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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jury Time-비얀코네리 군단의 ‘심장’, 델 피에로

[기타] | 발행시간: 2012.05.15일 13:55
(베스트 일레븐)

"알렉산드로 델 피에로를 한 단어로 설명할 수는 없다. 그는 20년 동안 오직 유벤투스만을 위해 뛰었다. 델 피에로란 이름은 곧 유벤투스의 역사다."

델 피에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거침없이 밝힌 체코 출신의 축구 선수 파벨 네드베드의 말이다. 그는 지난 4월 유럽축구연맹(UEFA) 홈페이지에 실린 인터뷰를 통해 델 피에로를 가리켜 "역사", "위대한 챔피언", "영광" 등의 단어를 망설임 없이 사용하며 무한한 경의를 표시했다. 비슷한 시기 같은 팀에서 뛴 동료의 발언이라고 보기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격상된 표현이었다. 델 피에로란 이름은 한때 유럽 축구의 터치라인을 지배했던 네드베드에게도 경외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델 피에로가 유벤투스와 이별했다. 2011-2012 이탈리아 세리에 A에서 유벤투스에 감격스러운 스쿠데토를 안긴 후다. 1993년 처음 비얀코네리 (이탈리아어로 흑백 줄무늬를 뜻함. 유벤투스의 유니폼이 흑과 백으로 되어 있다는 것에서 착안된 클럽의 별칭) 유니폼을 입은 지 햇수로 꼭 20년 만의 일이다. 지난 20년 동안 비얀코네리 군단의 영광과 좌절을 함께 했으며 전설을 넘어 클럽의 '심장'으로 기억 될 델 피에로. 그가 지금껏 유벤투스와 함께 일군 많은 것들을 찬찬히 돌아보는 시간을 준비했다. 왜냐하면 그것이 20년 동안 우리에게 수많은 아름다운 플레이를 선사해준 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 비얀코네리 군단의 새로운 '10번'

1995년 6월의 일이었다. 당시 유벤투스의 팬들은 커다란 슬픔과 마주하고 있었다. 팀을 위해 모든 것을 불사를 것이라 믿었던 로베르토 바조가 돌연 작별을 선언했기 때문이다. 로베르토 바조는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판타지스타 중 하나였는데, 팬들은 그런 반짝이는 선수를 잃어야 한다는 사실을 쉽게 믿으려 하지 않았다. 더군다나 바조는 그들의 라이벌인 AC 밀란의 유니폼을 입겠다고 공언한 상태였다. 유벤투스 팬들의 슬픔은 컸고, 클럽 수뇌부도 대스타의 공백을 어떻게 메워야 할지에 대해 크게 고민하고 있었다. 무엇보다 바조가 짊어지고 있었던 등번호 10번의 주인공을 찾기가 쉽지 않아 보였다.

고민 끝 내린 구단 수뇌부의 결정은 이제 유벤투스에서 고작 두 시즌을 보낸 신예 델 피에로였다. 당연히 팬들의 반응은 차가웠다. 델 피에로가 미래를 촉망받던 선수이긴 했지만, 바조라는 이름의 뒤를 잇기엔 아직 부족함고 많고 검증해야 할 것도 많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무엇보다 유벤투스를 넘어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판타지스타가 되기에 델 피에로는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였다. 하지만 결정은 번복되지 않았다. 구단 수뇌부는 델 피에로라는 어린 선수에게 10번이란 유벤투스의 상징을 선사했고, 그는 곧장 엄청난 부담과 기대를 무겁게 등진 채 경기에 나서야 했다.

그렇게 바조의 10번을 물려받은 델 피에로는 곧장 다음 시즌부터 팬들의 우려를 씻어내기 시작했다. 10번을 달고 뛴 첫 시즌인 1995-1996시즌엔 리그에서만 29경기에 출장해 6골을 넣는 가능성을 선보였다. 리그컵 등 다른 대회에서의 기록까지 더하면 43경기에 13골로 기록은 증가한다. 그중 델 피에로가 강력한 임팩트를 남긴 것은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였다. 그곳에서 델 피에로는 UEFA 챔피언스리그 역사상 가장 놀랍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엄청난 활약을 선보였다.

델 피에로는 16개 팀이 (당시 UEFA 챔피언스리그의 조별 라운드는 32개 팀이 아닌 16개 팀이 참가했다) 참가한 조별 라운드 1차전부터 폭발했다. 상대는 독일 분데스리가의 명문 도르트문트. 델 피에로는 그 경기에서 첫 골을 뽑아내더니 이후 내리 다섯 경기 동안 연속골을 작렬시키며 유벤투스를 8강에 진출시켰다. 22살의 신예가 올린 기록이라고는 믿기 힘들지만 이마저도 맛보기에 불과하다. 그는 0-1로 뒤지고 있던 레알 마드리드와의 8강 두 번째 경기에서 드라마틱한 동점골을 터트리며 역전승의 발판이 됐다. 그 탄력으로 진출한 결승전에서는 대회 2연패를 노리던 네덜란드의 아약스를 승부차기 끝에 꺾으며 유벤트스에 소원하던 '빅 이어'를 안겼다.

참고로 그는 이 대회에서 '델 피에로 존'이란 전리품을 얻었다. 델 피에로는 상대 진영 페널티박스 왼쪽 모서리에서 오른발 감아 차기로 파 포스트 상단을 관통하는 골을 많이 넣었는데, 그런 장면이 대회 기간 중 무려 세 경기 연속으로 터져 깜짝 놀란 세상이 그에게 내린 선물이다. 상대팀 골키퍼가 알고도 막을 수 없었던 그 슈팅은 델 피에로란 이름을 세계 축구팬들에게 각인시키기에 충분했고, 아울러 그가 바조의 뒤를 이을 훌륭한 비얀코네리 군단의 10번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

▲ 델 피에로, 유벤투스의 심장이 되다

꿈의 무대를 뒤흔든 델 피에로는 곧바로 이탈리아 세리에 A를 대표하는 스타로 급성장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우승을 차지했던 다음인 1996-1997시즌에는 총 35경기에 출전해 15골을 뽑아내며, 유벤투스에 리그 우승과 슈퍼 코파 이탈리아 우승 트로피를 안겼다. 1997-1998시즌은 더욱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 시즌 그는 처음으로 한 시즌 30골(총 47경기 32골)을 넘기는 기염을 토했는데,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만 10경기 출전에 10골이란 놀라운 기록을 세우며 득점왕까지 거머쥐었다. 애석하게도 직전 시즌에 이어 그 시즌에도 레알 마드리드에 밀려 준우승을 차지하긴 했지만, 비얀코네리 군단의 공격을 아름답게 이끌던 그의 이름은 더욱 크게 회자됐다.

새로운 10번, 새로운 판타지스타 델 피에로를 앞세운 유벤투스는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이탈리아를 평정하며 승승장구했다. 1995년부터 시작된 그들의 리그 우승 퍼레이드는 1997년, 1998년, 2002년, 2003년 등 8년 동안 다섯 번의 스쿠데토 획득으로 이어졌고, 와중 네 번(1995년, 1997년, 2002년, 2003년)의 슈퍼 코파 이탈리아 정상에 등극하며 유벤투스의 시대임을 공표했다. 또 UEFA 슈퍼컵(1996년), 인터콘티넨탈컵(1996년), UEFA 인터 토토컵(1999년) 등 이탈리아 밖에서 얻을 수 있는 우승 트로피도 적잖이 챙기며 명실상부 유럽 최고의 클럽 중 하나로 군림했다.

그렇게 델 피에로와 함께 잘 나가던 유벤투스에 커다란 시련이 닥쳤으니 바로 그 유명한 '칼치오 폴리(이탈리아 프로 축구 승부조작 사건)다. 칼치오 폴리는 2006년 유벤투스의 단장이었던 루치아노 모지가 심판 배정관이었던 파울로 베르가모에게, 자신의 팀에 우호적인 판정을 내리는 심판을 경기에 내보내라는 압력을 행사한 사건이다. 일종의 승부 조작 사건인 셈인데, 유벤투스는 향후 이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2004-2005시즌과 2005-2006시즌 차지한 스쿠데토를 반납해야 했으며, 아울러 2부 리그 강등이란 클럽 역사상 최악의 시련을 맞이하게 됐다. 유벤투스로서는 클럽의 존폐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큰 위기에 봉착한 셈인데, 이때도 델 피에로라는 존재가 큰 힘이 됐다. 그로 인해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는 훼손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델 피에로는 적잖은 스타 선수들이 유벤투스를 떠나던 당시 당당히 잔류를 선언했다. 팀이 무너지는 것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만 남는 것에 머무르지 않았다. 동료들을 찾아다니며 함께 자존심을 회복하자고 읍소했다. 그때 팀을 떠나려고 마음먹었다가 델 피에로의 간곡한 부탁으로 잔류한 선수들이 네드베드, 트레제게, 부폰, 키엘리니 등이다. 비록 델 피에로가 모든 선수들의 잔류를 성공시키지는 못했지만 몇몇 팀의 핵심 멤버들을 남기는 데 성공하면서, 유벤투스는 2부 리그로 불명예스럽게 추락한지 꼭 1년 만에 다시 세리에 A로 올라올 수 있었다. 그리고 델 피에로는 1년 동안의 2부 리그에서 35경기에 나서 20골을 잡아내며 득점왕에 오르기도 했다. 유벤투스에 있어 구세주와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1부 리그로 복귀한 2007-2008시즌, 델 피에로는 2부 리그에서 고통을 함께 감수한 동료들과 함께 정상 등극을 노렸으나 여의치 않았다. AC 밀란과 인터 밀란 등 밀라노에 둥지를 틀고 있는 두 형제가 그새 막강한 전력을 구축하고 있었던 탓이다. 그래 델 피에로는 34살의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득점왕까지 으르며 고군분투했으나, 세상의 모든 것은 혼자 힘으로는 바꿀 수 없었다. 이후에도 우승은커녕 2위권 진입에도 곤란을 겪은 유벤투스를 바라보며 사람들은 명가 재건이 결코 쉽지 않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던 2011-2012시즌, 비얀코네리 군단은 마침내 리그 1위 자리에 오르며 스쿠데토를 따냈다. 38차례의 리그 경기에서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고 일군 '무패 우승(23승 15무, 승점 84점)이었고, 그 중심에는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우승을 자축하는 골을 터트린 비얀코네리 군단의 10번 델 피에로가 있었다.

대단한 스타의 등번호를 물려받은 뒤 그보다 더 대단한 업적을 쌓으며 유벤투스를 이탈리아 최고의 클럽으로 군림케 하는 데 일조했고, 승부 조작이란 최악의 사건으로 팀의 뿌리가 흔들릴 때 굳건히 서서 명가의 자존심을 지켜낸 비얀코네리의 심장 델 피에로. 1993년부터 2012년까지 20년 세월 동안 그가 오직 유벤투스에서만 머물며 보여준 많은 것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충분한 귀감이 될 만하다. 끊임없는 노력으로 최고의 경지에 올랐다는 것도 그렇지만, 도리를 알고 의리를 지키려는 요즘 보기 힘든 인간상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20년 동안 그가 보여준 무수한 경기에 경의를 표한다. 그리고 그 올바른 인간상에 대해서도 깊은 고마움을 전한다.

글=손병하 기자(bluekorea@soccerbest11.co.kr)

사진=PA(www.pressassociat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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