵심적인 것은 내가 “죄를 떠난 사람”으로 되게 해주십사 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나의 내심 발로였다. 나는 정말로 법을 떠난 죄도 그렇거니와 양심을 어긴 죄를 범하고 싶지 않았다. 매일 한 번씩 자기 전에 오늘 하루 내가 한 일들이나 가진 생각들을 점검해 보면서 내 자신을 성찰하곤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정말 유쾌한 일이었다. 사람은 이 세상을 살면서 법적인, 양심적인, 도덕적인 죄들을 범하기가 너무도 쉽다. 생존적 본능으로부터 출발하여 내게 이되는 일이면 다 하려고 덤빈다. 어떤 사람에게는 양심이나 도덕이 전혀 없다. 나쁜 일을 해서 내 이익을 챙기고는 속으로 깨고소해 한다. 남을 짓밟고 올라서서는 내가 총명하다고 우쭐해 한다. 양심을 어겨서 무엇을 얻고는 하늘이 나를 돕는다고 즐거워 한다. 그런 사람들을 보면 너무 불쌍하다. 돈만 가지면 뭘 하는가, 어떤 기념비에 이름만 올리면 뭘 하는가!

  조물주가 사람을 만들 때 이미 재판장을 만들어 놓았다. 그것은 곧 양심과 도덕이다. 너가 지금 아무리 간악하게 날뛰어도 결국에는 네 마음 깊이에 은거해 있는 양심이란 심판장을 만나게 된다. 양심을 떠나서, 도덕을 떠나서 결국 행복할 수 없는 것이 인간이다.

  온갖 잡귀신들이 난무하는 이 세상에서 내가 “죄를 떠난 사람”으로 된다는 것은 너무나 큰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악”을 떠나면 마음이 커진다. 아무리 큰 사람도 굽어볼 수가 있으며 아무리 악한 사람도 불쌍히 여길 수 있는 아량이 생긴다.

  결단코 “악”을 떠나고 싶어진 내 자신이 대견스럽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악”의 그늘 속에서 어둡게 살고 있는 이때 “악”을 떠날 수 있는 내 자신은 정말로 행운아라고 밖에 말할 수 없다.

  나를 위해서, 중생을 위해서 오늘도 기도한다. “악을 떠난 사람”으로 되게 하여 주옵소서.

  6. 로또를 사다가 문뜩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로또를 샀다. 문뜩 큰 행운이 떨어질 수가 있다는 기대감에서였다. 가장 스릴 넘치는 것은 컴을 열고 로또를 맞춰보는 시간이었다. 행여나 하는 마음으로 그 숫자들을 하나하나 맞추는 것이 정말로 유혹적이었다. 먼저 손으로 숫자들을 가리고 한자씩 내보이는데 그것이 하나하나 맞아떨어질 때 그 흥분과 기대는 정말 아짜아짜하기까지 하다. 그래서 로또를 사는 것은 나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러다가 저번날, 로또 집으로 들어가는 한 사람을 보게 되었다. 부청장 급까지 하는 내가 잘 아는 나그네였다. 저 사람도 로또를 산단 말인가?! 저 사람도 돈이 귀해서, 행여나 해서 로또를 사고 있다는 말이지? 한데 나는 왜 자신은 로또를 사면서 저 사람이 사는 것을 우습게 여기는 것일까? 신분이 있는 분이기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까? 좌우간 나는 신분이 있거나 점잖은 사람은 로또를 사지 말아야 할 것 같앴다.

  이제 생각해보니 로또집을 드나드는 그 순간 나도 아는 사람을 만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이 스치는 것이 사실이었다. 내 혼자 몰래 사고 누구에게도 그 말을 하지 않는 내가 아닌가. 그럼 내가 쑥스러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내가 로또를 사는 내 마음을 알기 때문이였다. 로또를 사고 그 당첨을 바라는 것은 하늘에서 떡이 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나 비슷한 것이다. 노동으로, 노력으로 부자가 되려는 것이 아니라 공짜로 횡재를 하고 싶어하는 가련한 마음이 안받침 되어 있는 것이다. 그리고 로또에 매달리는 것은 현실에서 그만큼 희망이 없고 앞길이 막혀서 사는 그런 삶 때문이기도 하다.

  물론 로또를 사지 말라는 권고는 아니다. 재미로 어쩌다가 한 번씩 사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다. 그러나 로또에 중독이 되어서 헤어나올 수가 없다면 문제가 된다. 현실에서 희망을 개척하지 않고 로또에 ‘공짜떡’을 걸고 산다면 그것은 참된 삶이 아니다. 진짜 가능한 희망은 내 직장에 있고 내 가정에 있고 내 신변 친구들 속에 있다.

  올해 나는 로또를 한 번도 사지 않았다.

  7. 행운

  가장 평범한 나의 사무실 창문이다. 그런데 나는 가로수 저 너머로 한강이 흐른다는 환상을 한다. 창문을 열어놓았을 때의 차량 소음을 해변의 파도소리로 환상한다. 늘 이렇게 환상을 하며 너무 좋은 기분으로 나날을 보낸다.

  50살을 훌쩍 넘어선 이 신세, 어쩌면 좋은 때가 다 지나간 것이라고 낙담을 할 이 때 나는 늘 즐겁기만 하다. 그것은 내가 하는 일이 내가 휴식하는 것과 같아졌기 때문이다. 언제부턴가 내게는 일하는 것과 휴식하는 것 사이에 차별이 없어졌다. 어떤 때는 일하는 것이 휴식하는 것보다 더 좋은 휴식이 되곤 했다. 휴가날이 더 좋을 것도 없어졌고 출근날이 힘들다는 생각도 없어졌다.

  그래서 나는 자꾸 일을 한다. 이렇게 일을 하니까 성과가 자꾸자꾸 쌓여간다. 좋은 일들이 자꾸 터져나온다. 그 좋은 일들이 주는 쾌감, 너무너무 좋다. 그 쾌감을 탐닉해서 나날이 빨리 흘렀으면 싶어진다. 내일은 어떤 일이 생겨질까, 기대에 차서 내일이 빨리 오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내일, 모래…… 한 달, 두 달…… 이렇게 시일이 가면 얼마나 많은 기분나는 일들이 춤을 추며 마주 올 것인가. 그래서 한 달이 빨리 지나갔으면 싶지만 나는 참는다. 참고 꾸준히 일(휴식)만 한다. 성과를 많이많이 루적해 간다. 이런 누적이 있는 한 행복스러운 날은 한강변의 케쥬얼처럼 나를 찾아온다.

  좀 한스럽다면 이런 행운이 너무 늦어졌다는 것이다. 젊었을 때의 일은 다 고생이었다. 매일 피로한 몸을 이끌고 출근했고 너무 피곤해서 저녁을 먹으면 침상에 쓰러져 자야 했던 그 시절, 그 때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야 했을까! 좋은 일은 나와 상관이 없고 지지리 힘들기만 해서 나이와 상관없이 양미간에 깊은 주름이 패였었던 나의 젊은 시절이었다.

  그 어려움들이 지금은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일까. 늦어서라도 행운을 찾은 것이 너무 행운이었다.

  이 시간도 나는 나의 창가에서 한강을 바라보며 동해의 파도소리를 듣는다.

  8 . 보지 말 것을 훔쳐본 듯

  중국에서 태어나 줄곧 중국에서 산 나는 한국 드라마에 홀딱 반해버린 적이 있다. 주로 우리 언어 때문이었다. 우리 말을 하며 사는 세상이 이렇게 잘 되어있었구나 감탄이 나갔다. 한국어와 비겨볼 때 중국 조선족의 언어는 정말 언어 같지도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조선어로 글을 쓴다는 내 자신이 부끄러울 정도였다.

  그리고 빈틈없는 이야기 짜임새가 나를 흡인하기도 하였다. 한 인물의 불행을 파헤칠 때는 18층 지옥까지 깊이깊이, 아주 철저하게 파헤쳤다가 이젠 정말로 더 불행해질 수가 없어 바닥을 치고 났는데도 기적같은 불행을 엉뚱하게 더 만들어 넣어 시청자가 기절하게 만든다. 거기까지 보고나서 이젠 그 불행이 행운으로 반전하겠지 했는데 또 의외의 불행이 들이닥치게 한다. 정말로 제작진의 악착스럽게 끈질긴 일면을 느끼게 한다. 악을 쓰고 제작기교를 철두철미하게 발휘했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한국드라마가 왜 이렇게 흥행하여 한류를 형성했다는 것을 알게 한다. 한국인들의 창작 기술은 세계 으뜸이 되겠다는 믿음이 갔다.

  그런데 한국 드라마를 좀 많이 보니까 그 흠도 보여졌다. 작가가 악착같이 몸부림치며 작품을 완성한 그 흔적이 보여진다. 말하자면 보이지 말았어야 할 작가의 모습이 보인다는 것이다. 섬세하고 엄밀하지만 무게나 깊이가 모자라서 시청자의 눈에 작가의 모습이 드러나 버린 것이다.

  중국 드라마는 아직 많이 거칠고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 많다. 하지만 어떤 작품은 그런대로 볼만 하다. 예날보다 어색하지 않고 시청자를 끄는 무엇이 제법이었다. 한국 드라마가 생활적으로 좀 가볍다면 중국 드라마는 감정의 두께가 있고 인생의 철리가 묻어있다. 중국 드라마는 기교 면에서 아직 한국드라마와 비교도 안 된다. 하지만 중국 드라마는 그 시야가 넓고 내용이 깊다.

  한국인들이 아글타글 드라마를 만들었다면 중국인들은 좀 어지게 진실을 얘기하다는 느낌이다.

  한국 드라마가 좋지만 그 한계도 있다는 지적이다.

  9. 돈으로 못하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30여년 전에 쌀이 힘있었다. 누구에게 무슨 청탁을 할 때 쌀만 한 마대 척 갖다주면 그만이다. 안 되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모택동은 주석이고 쌀은 부주석”이라는 농담까지 나왔다. 그때 중국 동북에서는 주로 우리 조선족이 벼농사를 했었는데 바로 그 쌀 덕으로 힘을 제법 썼다. 그런데 농토 개인 도급제를 한 후부터 쌀이 넘쳐나게 되었고 따라서 쌀은 힘을 잃어 버렸다.

  그 후로 사람들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세상은 돈이 독춤을 추는 세상으로 바뀌었다. 돈이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돈이 있으면 죽을 죄를 지었어도 살 수 있었고 돈이 있으면 쉽게 출세도 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돈이 있으면 안 되는 일이 없었다. 돈을 믿고 우쭐해서 가난한 사람은 사람으로 치지도 않던 세월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돈의 힘이 흔들리고 있었다. 중국정부의 반부패 사정바람 때문이었다. 요즘은 돈이 있다고 대틀이 되어서 떵떵거리는 사람이 적어졌다. 무슨 일을 청탁하려고 관료에게 돈을 주면 감히 받지 못한다. 천만번 안전하다는 확신이 설 때야 떨리는 손으로 돈거래를 한다. 중국 사람들은 아직 이런 상황에 익숙한 대응을 하지 못 한다. 전에는 돈만 건네면 만사 오케이었었는데 이제는 돈 가지고도 해결을 못 보기 때문에 어째야 할 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관료가 돈을 받지 않고 일을 해결해주면 당연한 일로 여길 대신 공짜로 무엇을 얻어 먹은 것 같이 속이 꿀린다.

  돈이면 만사대길이던 중국의 돈문화는 이제 색이 바래고 있다. 돈은 좋다. 돈은 힘이 있다. 돈은 너무나 많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돈이 하는 일이 너무 컸고 너무 많았다. 세상만사가 돈을 핵심으로 뱅뱅 돌고 있었었다.

  돈 거래가 없는 사이에서도 웃음꽃이 피어나는 그런 세상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구용기 약력>

1959년 생, 1981년 조선족문단 데뷔. 소설창작을 주로 수필, 문학평론, 실화문학 등 300 여편의 작품을 창작했다. 단행본으로 중단편소설집 ‘날 사랑하지 말아’와 장편소설 ‘서른살 언덕에 묻힌 침묵’이 있다.

현 ‘송화강’잡지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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