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자: 구용기
(흑룡강신문=하얼빈) 사람들은 다 우리의 미래가 어떨지 확실한 답을 가지지 못하고 산다. 가치관으로부터 감정방식에 이르기까지 미래에는 필경 지금과 달라지게 될 것이다.
중국에서의 우리의 삶은 늘 변하면서, 달라지면서 엮어져왔다. 아직 갈 길이 멀고 미래도 아직 불투명하다고 할 수가 있다. 하긴 미래가 더 거창해서 변화가 많은 것 같다. 미래를 연도별로 나누고 기획해서 구체 목표들을 설정한다. '일대일로'프로젝트라든가, 2020년 안에 소강사회(小康社会)를 전격 건설한다든가 하는 계획들은 엄청나게 굉장한 일들이다. 우선 두 손 모으고 이 모든 것들이 성사되기를 기도한다. 그때가 되면 우리는 더 많이 행복해지겠지? 그럴까?
지난세월 말하자면 못살 때 가슴에 크나큰 정치적 포부를 안고 정열이 넘쳐 돌아치는 청춘시절이 생각난다. 행복지수를 따질진대, 지금이 그때보다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적어도 지금의 존재감이 그때보다 못하다고 할 수 있다. 물질생활은 나날이 좋아지지만 정신적 피로감은 갈수록 격해지는 것일까. 사회가 진보하는데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지쳐서 사는 측면도 없다고 말할 수 없다. 지치다는 것을 정신적인 나태로 보면 어떨까. 광동성에서 온 친구가 그랬다. 거기 사람들은 정치에는 별로 관심이 없고 공부에도 별로 관심이 없이 장사에만 신경을 도사리고 산다는 것이었다. 우리 흑룡강성은 어떤가? 정치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19시 뉴스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이 많고 공부에 열중하는 학생들도 너무 많은데 중국에서 제일 못산다. 놀랍게도 조사에 따르면 하얼빈 사람들의 행복지수가 전국에서 일이등에 든다고 했다. 물질생활은 제일 어렵지만 정신생활은 제일 원활하다? 이 말이 성립될까? 앞으로 더 잘 살게 될 것이지만 더 행복할 지는 모르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내 앞날을 기획하지 않는다. 눈 앞에 닥치는 일만 열중한다. 그리고 이런 생각을 때로는 남한테 얘기해서 오해를 받곤 했다. 아이들을 키우는 문제를 두고 어떤 지인과 이야기를 했었다. 나는 애들에게 이상이요 목표요 하는 그런 것들을 주입시키지 말고 법과 규정의 틀 안에서 되도록이면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을 하게 밀어주라고 했다. 애들의 눈에 보이는 세상과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은 엄청 큰 차이가 있기 때문에 우리 식대로 애들을 강요할 수 없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사람은 나더러 최저의 상식도 없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이는 자신의 수필에서 애가 장래에 어떤 음악을 좋아하고 어떤 철학을 좋아하면서 귀족적으로 우아하게 사는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나는 기가막혀 무어라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기실 우리가 살아온 역사가 우리에게 알려 주었다. 우리에게는 정해진 앞날이 없다. 어떤 사람은 이 세상에서 살지만 아무런 가치도 없을 수도 있다. 때문에 자기자신에게 너무 집착하지 않아도 된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등의 글을 붓으로 써서 벽에다 붙여놓고 사는 그런 사람들이 너무 힘들어 보인다. 사회는 발전하고 있고 우리가 사는 여건들도 더 좋아지고 있다. 옛날에 비하면 살기가 점점 쉬워지고 있다. 자신을 좀 더 풀어놓고, 자신에게 더 많은 자유를 주고 더 많은 환상도 주고…… 더 많은 게으름도 주면서 편하게 사는 쪽으로 가면 인생이다.
우리는 가끔 자신을 잊고 살아도 괜찮을 것이었다. 지금 가진 견해들을 놓고 쉬면서 새로운 생각을 영접하는 그런 자세로 살면 편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